포사

1 개요

褒姒

달기와 더불어 중국 희대의 경국지색으로 꼽히는 여인.

2 출생

포사는 전설적인 경국지색답게 출생부터 판타지다. 하나라 말기 걸왕(桀王) 때 이 나타나 을 흘렸다. 왕은 그 침을 상자 속에 보관했고, 후에 주나라 선왕(宣王) 때에 그 상자를 열자 도마뱀이 빠져나왔다. 도마뱀은 궁녀의 몸 속에 들어가 수십 년 동안 잉태된 채로 있다가 여자아이가 태어났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궁녀는 그 아기를 요람에 태워 강물에 띄워 버렸다.[1]

그 시기를 전후하여 당시 주나라의 수도인 호경에서는 이상한 노래가 아이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다. 산뽕나무 과 기초로 짠 화살통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내용이었으며, 이는 점술가가 한 예언과도 같았다. 그래서 주나라 조정에서는 산뽕나무 활과 기초로 짠 화살통을 만들지 못 하도록 법으로 엄금했는데...

어떤 노부부가 깊은 산골에서 살아서 조정의 그런 방침을 못 듣고 문제의 산뽕나무 활과 기초로 짠 화살통을 만들어 팔기 위해 상경하다, 관헌들에게 들키는 바람에 잡혀버린 여자는 사형을 당하고 남자만 간신히 빠져나와 도망쳤다. 그는 도망치던 중 강가에 새들이 부리로 잡아당겨 어떻게든 땅으로 끌어올리려고 한 요람 속의 아이를 주워 기르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나라 신화든 예언에 나오는 재앙의 근원을 봉쇄할 때마다 꼭 구멍이 하나씩은 나온다

3 성장

아이를 발견한 촌부는 가난 때문에 포성(褒城)에 사는 사대(似大)라는 사람에게 아이를 팔았다. 그는 아내와 아들은 무사한데 딸만 얻으면 태어나는 족족 죽어나가는 터라 여자아이를 얻고 싶어서, 아이를 사서 포성의 포(褒)에 사(似)의 사람 인 변을 계집 녀로 바꾼 사(姒)로 포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키웠다.

14세가 되자 그 아름다움이 두드러졌고 17세 때는 절세가인이 되었다. 시골에 사는 데다 나이가 어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고, 그래서 그냥 빨래와 밭일만 하는 시골 여자아이의 모습 그대로였으나...

어느 날 같은 포성 사람 홍덕이 그녀를 보고는 그녀를 왕에게 바치면 왕에게 밉보여 3년째 옥에 갇혀있는 아버지 포향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거액을 주고 그녀를 사서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고 예법을 철저히 가르쳐 당시 주나라 왕인 유왕(幽王)에게 바쳤다. 워낙 미인이라 바로 후궁이 되었고 옥에 갇힌 포향은 풀려나왔다.

4 표독스러운 여자

유왕은 포사를 총애하여 원래의 왕후인 신후(신나라 공녀 출신)와 그 소생 태자 의구(후의 주평왕)를 폐하고 포사를 왕후로, 포사의 소생 백복을 태자로 삼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포사는 아름다웠지만 도통 웃지를 않아서 왕의 애간장을 녹였다. 어느 날 한 궁녀가 비단옷을 입고 지나가다 매화나무 가시에 옷이 걸려 찢어졌는데, 왜인지 포사가 그 소리가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2] 그래서 유왕은 비단을 있는 대로 사서 찢어댔고, 당연히 국고는 초스피드로 탕진.

그 후 한 술 더 뜨는 일이 벌어졌으니, 어느 날 여산의 봉화대에 전쟁이 났을 때만 피워야 하는 봉화가 아무 일 없는데도 피어오르는 일이 생겼다. 놀란 제후들이 병사들을 데리고 부리나케 모였다가 아무 일도 없는 것을 알고 다들 어이가 없어 화를 냈다. 그런데 포사가 보기에 그 사건이 꽤나 재미있었는지 신나게 웃었다고 한다(...) 그 웃음 소리가 마치 악기와도 같고 웃는 얼굴은 꽃이 만발한 듯이 아름다워서 유왕은 더욱 신이 나 봉화를 시도때도 없이 자꾸 올리게 했다(...) 이런 짓거리를 자꾸 해대다 보니,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처럼 정작 진짜 오랑캐가 쳐들어올 땐 봉화를 올려도 또 거짓말인 줄 알고 어떤 제후도 오지 않아 왕은 오랑캐에게 죽임을 당한다. 일부 제후들은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눈치 채고 진짜 침략임을 알았지만, 여자 하나에 저리 미친 왕이라면 차라리 이 참에 죽는 게 낫다며 방치했다는 설도 있다.[3]

문제의 거짓봉화 사건이 일어난 경위에 대해서는 판본에 따라 다르게 서술되어있는데, 단순한 실수였다는 설과 아예 처음부터 의도되었다는 설이 있다. 전자의 설에 따르면 봉화 관리자의 실수로 봉화대에 불씨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불이 올라갔고, 유왕이 봉화 관리자를 불러 문책하려다가 포사가 웃음을 보이자 이를 본 유왕의 기분이 갑자기 좋아져서 봉화 관리자를 벌하려던 것도 취소하고 되려 상을 내리더니 그 뒤로 계속 거짓봉화를 올렸다고 한다. 후자의 설에 따르면 괵석부라는 아첨쟁이 신하가 "천하가 태평해 오랫동안 봉화를 올릴 일이 없었으니 이번에 갑자기 봉화를 피우면 포사를 웃길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아이디어를 내서 유왕이 실행에 옮기려 하자, 이 소식을 들은 어느 제후가 "봉화는 그런 용도로 쓰라고 있는 게 아닌 줄 아뢰오" 하면서 유왕을 말리려고 했으나, 왕은 쌩까고 그 다음 날 봉화 장난을 강행했고 진짜로 포사가 웃음을 보이자, 아이디어를 낸 괵석부에게 큰 상을 내리고 그 뒤로 계속 거짓 봉화를 올렸다는 내용이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방영분에서는 단순실수설을 따르고 있다.

5 이후의 행방

포사의 행방은 정확히 알려진 게 없지만, 견융이 침략했을 때 유왕은 죽임을 당하고 그녀는 오랑캐에게 끌려간 것은 확실하다. 이후 견융의 우두머리가 검열삭제를 한 후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전해진다.

달기서시와 달리 누군가가 작정하고 나라 말아먹게 하려고 보냈다는 설도 없다는 점에서 더욱 무서운 경국지색의 미녀.

6 정말 포사 때문에 주나라가 망했을까?

포사로 인해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나왔고 포사는 하나라를 말아먹게 한 말희, 은나라를 말아먹게 한 달기의 계보를 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말희-달기-포사의 스토리 라인이 너무 비슷하다는 것.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 나라가 건국될 때는 남자를 부각시키다가, 그 나라가 멸망할 때는 여자를 부각시키는 스토리라인이 널리 퍼져있다. 서양의 경우 그리스헬레네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말희, 달기, 포사 세 여인 모두 정복한 나라에서 바쳐진 미녀들이고, 빼어난 미모로 왕들을 사로잡아 결국 나라를 망치게 했다는 구조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런 탓에 일각에서는 이런 기록을 믿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서주 말기로 가면 주왕실의 군대는 세가 약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봉화로 제후군을 불러모았다는 이야기는 결국 주왕실의 중앙군이 약해서 제후들이 달려와줘야 위급한 상황을 벗어날 정도로 주왕실이 약해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포사의 웃음을 듣기 위한 용도로 거짓 봉화를 올린 것이 아니라, 중앙군이 약해지고 제후군들이 강해지면서 위기감을 느낀 주왕실이 왕권을 세우려는 시도를 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이런 시도가 결정적인 순간 제후들이 모두 돌아서버리면서 비극적인 결말로 치달았다고 볼 수 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포사 개인보다는 그를 총애하면서 대결구도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제후들의 신임을 잃은 주유왕의 책임이 더 크다. 주유왕은 즉위 후에는 거대 제후국 중 하나인 진(晉)나라와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당시의 진후인 문후는 포사·백복에 반대하는 편의 제후국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문후는 등장하지 않다가, 나중에는 도리어 주평왕(원래 태자였으나 백복에 밀려 태자 자리에서 쫓겨났던 유왕의 또 다른 아들)을 세우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까지 언급된다. 포사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은 그나마 서주 편에 남아있던 제후들마저도 왕실을 저버릴 동기를 부여한 것이다.

사기를 비롯한 후대의 역사서를 보면 이를 추정할 수 있는 문구들이 나온다. 오랑캐인 견융이 주나라를 공격한 계기는 신나라의 제후인 신후(申侯) 때문이었다. 포사로 인해 왕후였던 딸이 폐출당하자 신후는 이에 반감을 품고 견융을 끌어들인 것.[4] 이는 엄연히 주 왕실에 대한 반란이지만, 오히려 다른 제후들은 방관했을 뿐만 아니라 견융 세력을 물리친 뒤엔 신후를 처벌하기는 커녕 함께 유왕의 태자를 옹립했다. 이 태자는 폐출된 신씨 왕비의 아들이므로 신후는 태자의 외조부가 된다. 즉 바꿔 말하면 천자의 장인과 같이 주 왕실과 가까웠던 제후조차 일부러 외부 세력을 끌어들이는 반란을 행하고, 이후에도 반란의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기득권을 유지할 정도로 주 왕실과 제후간의 반감이 극심해지고 주 왕실의 권위가 떨어졌다는 의미가 된다.
  1. 용 = (군왕의) 남근, 침 = 정액, 상자 = (여성의) 자궁으로 해석하여, 실제 출생은 귀한 신분이나 그것을 우회적으로 감추고자 한 노력의 흔적이라는 해석이 존재한다. 많은 신화전설이 그런 모티브를 비유해서 표현하기 때문. 고우영 십팔사략에서는 이 가설을 채용했다.
  2. 고우영 열국지에서는 자신을 아낀다고 믿었던 아버지가 비단을 받고 자신을 팔아버린 것 때문에 비단 찢는 소리를 좋아하게 된 것으로 설명한다.
  3. 고우영 열국지에서 대부분의 제후들은 비웃고 무시하지만, 진짜임을 알고도 코딱지나 후비는 어느 제후는 "장인과 사위의 못난 싸움이야, 둘끼리 잘들 해보라구 해"라며 무시하는 묘사가 나온다.
  4. 때문에 열국지 등 후대의 창작물에서 신후의 행위는 주 왕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좋은 의도였으나, 견융이 멋대로 유왕을 살해해버리고 신후도 '천자를 좀 놀라게 해서 바른 길로 이끌려고 했지 살해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라고 후회하는 것으로 묘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