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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1972년 사이에 찍은 사진인데 엄청나게 화질이 좋고 컬러사진이다!!!!! [1]
프루이트 아이고
아이고맙소사 우린 이제 무너졌어
The Pruitt-Igoe
1 개요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던 아파트 단지. 프루이트 아이고라고 서술할 때도 있지만 프루이트 이고라고 서술될 때도 있다. 건축가 야마자키 미노루(1912~1986)가 설계하였다. 수많은 건축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모더니즘 건축의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후술. 읽어보면 알겠지만 실상은 말 그대로 아이고다...
2 시작
세인트루이스의 도시화가 가속되고 인구 유입이 늘면서 남부지방에서 세인트루이스로 올라온 이주민들에게는 직장에서 가까운 도심지의 거주지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런 거주지는 고급주택 외에는 슬럼가밖에 없는 상태였고, 주정부는 새로운 주택단지를 짓기로 결심한다. 슬럼가를 밀어버리고 그 위에.
1951년의 현상설계에서 일본계 미국 건축가인 야마자키 미노루의 안이 당선되고, 1954년에 완공되었다. 33개동의 11층 공공아파트에 2,762세대, 12,000여 명의 주민이 이주하기로 계획되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철학의 연장선으로, 이 단지는 모더니즘의 정상이자 주택단지 설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사회학자와 심리학자의 자문을 받아가며 설계한 이 단지는 미국건축가 협회의 상을 받으며 그 화려한 역사를 시작했다.
3 몰락
하지만 프루이트 아이고의 주요 거주자는 극빈층, 그리고 대부분 흑인이었다. 이들의 삶은 기본적으로 집 앞의 거리에서 이루어졌다. 괜히 street문화라는 것이 생겨났겠는가? 그러한 삶의 방식을 무시하고 고층단지로 지어졌으니 이 건물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이렇게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상황에서 주 정부의 병크는 한 술 더 떴다. 정부는 복지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거주자의 삶을 제한했는데, 성인 남자는 가족과 함께 살 수 없었고 텔레비전과 전화사용도 금지되었다. 그리고 예측과는 달리 세인트루이스의 인구는 이후 감소추세를 보였기 때문에 중산층, 백인들은 단지를 나가 다른 곳으로 이주해 거주자 중 흑인 비율은 98%가 되었다. 흑인은 스트릿 문화라며
정치가들의 삽질 또한 비범했다. 제 몫을 챙기려고 단지 건설을 지지했던 이들은 이후 세금으로 단지를 관리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이후 상황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한다. 벽에 금이 가고왜?, 유리창은 깨진 채로 방치되었으며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4 폐건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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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지의 입주율은 60%를 넘은 적이 없었으며, 1970년에 이르러서는 전체 건물 33개동 중 27개동이 빈집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빈 곳들에서는 범죄 및 사회의 어두운 손길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외부인들이 침입하여 강간, 약탈 등 범죄를 저질렀지만 외부에서 볼 때는 거주민들을 범죄자로 인식하여 차별대우를 받았다. 1969년 이들은 집세 지불 거부 운동을 벌였지만 반응은 어디에다 대고 신성한 집세를 안내는거야.
거주자 중 한 명이 단지 내에서 형이 괴한의 습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히는 당시의 상황은 망했어요. 거주자들의 커뮤니티 공간이라고 지은 실내의 홀은 마약거래를 하는 데 안성맞춤이었고(…), 미디어는 단지의 실패와 공공기물 파손 등의 반달리즘 등을 집중적으로 보도하였다. 그리고 버틸 수가 없던 정부는 결국……
5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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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장창
1972년 7월 15일 오후 3시 22분, 단지는 폭파되어 완전히 철거되었다. 후에 건축역사가 찰스 젱크스에 의해 이 순간은 "모더니즘이 끝난 순간"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시작이기도 했다.
하나의 사상을 끝내고, 다른 사상을 탄생시킨 건축으로서 프루이트 이고 단지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어떤 의미로는 불멸의 건축물이 되었다(…). 건축가인 미노루는 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영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철거 이후 해당 부지는 공원화되어 숲이 조성되었다.
6 반론
프루이트 아이고의 건축적 가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평가절하되어졌다는 의견도 있다. 단지가 몰락한 이유는 건축가가 저소득층 거주민에 대해 고려가 부족했던 점도 있지만 정부와 정치가들의 병크가 훨씬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폭파라는 너무나 극적인 결말은 미디어의 집중포화 때문이었다라는 의견도 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거주 저소득층이 워낙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사실, 한국 같은 경우에도 많은 저소득층용 시민아파트가 지어졌지만 저것과 같은 문제가 도출된 적은 없다. 단지 건물이 스스로 주저앉기는 했지만 다만 한국의 시민아파트는 사실상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였다. 물론 초기 시민아파트의 목표 자체는 저소득층 거주지였지만 한국 부동산을 망치는 주범인 부동산 투기꾼들이 끼어들면서 가격이 폭등해 정작 저소득층은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소설 난쟁이가 쏘아올린 공을 생각해보자. 거기서도 저소득층인 주인공 가족 등은 분양권을 팔고 떠났다. 즉 시민아파트는 저소득층 거주지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 이후 한국에서 최고급 거주지는 타워팰리스같은 고오급 아파트이며 단독주택이 주류로 자리잡지 못 한것만 봐도 아파트가 저소득층을 위해 지어졌다기엔 어렵다. 시민아파트, 시범아파트가 정말 저소득층을 위해 지어져 그 목표를 실현했다면 지금은 한남동, 성북동, 평창동같은 곳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서울과 경기도는 사이타마같이 단독주택으로 찬 개판이 되었을 것이다. 평촌신도시같은 신도시들은 지금쯤 똥값이 되어 슬럼가가 될지도 모른다
저소득층 문제는 워낙 민감한 문제이므로 이는 판단에 맡긴다.
지나치게 선진국 위주의 시각이라는 비판도 있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은 한국이나 아시아 대륙권과 달리 2층짜리 뾰족지붕 단독주택을 중산층의 상징으로 보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아파트라는 주거형태 자체를 홀대하는 경향이 있다. [2]
7 이야깃거리
이 건물이 대중문화 속에 자리 잡게 해 준 일등공신은 컬트 클래식으로 꼽히는 다큐멘터리중 하나인 코야니스카시인데, 영화 중반에 프루이트-아이고의 폭파 철거 장면이 10분 동안 등장한다.[3] 크고 아름다운 와장창에 잘 맞아 들어가는 이 장면의 웅장하고 긴장감이 넘치는브금[4]은 필립 글라스가 작곡했는데, 영화가 개봉하고 20년이 좀 지나서 GTA 4의 첫번째 티저 트레일러에 해당 브금이 쓰인 이후 Watchmen 영화의 닥터 맨하탄 소개장면에도 다시 사용되면서 영화와 건물의 존재를 다시 알리는 데에 크게 기여를 했다. 그렇게 프루이트-아이고는 부관참시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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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세를 몰아 2011년에는 The Pruitt-Igoe myth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 건물의 역사를 다루기도 했다. 이 영화는 서울건축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이 건물을 지은 야마자키 미노루의 다른 대표작인 마천루 건물 또한 폭파로 철거(…)된다. 그래서 이 사람은 비운의 건축가로 불린다. 다행히 그건 못 보고 세상을 떠나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