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Paul Rubens
1577년 6월 28일 ~ 1640년 5월 30일
1 소개
독일의 베스트팔렌 주 태생이기 때문에 독일어로는 '페터 파울 루벤스'가 된다. 네덜란드어로는 '페터르 파울 뤼번스'. 혹은 '피터르 파우얼 뤼번스(Pieter Pauwel Rubens)'이다. 독일에서보다 네덜란드에서 활동한 경력이 더 많고, 본인도 네덜란드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듯. 네이버에서 벨기에를 검색해보면 벨기에의 대표인물로 그가 나온다.
아버지는 칼뱅주의자였는데, 정작 자신의 화풍은 가톨릭 수호 성향(반종교개혁)의 화풍이었다.
종교개혁 열풍 속에 혼란스러운 독일을 어린 시절에 빠져나와 벨기에의 앤트워프에서 14살 시절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여러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모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레오나르도 다 빈치, 특히 색감의 경우는 라파엘로와 틴토레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주로 성경, 신화, 인물 등을 소재로 해서 그렸으며, 스페인의 펠리페 4세, 잉글랜드의 찰스 1세, 프랑스의 마리 드 메디시스와 같은 왕족들에게도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왕실로부터는 왕실 화가로 임명되기도 하였으며, 스페인의 펠리페 4세, 잉글랜드의 찰스 1세는 기사작위를 수여하기도 했고,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외교관으로서 두 나라의 평화를 위해 활동하기도 했다.
유명한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처럼 그도 든든한 후원자들의 지원 아래, 자신의 화실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며 부족함 없이 풍족한 화가 생활을 영위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과 활동 내역에 관한 계약과 저작권에도 철저해 죽는 날까지 생활의 곤란함을 겪지도 않았다. 그리고 엄청난 다작과 수많은 문하생들을 굴려먹는 방식[1]도 그의 자금 사정을 풍족하게 해주었다.
향년 63세에 통풍으로 사망. 총 8명의 자식을 두었고, 막내는 생후 8개월 딸이었다고(…).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특징은 역동적인 묘사와 구도, 화려한 색채이다. 다만 세세함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그리고 유독 여인들을 풍만하게 그리는 걸로 유명하다. 53살 때 16살 소녀와 결혼하기도 했던 로리콘(…). 16살 아내의 초상화도 그렸는데, 그 여인도 살이 풍만한 걸로 봐서 원래 풍만한 여성들을 좋아했던 듯 싶다. 김형태의 허벅지 모에와 비슷한 맥락일지도
플랜더스의 개라는 작품으로도 매우 유명한 화가.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루벤스의 작품,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도 루벤스의 또 다른 작품인 <성모승천>도 <플랜더스의 개>에서 언급된다. |
생전 2,000여점이 넘는 많은 작품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매에 떴다하면 고가에 낙찰되는 작품이 많은 인기 화가이고, 소더비 경매 서양화 부문 최고기록도 루벤스의 작품인 <유아대학살>이다.[2]
2 조선인을 그린 화가?
재미있는 사실은 이 화가가 그린 작품 중에 조선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나오는 작품이 2개나 있다는 것이다. 이걸 소재로 한 소설이 있을 정도.
한복 입은 남자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