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라이어

(하리잔에서 넘어옴)

1 Paraiyar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의미. 어원은 2번 항목에서 유래한 듯.

참고로 "퍼라이어 들개(Pariah Dog)"는 인도나 소아시아, 북아프리카 등에 서식하는 들개를 일컫는다.

2 인도카스트 계급 중 하나

힌디어로는 달리트(दलित) 혹은 하리잔(हरिजन)이라 하며, 국내에서는 불가촉천민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산스크리트어의 한자 번역인 '不可觸賤民'으로 즉 "닿아서는 안되는 천한 것들"이라는 뜻이다. 카스트 계급 내에서 이들의 부정함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데, 마치 전염병마냥 이들에게 접촉된 것은 모두 부정해진다고 본다. 따라서 이들 달리트들은 주로 인도 사회에서 멸시받는 시체 처리, 가죽 수리, 길거리 청소, 구식 화장실 변 처리 등을 도맡아 하는 소작농 내지는 가난한 노동자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멸시와 편견 그리고 종교, 문화, 사회 차별을 받으며 빈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과거엔 단지 경전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눈을 뽑고, 경전을 말하면 혀를 뽑고, 경전에 닿은 신체 부위를 잘라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고, 지금도 가난한 상류 카스트들 중 일부가 이 계층 사람들을 상대로 테러를 자행하는 일이 왕왕 일어나고 있다. 정작 힌두 경전 중에는 이들 불가촉천민 중 하나가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악마들에게 당하고 있는 신들을[1] 구해준 일화가 있다.

수천 수만의 계급이 존재하는 카스트답게 이들보다 더 아래 계급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불가시천민(不可視賤民), 즉 쳐다보기만 해도 부정해지는 천민으로 불리는데 왜인지 불가촉천민 쪽이 더 유명하다. 볼 수가 없으니 유명해 지기 힘들 듯

유의할 점은 불가촉천민의 개념이 비단 인도 뿐만 아니라 일본부라쿠민, 조선시대의 백정, 프랑스카고(Cagot), 예멘의 아크담(Akhdam)과 같이 유사한 계층이 여러 국가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계급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회 전반을 어느 요인으로 나누는 일정 세력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불가촉천민의 존재가 단지 인도에만 국한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적지 않은 오산이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존재를 "긍정"[2]하는 자들은 그 스스로가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라야 마땅하다. 더군다나 저런 격리된 천민 개념 중에서도 불가촉천민처럼 닿기만 해도 더러워진다고 생각하는 수준의 계급 차별은 드물었다.[3]

하지만 영국의 식민지 시절 이후부터는 카스트 제도를 없애기 위해 이 계급에게 일부 특혜를 준 바 있고, 현재의 인도 정부는 인도 인구의 52%에 해당하는 국민(바이샤 이하)들을 위해,[4] 공무원 자리의 일정 부분을 하층민에게 할당하는 쿼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5] 인도에서 공무원은 매우 좋은 일자리인 데다[6], 지금까지 극소수의 상위 계급이 독점했던지라, 사회 불평등을 개선하는 좋은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 개혁정책 때문에 그 전까지 공무원직을 독점해 이익을 보았던 특권 계급의 불만이 심하다고 한다. 하지만 다수의 국민이 극소수에 의해 차별을 받고 있다면, 이를 해소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에, 그들의 불만은 정당성이 없다. 지금까지 특권으로 편하게 직장을 얻었으니, 계속 특권을 유지해 달라는 논리니까 이게 좀 애매한 것이 카스트는 옛적에 법적으로 폐지되었기 때문에 시험은 그냥 성적으로 뽑았다. 문제는? 애초에 과거의 신분이 현재의 경제적 신분으로 변하고, 인식도 남아있어서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할 여건이 못 된다. 과외를 받는 부유층 자녀와, 막노동 하는 부모 밑에서 같이 막노동하는 자녀가 같이 공정하게 시험으로 경쟁하는 것이다. 이러면 인구 비율은 1대 9라고 해도 합격자 비율은 9대 1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신분을 좀 섞어놓기 위해서 강제 배분을 하는 것이다.

하층민의 차별이 심한 인도 사회에서는 정말 드물지만,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도 존재는 한다. 대표적인 인물은 성자로 추앙받는 베다 시인 티루발루바르, 달리트 해방 운동의 선구자인 레타말라이 스리니바산과 아이얀칼리,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인도의 10대 대통령인 코체릴 나라야난, "신도 버린 사람들"의 저자 나렌드라 자다브, 인도 역사상 첫 여성 국회의장인 메이라 쿠마르 등이 있다.

이들을 위한 제도가 계속 만들어지고 이들 역시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보니 오히려 역차별이 발생하고 있다. 옛 상위 계급 출신들이 법적으로 폐지되어 오히려 짐이 되어버린 옛 계급 대신 차라리 불가촉천민의 계급을 달라고 하고 있다. 샌드위치 신세라고 할 수 있는 바이샤 계급인 구자르 족은 데모와 유혈 폭동을 거쳐 불가촉천민의 계급을 받았다. 인도의 정치인들은 쪽수가 많은 불가촉천민들의 표심을 잃는 것이 무서워 역차별 해결 정책을 세우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악랄한 신분 제도가 현대까지도 애매하게 남아 사회의 발전상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니 이런 웃지 못할 촌극도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affirmative action은 오랜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유용한 제도이지만, 때로는 역차별 논란 뿐만 아니라 소수자, 약자 계층 사이의 분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물론 상당수의 경우 이러한 역차별 거론은 기득권을 놓기 싫은 의도가 있거나 혹은 의도치 않더라도 소수자, 약자의 핍박받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장이 될 뿐이기는 하다. 하지만 때로는 정말로 역차별이 되는 경우도 없다고만 단정할 수는 없기도 하다. 무엇보다 문제는 소수자, 약자 사이에서도 이러한 affirmative action과 관련해서 차별 논란이 재차 불거지고, 갈등과 분열이 발생한다는 것. 이는 미국이나 한국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차별 문제 및 역차별 문제를 모두 일으키는 이 X 같은 카스트 빨리 없애 버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이미 없앤지 한참 지난 제도를 어떻게 또 없애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보도된 카스트 제도로 인한 사건 기사만 보고서 인도에 아직도 카스트 제도가 있다고 오해하지만, 카스트 제도는 법적으로 1950년대에 이미 없어졌다. 다시 말해서 지금 우리나라에 법적으로 양반이니 노비니 하는 신분이 없는 것처럼, 인도에서도 법적으로는 브라만이니 불가촉천민이니 하는 카스트가 없다. 오히려 법적으로 오래 전에 없어진 카스트 제도 때문에 불가촉천민을 위한 쿼터 제도를 만든다는 게 논리적으로 따지면 매우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순이 생기는 이유는 카스트 제도가 어디까지나 법적으로만 없어젔을 뿐,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인도 사회에 강하게 뿌리박고 있어서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7]

결국 현재의 문제는 단순히 과거의 종교적 악습인 카스트 제도 하나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 많은 국가들처럼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에서 기인한 것이고, 이를 해결하고 인도 국민들이 평등하게 되는 길 역시 그러한 불평등을 평등으로 만들어나가는 것 밖에 없다. 실제로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경제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빈부 격차는 중국 이상이다. 그리고 과거의 카스트 계급이 현재의 자본가와 노동자, 부자와 빈자로 유지되고 있다. 물론 제 아무리 카스트가 브라만, 크샤트리아 계급 출신이었다 해도 몰락해서 가난한 노동자가 되면 대 자본가로 성공한 극소수의 불가촉천민 아래에서 얄짤없이 기어야 하는 것이 현대의 자본주의 계급 사회라는 것은 덤. 그래서인지 불가촉천민을 대변하는 정치 세력은 단순히 카스트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세력도 있지만, 좌파적 성향을 띄고 있거나 좌파와 연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도는 좌파, 공산주의 정당의 활동이 상당히 활발한 곳이다.

3 Warhammer 40,000의 특이 체질 퍼라이어

  1. 힌두교에서는 신들이 수행을 게을리하다가 악마들에게 역습당하는 이야기가 자주 보인다.
  2. 스스로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 이들의 계급을 "사실상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계급 자체가 신이나 그에 준하는 절대자가 내린 운명으로 그 무슨 수를 쓰든 바꿀 수 없고 우리에게 핍박 받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하는 파렴치한 인면수심의 철면피.
  3. 단순히 더러워지는 게 아니라 아예 같은 계급으로 전락한다고 보았다.
  4. 현재의 인도는 민주주의 사회이고, 하층민들도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
  5. 이원복 교수의 현대문명진단에 따르면 50% 정도.
  6. 애초부터 상위 계급들이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대우가 좋다.
  7. 이 부분이 이해 안 되는 사람은 박경리의 '토지' 등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읽어보기 바란다. 우리나라도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 제도가 법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그 후로 수십 년 동안 양반 출신이냐 아니냐, 혹은 조상 중에 노비나 백정 같은 천민이 있느냐 없느냐가 사회 생활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였고 그에 따른 차별도 심했다. 그러다가 1950년대의 6.25 전쟁과 1960년대의 산업화로 인하여 전통적인 농촌 사회가 급격히 해체된 후에야 신분 제도가 현실적으로도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