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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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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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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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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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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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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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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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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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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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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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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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의 국가정보
국기
공식명칭예멘 공화국 (الجمهورية اليمنية, al-Jumhūrīyah al-Yamanīyah) (Yeah Man!!)
면적555,000㎢
인구26,737,317명(2015년 통계)
수도사나
정치체제대통령제
(임기: 7년 중임제, 연임은 불가, 중임은 1번은 가능하다.)
임시 대통령살레 알리 알사마드
임기2016년 8월 15일 ~ 2023년 8월 15일
2023년 8월 15일 ~ 2030년 8월 15일 (예정)
명목 GDPGDP334억 $(2011)
1인당 GDP1,332$(2011)
GDP(PPP)GDP665억 $(2011)
1인당 GDP2,649$(2011)
공용어아랍어
국교이슬람(수니파 53%, 시아파 45%)
화폐단위예멘 리알 (rial)
ISO 4217 : YER
الله، الوَطَن، الثَورة، الوَحدة

신, 국가, 혁명, 통합

1 개요

중동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국가. 그리스의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축복받은 아라비아(Eudaimon Arabia)' 라 불렀을 정도로 과거부터 부유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막대한 석유 자원을 지니고 있음에도 아라비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상황이 역전되었다.

수도는 사나(صنعاء, Sana'a)이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도시는 아덴(عدن, Aden). 공용어는 아랍어다.[3]

아덴은 예로부터 동방 무역의 주요 거점이었다. 근대에는 배후에 석탄 지대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대영제국의 본토와 인도의 중간에 위치하여 제국 내 가장 큰 항구 중 하나로 번영하였다. 그 후 아라비아 반도에 석유가 발견되면서 지역 제일의 석유화학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1960년대에는 미국 뉴욕에 이어 물동량 기준 대영제국 내 제일, 세계 제 2위의 항구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영국의 철수 이후 공산국가 남예멘의 수도가 되어 완벽히 몰락하였다. 터키이스탄불이라든지 모로코카사블랑카, 스위스제네바, 취리히처럼 수도보다 더 유명한 몇 안 되는 도시 중에 하나.

2 역사

서아시아의 역사
레바논바레인사우디아라비아시리아아랍에미리트
예멘오만요르단이라크이란
이스라엘카타르쿠웨이트키프로스터키


아주 고대에는 사바 왕국이 존재했으며 무역으로 번창하였다. 이후에 유대교를 국교로 하는 힘야르 왕국이 세워지고 한동안 에티오피아에 정복되는 등의 역사를 겪었다 7세기에 이슬람화가 이루어졌으며, 1517년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중 1839년 아덴을 노린 영국이 남예멘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분단 시대가 시작됐다. 1918년 터키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자, 북예멘이 먼저 독립했다. 북예멘은 시아파의 일파인 자이드파가 많은데, 자이드파의 세습 이맘이 사실상의 왕으로 통치하는 왕국이었다. #[4] 또한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이집트시리아가 참여하는 아랍 연합 공화국에 준가맹했다가 1961년에 연방을 탈퇴했고, 1962년 살레에 의해서 군사 쿠데타를 계기로 공화국이 되었으나 8년간이나 왕당파와 공화파의 내전이 벌어졌다. 이집트의 지원을 받은 공화파가 왕당파를 완전히 축출함으로 1970년에 공화국이 확정되었다.[5] 한편 남예멘은 영국 통치하에 있다가 1963년에 남아라비아 연방이라는 토호국 연맹으로 자치권을 획득하였으며(아덴은 제외), 수에즈 전쟁으로 아덴항이 큰 타격을 입고 1967년에 소련의 지원하에서 독립하여 공산화되었다.[6] 1970년대 국경 문제로 남북간에 무력 분쟁이 잦았으며, 1978년 6월에는 가즈미 북예멘 대통령이 남예멘 특사와 회담 중 암살됨으로써 남북 관계가 악화되고 대치 시기가 이어졌다.

그렇소. 이번 전쟁을 시작한 건 우리요. 우리가 이기면 통일 예멘을 이룩하게 되는 것이고, 지게 되면 당신이 개입해서 우릴 구해줘야지.

- 1979년 2월, 북예멘과 전쟁을 시작한 데 대해 소련 대사가 불만을 표시하자[7][8]

하지만 둘 다 경제적인 상황은 영 안 좋은 개도국이었던 탓에 통일해서 시너지 효과를 보자는 얘기는 많이 나왔다.[9] 결국 냉전 시기가 끝나면서 상호 합의 하에 1990년 5월 남북 협상에 의해 무혈 통일되었고, 초대 대통령으로 북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나, 얼마 못 가 1994년 5월 정부 요직 분배와 관련하여 전면적인 내전이 시작되었다. 종교 및 각 부족끼리의 정체성이 강한 동네라 그냥 문서에 사인하고 '통합 좋지~' 하는 분위기가 되는 동네가 아니었기 때문.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무력 통일"이라고 알려져있지만, 무혈 통일을 먼저 하고 내전을 치루게 된 역사적 과정 때문에 해외에는 가끔 무혈 통일로 잘못 알려진 경우도 종종 보인다.[10] 내전은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었던 북예멘 군대가 1994년 7월 남예멘의 수도 아덴을 점령하며 북예멘의 일방적 승리로 다시 통일국가가 수립되었다. 통일 이후 직선 투표에서 다시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선출되어 장기집권을 했지만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으로 물러났다.

이런 배경 탓인지 냉전 시절 분단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북한학이나 통일 관련 정치외교학 쪽에서는 베트남 분단이나 독일 분단에 비해 남북 분단의 참고자료로서의 가치가 적다. 다만 통일 후 내전이나 갈등 폭발 가능성 연구에 있어서는 좋은 참고 자료가 되고 있다.

3 상징물

3.1 국기

위의 요약에서 보는 바와 같이 범아랍색에서 초록색을 제외한 3색을 빨강-하양-검정 순으로 나열했다. 빨강은 순교자의 피와 통일을, 하양은 밝은 미래를, 검정은 어두운 과거를 나타낸다. 독일 제국의 국기와 색 배치가 정반대로 되어있다는 게 특징.

북예멘의 국기에는 중앙에 녹색 별이, 남예멘의 국기에는 왼쪽에 큰 삼각형과 그 안쪽에 빨강 별이 있다. 통일 후 두 국기의 공통적인 부분만 남겨서 지금의 통일 예멘 국기를 제정하였다.

3.2 국장

국장은 금독수리가 두 개의 예멘 국기를 양 발톱으로 잡고 있는 모양으로, 가운데에는 커피나무와 마리브 댐이 그려진 방패가 있고, 밑에는 아랍어로 "예멘 공화국" 이라고 적힌 두루마리가 있다.

이 국장은 원래 북예멘의 국장이었다. 남예멘은 그냥 금독수리 가운데에 남예멘 국기를 세로로 그려넣은 방패를 넣고 밑에 아랍어로 "예멘 인민 민주 공화국" 이라고 적어놓은 형태였다. 통일 후 북예멘 국장을 통일 예멘에 맞게 수정한 것.

3.3 국가

국기는 양쪽의 공통 부분, 국장은 북예멘 것을 약간 수정하였지만 국가는 구 남예멘 국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4 지리

면적은 55만 km²로 남한의 5배가 넘는 큰 영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웃에 있는 4배 크기의 사우디아라비아 때문인지 작아보인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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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소규모이지만 예멘에서 해안 경비대를 창설, 훈련과 장비 등을 지원해주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이곳 아덴만 인근에서 예멘 해군이 치안 확보에 기여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

지정학적으로는 보기보다 중요한 지역이다. 바로 홍해의 입구이기 때문에, 예멘에서 마음만 먹으면 홍해를 막아서 수에즈 운하를 차단할 수 있다. 아래에서 언급되는 예멘의 내전에 사우디 뿐만 아니라 미국, 이집트 등이 많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

서남아시아 아라비아 반도에 있지만, 동아프리카와도 가깝다. 그래서인지 문화적으로도 동아프리카 문화가 융화되기도 했고, 경우에 따라 동아프리카와 같이 언급될 때도 있거나 동아프리카로 분류될 때도 있는 듯 하다. 단, 동아프리카와 가깝고, 역사적으로도 연관이 많았던 것일 뿐, 지리적으로는 서남아시아가 맞다. [12]

5 정치

예멘을 통치하는 것은 사자를 타는 것과 같다.

한 번 올라타게 되면 당신은 내릴 수 없다.

- 예멘 속담 -

과거에는 아랍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선거 제도가 약간이나마 갖추어져 있고 여성을 포함한 개개인의 인권 보호가 어디까지나 여타 아랍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이루어져 있다 정도이지만. 여기까지는 좋아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지 않다. 높은 실업율+부패한 제도+서구식 민주주의[13]=정부의 정당성 결여라는 구도가 성립된다. 사실 이 선거 제도도 상당 부분 형식적인 게 상원 의원 111명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하원은 2003년 총선에서 살레의 소속 정당 국민전체회의(GPC)가 301석의 하원 의석 가운데 238석을 차지했고(정확히는 226석을 차지했고 12명의 무소속 의원이 당선 직후 GPC에 가입했다), 200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살레가 77.2%를 득표하고 야당 후보는 21.8%만을 득표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10년째 명목상으로라도 경쟁이 있는 선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14], 이것도 10년쯤 전에 얘기지 지금은 아랍권 민주화 운동으로 시위대, 크게는 국민 전반에 대한 탄압, 이후 정권을 잡은 후티 세력의 쿠데타 이후 행보 등을 보면 국민들의 민주적 권리는 점점 줄어들고 불안정은 극대화되는 시리아, 리비아의 전철을 밟고 있다.

까놓고 말해서 정부가 정부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 지방 부족, 알 카에다 등등 다양한 세력에 의해 예멘 정부의 통제력이 매우 약화되어있다. 또한 전통적인 기호품인 환각 작물 까트(قات, Khat)를 대량 재배할 때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성적인 수자원 부족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단지 모든 주요도로, 유전과 파이프라인의 "선과 점" 만 통제하고 있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UN 보안 담당관 밥 아돌프 중령의 의견으로는 예멘 정부의 국가장악력이 50%에 불과하다고. 사실 지금 상황 보면 50%는 커녕 50분의 1에 가까울 거 같지만

과거 석유가 터지고 산유국이 되자 이것으로 봉건 족장들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현실은 시궁창. 그 석유가 대거 족장들의 뇌물 수입으로 들어갔고, 국가 발전도 이룩하지 못한 채 현재도 아라비아 반도 최빈국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예멘은 일본 여행 안전 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리비아, 남수단, 시리아등과 함께 온 나라가 빨갛게 칠해진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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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국가지수에 따르면 예멘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불안정한 나라다. 첫 번째는 당연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소말리아. 감이 안 온다면, 그 시리아가 고작(?) 6위, 이라크가 1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민주화 혁명으로 독재자 살레가 실각한 후에도 사회 혼란은 지속되어서, 북부에서는 시아파 후티 반군이 준동하고 있으며 남부에서는 남예멘의 재분리를 요구하는 분리주의자들, 그리고 이 혼란을 틈타 침투한 알 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가 살림을 차려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의 안정을 위해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으나, 부족주의 성향이 강한 예멘 특성상 갈등이 쉽게 봉합되지는 않을 듯하다. 오죽하면 제 2의 시리아가 되어간다고 할까.

6 사회

(전략)... (부통령에게 스콜피온 기관단총을 쏴대기 시작한) 동시에 다른 (대통령의) 경호원들이 AK-47 소총을 들고 들어와 다른 장관들을 사살하려고 했다. 그러나 장관들도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그들의 경호원들도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 1986년 1월 13일 남예멘의 개각 모습.[15][16]

혼란스러운 역사와 막장인 정치 상황 때문에 1인당 4정(4인당 1정이 아니다!) 꼴로 총기가 뿌려져 있는 상태다. 1980년대 남예멘에서는 귀찮은 협상이나 투표가 아니라 '총질' 에 의한 개각을 시행하려고 했을 정도. 대통령 경호원이 국무회의에 참석한 장관들에게 총기를 난사했는데, 더 황당한 건 장관들도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장관들의 경호원들도 무장 중이었다는 사실. 그래서 결국은 대통령측 경호원들vs장관들+장관 경호원들간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거기다가 장관들이 죄다 족장들이라 수도 시내로 총격전에서 확대되어 전투가 확산되었다. 그런가 하면, 2008년에는 잘 조직되고 정부 경찰 제복으로 위장한 6명의 테러리스트가 미 대사관을 공격했었다. 물론 위험 지역의 미 대사관들은 요새화가 되어 있으므로 미 대사관 테러는 실패했고 애꿎은 예멘 정부군만 다쳤다(...)

이렇게 개막장인데도 아랍 세계에서 가장 인구 증가율이 많은(연간 2.8%) 나라다. 이 속도면 25년 뒤 인구가 2배가 된다. 인구가 2005년에 2000만이었는데 6년 후인 2011년에는 2383만 3000명이 되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많이 나아진 편이며, 한때 합계 출산율 9명대를 기록해서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높은 국가라는 타이틀을 가질 정도였다.[17] 지금은 4-5명대로 낮아졌다.

튀니지 혁명으로 아랍권 전체가 혁명 열기로 들끓는 가운데, 예멘에서도 혁명 열풍이 불어 결국 정부가 전복되었다. 예멘의 경우 이집트, 리비아와 함께 대표적인 정권 전복 사례. 아랍권 일대의 혁명은 전체 인구의 40~50%를 차지하는 30대 이하의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상황인데 특히 예멘의 경우 30대 이하의 인구가 전체 인구수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이슬람에서 피임을 금하고 아이를 많이 낳는 걸 오래전부터 권장하기에 대다수 나라들이 인구 증가률이 엄청나서 젊은 층이 많은 게 혁명 여파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을 참고.

7 내전 및 종파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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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예멘에는 시아파가 많은 편이다. 이에 비해 남예멘은 수니파가 많다. 예멘 전체를 놓고 보면 수니파가 다수다.

2016년 4월 1일의 지도다. 출처.

2015년 3월 말 기준으로 상황을 보면 시아파 후티 반군(녹색)이 이미 수도 사나와 과거 북예멘 지역을 대부분을 장악하고 제 2의 도시이자 과거 남예멘의 수도였던 아덴을 포위하고 있으며, 정부군(붉은색)은 동부 사막지대로 쫓겨난 상태다. 그나마 남은 지역의 상당부분도 알카에다(AQAP)(흰색)가 통제하고 있다.

예멘 수니파와 종파 갈등을 벌이고 있는 시아파 후티 반군은 지난해 9월 수도 사나를 점령한 뒤 정치적 실권을 쥐었다. 초기엔 대통령에게 협조적이었으나 이후 자신의 몫을 주장하면서 갈등을 빚어왔다. 특히 예멘을 6개 자치 지역으로 나누는 연방제로 새 헌법 초안이 작성되면서 후티의 공세는 거세졌다. 자원이 풍부한 남부까지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계획이 연방제로 막히자 쿠데타를 시도한 것.

2015년 1월 20일부터 21일까지 대통령궁을 장악한 뒤 대통령 관저를 공격하고 예멘 최대 미사일 기지와 군사학교를 장악했다. 로이터 통신은 후티가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대통령 관저의 경호원을 자체 병력으로 바꿨다고 보도했다. 대통령반군에 의해 관저에 '포로'로 잡혀 있어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가 된 것이다.

만일 후티가 쿠데타에 성공한다면 전면적 내전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후티는 예멘의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알 카에다 아라비아 반도 지부(AQAP)와도 교전을 벌이고 있는데, 후티가 정권을 쥐면 알 카에다와 수니파 무장 조직들이 반시아파 연합전선을 형성해 전쟁에 나설 가망이 매우 크다. 더욱이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 서방과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국제적 고립 속에서 참혹한 내전이 치러질 수 있다. 거기다 남예멘 사회주의 세력의 분리독립 운동도 있으니(...) 때문에 미국은 후티를 도울 수도 없고 알 카에다나 남예멘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질 우려가 많은 상황.

결국 후티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허핑턴 포스트 기사. 후티 반군이 예멘의 의회, 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의회를 세울 것이라고 발표했다. 혼란상이 극심해지고 치안이 갈수록 악화되자 독일, 이탈리아 등 서구 국가와 사우디 아라비아까지도 대사관을 폐쇄하고 철수하였으며, 하디 대통령은 사직서를 내고 연금에서 풀려나자마자 자신의 지지 기반인 남부로 달아난 듯 했으나 이내 사퇴를 번복하고 남부 6개 주의 지지를 받은 뒤, 아덴을 임시수도로 선포하고 합법 정부로서의 저항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반 후티 시위도 일어나는 중이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예멘이 눈 앞에서 붕괴되고 있다'라며 경고하였다.

2015년 3월 20일에는 가뜩이나 상황이 안 좋은 가운데, IS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탄 테러까지 발생해 최소 137명이 사망하기까지 했다. 기사 1, 기사 2. 같은 날, 예멘에 주둔하던 미군(규모 100여명)이 완전 철수했다. 22일에는 후티 반군이 제3의 도시 타이즈를 점령했다.

26일부터 사우디군이 예멘에 전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15만명 규모의 병력과 100여기의 항공기를 동원하였으며, 아랍 국가들과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 공습 전날 백악관에서는 사우디에 정보와 군수 지원 명령을 내렸다. 물론 미국도 군수지원이라고는 하지만, 정보자산(드론) 등을 동원해 지원하는 것인 만큼 개입이라고 봐도 타당할 듯하다. #

카타르수니파 아랍 국가들은 성명을 통해 "이번 군사작전은 하디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면서 "전투는 예멘 수니파 정부가 회복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사우디 지상군 병력의 80%가 예멘에 투입된 가운데, 이미 이라크시리아에서 생지옥의 참극을 벌이고 있는 수니파-시아파 종파갈등 성격의 중동 국제 대리전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후티 반군은 4월 1일에는 하디 행정부의 임시수도인 아덴까지 점령했다. 하디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로 망명.

5월말, 오만의 중재로 미국과 후티 반군이 협상을 했으며, 6월 14일 제네바에서 정부측과 후티 반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개시될 예정이다. 일부 언론에선 남북 재분할 얘기도 나온다. 완전 재분할은 아니고 상징적 대통령을 두는 느슨한 연방제라는 전망. #

6월초에 예멘 반군이 사우디 아라비아 국경 지역에 로켓과 박격포를 이용한 공격을 가했고, 이후 사우디가 AH-64로 반격을 가했다. 기사.

사우디군이 병력을 계속 예멘에 투입하고 있으나, 게릴라전을 하는 반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혐오) 사우디 전사자 시신들
사우디 공수부대, 후티 반군에게 전멸
역으로 사우디 지잔 주를 공격해 사우디 AMX-30을 노획하는 후티 반군[18]

후티의 게릴라 전술에 크게 데인 사우디군은 공격 헬기까지 투입하여 반군의 기갑부대를 격파하고 마리브 주를 탈환했다.

그러나 후티 반군은 결국 사우디 내륙까지 진군해 들어갔다. 처음엔 지잔 주[19]가 돌파당하고 뒤이어 반군이 아시르 주로 진군 중이라 한다.

게다가 아시르 주의 군사기지 한 곳을 사실상 무저항으로 후티 반군에게 내줬다고 한다. 교전이 벌어진 지 얼마 안 되어 죄다 도망을 쳤다는데 마치 ISIL에 맞서 졸전을 면치 못하던 무능한 이라크군을 보는 듯하다. 만약 이들을 몰아내는 데 실패한다면 내전이 더욱 격화될 것이다.

파일:/system/photos/2016/2/4/1766512/article.jpg

2016년에도 내전은 지속되고 있고, 예멘은 완전히 실패국가가 되어버린 상태다. 국민들은 기초적인 사회 인프라도 없이 고통받고 있으며, 지긋지긋한 종파갈등과 내전은 1년 넘게 끝나지 않고 있다. 내전에서의 사망자는 6400명이 넘어가고, 경제가 처절하게 망가진 상태에서, 청년 실업률은 70%에 달한다.

내전에 휩싸여 비참한 처지에 놓인 예멘을 취재한 미니다큐.

이런 상황 속에 2016년 4월부터 정부군과 후티 반군간의 평화협상이 쿠웨이트에서 논의되고 합의되었다. 그러나 휴전 협정이 이뤄져 가는 와중에도 2016년 5월 29일, 샤브와 주에 주둔한 정부군을 반군이 기습해 정부군 20명과 반군 28명이 전사하기도 하는 등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

2016년 5월에는 시리아-이라크에서 세력이 움츠러들고 있는 ISIL이 시리아와 예멘에 대규모 테러를 감행해 아덴에서 사망자가 최소 45명이 발생했고, 수백 명이 다쳤다고 한다. 예멘에서는 신병훈련소를 겨냥해서 테러를 감행했다고 한다.

2016년 10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민 시아파 반군 후티의 고위급 인사의 부친상이 열리던 사나의 알쿠브라홀을 두 차례 공습하였는데, 장례식 폭격으로 힌한 논란이 국제사회에서 비난이 크게 일어나자 자체적으로 진상조사를 벌어서 사우디가 이를 예멘 장례식장 폭격을 오폭으로 인정한 사건도 있었다.#

그 와중에 죄없는 어린이들은 37만명 영양실조·아사 위기라고 말했다.# 5세 이하는 무려 31%가 영양실조 상태라고 발표했다.#

8 문화

8.1 음식

질 좋은 커피가 유명한데, 예멘 모카 마타리는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 하와이 코나 팬시와 더불어 세계 3대 커피라 불릴 정도. 중세부터 커피를 재배하여 수출한 국가이기도 하다. 커피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가 근처이며, 당시 가장 큰 커피 수출 항구가 예멘에 위치하고 있어 커피 무역에 관한 마찰이 일어나기도 했던 곳이다. 이 항구 이름이 바로 모카다.

예멘산 커피는 특유의 복잡한 맛과 향으로 애호가들에게 높게 평가받고 있다. 예멘의 커피는 100% 건식 가공되며, 그 방법으로는 커피 열매(체리)째로 바짝 말린 뒤 맷돌에 으깨어 커피에 필요한 부분만을 얻어내는데, 그 과정상 불량률이 매우 높은 데다 전근대적인 유통 구조 때문에 등급에 사기를 치는 일도 종종 있다.

시드르 꿀 (Sydr Honey)도 특산품이다. 사우디 대형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사막 기후가 많지만 그래도 자급자족할 먹을 거리는 충분히 재배할 수 있었으나 마약성 잎사귀인 카트 재배(물이 많이 필요하다)로 다른 작물을 재배하지 않고 여기에만 물을 많이 써서 지금은 먹을 거리인 밀가루와 여러 가질 죄다 수입해오고 있다. 더불어 사막화마저 가속화되고 있는 형편임에도 까트 중독자가 많아서 이 문제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년도 안 가서 까트도 수입해와야 하고 경제적, 사회적으로 엉망이 된다고 한다. 즉 내전 상황이 아니라도 먹을 것 문제로 헬게이트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8.2 조혼

예멘 법안으로 17세 이상만 결혼 허가가 통과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돈만 있으면 13살 이하의 여자애들과 결혼이 가능한 일이 많다.[20] 덕분에 이런 일도 있다. 이 블로그에 나온 내용 가운데 누주드는 한국에서도 나온 책 '나 누주드, 10살 이혼녀'로 알려지기도 했다. 블로그에선 250달러 위자료만 나왔는데 그 이후 국제적 비난과 같이 후원금이 들어오면서 위자료는 해결되었고, 누주드는 다행히 별 일 없이 학업에 힘쓰고 있다.

8.3 스포츠

나라 사정이 저러다 보니 스포츠도 별다른 특징이 없다. 그나마 축구인기가 있긴 하지만 별다른 성적을 낸 게 없다. 자세한 것은 예멘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을 참고할 것. 약체급이라 걸프컵에서도 동네북.

8.4 성인식 코뿔소의 원수

예멘 남자들은 성인이 되면 단검을 차고 다니는 풍습이 있었는데, 전통적인 성인식 선물이 코뿔소 뿔로 만든 칼집이다. 이 칼집 수요 때문에 아프리카 코뿔소 멸종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9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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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의 전통 주택.

이 곳에 발을 들이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국가가 절대 책임지지 않는다.

수백 년 전의 옛날 모습을 지금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도시가 많다. 예멘 사람들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친절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고 다. 예전에는 예멘의 도시를 걷다보면 그들의 언어(아랍어)로 인사를 하거나 영어로 ""Welcome to Yemen""이라고 많이 할 만큼 친절하다고 한다.

'시밤' 마을은 사막 한가운데에 흙으로 만든 집들이 9~10층으로 고층 빌딩을 이루고 있어 '세계 최초의 마천루', '고대 세계의 맨하탄' 등으로 불리며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던 세계적인 관광지였는데,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치안으로 여행하면 안 되는 곳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랍의 하와이[21]라고 불릴 만큼 천혜 관광자원이 가득한 나라이기도 하다. 온갖 대추야자 열매와 일절 개발되지 않은 바다와 산과 호수가 가득하여 그야말로 환상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이 많다. 그리고 그 중에서 특히 소코트라 섬은 2008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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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예멘이라면 믿기는가? 아니, 애초에 지구도 아닌 거 같은데? 아바타?

내전으로 인하여 안타깝기도 하지만 되려 사람이 설치지 않아서 저런 자연이 유지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부정할 수가 없다. 2009년 여길 여행한 이의 책을 보면 되려 내전 지역이나 위험 지역을 피하고 무슬림 같이 하고 지내면서 현지인들과 친해지면 더 물가도 싸고 사람들이 순박해서 더 좋았다고 쓴 적도 있다. 게다가 이런 위험 덕분에(?) 외국인이 안 와서 너무나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지역에서 실컷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왔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연이 아름답다고 한들 예멘은 엄연히 여행금지 국가다. 정부에서 가지 말라는 곳. 이곳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범죄행위다.

2009년 3월경에는 예멘 지역을 여행하던 한국인 관광객에게 폭탄테러로 인해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사태를 수습하고자 방문하던 공무원과 유족들에게도 테러 공격이 가해지는 바람에 결국 2011년 6월 28일부터 반년(6개월)동안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되었다. 참고로 그 테러 참사가 일어난 도시 이름이 시밤 [22]이다. 희생자 가족들은 여행제한국가로 가는 걸 정부가 막아달라고 호소했고, 결국 예멘은 여행금지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2009년 6월 초에 선교차 방문하던 여교사 엄영선 씨가 납치를 당했다가, 6월 15일 어린이 2명을 제외한 나머지 납치된 이들과 함께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같이 행동하던 독일선교사가 지나가던 현지인 무슬림에게 "헤이, 야만인. 그딴 믿음 버리고 기독교를 믿는 게 어때?"라는 투로 말을 했다가 다음날 다같이 납치당한 것. 물론 이 독일인 선교사도 같이 벌집이 되어 끔살당했다. 이 때문에 당시 예멘 언론이나 여론이 더 분노했고, 자업자득으로 죽은 것이니 보상이니 사죄는 우리가 할 필요도 없다며 무시했다. 독일 및 한국 외교계도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그저 사망자 시신이나 받아와야 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아프가니스탄 납치는 자주 거론하는 것과 달리 이 사건은 개신교계도 마찬가지로 거의 거론을 안한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가 더 언론 보도를 받았던 거랑 달리 이 사건은 언론 보도도 대충 넘어갔다. 심지어 순교이니 뭐니 아프가니스탄 납치를 정신승리하던 한국 개신교계도 입다물고 있기에 , 이명박 정권 위해 입다무냐는 비난을 들었다. 월간조선만 해도 아프가니스탄 납치 사건이 터진 지 2년이 지난 2009년, 즉 이 사건 터지기 몇 달 전까지도 노무현 정권 외교 실패라고 우려먹기 기사로 다루다가 이 사건에 대해선 일절 어느 것도 거론하지 않았다. 더불어 이 사건이 터지자 아프가니스탄 납치 사건에 대한 기사를 다시는 싣지 않아서, 이거 다루다가 예멘 일로 이명박 정부 외교 실패라고 역반격당할 테니 다시는 거론하지 못한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10 외교 관계

이웃 사우디아라비아애증의 관계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현재의 공화국이 아니라 기존 왕정을 지원했던 역사적 앙금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곡물 재배일에 종사하는 예멘인 대한 저임금 노동 착취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문제인 곡물 재배는 꽤 고된 일임에도 워낙에 저임금이라 예멘인들에게 불만이 가득했다. 지금은 폐간된 월간잡지 지오에서 이 문제를 다룬 바 있다.

독특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사이의 사막지대에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합의된 국경선이 없고 분쟁 중이라는 거다! 합의된 국경선이 없으니 초소도 없고 감시도 없고 그냥 대충 넘다보면 예멘이 되고 사우디가 되고 그런 식이다.

결국 그렇게 예멘인들 모아다가 사우디아라비아 넓은 사막보리에서부터 복숭아무화과 같은 농작물, 과일들을 재배하고 있다. 이게 돈이 엄청 들기에 밀 같은 경우는 수입해오는 돈 3배 이상을 들여야지 재배하여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이게 죄다 석유 파는 돈으로 유지되는 것이라 석유 떨어지면 막장 될 듯.[23]

하지만 결국 예멘에 내전이 터졌고 그 난민들이 떼거리로 몰려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참에 시아파들을 정리해버릴 겸 내전에 뛰어들어 미국터키의 묵인 하에 반군들을 두들겨 패고 있다. 그러나 위에 서술하듯이 두들겨 패는 만큼 쳐맞고 있는 중...
하스스톤

10.1 한국과의 관계

한국과는 자본주의 성향의 북예멘과 1985년에 수교하였으며, 이후 사회주의 국가인 남예멘과도 통일 직전인 1990년에 5월 18일에 대사급으로 수교하였다가 4일 뒤 남북 예멘이 통일되면서 외교관계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 로코도코가 여기서 2년 정도 살았다고.

북한과는 일찍이 남예멘과 단독수교를 한 후 통일 이후에도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1 창작물에서의 예멘

영화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의 배경이 예멘이다.

블랙 옵스 2에서도 등장한다. 이전에 비해 발전한 것은 그저 군인의 무장 뿐, 여전히 막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파리드는 메넨데즈와 합류하기 위해 예멘군을 닥치는 대로 사살해야만 한다.

언차티드 시리즈의 3편에서 중후반부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역시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로 함부로 입국할 수 없는 나라 취급을 받고 있다보니 주인공인 드레이크가 취재 기자로 위장하여 보물의 단서를 찾기 위해 입국한다.

MBC 드라마 애정만만세에서는 가정상황 때문에 예멘으로 떠날까 고민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온다. 지금 가면 현실은 시궁창
  1. 전 지역
  2. #
  3. 영어는 비즈니스상에서 주요 외국어이지만,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한정되어 있다. 근데 남예멘 지역이 예전엔 러시아어가 주요 외국어라서 일부 러시아어 사용자가 존재하는 것이 흠좀무하다.
  4. 다만 자이드파는 다른 시아파의 견해와는 달리 후세인 이후의 이맘은 '무오성'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자이드파는 우마르, 우스만 등 수니파 정통 칼리프나 그들의 가르침 역시 인정하고 있다. 그 때문에 자이드 파의 교리는 시아파 가운데서는 비교적 수니파에 가깝다고 평가되고 있다.
  5. 이집트 군대는 이 내전에 너무 발 벗고 도와주다가 1967년 6일 전쟁 중에 이스라엘에게 완전히 뒤통수를 털리고 만다.
  6. 한국이나 베트남 같은 다른 분단국과의 차이가 이것인데, 두 지역이 서로 다른 외세에 의해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게 아니라 먼저 북예멘이 독립하고 그로부터 약 50년 뒤에 남예멘이 독립했다는 것. 그래서 분단국이란 인식이 적었던 편이었다.
  7. Andrew, Christopher, and Vasili Mitrokhin. The World Was Going Our Way: The KGB and the Battle for the Third World. New York: Basic Books, 2005. p.218
  8. 당시 소련은 당연히 남예멘을 지원했지만 북예멘과도 관계 개선 노력 중이었기 때문에 뒷목을 잡았고, 남예멘은 남예멘대로 북예멘과 소련의 관계 개선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빅엿을 먹였다고 볼 수 있다.
  9. 남예멘은 소련 등 동구권 국가의 지원으로 겨우겨우 먹고 살았고, 북예멘은 남예멘보다 상황이 나은 편이었지만 그래봐야 여타 아라비아 반도의 국가들에 비하면 엄청나게 가난한 국가로, 다른 아라비아 국가들이 1인당 GDP 5000달러에서 1만 달러선을 거뜬히 찍고 있을 동안에 500달러선을 찍고 있었다.
  10. 실제로 아랍권은 단일국가로의 통일, 통합이 상상 이상으로 잘 안 되는 지역이다. 일례로 1990년 걸프 전쟁 당시 이라크쿠웨이트를 무력 침공하여 쿠웨이트를 이라크에 합병시키려다 실패한 전례도 있었고, 1950년대 말 시리아와 이집트가 아랍연합공화국으로 통합을 시도했다 실패한 전례도 있는 등 단일 민족 국가들로 통합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나라마다 배타적인 부족주의, 지역주의 의식이 강하다.
  11. 인구 역시 사우디 인구가 2700만이라서 거의 대등한 수준(80%).
  12. 비슷한 예시는 이집트, 수단. 이집트 역시 아프리카(좀 더 정확히는 북아프리카) 동부에 있기 때문인지, 동아프리카와 엮이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이집트까지 합쳐서 동북아프리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수단은 동아프리카로도 분류되기도 한다.
  13. 즉 다수결 원칙, 다원화된 의견(물론 반정부적인 의견도 포함된!), 다양한 문화의 수용 등인데, 이런 게 아랍권에서는 절대로 환영받는 제도가 아니다. 종교적 열성이 강한 데다 그마저도 종파로 인한 갈등, 여기에 아랍 특유의 부족사회로부터 시발된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는 아랍국가들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기 어려운 구조다.
  14. 2012년 살레의 퇴임 직후 대통령 선거가 있기는 했으나, 현직 대통령인 압드 라부 만수르 하디가 단독 후보로 출마해 100%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15. 토마스 L. 프리드먼,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서울: 창해, 2003, pp.91-92
  16. 사실 말이 장관이지 이들은 각 부족의 대표들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갑자기 자기 마음대로 개각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런 꼬라지는 북예멘도 별 차이 없었다.
  17. 참고로 한국도 한창 출산율이 높았을 때는 6명대였고, 타 국가들도 대체로 6-7명대였다.
  18. 동영상에서 노획해가는 전차는 포신 중간의 배연기(프랑스제 전차포는 포신 중간에 배연기가 없음)나 써멀 자켓과 포탑 형상, 전차장용 총탑, 엔진룸 형태 등을 볼 때 AMX-30이 아니라 M60a3이다.
  19. 예멘 내전 초기 사우디가 접수했다.
  20. 이것도 이슬람 탓을 하기 쉽지만 실은 조혼은 전세계적으로 흔하던 일이다. 옛날에는 평균 수명이 워낙 적어서 일찍 결혼하던 문제도 있긴 하지만, 7세기 이슬람권에서도 8살 소녀와 결혼(정확히는 양녀로 받아들였다가 좀 큰 다음에 결혼했다) 기록이 있고, 지금도 인도서남아시아 비이슬람 지역이나 아프리카중남미 원주민들에겐 꽤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물론 법적으로 금지되어 몰래 결혼하거나 외부인들에겐 양녀거나 친척이라고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2011년 6월호 내셔널 지오그래픽지 참고).
  21. 이건 오래 전 YTN에서 틀어주던 국제뉴스로 나온 바 있는 명칭이다.
  22. Shibam, 현지 발음은 쉬밤이라고 한다.
  23. 이스라엘 키부츠도 비슷한 운명이다. 유태인들의 돈 없더라면 불가능했다. 물도 없던 척박한 곳에서 사해 물을 마구 끌어다 쓰고, 결국 터키에게 물을 수입해오는 형편으로 무리하게 사막에서 키부츠를 운영하는 판국. 골란 고원이 있지만 거긴 시리아와 국경 분쟁으로 잘하면 폭격을 맞을 곳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