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웅

咸世雄
1942~

1 개요

한국의 종교인, 가톨릭 신부, 민주화 운동가.

세례명아우구스티노이며, 603번째 한국인 사제이다.

그는 서울에 태어나 서울대교구 [용산성당]에 다니면서 가톨릭에 입문했다. 어린시절 한국전쟁에 대한 경험이 종교의 길로 인도하였다. 1960년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에 입학했고, 군 제대후[1] 장학생으로 로마에 유학을 갔다. 원주교구지학순 다니엘 주교 등 종교계 인사들이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계기로 정의구현사제단을 만들어 민주화 운동에 본격 투신한다.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에도 연루된걸 보면 대단한 민주화 투사.

1987년 6월 항쟁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이었다 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도 그가 밝혀낸것이다. [#]근래에는 김삼웅과 더불어 조중동의 인터뷰는 거절하기로 했다 한다.

[1984년 손수운전하다가] 사람을 사망하게 하는 사고를 냈다고 한다. 다만 이 기사에는 구의동 성당의 당시 48세 함세웅 신부로 나와 있어, 당시 42세의 신부[2]였던 함세웅 신부와 맞지 않는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미군 장갑차 사건때 살인 미군의 회개를 바란다며 단식기도를 한적이 있지만, 그것은 자신도 그들과 똑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런 단식기도를 한것이다.

안중근 기념회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 [광복회에서 발간하는 광복회보] 2011년 11월 29일 제338호 5페이지에도 실려있다. (민족애와 신앙의 구감인 안중근 의사의 시복 추진을 반기며)

[지관스님 제9회 만해대상을 수상]했다.

[제기동 성당] 주임신부 당시 매일미사책의 사용을 금지했다. 2012년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이 은퇴함과 동시에 은퇴했다. 이후 미사를 집전하는 중 교구장을 언급하는 부분(교황 프란치스코와 저희 주교 안드레아와 보좌 주교들과...)에서 안드레아를 언급하지 않기도 한다.(...)


2 정의구현사제단 설립

그는 정의구현사제단과도 인연이 깊었다.

[정의구현사제단 올해로 창립 30돌, 지나온 발자취 정리]

● 함세웅 신부: 하느님의 묘한 섭리를 읽었습니다. 시대와 함께 또 민족과 함께 민중과 함께 하는 교회만이 존재이유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죠.

3 비판


2004년 3월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 자제 요청에 대해 "그분의 사고는 다소 시대착오적이라고 판단한다."라고 말한 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뜻이 다르다고 추기경에 대해 이러한 발언을 한 것은 도가 넘은 행위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1. 헌병으로 복무
  2. 한국 나이로도 43세다.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