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성직자)

한자: 鄭鎭奭
영어: Nicolas Cheong Jin-s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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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문장에 새겨진 사목표어 'OMNIBUS OMNIA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코린) 9장 22절이다.
역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12대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13대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14대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역대 천주교 청주교구장
초대 제임스 파디 주교2대 정진석 니콜라오 주교3대 장봉훈 가브리엘 주교

1 개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직자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13대 교구장 겸 평양교구 서리이며, 대한민국의 2번째 추기경. 세례명은 '니콜라오'이다.

1931년 12월 7일, 경기도 경성부 수표정(현 서울특별시 중구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인 정원모는 일제강점기사회주의 운동을 하였고. 그 당시 2번 옥고를 치렀다. 해방 뒤 월북하여 북한 정부에서 대한민국의 차관급에 상응하는 공업성 부상을 지내다가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1950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공과에 입학하였으나 그 해 발생한 6.25 전쟁으로 서울대를 중퇴,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961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한국전쟁 당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널브러져 있던 시체들을 보면서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하는데, 그 사건이 바로 대한민국 국군흑역사로 기록된 국민방위군 사건.[1] 당시 생존자 중 하나였다고 한다.

사제 서품 후 중림동 약현성당[2] 보좌신부로 시작하여 1968년 로마 성 우르바노 대학원에 유학, 2년 뒤 같은 대학원에서 교회법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천주교 청주교구 제2대 교구장 주교가 되었다.[3] 주교 서품의 주례는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가 맡았는데, 정 추기경의 세례성사와 사제서품식을 집전한 사람도 다름 아닌 노 대주교였다.[4] 그 뒤 28년 동안 청주교구의 교구장으로서 사목을 수행하였다.

1998년 6월 29일,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후임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착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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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만 80세가 되어 교황 선출권을 상실한 김수환 추기경은 대한민국에 새 추기경이 필요하다고 교황청에 보고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6년 2월 24일 정진석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하고, 동년 3월 24일 교황으로부터 정식으로 서임되었다.

약 6년의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일하다가, 2012년 5월 10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정진석 추기경의 사임 신청을 받아들이고 후임 서울대교구장에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이자 총대리인 염수정 안드레아 주교를 임명하였다. 그리고 동년 6월 25일 염수정 주교의 서울대교구장 착좌식과 함께 은퇴했다. 서울대교구는 대주교가 관할하는 곳이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주교 임명과 함께 착좌식이 열렸다. 정 추기경은 청주교구장 28년에 서울대교구장 14년, 도합 42년 간의 교구장 생활을 했다.

하지만 서울대교구장의 대주교직에서만 은퇴한 것이며, 추기경직은 교황과 마찬가지로 한 번 서임된 다음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선종시까지 그 직위를 유지한다. 하지만 벌써 만 80세를 넘어 이미 교황 선출권을 상실하였고, 한국 천주교의 규모에 비해 추기경 수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으며 빨리 3번째 추기경이 서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바람대로, 2014년 1월 12일염수정 안드레아 대주교가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3번째 추기경으로 지명되었다.

2 2010년 4대강 정비 사업 관련 발언 파문

2010년 12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과 4대강 사업 관련 발언을 하였다. 기존의 전체주교회의에서 4대강 사업 반대 결정을 한 것은 '자연 파괴와 난개발의 위험을 보인다'는 우려였지, 모든 주교들이 4대강 사업이라는 특정 정치사안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표한 것은 아니라는 것.

이에 12월 10일, 정의구현사제단이 유래없이 강도 높은 수위로 비판하고, 이어 원로 사제들이 정 추기경의 서울대교구장직 사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한국 가톨릭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교계 안팎으로 상당한 문제가 되었다.추가 참고기사

비판 측에서 가장 문제삼은 것은 정 추기경의 독단적인 언행이었다. 4대강 사업 반대는 다름 아닌 <전체주교회의>에서 토론 끝에 결정된 것이다. 주교회의에서 의결하는 모든 내용은 가톨릭 교회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일치', 즉 '공동 합의'에 따라 의결되는 것이다. 아무리 추기경이고 대주교라도 의견 교환없는 독자적인 반대는 안 되는 것이다. 정 추기경의 이러한 언행을 교회의 분열을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본 원로 사제들이 들고 일어났던 것이다.가톨릭뉴스 참고기사

또한 비판 입장을 주도한 전체 주교회의 소속 <정의평화위원회>에서는 정 추기경의 발언을 부정하고 다시 한 번 4대강 사업 반대입장임을 명백히 확인하였다. 또한 대구대교구 소속 정홍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는 정진석 추기경의 지시로 평화방송에서 입막음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여 파문이 확산되는 모습을 보였다.

정의구현사제단이 추기경을 비난한 명분이 "한국 천주교 최고 의결기구인 주교회의의 입장에 대한 추기경의 불순명"으로 내부에서 불만이 터져나올수 있는 껀덕지를 제공했다.[5]

가톨릭 외부의 사람들이 볼 때는 4대강에 대한 교내의 정치적 입장차이가 아니라 '불일치' '불순명'이 논쟁의 핵심이 되는 것이 다소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인데, 사실 가톨릭은 공동체주의를 강조하며 통일성, 일치, 위계서열, 순명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교단이다. 가톨릭의 몇몇 사제들과 정의구현사제단의 사제들이 사회 변혁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부분과는 좀 다른 차원의 이야기. 같은 기독교 내에서도 개신교의 경우 주류교단과 목회자들은 한나라당 성향을 띈 경우가 많지만, 한번 수틀리면(...) 집사고 장로고 목사고 뭐고 서로 키배하고 멱살잡고 싸우는 분위기하고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성직자 간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가톨릭과 달리 만인사제주의를 표방하는 개신교는 모든 신도들은 궁극적으로 평등한 존재로 보기 때문. 비종교인은 물론이고 불교만 해도 개신교보다는 덜해도 싸울 땐 서로 싸워대지만 신부님들이 그러는 건 거의 언론에서 보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톨릭의 보수성은 꼭 긍정적인것도 꼭 부정적인 것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 2가지 모두 가능하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 신부를 다른 곳으로 보내고 조용히 묻어버리는 경우들이 있다는 점은 대충 넘어갈 문제가 아니지만, 이 사안의 경우에는 일반 사회조직에서도 지켜져야 할 민주적 합의와 그 합의에 따라 결정된 규칙에 대한 준수의 문제를 어긴 것이라서 문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불순명 이야기가 다시 나오는 것은 비종교인들이 보기에 좀 권위적이거나 낯설 수 있는데 이러한 배경이 있는 것.

파문의 확산을 막기 위해 자제로 일관한 정 추기경 측은 2010년 12월 23일 발표한 신년메시지에서 흑백논리를 배제하자고 하였다. 한국 가톨릭이 정교분리의 원칙에 따라 어떤 정치사안에 대해서도 찬성이나 반대와는 무관하며, 정치적인 사안에 대한 판단은 신자들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겠다는 것.

1년여 후, 파문 이전에 제출된 상태였던 정진석 추기경의 서울대교구장 사임 신청을 2012년 5월 10일 교황청이 수락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정진석 추기경은 이미 대교구장 정년인 80세를 넘긴 상황이었으며, 모든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은 75~80세 즈음 교황에게 사표를 제출하는 관례가 있다. 모양새는 나쁘지 않게 잘 갈무리한 셈이다.

이 갈등에 언론과 정치인들까지 가세(…)하여 볼썽사나운 추태가 크게 벌어질 뻔하기도 하였으나, 당사자인 가톨릭 교회 대부분은 예수성탄대축일을 무탈히 치르는 등 계속 평정을 유지한 덕분에 논란이 커지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보면, 상당히 일견 '보수적'으로 보일지는 모르나 추기경이 된 이후에 용산 철거 화재 사건, 서울시 뉴타운 재개발에서 소외받는 시민들이 있다는 걸 문제삼으며 "우리 사회는 입법기관 종사자들에게 특권도 부여하고 있지만, 과연 그들이 대우를 받는 만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지 의문"이라고 발언하기도 했했으며, 정운찬 총리가 4대강 반대하는 주교회의 좀 잘 달래달라고 찾아갔어도, 천안함 사건이나 잘 처리하시라고 완곡히 거절하기도 했다.[6]
  1. 이 사건 때 시인 신동엽이 간 디스토마에 걸렸다.
  2. 1892년 건립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성당.
  3. 서품 당시 한국나이 39세로, 한국 천주교 사상 최연소 주교서품을 받았다.
  4. 천주교 7성사세례성사, 성체성사(정 추기경은 여기서는 첫 영성체를 이야기 하였다), 견진성사, 고해성사, 성품성사를 모두 명동성당에서 받았다고 본인이 직접 말하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한 서울대교구장 은퇴 미사 역시 명동성당에서 거행되었다. 나머지 2개 성사인 혼인성사와 병자성사는.......
  5. 박홍 신부만 하더라도 아무리 정치적으로 물의를 이르켜도 박홍 신부는 예수회 소속에 서강대 총장을 역임했을 정도로 상당한 엘리트인데다가 기본적으로 조직에 충성을 다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아무도 터치를 하지 않는다.
  6. 그러나 이 시점에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주교회의에서 4대강을 생명보호 교리를 근거를 들어 반대하기로 의견 일치를 본 상황이였으므로 정진석 추기경이 뭘 해보려고 했어도 힘들었을 것이다. 정진석 추기경은 끝까지 주교회의에서 4대강이 환경파괴를 할 수도 있다고 했지, 반대는 안 했다고 주장했으며 결과에 대한 판단은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