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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누아르, 터프가이 연기의 원조, 그리고 남성미와 하드보일드의 아버지. [1][2]
미국 영화 연구소 선정 위대한 남자 배우 Best25에서 1위를 차지한 남자.[3]
흡연간지의 끝판왕
1 소개
Humphrey DeForest Bogart(1899년 12월 25일 ~ 1957년 1월 14일)
트렌치코트와 중절모를 쓴 탐정 캐릭터로 널리 알려졌으며, 미국 탐정의 대명사 샘 스페이드와 필립 말로역을 모두 맡았던 하드보일드의 남자.
2 커리어
뉴욕 출신으로 원래는 배우를 꿈꾸던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다양한 직업을 거친뒤 1921년에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브로드웨이에서 일하면서 연기생활을 이어 나갔으나 검은 목요일, 사건으로 인해 연극 생활에 문제가 발생하자, 그는 할리우드로 진출한다. 1936년, 《화석의 숲》에서 뛰어난 연기를 펼쳐 평단의 호평을 받은 이후 《더럽혀진 얼굴의 천사》같은 갱스터 영화에 주로 출연하였다.
냉정하고 날카로운 눈매와 턱선, 깡마른 체구등이 탐정역할에 제격이었는지 그는 1941년부터 주연을 맡아, 《하이 시에라》, 《몰타의 매》같은 탐정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를 펼쳤다. 다음해에는 본인의 최고 흥행작이자 명작으로 아직까지 회자되는 《카사블랑카》에 출연하여 주옥같은 연기로 인기를 얻게 된다.
이후 그는 로런 버콜과 함께 출연한 《소유와 무소유》, 《빅 슬립》, 《다크 패시지》, 《키 라르고》에 나왔다. 그는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에서도 출연하였으며 1951년에는 《아프리카의 여왕》으로 마침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이후로도 《사브리나》, 《케인 호의 반란》에 출연하였으며 마지막으로 《하더 데이 폴》에 출연하였다.
3 기타
험프리 보가트와 땔레야 땔 수 없는 것이 바로 담배이다. 지금이야 담배에 대한 인식이 워낙 안 좋고 방송에서 흡연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5] 보가트는 당시 그가 출연하는 영화에서 멋드러지게 담배를 태우는 모습으로 흡연의 아이콘이었고 뭇 남성들의 로망이었다. 오죽하면 이지 라이더 삽입곡 중에서 Don’t Bogart That Joint, 즉 |'보가트처럼 대마초 피우지 마'| 라는 곡이 있는데, 여기서 보가트는 '담배를 멋지게 피우는'의 동사로 쓰인다. 실제로 담배를 가장 멋지게 피우는 배우를 뽑으면 부동의 1위이기도 했다. 험프리 보가트의 사망 원인은 후두암이었는데, 이는 실제로도 엄청난 골초였던 그였기에 결국 담배로 인한 후두암이 발생한 것이다.
냉전시대에 미국 영화계에 불어닥친 매카시즘 열풍에 적극적으로 반항하던 배우중 하나였다.- ↑ 과언이 아닌게 몰타의 매같은 보가트의 초기 출연작들이 전 세계 영화평론가들이 입맞추어 필름 누아르 영화 장르의 시초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보가트는 필름 누아르 영화 최초의 주인공이었다.
- ↑ 미국에서는 Badass의 상징적 존재이자 사실상 영화 연기 내에서 쿨한 터프가이, 입체화 된 하드보일드 캐릭터를 처음 선보인 배우이다. 보가트 이전의 주연급 배우들이 주로 전형적인 착한 주인공이나 코미디 캐릭터들에 불과했다는것만 봐도 영화연기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어찌보면 말론 브란도 출연이후 물밀듯이 쏟아져 나온 다양한 개성의 성격파 배우들의 큰 틀을 프레드릭 마치와 함께 미리 잡아준 배우라고 볼 수 있다.
- ↑ AFI에서 1999년에 선정하였으며 기준은 할리우드 태동기부터 클래식 시대의 끝이라 할 수 있는 1950년대 까지 아이콘격으로 활약한 배우들을 평가하여 선정한 것, 여배우에선 캐서린 헵번이 1위를 차지했다.
- ↑ 키가 작아서 영화 촬영 때는 키높이 신발을 신었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 미국은 지금과 별 차이 없이 180넘는 배우들이 널렸고 190 근처 배우들도 많았다.
- ↑ 사실 한국을 제외하면 TV 드라마에서 흡연 장면을 완전검열하는 국가는 아직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2010년대에 유럽, 일본 그리고 미국 드라마에서도 담배는 물론이고 전자담배나 대마초 흡연씬을 아무렇지 않게 내보일 정도이다. 게다가 영화에서는 누구나 다 알다시피 동서를 막론하고 지금도 거리낌없이 흡연장면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