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르도 다니엘 "타타" 마르티노 (Gerardo Daniel "Tata" Martino) | |
생년월일 | 1962년 11월 20일 |
국적 | 아르헨티나 |
출신지 | 로사리오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
유스팀 |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72~1980) |
소속팀 |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80~1990) CD 테네리페 (1991)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91~1994) CA 라누스 (1994~1995)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95) CD 오히긴스 (1996) 바르셀로나 SC (1996) |
지도자 | 알미란테 브라운 데 아레시페스 감독 (1998) CA 플라텐세 감독 (1999) 인스티투토 데 코르도바 감독 (2000) 클루브 리베르타드 감독 (2002~2003) 세로 포르테뇨 감독 (2003~2004) 콜론 데 산타페 감독 (2005) 클루브 리베르타드 감독 (2005~2006)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6~2011) 뉴웰스 올드 보이스 감독 (2012~2013) FC 바르셀로나 감독 (2013~2014)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4~2016) |
국가대표 | 1경기 |
FC 바르셀로나 역대 감독 | |||||||||||
티토 빌라노바 (2012~2013) | → | 헤라르도 마르티노 (2013~2014) | → | 루이스 엔리케 (2014~ )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감독 | |||||||||||
알레한드로 사베야 (2011~2014) | → | 헤라르도 마르티노 (2014~2016) | → | 에드가르도 바우사 (2016~ ) |
1 소개
국가대표에서 메시를 가장 잘 막는 남자
아르헨티나의 축구 감독. 전직 축구선수. 애칭인 '타타'로 많아 알려져 있는데, 타타는 스페인어로 아버지를 뜻한다. 애칭만큼이나 아르헨티나 선수들에게는 인망이 있는 감독.
2 선수 시절
1972년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클럽 커리어 대부분 기간을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뛰었다. 뉴웰스 올드 보이스 팀에서는 거의 최고 수준의 레전드 대우를 받는다.[1] 1991년 스페인으로 건너가 테네리페에서 뛰었으나 15경기 1골에 그쳤다. 1996년 에콰도르 리그의 바르셀로나 SC에서 마지막으로 뛰었고, 선수 생활을 마쳤다.
3 감독
은퇴 이후 1998년 브라운 데 아레시페스를 맡으며 감독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여러 클럽을 지도하였고,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06년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게 된 후이다. 특히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조별 예선을 1승 2무로 조 1위로 통과하였고, 16강에서 일본을 승부차기 끝에 꺾으며 8강에 올려 놓는 지도력을 선보였다. 이후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파라과이를 5무승부(...)를 기록하며 결승에 진출시켰다. 2012년 고향 클럽인 뉴웰스 올드 보이스 감독직을 맡았다. 2012-13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토르네오 피날에서 우승하며 아르헨티나 내에서도 인정받게 되었다. 이후 2013년 7월 22일 티토 빌라노바의 뒤를 이어 FC 바르셀로나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생활은 좋지 못했다. 시즌 전반기는 프리메라리가 전반기 역대 최다 승점을 쌓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으나, 중반부터는 바르셀로나와 맞지 않는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했고[2] , 펩 과르디올라 이후 최악의 성적 [3][4]으로 졸장 취급을 받으며, 경질되었다.
2014년 8월 12일 알레한드로 사베야의 뒤를 이어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감독을 맡은 후 성적이 오락가락하며 다소 비판을 받았고 201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칠레를 상대로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끝에 우승을 놓쳤다. 그리고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지역예선(남미)에서 한참이나 아래인 에콰도르에게 패하면서 일각에서는 경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생기기도 할 정도. 국내에서는 반쯤 갓동님(...) 취급 받고 있다.
사실 파라과이 감독을 맡은 시절을 되짚어 보면 다소 운이 따르기도 했었는데, 남아공 월드컵 당시 대진이 이탈리아, 슬로바키아, 뉴질랜드, 일본, 스페인으로, 반쯤 맛이 간 상태였던 이탈리아, 누가 봐도 한 수 아래의 전력인 뉴질랜드를 상대로 거둔 1위였고, 토너먼트에서도 일본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8강에 진출한 것이었다. 대진운이 좋았던 셈. 굳이 좋았던 점을 꼽자면 대회 챔피언인 스페인을 상대로 매우 좋은 경기를 펼쳤다는 점 정도. 뒤이은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준우승을 거뒀지만,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뭔가 능력과 성과 사이의 괴리가 느껴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단순히 운이 좋았던 감독으로 치부하는 시각도 많은 편이다.
그래도 아르헨티나 감독 부임 후 모습을 보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부분도 있다. 첫째로 비교적 상식적인 선수 선발이다. 축구계 파벌 간 라인타기가 횡행한다는 점을 그대로 반영하는, 또는 감독 개개인의 선호를 지나치게 반영한 선수 선발이 그간 아르헨타나 대표팀에 자주 있었는데, 마르티노 감독의 경우 비교적 그때그때 폼 좋고 몸상태 좋은 선수들을 선발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베테랑 선호가 지나치지 않느냐는 지적은 좀 있는 편. 둘째로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결과물이야 어떻게 나오든 간에(....) 비교적 상식적인 전술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아르헨티나 대표팀하면 떠오를 만한 경기력이라면 2000년대 초반 비엘사 시절의 닥공 축구나 2000년대 중반 페케르만 시절의 눈호강하는 화려한 공격 축구를 떠올릴 만한데, 정작 마르티노의 전, 전전 감독들의 전술은 과장 좀 보태면 아르헨티나답지 않은 엽기적인(....) 축구를 구사했다. 마라도나의 시대착오적인 80년대 축구는 물론이요, 꾸준한 성적과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성과로 호평을 받은 사벨라 시절의 축구도 뜯어보면 발암물질 수준의 후방 빌드업, 수비 위주로 축구를 해도 바이킹을 탄 것만 같은 아슬아슬함을 보여주는 수비, 철저히 디마리아-공격수-메시 3인대 뽕뽑기에 의존하는 빈약한 공격 구성을 보여주는 늪축구였다. 그에 비하면 마르티노는 어쨌든 빌드업다운 빌드업도 해 보고, 압박 축구도 해 보려는 성의 정도는 보이고 있는 편.이상하게 안 돼서 그렇지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는 준결승까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사람글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비록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생긴 대체 자원을 활용한 것이었지만 새롭게 기용된 메르카도, 아우구스토 페르난데스 등이 좋은 활약을 펼쳤고, 기존에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던 이과인, 바네가, 라베시 등이 모처럼 애국 모드로 돌아서면서 겉만 화려할 뿐, 실상은 메시, (폼 좋을 때의) 디 마리아, 마스체라노 빼면 똥덩어리(....)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는 수준까지 간 것. 그러나 결승에서 다시 만난 칠레를 상대로 그나마 제법 잘 싸웠지만 기존에 나타났던 단점들이 반복되며[5] 승부차기에서 또 패배하고 말았다.
3년 연속 국제대회 준우승의 여파는 매우 커서 결승 직후 현자타임이 온 리오넬 메시가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고, 마스체라노, 아구에로가 뒤이어 은퇴를 선언했다.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메시의 은퇴 번복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부패 스캔들 문제로 수습이 안 되는 축구협회의 정화 목소리가 일어나는 등 아르헨티나 축구계는 말 그대로 혼파망 상태.[6] 마르티노 역시 유임되며 올림픽 대표팀까지 맡게 되었으나, 혼파망 상태가 수습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몇몇 클럽에서 올림픽 대표팀 차출을 거부하자 7월 5일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한다. 후임 감독으로는 마르셀로 비엘사가 유력한 듯 했으나,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장고 끝에 에드가르도 바우사를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했다. 라치오 감독도 거절하고 기다리던 비엘사 안습..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의 논지에 의하면 현재 알레한드로 사베야 감독이 기껏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비를 안정화 시켜서 철벽수비로 다 만들어 놓았는데 그런 사베야와는 정반 대의 감독인 비엘사를 앉혀서 또 극단적 공격축구로 회귀해 팀의 수비력을 엉망으로 만들 것을 우려해서 비엘사에게 아르헨티나 국대 감독 자리를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비엘사,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이래 장장 32년 동안 아르헨티나가 8강에 못 간 단 두 개의 월드컵 중 하나인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7] 당시의 감독이었다는 점도 비엘사를 불선임한 것의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잉글랜드야 워낙 8강에 못 간 월드컵이 많아서 다만 2014년의 경우는 대진표가 워낙 지랄같아서 월드컵 우승 유경험팀 세 팀인 이탈리아, 잉글랜드, 우루과이 중 하나는 떨어지게 되어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근데 그 조에서 우승도 못해본 코스타리카가 1등했다며? 어디 이탈리아랑 둘이서 이거 한 번 해명해 봐라. 이런 성적을 냈다고 경질이나 불선임 당하지는 않지만...
4 전술 스타일
바르셀로나-아르헨티나 감독 시기를 보자면, 전술적으로는 유연성이 부족하고, 적절할 때 로테이션을 기용한다든가, 교체선수를 투입하는 용병술도 부족하다.[8] 전체적으로 필요 이상의 안정성을 가져가려고 해서, 경기의 템포가 매우 루즈하다. 또한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양 사이드 라인 공격을 선호해서, 양 사이드에서 공격이 막히면 앞서 말한 '전술적 유연성 부족' 으로 팀의 전술이 완전히 고립되는 상황이 속출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답답한 사람이 있으니...[9][10] 마씨 형제라는 비아냥거림에 시달리지만, 자기도 능력이 좋은게 아니기에 딱히 할 말도 없을 것이다.
남미에서 커리어를 쌓고 명성을 얻은 아르헨티나 감독들의 전술적 흐름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78년 월드컵을 우승한 세사르 메노티로부터 파생된 공격, 점유 중심의 축구이고, 다른 하나는 86년 월드컵을 우승한 카를로스 빌라르도로부터 파생된 수비, 역습, 에이스 중시의 축구이다.. 전자를 대표하는 아르헨티나 감독이 호세 페케르만이라면 후자는 알레한드로 사벨라인데, 마르티노는 의외로 전자에 속한다.[11] 그래서 마르티노가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선임되었을 당시에 토털 사커 신봉자로 소개되기도 했다.[12]
마르티노가 명성을 얻은 뉴웰스 올드 보이스 시절까지는 선수들의 유기적인 움직임과 압박, 최후방부터 최전방까지 한번에 시원시원한 패스 전개 등을 보이면서 뻥축?[13] 상당히 주목 받기는 했다. 문제는 바르셀로나와 아르헨티나 감독을 거치면서 색깔을 잃어가는 것이 아니냐 하는 점. 사벨라 시절과 비교하면 전술을 좀 더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부분이나, 체계적인 압박이 이뤄지고 있는 점은 평가해 줄 만하지만, 공격 전개 면에서 딱히 나아졌다고 할 면은 없는데다가, 바르셀로나 역사상 그 훌륭한 메시를, 그 정도로 활용 못하는 감독은 처음이자 메시를 다뤄본 모든 감독들 중 메시를 그 정도로 활용 못하는 감독은 마라도나에 이어 두번째이었기에 그 임팩트는 상당했다.
전통적으로 수비가 약했던 아르헨티나의 특성이나 공세적으로 경기를 만들기 힘든 미드필드 구성을 고려해서 안정지향적으로 경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들이 많은데, 문제는 이게 너무 심해서 경기가 상당히 답답하다.[14]
5 기타
아르헨티나 대표팀 홈 구장인 엘 모누멘탈에서의 성적이 매우 좋지 않다.- ↑ 리오넬 메시의 아버지가 마르티노의 광팬이라고 한다.
- ↑ 대표적인 예가 무한정 높은 크로스 공격이다. 바르셀로나는 타겟맨을 쓰지 않는 타입이라, 낮은 크로스 공격은 즐겨써도 높은 크로스 공격은 잘 쓰지 않는다. 심지어 크로스는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오른쪽 풀백인 다니엘 알베스가 올리도록 명했다. 뻔히 보이는 전술응 쓰는 셈. 그리고 그 크로스를 받으러 뛰어가는 선수가 네이마르나 리오넬 메시다. 말이 되는가?
- ↑ 리그 2위로 마쳤다. 챔피언스 리그와 코파에서도 탈락하면서 시즌 무관.
- ↑ 리가 마지막 경기는, 홈구장인 누캄프에서 AT 마드리드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면서, AT 마드리드가 누캄프에서 우승 축제를 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AT 마드리드를 상대로 승리했다면, 최소한 리그 우승 트로피는 들었을텐데, 이것마저 실패하며 완전히 구단으로부터 신용을 잃었다.
- ↑ 역시 부상 때문에 나타난 문제이긴 했지만 선수 기용 문제와 미드진의 기동력 저하, 전방 공격진의 결정력 문제, 플랜 B의 부재.
- ↑ 대회 직전 펠레와 메시 뒷담화를 했다는 구설이 났다거나(오해를 부를 만하긴 했지만, 선수 특성에 대해 말한 것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승 못하면 귀국하지 말아야 한다는 농담을 하던 마라도나도 이 지경이 되자 메시야 미안하드아아악!!을 외치며 마구까기에 나선 상태.
- ↑ 나머지는 1994 FIFA 월드컵 미국. 그래도 그건 16강이라도 갔지만 비엘사는... 안습.
- ↑ 전반적으로 경기 내의 용병술을 보면 나믿가믿에 가깝다.
- ↑ 다만 마라도나의 경우 전술 콘셉트 하나는 확실했다. 자신이 월드컵 우승을 했던 86년처럼 메시의 재능에 모든 것을 맡기고, 나머지 선수들에게는 뒤처리를 맡기는 것. 단지 아르헨티나에는 발다노도(발다노와 가장 유사한 에르난 크레스포가 엔트리에 없다) 부루차가도 없었고, 감독도 빌라르도로가 아니라 마라도나였다는 점, 근본적으로 지나치게 퇴행적인 전술이었다는 점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에이스급 선수들을 다 버리고 어디 쩌리들만 주워 모아다 엔트리 짠 게 문제라는 점. 그 좋은 후안 로만 리켈메는 사소한 걸로 다투다 내보내고 에스테반 캄비아소, 페르난도 가고, 하비에르 사네티 다 만만한 자원이 아닌데 그걸 모조리 버려서 수비를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혼자에게 모조리 떠넘겼다. 이게 제일 크다.
다 문제네? - ↑ 다만 사베야 감독은 저 중에 가고를 다시 쓰고 마르코스 로호를 발굴해서 하비에르 사네티 자리를 대신했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 ↑ 마르셀로 비엘사가 좀 특이한 포지션인데, 메노티즘과 통하는 면은 많지만 상당히 독자적인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 ↑ 실제 토털 혁명 이후의 토털 사커의 흐름을 보면 유럽에서 발전한 것 외에 미주 대륙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아이디어를 수용한 부분도 제법 있는 편이다.
- ↑ 뻥축이라기보다는 빠른 전환 속도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 ↑ 브라질 월드컵 때도 그랬지만, 토너먼트라는 상황에 더불어 사벨라가 수비지향적인 감독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월드컵 전까지는 제법 그럴 듯한 공격력을 보이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