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바르셀로나 감독 | |
루이스 엔리케 마르티네스 가르시아 (Luis Enrique Martínez García) | |
생년월일 | 1970년 5월 8일 |
국적 | 스페인 |
출신지 | 히혼 |
신체 조건 | 180cm, 73kg |
포지션 |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
소속팀 | 스포르팅 히혼 B (1988 - 1990) 스포르팅 히혼 (1989 - 1991) 레알 마드리드 (1991 - 1996) FC 바르셀로나 (1996 - 2004) |
지도자 | FC 바르셀로나 B 감독 (2008 - 2011) AS 로마 감독 (2011 - 2012) RC 셀타 데 비고 감독 (2013 - 2014) FC 바르셀로나 감독 (2014 - ) |
국가대표 | 62경기 12골 |
FC 바르셀로나 역대 주장 | |||||||||||
세르지 바르주안 (2001~2002) | → | 루이스 엔리케 (2002~2004) | → | 카를레스 푸욜 (2004~2014) | |||||||
AS 로마 역대 감독 | |||||||||||
빈첸초 몬텔라 (2011) | → | 루이스 엔리케 (2011~2012) | → | 즈데넥 제만 (2012~2013) | |||||||
FC 바르셀로나 역대 감독 | |||||||||||
헤라르도 마르티노 (2013~2014) | → | 루이스 엔리케 (2014~ ) | → | 현직 |
2015 FIFA 올해의 감독상 | ||
수상 루이스 엔리케 | 2위 펩 과르디올라 | 3위 호르헤 삼파올리 |
목차
10년 전 캡틴에서 10년 후의 감독으로 돌아온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1 소개
스페인 국가대표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감독. 선수 시절엔 특유의 투쟁심과 수많은 포지션을 섭렵할 수 있는 다재다능함으로 머무는 팀마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FC 바르셀로나로 바로 이적한 역사상 단 세 명의 선수 중 한 명이기도 하다.[1] 선수시절 동안 500경기 이상의 공식경기에 나서고 100골이상의 골을 기록하며 3번의 월드컵에 참가했다. 불같은 성질과 스태미나로도 명성을 날린다. 한번의 유로 선수 은퇴 이후 08-09시즌부터 10-11시즌까지 세 시즌 동안 바르셀로나B의 감독을 맡았다. 11-12시즌에는 이탈리아 세리에 A의 AS 로마의 감독을 맡았고, 13-14시즌부터 셀타 비고의 감독을 맡았으며 14-15시즌부터 FC 바르셀로나의 감독을 맡고 있다.
2 선수 시절
FC 바르셀로나의 캡틴 루이스 엔리케 지시중인 당직사령님
2.1 스포르팅 데 히혼
히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풋살로 섬세한 기본기를 익혔다. 1981년 11세 때부터 고향팀 스포르팅 히혼 유스에 소속된 이후 1984년부터 1988년까지 라 브라냐로 임대를 떠났으며, 1988년 당시 3부 리그에 소속된 스포르팅 히혼의 2군격 팀인 스포르팅 히혼 B 소속으로 데뷔했다. 이후 하비에르 만하린, 후아넬레, 아벨라르도 페르난데스 등과 함께 팀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로 자리잡았으며, 이러한 활약으로 1989년 9월 CD 말라가를 상대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1990-91 시즌에는 키리아코 카노 감독의 지휘하에 스트라이커로 출전해 리그 35경기에서 14골을 득점했으며, 특히 마지막 라운드에서 발렌시아 C.F.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해 팀이 1:0으로 승리하며 최종 순위 5위에 올라 UEFA 컵 진출권을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히혼에서 그는 루초(루이스+마초)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2.2 레알 마드리드
좋은 활약을 펼친 결과 레알과 바르셀로나의 구애를 받았으나 과거 입단테스트에서 자신을 떨어뜨린 바르셀로나를 거절하고 시즌 종료 이후 250만 페세타의 이적료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되었으나, 입단 초창기에는 당시 팀의 감독이 라도미르 안티치와 제니토 플로로로 연달아 바뀌는 상황에서 본 포지션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기대했던 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1994년 팀의 새로운 감독으로 호르헤 발다노가 선임된 이후에는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활약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중용되었으며, 1994-95 시즌에는 FC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에서 1골을 넣어 5:0 승리에 일조하는 등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하지만 1995-96 시즌 종료 이후 구단과의 계약 연장에 합의하는 데 실패했고, 결국 계약이 만료되어 팀을 떠나게 되었다.
2.3 FC 바르셀로나
결국 1996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다른 팀을 알아보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더비 라이벌인 FC 바르셀로나에서 공격적인 역할을 내걸어 입단했다. 입단 이후 첫 시즌인 1996-97 시즌에는 팀의 감독인 바비 롭슨의 지휘 하에 리그에서 35경기에 출전해 17골을 넣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수페르코파, 코파 델 레이, UEFA 컵 위너스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데 공헌했다. 1997-98 시즌을 앞두고 팀의 감독이 루이스 판 할로 바뀐 이후에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전히 팀의 공격을 이끌었으며, 리그에서 34경기에 출전해 18골을 넣어 리그 우승에 크게 공헌했을 뿐 아니라 코파 델 레이에서도 6경기에 출전해 3득점을 기록해 팀의 코파 델 레이 2연패를 견인했다. 98-99시즌 히딩크가 이끌던 레알 마드리드전에서 2골을 넣어 3:0으로 이기게 되어 히딩크는 경질되게 되어 이후 한국행의 가교역할을 했다고 할수 있다.
입단 초창기 당시에는 숙명의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한 전력도 있었던 관계로 서포터들의 지지를 쉽게 얻지 못하고 야유도 많이 받았었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보다 더 많은 8시즌 동안 좋은 활약을 펼쳤고 주장까지 선임되면서 점점 팬들의 신임을 얻게 되고 인정을 받게 된다. 그리고, 엘 클라시코에서 여러 골을 성공시켜 레알 마드리드 킬러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루이스 엔리케 이후 이름에 루이스가 들어가는 또 하나의 축구 선수가 반대 케이스가 되기도 했다.
그는 레알 시절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5-0의 홈승리에 기여하였지만 홈팬들에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레알에서의 좋은 기억은 없다고 인터뷰하게된다. 2004년 5월 16일 라싱 산탄데르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으며, 당시 팀의 감독이었던 프랑크 레이카르트는 후반 14분 마르크 오베르마스와 교체시켜 벤치로 불러들이면서 서포터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은퇴 이후 시간이 흘러 2014-2015 시즌부터 FC 바르셀로나의 감독자리까지 승진하게 된다.
2.4 국가대표
1991년 U-23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1991년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으며,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해 팀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공헌하였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성인 국가대표팀에도 뽑혔으며, 이후 1994 FIFA 월드컵 당시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어 조별예선 첫 경기였던 대한민국전에도 선발 투톱으로 출장했고, 스위스와의 16강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에 일조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와의 8강전 도중 마우로 타소티의 팔꿈치에 얼굴을 가격당해 출혈을 일으키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결국 이는 팀의 1:2 패배로 이어졌다. 하지만 경기중에는 타소티가 주심으로부터 아무런 처분을 받지 못했으며, 경기가 끝난 이후 8경기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2][3]
이후 유로 1996 당시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으며, 두 번의 월드컵(1998 FIFA 월드컵에도 출전해 불가리아와의 조별 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1골+1어시스트+1PK유도의 맹활약을 하며 팀의 6:1 승리를 이끌었으나 팀이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뒤 2002 FIFA 월드컵에도 나왔으나, 8강전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대한민국을 만나 탈락했다. 공교롭게도 월드컵 첫경기와 마지막 경기에서 모두 우리 나라를 상대했고, 썩 좋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 그 스스로가 '투혼'으로 점철된 선수답게, “한국 선수들은 마지막 10분까지도 경기 시작 때와 다름없이 뛴다. 특히 끝까지 패배를 생각하지 않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라는 말로 겸허히 패배를 인정하고 한국 팀에 대한 존중심을 표현했다.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으며, 총 62경기에 출전해 12골을 득점했다.
2.5 플레이 스타일
왜 없는거야 추가바람
3 지도자 경력
축구감독 경력의 정점인 트레블을 달성하다
2004년 은퇴 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등 축구와는 거리를 두고 개인 생활을 보내다가 2007년 6월 바르셀로나 B팀의 감독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마침 지도자 수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지도자길을 택한 펩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 B의 감독직을 원해 임명이 취소되었다.[4]
2008년 6월 바르셀로나 1군감독으로 임명된 펩 과르디올라의 후임으로 원래 예정되어 있던 FC 바르셀로나 B의 감독을 맡게 된다. 2008-09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팀과의 연장 계약을 맞었다. 이후 2009-10 시즌 3부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해 11년만에 팀의 2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으며, 2010-11 시즌에는 2부 리그에서도 3위를 차지하며 팀 창단 이후 가장 높은 성적을 올렸다.[5]
시즌 종료 이후 아직 구단과 2년 계약 기간이 남아있던 상황에서 구단과의 결별을 선언했으며, 그 해 6월 AS 로마로 팀을 옮기는 데 합의했다.[6] 계약 조건은 160만 유로의 연봉과 2년의 계약 기간이며, 자신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이반 데 라 페냐를 임명했다.[7] 그러나 시즌 초반 유로파 리그에서 예선 탈락을 하면서 안좋은 출발을 보인 루이스 엔리케는, AS 로마에 바르셀로나식 4-3-3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성적이 부진하자 12시즌 종료 이후 자진 사임했다. 후임 감독으로는 2-8 포메이션의 장인즈데넥 제만이 취임했다. 로마에서의 실패는 당시 열병처럼 불었던 바르셀로나식 티키타카를 적용하는데 대한 실패였다. 엔리케는 덕분에 감독수업을 제대로 하게 되고 로마는 망했어요
이후 한 시즌을 야인으로 보내다 13-14 시즌부터 전시즌 극적으로 라 리가 잔류에 성공한 셀타 비고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계약기간은 2년으로 감독으로서는 라 리가 데뷔하며 바르셀로나 B시절 호흡을 맞췄던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을 불러 모으며 명예회복을 꾀하고 있는데 시즌 시작 직전 건강 문제로 사임한 티토 빌라노바 감독의 후임으로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갈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루이스 엔리케를 믿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을 데려온 셀타 비고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 하지만 단지 루머였는지 바르셀로나 감독으론 타타 마르티노가 영입됐다.
그렇게 맡은 셀타 비고 감독 첫 시즌은 리그 9위를 기록. 그동안 강등권을 겨우 벗어나는 수준이었던 팀을 생각하면 괜찮은 성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준우승 더블을 기록한 마르티노 감독이 사임하자 2014년 5월 20일 FC 바르셀로나 새 감독으로 2년 계약기간에 선임되었다.
시즌 초반 리그에서 연승 행진을 달리며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엘 클라시코 패배, 끊임없는 로테이션 때문에 나타나는 일정하지 못한 경기력으로 비판 받았다. 특히 팀의 에이스인 리오넬 메시와 훈련 도중 다퉜다는 루머가 돌면서 메시의 이적설까지 파생되는 등 바람잘 날 없는 바르셀로나 1년차를 보내고 있었으나...
...2015년 들어 무시무시한 성적을 내고 있다. 2015년 첫 경기였던 풋볼 지니어스의 레알 소시에다드전에서 1:0으로 패한 이후 승률이 무려 28승 1무 1패, 승률 93.3%라는 정신나간 성적을 거둔 것.[8] 비판 받던 로테이션 문제는 전화위복으로 돌아와 시즌 막바지에도 큰 전력 누수 없이 트레블에 도전하는 힘이 되고 있으며, 경기력 문제도 바르셀로나 특유의 미드필더 플레이를 간소화한 뒤 MSN의 남미 3대장 트리오의 자유도를 극대화함으로써 성적을 내고 있다.[9] 친구인 펩 과르디올라와의 재회로 주목을 받은 챔피언스 리그 4강 1차전에서는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는 운영을 보이며[10] 3:0으로 완승, 전세계를 경악에 빠트렸다.[11]
챔스 4강 2차전에서는 패배했으나 결국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올랐고 리그에서 우승을 확정지었으며 코파 델 레이도 결승에 오르면서 잘하면 트레블 우승 금자탑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2008-09 시즌 바르셀로나는 챔피언스리그, 리그, 코파 델 레이를 우승하여 이미 트레블 우승을 기록했는데 만일 이번에 우승하면 세계 최초로 트레블 2회 우승 기록이다.
5월 17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37라운드 원정경기에서 리오넬 메시의 결승골로 1:0 승리하며 팀의 23번째이자 자신의 감독 커리어 첫 우승을 안게 되었다
그리고 5월 30일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3:1로 승리하며 더블을 달성했다. 이후 6월 7일 유벤투스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역시 3:1로 승리하며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부임한 첫 해에 트레블을 기록하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15/16시즌에는 프리 시즌부터 영 좋지 않더니, 초반 슈퍼컵 3연전에서 9실점이나 하는 졸전을 벌이며 다시 루광래로 평가가 회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시즌 초 메시가 부상을 당하면서 이젠 진짜 노답인가, 메시빨 없는 루초의 본모습을 볼 수 있는가 했는데... 메시 이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는 통에 제대로 된 베스트 멤버를 꾸리기 힘든 상황 속에도 꾸역꾸역 승점을 쌓고 있다. 메시가 없음에도 수아레즈와 네이마르가 환상의 호흡을 보이며 리그에서 선두를 내달린다. 그리고 리가 12라운드 엘 클라시코에서 위기에 놓인 베니테즈의 중원이 실종된 레알 마드리드를 4:0으로 완파하며 슬슬 명장으로 인정 받아도 될 만한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진 3인방을 갖고 있지만, 선수빨도 아무나 받는 게 아님을 증명하는 중. 당장 라이벌 R모팀의 B모 감독님을 생각해보자
2016년 2월 초인 현재 바르셀로나에서의 100경기째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99경기의 기록을 보자면 79승 11무 9패 골기록은 280득점 72실점에 클린시트 경기만 절반에 가까운 50경기로, 대충 헤아려봐도 승률 80%의 미치광이 기록이다!!! 몰라 이 승률 뭐야 무서워 거기다 코파 델 레이에서 발렌시아를 상대로 거둔 대승으로 27경기 무패 기록을 달성했는데 이는 크루이프 시절의 드림팀 체제당시 기록과 더불어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다 연속 무패 공동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참고로 1위는 펩 과르디올라 체제에서의 28경기 무패로 다음 레반테 전의 승패 여부에 따라 잘만하면 기록 경신도 가능한 상황. 그리고 레반테 원정에서 레반테에 가패당하는(...)[12] 상황에서도 기어이 2:0으로 승리(?!)하며 28경기 연속 무패 및 100경기 승률 80%를 찍었다. 팀 역대 2위 기록이 엘레니오 에레라의 73%이고,[13][14] 라이벌팀 레알 마드리드의 역대 최고 기록이 카를로 안첼로티의 78%인데[15] 이조차도 뛰어넘은 승률.
2016년 4월 초 레알 마드리드와의 엘 클라시코를 앞둔 현재 39경기 연속 무패라는 기록을 세우고있다. 엘 클라시코에서 승리하면 1977-1978시즌 노팅엄 포레스트가 기록한 40경기 무패 기록과 타이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엘 클라시코에서 1:2로 패배했고,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리그 경기에서도 졸전을 보이면서 우려가 커지다가 결국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챔스 8강전에서는 전술도, 플랜B도 없이 MSN만 주구장창 돌리다가 탈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수단이 A매치와 클럽 월드컵으로 인해 체력이 바닥이었다고 할지언정 지친 선수들을 미친듯이 돌렸던 게 누구인지 생각하면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보인다. [16]
16-17시즌 들어 이적 시장에서 파코 알카세르. 안드레 고메스, 사뮈엘 움티티 등 각 포지션 별로 대대적인 로테이션 자원 영입에 성공하며 지난 시즌의 후반기에 나타난 주전 멤버들의 체력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즌이 시작과 동시에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의 우승컵을 차지하며 상당히 좋은 스타트를 끊었으나 리그 3라운드 알라베스전에서 A매치 바이러스와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를 너무도 신경쓴 나머지 제대로 짜맞춰지지도 않은 스쿼드로 승격팀을 상대 했다가 홈에서 그야말로 충격적인 대패를 당했다. 리그 7라운드가 끝난 현재까지 조별 리그에서의 패배는 아직 없으나 루이스 수아레스와 네이마르가 기복있는 모습을 보였고 테어 슈테겐 역시 브라보가 떠난 자리를 완벽히 채우지 못하며 셀타 원정에서 4:3의 대패를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한번 경험헀다. 이니에스타나 마스체라노와 같은 주전 선수들의 부상도 있었고 현재는 메시나 움티티, 라키티치 등 각 포메이션의 주요 선수들이 부상으로 부재하고 있다곤 하나 시즌 초반 4승 1무 2패로 바르셀로나 치곤 다소 부진[17]하고 있어 걱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례적인 3-4-3 포메이션을 쓰거나 이번 시즌 투란의 폼이 살아나면서 용별술 등으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모습도 보여줬지만 로테이션 멤버를 잘 영입한 만큼 각 포지션 별 특성과 선수 특성을 잘 파악해 선발 출전을 시켜야하는데 철저히 감독의 책임인 이 부분에 있어서 시즌 초반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이 점에 있어선 지난 시즌 역시 로테이션을 적절히 잘 써가면서 얇고 체력 안배가 어려운 스쿼드에서도 더블을 이룩해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아직은 더 지켜봐야하는 부분이다.
3.1 감독 스타일
바르셀로나 출신 감독들이 보이는 특징인 점유율 중시, 공세 지향성, 4-3-3 덕후 기질 외에 특출나게 드러나는 전술 스타일은 없다.
절친인 펩이 편집증적일 정도로 미드필드에서 경기 주도권을 잡고 상대 빈틈을 노리며 공격 공격을 외치는 것과는 달리, 적당히 실리적으로 운영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미드필드의 장악력을 비롯해서 전체적인 팀 완성도는 떨어졌지만, 유연하게 변화에 대처하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수준. 이런 면모에 더해 선수 시절 본인 훌륭한 멀티 자원이었던 점 때문인지 여러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에 대한 선호가 높아 보인다. 백승호가 1군 훈련에 소집되어서 훈련할 때도 멀티성을 강화하기 위한 훈련을 했다고 알려졌다.
매니징 측면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로테이션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베니테스 수준으로 마구마구 베스트 11을 갈아대는 정도는 아니지만, 매 경기 조금씩 선수 구성을 바꾸면서 선수들의 체력, 경기 감각을 관리한다. 피지컬 강화를 중시하는 트레이닝 세션과 맞물려 비교적 얇은 스쿼드임에도 그럭저럭 시즌을 꾸려가는 데에 도움을 주는 듯. 그의 바르셀로나가 시즌 초반보다는 중반이나 후반에 더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특히나 트레블을 이끈 2014/15 시즌의 경우, 장기 부상 중이던 베르마엘렌이 복귀하면서 시즌 중후반에도 풀 스쿼드를 가동할 수 있었다. 챔피언스리그 4강 상대였던 전 바르셀로나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의 뮌헨이 부상자로 인하여 최정예 멤버로 경기를 하기 어려웠던 부분과는 다소 비교가 되는 부분.
단점으로 꼽히는 점은, 졸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수단 능력 이상의 시너지를 보여줄 수 있는 감독은 아닌 듯하다는 점, 바르셀로나 B팀 감독 출신임에도 유스 선수들을 활용하는 데에 좀 인색하다는 점 정도가 꼽힌다.[18]
4 경력
4.1 선수 시절
4.1.1 우승 경력
- 레알 마드리드 (1991/92 - 1995/96)
- 스페인 라 리가 (1) : 1994/95
- 코파 델 레이 (1) : 1992/93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 : 1993
- FC 바르셀로나 (1996/97 - 2003/04)
- 스페인 라 리가 (2) : 1997/98, 1998/99
- 코파 델 레이 (2) : 1996/97, 1997/98
- 수페르코파 데 에스퍄나 (1) : 1996
- UEFA 컵 위너스 컵 (1) : 1996/97
- UEFA 슈퍼 컵 (1) : 1997
- 스페인 국가대표팀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4.1.2 경기 기록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FA컵 | 대륙대회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1989/90 | 스포르팅 히혼 | 스페인 라 리가 | 1 | 0 | 0 | 0 | - | - |
1990/91 | 스포르팅 히혼 | 스페인 라 리가 | 35 | 14 | 9 | 3 | - | - |
1991/92 | 레알 마드리드 | 스페인 라 리가 | 29 | 4 | 6 | 1 | 6 | 0 |
1992/93 | 레알 마드리드 | 스페인 라 리가 | 34 | 2 | 6 | 0 | 8 | 1 |
1993/94 | 레알 마드리드 | 스페인 라 리가 | 28 | 2 | 4 | 1 | 6 | 0 |
1994/95 | 레알 마드리드 | 스페인 라 리가 | 35 | 4 | 2 | 0 | 6 | 0 |
1995/96 | 레알 마드리드 | 스페인 라 리가 | 31 | 3 | 0 | 0 | 8 | 0 |
1996/97 | FC 바르셀로나 | 스페인 라 리가 | 35 | 17 | 7 | 1 | 7 | 0 |
1997/98 | FC 바르셀로나 | 스페인 라 리가 | 34 | 18 | 6 | 3 | 6 | 4 |
1998/99 | FC 바르셀로나 | 스페인 라 리가 | 26 | 11 | 3 | 0 | 3 | 1 |
1999/00 | FC 바르셀로나 | 스페인 라 리가 | 19 | 3 | 5 | 3 | 7 | 6 |
2000/01 | FC 바르셀로나 | 스페인 라 리가 | 28 | 9 | 4 | 1 | 9 | 6 |
2001/02 | FC 바르셀로나 | 스페인 라 리가 | 23 | 5 | 0 | 0 | 15 | 6 |
2002/03 | FC 바르셀로나 | 스페인 라 리가 | 18 | 8 | 0 | 0 | 8 | 2 |
2003/04 | FC 바르셀로나 | 스페인 라 리가 | 24 | 3 | 1 | 0 | 5 | 2 |
4.2 감독 시절
4.2.1 우승 경력
- FC 바르셀로나 (2014/15 - )
- 스페인 라 리가 (2) : 2014/15, 2015/16
- 코파 델 레이 (2) : 2014/15, 2015/16
- UEFA 챔피언스 리그 (1) : 2014/15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 : 2016
- UEFA 슈퍼컵 (1) : 2015
- FIFA 클럽 월드컵 (1) : 2015
4.2.2 리그 기록
연도 | 구단 | 리그 | 순위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승점 |
2008/09 | 바르셀로나 B | 스페인 세군다리가 B[19] | 5 | 38 | 15 | 15 | 8 | 50 | 38 | 60 |
2009/10 | 바르셀로나 B | 스페인 세군다리가 B | 2[20] | 38 | 22 | 10 | 6 | 65 | 35 | 76 |
2010/11 | 바르셀로나 B | 스페인 세군다리가[21] | 3[22] | 42 | 20 | 11 | 11 | 85 | 62 | 71 |
2011/12 | AS 로마 | 이탈리아 세리에 A | 7 | 38 | 16 | 8 | 14 | 60 | 54 | 56 |
2013/14 | 셀타 비고 | 스페인 라 리가 | 9 | 38 | 14 | 7 | 17 | 49 | 54 | 49 |
2014/15 | FC 바르셀로나 | 스페인 라 리가 | 1 | 38 | 30 | 4 | 4 | 110 | 21 | 94 |
2015/16 | FC 바르셀로나 | 스페인 라 리가 | 1 | 38 | 29 | 4 | 5 | 112 | 29 | 91 |
- ↑ 다른 두명은 1905년에 바르사로 이적한 루시아노 리스 리가, 1965년에 바르사로 이적한 루시엥 뮐러
- ↑ 대회가 끝난 이후 타소티는 결국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 다시 선발되지 못했다. 유로 2008 당시 8강전에서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격돌하자, 루이스 엔리케는 1994년 월드컵 당시의 패배를 갚아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 ↑ 참고로 마우로 타소티는 8/90년대 유럽을 호령하던 최고의 팀이었던 AC밀란의 막강한 수비진 말디니-바레시-코스타쿠르타-타소티 라인을 구성하던 위대한 선수로, AC밀란 올타임 레전드 라이트백이다. 그러나 국가대표에서는 동포지션에 역시 유벤투스, 인테르의 올타임 레전드인 클라우디오 젠틸레, 쥬세페 베르고미가 있었고, 센터백 성향도 있던 이들의 센터백자리에는 가에타노 시레아, 풀비오 콜로바티, 프랑코 바레시,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 리카르도 페리등 후덜덜한 선수들이 버티고 있었기에 이 후덜덜한 선수들의 틈에 치여 타소티는 밀란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30줄이 넘도록 성인대표팀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불운을 겪었다. 이는 밀란 제네레이션의 동료였던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역시 마찬가지로 이들은 80년대 중후반 밀란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다른 팀의 명 선수들에 가려 대표팀 소집이 안되다가, 밀란에서 그들을 지도했던 은사 아리고 사키가 아주리의 수장이 되고 나서야 성인대표팀에 자리를 잡게 된다. 타소티는 1960년생으로 94년 월드컵때는 한국나이로 35세(...)였다. 그것도 풀백 포지션이었으니 노장중의 상노장인셈. 타소티의 엔리케 가격후 징계는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사실 그 징계가 아니었어도 나이상 94년 월드컵이 처음이자 마지막 국가대항전 대회였을것이다(...)
- ↑ 과르디올라의 평전 승리의 길에서 나온 내용을 요약하자면 펩이 당시 4부리그에 있던 바르셀로나 B의 감독을 원하자 클럽의 수뇌부들은 펩을 바르샤B 감독으로 임명하면 바르셀로나의 레전드를 4부리그로 보냈다고 사람들이 욕을 할것을 우려해 펩을 만류했으나 펩의 고집대로 결국 바르셀로나 B 감독으로 활동하게 된다.
- ↑ 3위에 올랐기 때문에 본래대로라면 1부 리그로 승격되어야 하겠지만, A팀과 B팀은 같은 리그에 소속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승격하지 못했다.
- ↑ 당초 AS 로마는 AC 키에보 베로나의 감독인 스테파노 피올리를 선임할 예정이었으나, 그가 US 팔레르모의 지휘봉을 잡자 루이스 엔리케로 목표룰 바꾸었다.
- ↑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데 라 페냐가 이전에 AS 로마의 더비 라이벌 팀인 SS 라치오에서 2년 동안 선수로 활약한 경력이 있다는 점이다.
- ↑ 한국 시간 2015년 5월 7일 기준.
- ↑ 더불어 잠깐이나마 제기되던 메시와의 불화설도 어느 정도는 종식시킨 모양새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엔리케가 메시에게 조금 양보해 주는 모양새를 취해 줬다고.
- ↑ 물론 바이에른 뮌헨의 전력 누수가 심각했으나, 준비한 대로 경기를 이끌어간 루초 역시 칭찬 받아 마땅한 경기였다. 그리고, 애초에 바이에른 뮌헨의 전력누수엔 로테이션을 모르는 과르디올라의 강행군의 폐해가 결코 적지 않기 때문에 운이라는 단어는 이 승부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 ↑ 이로써 루이스 엔리케호는 54전 46승 3무 5패, 승률 85.2%라는 시즌 성적을 거뒀는데, 이는 과르디올라 체제에서 가장 높은 승률을 거둔 09/10 시즌의 59전 45승 10무 4패, 76.3%를 아득히 뛰어넘었으며, 12/13 시즌 유프 하인케스의 바이에른 뮌헨이 거둔 54전 46승 5무 3패와 승률이 같다. 단, 하인케스의 바이에른이 덜 졌기 때문에 경기당 승점으로 환산하면 미세하게나마 하인케스 쪽이 조금 더 나은 성적이라고 볼 수 있다. 최종 시즌 결과 60전 50승 4무 6패로 83.3%의 승률을 기록하였다.
- ↑ 15-16 시즌 들어 워낙 빡빡한 경기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상대팀 전력과 무관하게 상대팀이 거세게 들이대면 가패에 가까운 경기 양상이 심심찮게 나온다.
- ↑ 펩은 71%. 펩의 경우 토너먼트 승률이 썩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성적에 비해서는 승률을 많이(?) 깎아먹은 편.
- ↑ 사실 축구 감독 역시 승률 60%가 넘으면 상당한 고승률을 찍는 것이다.
- ↑ 모리뉴가 77%.
- ↑ 이는 전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이었던 카를로 안첼로티의 사례와도 비슷한 점을 보인다. 주전 선수를 휴식없이 돌리면서 공식 경기 22연승을 달리다가 모드리치 부상과 더불어 주전 선수들의 체력이 바닥나서 결국 타이틀을 놓쳤던 것.
- ↑ 알기쉽게 말하자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그 성적이 동일하다.
- ↑ 사실 후자의 경우 마냥 인색한 것만은 아니지만, 유스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선수들(대표적으로 데울로페우, 아다마 트라오레, 세르지 삼페르, 그리말도 등)은 등한시하고, 소위 양아들 라인ㅡ하피냐, 세르지 로베르토, 무니르 등ㅡ만 중용하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사실 하피냐는 이미 셀타 비고 시절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이들과 같은 취급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세르지 로베르토의 경우도 2015/16 시즌이 진행되면서 최고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이런 비판도 조금은 약해진 면이 있다.
무니르는 실드를 못 친다현재는 백승호를 좋게 보는듯하다.데올로페우는 나중에 데려올거야 - ↑ 스페인 3부리그
- ↑ 3부리그->2부리그 승격
- ↑ 스페인 2부리그
- ↑ 세군다리가 3위까지 그 다음시즌 1부리그 승격이 되지만 B팀의 경우 승격이 되지 않고 그대로 2부리그에 잔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