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로 알베르토 비엘사 칼데라 (Marcelo Alberto Bielsa Caldera | |
생년월일 | 1955년 7월 21일 |
국적 | 아르헨티나 |
출신지 | 산타페 주 로사리오 |
포지션 | 수비수 |
키 | 184cm |
소속팀 | 뉴웰스 올드 보이스 (1977~1978) 인스티투토 (1978~1979) 아르헨티노 데 로사리오 (1979~1980) |
지도자 | 뉴웰스 올드 보이스 감독 (1990~1992) 클럽 아틀라스 감독 (1992~1994) 클럽 아메리카 감독 (1995~1996) 벨레스 사르스필드 감독 (1997~1998) RCD 에스파뇰 감독 (1998)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1998~2004)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7~2011) 아틀레틱 빌바오 감독 (2011~2013)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감독 (2014~2015) |
별명 | 미치광이, El Loco / 교수님, El Profesor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감독 | |||||||||||
다니엘 파사레야 (1994~1998) | → | 마르셀로 비엘사 (1998~2004) | → | 호세 페케르만 (2004~2006) |
목차
1 개요
前 아르헨티나, 칠레 축구 대표팀 감독,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아틀레틱 빌바오 감독을 맡았다. 아르헨티나 감독들의 두 계보 중 메노티즘의 적장자로 꼽히며, 남미 최고의 전술가로 불린다. 별명은 '광인'이란 뜻의 'El Loco'다. 그가 처음 감독직을 시작했던 클럽인 아르헨티나의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는 자신들의 홈구장 이름을 마르셀로 비엘사 스타디움이라 부르고 있다.
그는 98부터 2004년까지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을 맡았었는데, 2001년에는 올해의 국가대표 감독상을 받으면서 기분 좋게 2002년 월드컵에 참가하였으나 지역예선에서는 유례없는 승점 끝에 압도적 1위를 달성했으나 아르헨티나를 32년만에 월드컵 1라운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한심한 기록을 달성한다. 이때 답답한 경기에 벤치에 앉아있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면서 열뻗쳐하던 장면으로 상당히 많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에도 그는 대표팀 감독을 이어나가며 2004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하였고, 그 해에 있었던 아테네 올림픽에선 -- 대표팀에게 금메달을 안긴다. 올림픽 이후 그는 대표팀에서 물러나며 6년간의 장기 집권을 끝낸다.
이후 3년간 휴식기를 가지던 그는 2007년 칠레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다. 그는 칠레를 12년만에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고, 나아가 그는 칠레를 16강에 진출시키며 칠레 국민들의 영웅이 되었다. 그는 칠레 대표팀과 2015년까지 재계약을 맺었지만 이후 축구 협회의 내부사정과 얽혀 갈등을 맺은 끝에 2011년 2월에 대표팀을 떠난다. 이후 2011년 여름, 그는 인테르와 첼시 등 유럽 강호들의 구애를 뿌리치며 스페인의 아틀레틱 빌바오 감독직을 맡게 된다.
2 아틀레틱 빌바오
2.1 프리메라 리가
그는 유럽의 여러 빅클럽들, 특히 인테르 밀란에게 많은 구애를 받았는데 결과적으로 그는 아틀레틱 빌바오로 향한다. 전임 감독이었던 호아킨 카파로스 감독이 좋은 성과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구단 내의 권력 싸움에 의해 경질당했고, 이후 비엘사가 부임하면서 사태가 빠르게 수습되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능력을 반신반의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유럽 무대 경험이 고작 98년도에 잠시 에스파뇰을 지휘했던 것 뿐이었다. 거기다 그의 확고하고 독특한 사상, 특이한 훈련법과 전술 등을 봤을 때 분명 의심의 눈초리를 사는 건 당연한 듯 보였다. 시즌은 시작되었고 첫경기[1] 에서 홈경기임에도 승격팀인 라요 바예카노와 비겼고 이후 리가 5경기 동안 2무 3패를 기록하며 아틀레틱 역사상 최악의 스타트를 기록한다.
최악의 부진을 보였던 아틀레틱은 서서히 비엘사의 방식에 적응해나가면서 무패행진을 달리게 된다. 9월 말까지 리그에서 승리가 없었던 그들은 10월 들어서 바스크 라이벌 레알 소시에다드 원정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리그 첫승을 신고하였고 이후 11월 말 그라나다에게 0:1으로 패하기 전까지 7경기 4승 3무 무패를 기록하는데, 그 중에는 바르셀로나와의 2:2 무승부도 포함되는 등 돌풍을 일으킨다. 그라나다에게 패한 이후 그들은 다시한번 7경기 무패행진을 기록한다. 하지만 2012년 3월에 들어서 그들은 다시 부진에 빠지며 1승 1무 4패를 기록하며 10위권 밖으로 쳐졌으나, 4월에 들어 3승 1무로 무패를 거두며 4위인 말라가와 4점차인 6위를 기록하며 선전하고 있다.
2.2 유로파 리그 및 기타 컵 대회
2011-2012 시즌, 아틀레틱은 UEFA 유로파 리그와 코파 델 레이에서 역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유로파 리그에선 결승전에 오른 상태이며 상대는 같은 스페인 팀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다. 코파 델 레이에서 역시 결승전에 올랐는데 상대는 바르셀로나다. 그리고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서 그들은 좋은 경기력을 펼쳤음에도 결정력 부재로 인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패하고 만다. 하지만 이번 시즌 유로파 리그에서 보여준 그들의 경기력은 찬사를 받을 만 했다.
유로파 리그에서 그들은 여러 강호들을 물리쳤는데, 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16강전은 비엘사와 아틀레틱이 스페인을 넘어 전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적인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덕분에 전세계의 많은 이들이 이 경기들을 시청했는데, 아틀레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1,2차전 모두 압승을 거두며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준다. 그들은 경기 결과 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압도하였으며, 그들이 올드 트래포드에서 3:2승리를 거둔 경기는 단연 하이라이트였다. 비엘사의 축구는 영국의 거인마저 때려잡으면서 대회 우승을 노리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절망을 안긴다.
3 공격 축구
그는 공격 축구의 신봉자로서 웅크려있기 보다는 강한 전방 압박을 통해 볼을 따내는 것을 선호한다.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개념은 그의 전술에 있어서 핵심으로, 비엘사가 맡은 팀들은 모두 극도로 공격지향적인 움직임을 가져간다. 그는 또한 3-3-3-1을 즐겨 사용하는 감독으로 유명한데, 그는 이 전술로 아르헨티나에게 금메달을 안겼고 칠레를 월드컵 16강으로 이끌었다. 점유율을 지향하는 펩 과르디올라의 쓰리백 시스템과는 다르게, 그의 쓰리백은 점유율보단 빠르고 정확한 패스 연결로 최대한 빠르게 상대 박스까지 도달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종적인 패스를 자주 주문하며, 4인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한다고 한다.
출처: World Soccer
시즌 초 말라가와의 경기에서 들고 나온 쓰리백. 보통 3-3-3-1이라고 부르는 비엘사가 가장 선호하는 포메이션. 팀은 패배한다.
하지만 공격적인 스타일의 남미와는 다르게, 스타일이 다른 유럽에선 포백 시스템이 성행하고 있었다. 비엘사는 쓰리백과 포백 등의 여러 포메이션을 실험해나갔고, 그 와중에 팀은 시즌 초반까지 무승을 기록하게 된다. 이후 4-2-3-1을 주 포메이션으로 삼으면서 팀은 다시 정상궤도에 올르게 된다.
현재 아틀레틱 빌바오의 주 포메이션
비엘사는 이번 시즌들어서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하비 마르티네스를 센터백으로 보직을 변경시키면서 재미를 보고 있다. 향후 스페인 대표팀 내에서 부스케츠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전술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지네딘 지단의 유일한 대항마라는 그 아르헨티나를 갖고도 조별리그 조차 못뚫은 것이다. 지단도 못 뚫었으니 어떻게 보면 대항마가 맞긴 맞다. 나이지리아전은 특유의 공격축구로 나이지리아를 일방적으로 몰아가긴 했는데 잉글랜드는 나이지리아처럼 우직한 팀이 아니라 잔꾀와 속임수로 상대팀을 괴롭히는 영악한 팀이었다.[2] 게다가 스웨덴은 아르헨티나의 극단적인 공격력을 본 게 아니라 허술한 수비력을 보고 선제골을 넣어버렸고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의 공격력은 많이 무뎌졌다. 이것 때문에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가 바라본 비엘사의 감독으로서의 가치는 생각보다 많이 낮은 편이다.
이처럼 비엘사는 그 천하의 아르헨티나에게 최근 40년[3] 동안 유일한 조별리그 탈락을 안겨준 장본인이다! 게다가 비엘사 이후의 호세 페케르만, 디에고 마라도나, 알레한드로 사베야 모두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조1위를 찍어줬다. 물론 마라도나는 100% 운빨인데 메시에게 쫄아서 자기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 한국과 월드컵 전통의 동네북 그리스가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더 게다가 비엘사의 안티테제인 사베야는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결승전에 데려다 놓았다.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두 감독이 있는데 하나는 조별리그 탈락시켰고 다른 하나는 준우승을 안겨줬다. 누굴 쓸지는 당연한 것이다. 두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4 빌바오를 떠나다
2013년 6월, 빌바오는 비엘사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팀의 공격수인 페르난도 요렌테의 불화설로 두번째 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것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여러 구단들이 관심을 보인다는 소문이 돈 가운데 브라질의 클럽 산투스행이 유력했으나 산투스와의 계약조건 이견으로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비엘사는 장기계약을 원했으나 산투스는 1년 6개월을 제시한 탓이라고 한다.
이리되자 비엘사의 다음 행선지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이 되는게 아니냐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최강희가 사의를 표함에 따라 후임 감독 후보로 거론되는중. 비엘사는 2006년 독일 월드컵때도 한국 대표팀 감독 물망에 올랐지만 딕 아드보카트에게 밀린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장기계약을 선호하는 비엘사의 성향상 한국 축구협회가 그에게 최소 3-4년 이상을 맡길수 있을지는 미지수.[4] 게다가 빌바오 감독 시절에서도 나타난것 같이 최소한 비엘사가 자신의 팀 컬러대로 선수들이 움직이는데 걸리는 시간이 좀 있기 때문에 냄비근성의 한국 국대 서포터 팬들의 아우성과 등쌀을 견딜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특히나 신임감독은 잔인하게도 데뷔하는 시점에 만나는 팀이 브라질과 이탈리아와 경기하면서 비록 졌지만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고 찬사를 받은 일본 국대와 경기를 해야 하기때문에(...) 분위기가 최악인 한국과 분위기가 최상인 일본과의 경기에서 질경우 받을 엄청난 원성도 문제다.
일단 홍명보가 내정되었다는 소식에 비엘사는 물건너 가는걸로 여겨졌지만, 그가 대표팀 감독을 고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부에서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 비엘사를 선임하고 아예 러시아 월드컵까지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정도.그렇게 하면 칠레 정도는 할수 있으려나?
하지만 현실은 그런거 없고, 2014년 5월 3일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와 2년 계약을 체결하며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5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마르세유에서 리그 첫 두경기에 1무 1패를 기록하며 안 좋은 출발을 했으나 8월 24일부터 연승행진을 기록중이다. 10월 5일 현재 7연승을 구가하며 리그앙 선두를 달리고 있다. 특히 툴루즈에서 반짝했다가 망했다는 비아냥이나 듣던 앙드레 지냑을 살려냈다. 지냑은 10월 5일 현재 리그 9골을 기록중이다. 13라운드까지 1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시즌 6위로 마무리한 클럽을 우승경쟁을 하는 팀으로 올려놓으며 후덜덜한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탁월한 전술가의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중.
2015년 8월 8일 자진 사퇴하였다.
6 SS 라치오 : 3일천하
사퇴 이후 공백기를 가진 후 2016년 7월 SS 라치오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복귀했다.
그런데 부임 후 이틀 만에 사임했다! 7월 6일에 선임돼서, 7월 8일에 사임했다. 이런 건 FM에서나 나올 줄 알았는 데...
디 마르지오의 보도에 따르면, 비엘사는 라치오와 계약을 체결해놓고 로마로 입국하지 않다가 계약 체결 직후 하루가 지날 무렵의 밤에 갑자기 라치오 감독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그가 갑자기 라치오 감독직을 거절한 이유는 알 수 없으며 라치오는 고소를 준비한다고 한다.
라치오에겐 참 어처구니 없는 게, 풋볼 이탈리아의 보도에 따르면, 비엘사는 자르델, 아예티, 임모빌레, 지아케리니 같은 라치오의 영입 리스트들을 "자신의 전술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파토냈다고 한다. 치로 임모빌레의 경우, 2015-16 시즌 공격진이 극도로 부진했던 라치오가 특히 관심을 보이는 자원이었지만 비엘사는 이를 거절하고 알렉산드르 파투로 선회했다고. 그래놓고 갑자기 감독 안하겠다고 나와 버리다니... 이적 협상 박살내고 도망 AS 로마의 스파이?
우선은 타타 마르티노의 뒤를 이어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성사된다면 2004년 이후 12년만에 대표팀 감독에 복귀하는 것.
비엘사측은 7월 5일까지 4명의 선수를 영입 완료 해 달라고 계약 전에 요청했으나 4명은 커녕 1명도 영입되지 않아서 일을 못 하겠다는 생각에 계약을 파기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라치오측은 선수 영입이 그렇게 쉽게 되는것도 아니고 영입 요청을 받은 선수들과 협상중이었는데 비엘사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직 제의를 받고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주장하며 비엘사를 고소했다.
이러고 나서 아르헨티나 감독이라도 됐으면 모르겠으나...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에드가르도 바우사를 감독으로 임명했다.(응?)[5]
그런데 비엘사가 아르헨티나 감독으로 불선임당할만 하다.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의 논지에 의하면 현재 알레한드로 사베야 감독이 기껏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비를 안정화 시켜서 철벽수비로 다 만들어 놓았는데 그런 사베야와는 정반 대의 감독인 비엘사를 앉혀서 또 극단적 공격축구로 회귀해 팀의 수비력을 엉망으로 만들 것을 우려해서 비엘사에게 아르헨티나 국대 감독 자리를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비엘사,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이래 장장 32년 동안 아르헨티나가 8강에 못 간 단 두 개의 월드컵 중 하나인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6] 당시의 감독이었다는 점도 비엘사를 불선임한 것의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잉글랜드야 워낙 8강에 못 간 월드컵이 많아서 다만 2014년의 경우는 대진표가 워낙 지랄같아서 월드컵 우승 유경험팀 세 팀인 이탈리아, 잉글랜드, 우루과이 중 하나는 떨어지게 되어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근데 그 조에서 우승도 못해본 코스타리카가 1등했다며? 어디 이탈리아랑 둘이서 이거 한 번 해명해 봐라. 이런 성적을 냈다고 경질이나 불선임 당하지는 않지만...
7 기타
- 훈련시 선수 개개인의 움직임과 위치를 깐깐하게 지시하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화이트보드를 놓고 장시간 강의를 하는 교수님 스타일로 유명하다. 선수에게 전술적 요구를 많이 하는 편이기에 비엘사식 축구가 완전히 입혀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편.
- 토털사커 철학을 물려받은 감독으로서 유기적인 움직임을 중시한다. 평소 "선수들은 시계의 부품이다. 각각의 부품이 역할을 제대로 할때 시계바늘이 돌아가기 시작한다."라는 철학을 고수중이다. 이러한 이유로 튀는 선수들과 트러블이 좀 있는 편이다.
- 비엘사의 축구 철학을 간단히 알고 싶다면 [1]
- 노안이 온 이후에는 안경을 꼭 착용하는 편인데 계속 쓰고 있는 것이 귀찮은지 안경다리에 끈을 매달아 목걸이처럼 걸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 커피를 엄청 좋아한다. 경기 중 벤치에서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마르세유 감독 부임 이후에는 아이스박스에 올려놓은 커피를 모르고 깔고 앉아 데꿀멍하는 모습이 잡히기도.
아르헨티나의 커피 감독
- 라치오 감독 부임이 확정적이었으나 갑자기 무산되었다. 무려 라치오 공홈에도 떴던 오피셜이었으나...
- ↑ 스페인 선수협의 파업 문제로 라리가 개막이 1주 연기되었다.
- ↑ 실제로 잉글랜드는 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엄청 영악하게 이겼는데 나머지 두 팀과는 무승부를 기록했다.
자기 싫어하는 팀만 잔꾀로 쳐발라버리고 나머지 팀들 따위 이길 필요는 없어서 걍 비겼다. - ↑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는 아르헨티나가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유일한 월드컵이다. 그 이후의 아르헨티나가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한 유일한 월드컵이 2002년 월드컵이다. 이 정도면 왜 비엘사를 아르헨티나 국대에서 꺼려하는지 이해가 가고 남는다. 실력은 둘째 치고 운이 매우 나쁜 감독이라 안쓰는 것인데 같은 이유로 옆동네에서도 모아시르 바르보사가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결승전에서 역전패, 그것도 절대로 패하면 안 되는 상대에게 패하는 바람에 완벽하게 매장당했다.
- ↑ 실제로는 보드진이나 선수들과의 마찰 때문에 중도에 계약 해지하고 나와 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기억해 둘 것은 2016년 현재 기준으로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 중 한 사이클(4년) 이상 재임한 마지막 감독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 뒤에 맡은 감독 중 가장 긴 게 거의 딱 3년 재임한 알레한드로 사벨라다.
- ↑ 2002년 월드컵때 조별리그 탈락 + 절대 패하면 안 되는 상대에게 패했으니 불선임은 당연하다. 당장 모아시르 바르보사 골키퍼도 준우승을 거두고도 영구제명 당하고 조국 국민들 전체의 조롱과 모욕의 대상이 되었다. 바르보사는 브라질이 절대 패하면 안 되는 우루과이에게 패해서, 비엘사는 아르헨티나가 절대 패하면 안 되는 잉글랜드에게 패해서 국가대표에서는 사실상 봉인 상태가 되었다.
- ↑ 나머지는 1994 FIFA 월드컵 미국. 그래도 그건 16강이라도 갔지만 비엘사는... 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