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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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드래곤즈 No.13
현영민 (玄泳民 / Hyun Young-Min)
생년월일1979년 12월 25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전라남도 구례군
포지션왼쪽 풀백, 왼쪽 윙백, 왼쪽 미드필더
신체조건179cm, 73kg
등번호13번
프로입단2002년 울산 현대
소속팀울산 현대 (2002~2005)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06)
울산 현대 (2007~2009)
FC 서울 (2010~2013)
성남 일화 천마(2013)
전남 드래곤즈 (2014~ )
국가대표15경기

1 소개

최후의 2002 멤버

광희초-경희중-경희고-건국대를 졸업하고 2002년 울산 현대에서 데뷔했다. 풀백부터 미드필더까지 왼쪽 사이드를 두루 커버할 수 있는 선수로 팀의 K리그 1회 우승(2005년), 2회 준우승(2002년, 2003년)에 공헌하였다. 2006년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적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러시안 프리미어리거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05-06시즌 UEFA컵 본선 무대에 진출하여 로젠버그BK와의 32강전 2차전에서 데뷔하였다. 세비야 FC와의 8강전 2차전에서 1골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렇게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나 싶었지만, 자신을 스카웃 해온 블라스티밀 페트르옐라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새로 부임하고 자신과 같은 포지션에서 활동할 수 있는 선수들, 그것도 하필이면 한국인 후배인 김동진이호를 데려오는 바람에 전력구상에서 제외되어 거의 출전하지 못하고, 2007년 친정 팀 울산 현대로 복귀했다.

이후 2008년 30경기 6도움, 2009년 30경기 1골 10도움의 맹활약을 하며 리그 최고 수준의 풀백으로 인정받았고 2010년 김치곤과 트레이드되어 FC 서울로 적을 옮겼다. 참고로 이 트레이드는 양쪽 팀 주장을 맞바꾼 전무후무한 딜(...) 당연히 양 쪽 프런트는 신나게 까였다...[1] 이로서 서울은 현영민-김진규-아디(박용호)-최효진라는 리그 최고 수준의 포백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서도 기복없이 꾸준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넬루 빙가다 감독의 신임을 얻었고 풍부한 경험으로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2010 시즌 기록은 컵대회 포함 33경기 1골 5도움.

2012 시즌부터 출장기회가 줄어들었고, 좀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기 위해 홍철이 떠나 왼쪽 풀백이 공석이 된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했다.

그 뒤, 2014 시즌에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 김병지와 함께 팀의 고참 멤버인 만큼, 팀의 수비를 매우 잘 이끌었다. 반대편에서 김태호가 삽질하는 건 현영민도 어쩔 수 없는 문제 맹활약 속에 2014 시즌 K리그 베스트 11 레프트백 부문에서 홍철, 이주용과 함께 후보에 오르며 여전한 기량을 과시했다.

풀백 치곤 발이 좀 느린 편이고 발재간이 특출한 것도 아니지만 뛰어난 체력과 과감한 돌파력으로 이를 보완한다. 2009 시즌 염기훈이 부상당하자 전담 키커로 거의 모든 세트피스를 도맡았을 만큼 패스와 슈팅의 정확도도 상당하다. 또한 K리그의 로리 델랍이라 불릴 정도로 긴 비거리를 자랑하는 롱 스로인이 유명하다.

2 2002년 월드컵

국가대표로서는 2002년 월드컵 대표로 선발되었지만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고, 이후 2004년 아시안컵 대표로 선발된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족적이 없다. 같은 포지션에 부동의 주전 이영표가 버티고 있었고 백업으로도 김동진, 김치우 등 경쟁자들이 많았던 것이 원인.하지만 병역특례도 받았고, 월드컵 4위라는 경력도 얻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이득본 선수이다.

하지만 2016 시즌이 개막하기 전, 이천수김남일이 은퇴했고, 김병지는 무적 신분이 되면서 현역 연장 의사를 밝혔으나 결국 7월 19일에 은퇴를 선언했다. 결국 현역선수로 뛰는 최후의 2002 월드컵 멤버가 되었다. 최후의 1998 월드컵 멤버가 된 이동국과 더불어 한국 축구 역사의 산증인인 셈.

3 여담

여담으로 2002년 월드컵 당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음에도, 경기 후 무작위로 선발해 실시하는 도핑 테스트는 2번이나 받아 팀 내에서 2번째로 많다.(1위는 3번 받은 김남일)

한때 경운기 드리블로 유명했던 적이 있다. 경운기 드리블러라는 별명을 본인은 좋아한다고.

사실, 이영표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드리블 능력은 그렇게 많이 나쁜 편이 아니다. 본인 말로는, 건대 시절 룸메이트였던 이영표한테 배운 드리블이라고 한다.

2016년 기준으로 2002 월드컵 멤버 중에서 유일하게 프로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같이 은퇴하지 않고 있던 김병지가 2015년 이후 무적상태에서도 은퇴 선언을 하지 않고 복귀의사가 있음을 밝혔으나 2016년 7월 달에 은퇴를 선언하면서 현영민은 2002 월드컵 멤버 중 가장 인지도가 낮은 선수에 속했지만 제일 오래 남아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히딩크감독의 자서전에 의하면 월드컵 엔트리에 뽑힌 이유가 드로인을 잘해서라고(...)[2]
  1. 현영민은 울산에서 은퇴하고 싶어했고, 인터뷰에서도 문수구장의 왼쪽은 영원히 자기 땅일 줄 알았다며 아쉬워했다.
  2.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세계를 상대로 경쟁해야하는 월드컵에서는 뭔가 한가지라도 경쟁력있게 잘하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현영민을 발탁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