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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블루윙즈 No.26 | |
염기훈 (廉基勳 / Yeom Ki-Hun) | |
생년월일 | 1983년 3월 30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충청남도 논산시 |
포지션 | 미드필더, 윙어 |
신체 조건 | 182cm, 78kg |
주로 쓰는 발 | 왼발 |
프로입단 | 2006년 전북 현대 모터스 |
소속팀 | 전북 현대 모터스 (2006~2007) 울산 현대 (2007~20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0~) 안산 경찰청 축구단(입대) (2012~2013) |
국가대표 | 51경기 / 4골 |
응원가 | 조용필 - 여행을 떠나요[1] |
2006년 K리그 신인상 | |||||
박주영(FC 서울) | → | 염기훈(전북 현대 모터스) | → | 하태균(수원 삼성 블루윙즈) | |
2010년 FA컵 MVP | |||||
이운재(수원 삼성 블루윙즈) | → | 염기훈(수원 삼성 블루윙즈) | → | 조동건(성남 일화 천마) | |
2013년 K리그 챌린지 도움상 | |||||
리그 창설 | → | 염기훈(안산 경찰청 축구단) | → | 최진호(강원 FC) | |
2015년 K리그 클래식 도움상 | |||||
이승기(전북 현대 모터스) | → | 염기훈(수원 삼성 블루윙즈) | → | 2016년 수상자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역대 주장 | |||||
조원희 (2010) | → | 염기훈 (2011)[2] | → | 곽희주 (2012) | |
김두현 (2013) | → | 염기훈 (2014~)[3] | → | 현직 |
201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FW 이동국 | FW 데얀 | ||||||||||
MF 염기훈 | MF 윤빛가람 | MF 하대성 | MF 에닝요 | ||||||||
DF 박원재 | DF 곽태휘 | DF 조성환 | DF 최철순 | ||||||||
GK 김영광 | |||||||||||
2013 K리그 챌린지 베스트 일레븐 | |||||||||||
FW 이근호 | FW 알렉스 | ||||||||||
MF 염기훈 | MF 이호 | MF 최진수 | MF 김영후 | ||||||||
DF 최철순 | DF 김형일 | DF 이재성 | DF 오범석 | ||||||||
GK 김호준 | |||||||||||
2015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 | |||||||||||
FW 이동국 | FW 아드리아노 | ||||||||||
MF 염기훈 | MF 이재성 | MF 권창훈 | MF 송진형 | ||||||||
DF 홍철 | DF 요니치 | DF 김기희 | DF 차두리 | ||||||||
GK 권순태 |
염갓
K리그를 대표하는 왼발의 달인, 통산 최다 도움 보유자[4][5].
왼발의 지배자.
곽희주와 더불어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현역 레전드.
전북 현대 모터스와 울산 현대에게는 영원한 금지어이자 혐짤.
목차
1 개요
별명은 염구와 왼발의 달인(또는 왼발의 마술사), 염긱스였지만 남아공 월드컵 이후에는 그냥 왼발이 달린(..) 사람, 왼발의 맙소사, 염의족, 염깁스, 염름발이, 염레기가 되었다. 안습. 하지만 그분께서 합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난 이후에는 염긱스로는 잘 안불린다. 오히려 염기훈의 굴욕이라 불리지...그 이외에는 염키유천(...) 줄여서 엽기염키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이 별명도 원래 주인의 성추문으로 덩달아 흑역사가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염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원래 오른발잡이다. 5살때 자전거를 타다가 발가락이 으깨지는 사고를 당한 이후로 왼발잡이가 된 것이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양발잡이.[6]
여담으로 그의 동서는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고 2016년에 수원 FC로 이적한 축구선수인 권혁진. 군대에서의 인연을 통해 처제를 소개시켜줬다고 한다.
2 클럽 경력
2.1 전북 현대 모터스
2006년 호남대학교를 졸업하고, 그뒤 바로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하면서 프로무대를 밟았다.
데뷔 시즌 구단이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면서 유명세를 탔고, K리그 신인상을 수상했다. 동시에 가능성을 인정받아 10월 가나와 평가전에서 국가대표로 처음 뽑혔으며, 이 당시 열렸던 도하 아시안 게임 멤버로도 차출되었다.[7] 이에 전문가와 K리그 팬들은 물론 축구에 관심이 많은 냄비축구팬들 사이에서도 나름 유망주로 이름을 알렸다. 다만 일반 시청자 눈에는 머리에 땜통이[8] 인상적인(...) 풋내기강백호?라는 인상이 많았다.
2007년 전북은 울산 현대 호랑이와 2:1 트레이드를 단행, 염기훈을 내주고 정경호와 임유환을 받았다. 이 트레이드는 염기훈이 시즌 도중에 수원과 사전접촉을 하다가 들켰고[9], 이에 빡친 전북 최강희 감독이 강제로 성사시킨 트레이드이다.[10] 이 사실이 알려지고 덕분에 지금도 전북팬 가운데 염기훈까가 많다.[11] 당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염기훈에게 20억(...)을 베팅했다는 루머가 돌았고, 염기훈도 징징수원 이적을 강력히 원했다 카더라.
2.2 울산 현대
결국 울산이 염기훈을 얻어 좌기훈 우천수라는 ㅎㄷㄷ 진용을 구축한다. 더구나 최전방 공격수가 뒤늦게 포텐을 터뜨린 우성용. 염기훈-우성용-이천수 그야말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 그러나 이천수는 여름 이적시장 때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으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2008년, 염기훈은 다시 한번 이적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다. 프리미어 리그의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에서 염기훈을 영입하기 위해 입단 테스트를 했는데, 문제는 울산 구단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출국해 버린 것.
해외 이적 문제가 불거질 때면 으레 적절한 언플과 함께 대승적 차원 운운하며 K리그 구단이 호구 선수를 일방적으로 편들기 마련이지만, 염기훈의 경우 다른 선수들과 사정이 달랐다. 전북에서 울산으로 이적할 때도 분란을 일으켰고, 2:1 트레이드로 영입한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엄연히 계약기간이 1년 남은데다가, 심지어 부상에서 갓 회복한 몸으로 해외로 뜬다고 한 것. 자연히 '프리미어 리거 6호 탄생'이라는 설레발 못지 않게, '제 버릇 개 못주고 또 징징대네' 하는 싸늘한 시선이 있었다.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은 울산의 연락을 받고서 무단으로 영국으로 온 것을 알고는, 영입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염기훈을 얼른 돌려보내기 위해 건성으로 테스트를 했다고 한다. 이를 모르고 프리미어 리그 진출에 들떴던 염기훈은 열심히 테스트에 임했지만 결국 이적은 불발로 끝나면서 바보가 됐다. 당연히 한국에 돌아오자 배신자라고 사방에서 신나게 욕을 먹었고, 무단이탈로 벌금까지 물게 되었다.
이후 부상 등으로 떨어진 폼이 좀체 예년처럼 올라오지 않고, 리그와 국대에서 한미한 활약 밖에 보이지 못하면서 슬슬 먹튀 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한 전북과 울산에서 두 차례 이적 파동을 일으키면서, 다른 팀 팬들도 '기본적으로 실력은 있지만 거품이 상당하며 팀에 대한 충성도가 없는 선수'라며 영입하지 말기를 바라고 있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차범근 감독은 어떻게든 염기훈을 영입하기 위해 몇년째 구애했고[12] 결국은 유망주 이재성에 이적료까지 얻어주고 영입을 확정했다.
2.3 수원 삼성 블루윙즈
하지만 김형범과 함께 K리그를 대표하는 유리몸...[13]
2006년 7월, 교통사고 : 한달 반 결장
2007년 7월, 오른발 피로골절 : 3개월 결장
2008년 4월, 왼발 피로골절 : 5개월 결장
2009년 3월, 왼발 피로골절 : 100일 이상 결장
2010년 2월, 왼발 피로골절 : 자연치료시 2개월, 수술시 4개월, 동아시아대회 결장
시즌 시작 전에 입은 왼발골절로 인하여 월드컵에 나갈 수 없다라는 전망이 압도적이었으나 4월 말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6차전 싱가포르 암드 포스 FC와의 경기에 출장하여 수원 데뷔전을 치르며 재활을 순조롭게 끝내, 이근호를 밀어내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팀 최종엔트리에 포함되었다.
2010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 K리그에서 15경기 출전 1골 9도움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2010 FA컵 결승전에서는 결승골까지 때려넣어 팀을 우승시키며 충실한 모범사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팀에서는 우스개 소리로 "프리시즌을 월드컵에서", "월드컵에서 몸 만들었다"하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나, 월드컵 이후 활약상 덕분에 수원팬 한정으로 염의족에서 염긱스로 개명했다. 그리고 당초 2010시즌 종료후 상무 입단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중도에 포기했다. 부진한 팀 성적과 출산을 앞둔 부인때문이라고. 김두현, 정조국 등도 그렇고 요즘은 A급 선수들이 경찰청이나 현역 입대도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는 모양새다.
2011 시즌은 그야말로 절정의 활약을 보여줬다. 2011시즌 수원은 사실상 '염기훈 블루윙즈'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 K리그에서만 9골 14도움을 기록했고, FA컵에서는 4도움으로 팀을 결승으로 인도했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4골 3도움을 기록하며 수원은 이러한 염기훈의 활약에 힘입어 한 때 트레블을 꿈꾸기도 하였다. 시즌 내내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준 염기훈은 201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미드필더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몇 년간 이어지던 장기 부상도 당하지 않으며 유리몸이라는 오명에서도 벗어났다. 2011시즌 염기훈의 활약이 어느 정도였냐면, 염기훈이 교체되어 들어가기만 해도 염기훈 '콜'이 아니라 염기훈 '송'이 나왔을 정도.[14]
한편 2011년 6월 18일 벌어진 K리그 14라운드 수원:대구 경기에서 개인통산 최초로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그리고 9월 25일에 있었던 대구경기에선 1골 1도움을 기록했을 뿐더러 K리그 통산 28번째 30-30 클럽에 입성하였다.
수원에서 주장이 된 이후 이전 최레기와는 다르게 팀 분위기를 잘 이끌어가고 있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 대 알 사드 경기 때에도 홈 관중이 폭행을 당하자 앞장서서 뛰어들어가 관중을 진정시키며 알 사드 선수와 떼어놓는 등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여서 좋은 주장으로 칭찬을 받았다.
2.4 경찰 축구단(입대)
K리그 챌린지에서 경찰 축구단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2013시즌 챌린지 도움왕을 차지했으며,그 활약을 인정받아 K리그 챌린지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K리그 클래식에서는 데얀이 뽑혔다.
2.5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3년 9월 28일, 경찰청에서 제대한 이후 다시 수원에 복귀했다. 복귀 이후 2014시즌에서는 35경기에 출전에 4골 8도움을 올리며 수원의 후반기 상승세를 이끌었다.
2.5.1 2015시즌
이후 자유계약 신분으로 풀려났지만 수원과 1년 재계약에 성공, 2015시즌에도 수원의 공격을 이끌며 물이 오른 폼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고종수 코치와 프리킥 및 코너킥 특훈을 거침에 따라 세트피스에서의 정확도가 더욱 정확해졌다. 전반기 리그 8경기에서 5골 5도움을 기록하며 득점순위 1위로 올라섰으며,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와 리그 경기를 포함 10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올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리그 7차전 홈경기인 슈퍼 매치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여 2골 2도움을 기록한 정대세와 같이 5-1 대승 주역이 되기도 했으며 12경기에 나와 7골 6도움을 기록하며 리그 공동 1위(에두와 같이), 도움 및 공격포인트 단독 1위를 기록하며 맹활약하고 있다!
6월 3일 대전 시티즌과의 원정 경기에서는 페널티킥으로 득점에 성공해, k리그 최단기간[15] 50-50 클럽 가입을 달성했다.
리그에서의 이러한 맹활약으로 인해 간만에 국가대표에도 소집되었다. 2010년의 실수로 죽어라 욕을 먹으며 고생하는 염기훈을 지켜봐온 팬들 입장에서는 뭔가 탐탁찮긴 하지만 그저 응원할뿐.
하지만 멋진 프리킥 한방으로 어느정도 만회를 한것 같다. 축구팬들의 반응도 역시 왼발은 염기훈이라는 말이 나올정도면...
10월 4일 광주 FC와의 원정경기에서 도움 해트트릭을 하며 68번째 도움을 기록하며 몰리나의 68도움을 뛰어넘어 k리그 통산 최다기록을 경신하게 되었다.
전북과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환상적 중거리 프리킥골로 수원 입단 통산 100번째 공격포인트를 달성했다.
2015시즌 모든경기를 합쳐서 11골 23도움 [16] 10경기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면서 최고의 활약을하면서 유력한 MVP후보로 올랐다그러나 대박이아빠에게 빼앗긴 MVP
또한 도움왕을 차지하면서 k리그 최초로 클래식과 챌린지에서 모두 도움왕을 차지한 선수가 되었다.
사실,여름 이적시장에서 거액에 중동행 오퍼를 받은 걸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제안을 거절하고 그 즉시 수원과 3년4개월 연장계약을 처결했다고 한다.[17]
2.5.2 2016시즌
2016 시즌에도 주장을 연임하며 3년 연속 주장 완장을 달고 뛰게 되었다. 재정난에 따라 주축들이 많이 빠져나간 가운데 권창훈,산토스와 함께 팀을 멱살잡고 끌어올리고있다.
5월 29일 포항 스틸러스 전에서 조동건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시즌 5호 도움을 기록했다
6월 18일 슈퍼매치 원정에서는 프리킥으로 곽희주의 헤딩골을 도우며 6호 도움을 기록했다.
7월 31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3도움으로 도움 해트트릭을 하며 11도움으로 도움 선두로 올라섯다.
게다가 이날 경기는 마르세유턴으로 수비수 둘을 벗겨내거나 드리블로 상대방을 제치는 등 날아다녔다.
그러나 8월 28일 상주 원정에서 발을 꺾이며 4주짜리 부상을 끊으며 도움 레이스를 잠시 중단하게 되었다
9월 23일 인천 원정에서 복귀했다. 교체투입되어 골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3 국가대표
K리그에선 이렇게나 잘하는데 국가대표팀에선 몇몇 중요한 경기에서 부진했고 이 바람에 인상이 안좋다. 비슷한 케이스에는 김상식, 강민수가 있다.[18]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남아공 월드컵. 남아공 월드컵 B조 예선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 연달아 선발 출장하였다. 그리스전에는 죽어라 뛰면서[19] 승리에 일조하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전에서는 동점골을 넣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찬스를 날려먹으며 한국의 4:1 대패 일익을 담당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왼발을 능숙하게 쓰기로 유명한 염기훈이 오른발을 통해 슛을 날리는 경우, 혹은 스텝 조절을 통해 왼발 박자까지 늦춰서 슛을 할 경우 대부분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염기훈은 '극단적으로 한쪽 발에만 실력이 편중된 선수'라는 생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면서 "염의족"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어야 했다. 어쨌든 염기훈의 실책이 아르헨티나전에서 패배한 주된 요인 중 하나였다.
이 경기로 인해서 오범석과 염기훈의 앞글자를 따서 오염라인이라고 부를 정도니 말 다했다. 나이지리아전에서도 선발 출장했으나 크게 두드러진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해충갤에서는 결정적인 찬스를 날린 선수들을 네임벨류를 막론하고 묶어서 염라인이라 칭하기도 했다.(아펠라이와 포돌스키, 루니 등) 또한, 결정적 상황에서 골대와 빗나가게 슛이 나오는 것을 가리켜 '염발'이라는 단어도 썼다. 또한, 커뮤니티에서는 "염기훈 의족이랑 포포투 넣어서 호라드릭 큐브 돌리면 카우레벨 열리나요?"라는 드립도 있었으니(...)우루과이와 1교체투입서 김재성에게 선발자리를 내줬다가, 2:1로 뒤지고 있던 후반 종료 5분 전 교체투입되었다.
물론, 염기훈으로서는 이런 일방적인 비난이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아르헨티나전에서는 워낙 깡패급으로 강한 상대가 상대인만큼 딱히 염기훈이 아니라도 어쩔 수 없었기도 했고, 좁은 공간에서의 공격기술에 능하지만 국대레벨의 라인 조절이 미숙한 이청용 대신 많이 뛰고 부딪치면서 이청용의 지나치게 편향된 공간선정을 메꾸는 모습을 보이는 등,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공헌을 크게 했다. 독일의 '키커'지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올타임 평점에서도 염기훈을 이청용의 뒤를 이은 2위로 이정수와 함께 높은 평점을 주면서 공헌도를 높이 평가했다. 기사
여기에 기본적인 볼 간수는 되고, 패스 셀렉션도 나쁘지 않고, 크로스는 대한민국에서는 최고 수준으로 나름 실력이 있는 선수다. 이청용의 반대편에서 박지성같은 선수가 아닌 손흥민이나 유병수를 놓는다면 2선과 3선간의 간격이 너무 벌어져서 상대편에게 광야와 같은 빈 공간을 제공할 소지가 다분하다. 허정무 감독과 달리, 항상 해외파에 우선권을 줬던 조광래 감독시절에는 제대로 중용되지 못했다. 레바논 쇼크로 조광래 감독이 사임한 뒤 뒤를 이어서 국가대표팀을 맡은 최강희 감독은 다시 염기훈을 소집했다. 온전한 전력의 해외파 소집이 어려운 상태에서 급히 K리그 선수만으로 꾸린 팀이었지만 우려와 달리 잇달아 승리를 기록하며 최종예선에 오르게 되었다. 이 때 염기훈은 6월 12일 열린 레바논 전에서 도움을 하나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대표팀 양 날개가 이근호 이청용이 붙박이 주전을 차지하고 손흥민이 조커로 굳어지면서 염기훈은 부름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최강희 감독을 이어 대표팀을 맡은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13년 동아시안컵에서 다시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시기상 해외파들을 소집하지 못한 가운데 신인 위주로 이루어진 대표팀에서 최고참이 되었다. 다만, 후배들을 배려해 주장 자리는 하대성에게 넘겼다.[20] 동아시안컵의 호주전과 중국전에서도 모두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기훈은 잘하든 못하든 일단 죽어라 까이는 것에서 네티즌들이 얼마나 나쁜 선입관으로 염기훈을 보는지 알 수 있다.[21]
2015 들어서는 K리그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어 국대 재발탁을 바라는 여론도 생겨났다. 슈틸리케호는 기성용이 세트피스 키커에서 큰 키를 이용한 헤더 담당이 되면서 세트피스를 잘차는 선수가 없어진지라[22] 국내 최정상급인 그의 프리킥과 크로스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았고, 이를 슈틸리케 감독도 알았는지 6월 미얀마전을 앞두고 상당히 오랜만에 국대에 발탁되었다.
그리고 2차 예선을 앞두고 벌어진 UAE와의 평가전에서 멋진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기록했다. 그간 한국이 세트피스를 전혀 활용못한 탓에 전력상 한수 아래팀과의 경기에서조차 득점루트 부족으로 고전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염기훈 덕분에 한시름 덜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국대에 들지 못했다. 그동안 국대의 세트피스는 점차 개선된 모습이 보이긴 했다. K리그를 씹어먹는 염기훈인만큼 슈틸리케가 원하면 다시 발탁될 가능성은 없진 않다.
4 플레이 스타일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왼발킥이다. 높은 정확도와 날카로운 궤적과 빠르기를 자랑하며, 코너킥, 프리킥, 크로스, 중거리, 롱패스 등 가리지 않고 좋은 활약을 보인다.[23] 여기에 성실한 활동량과 넓은 활동범위로 상대방을 괴롭힌다. 민첩하거나 발재간이 좋은 테크니션 타입은 아니지만, 공간을 어느 정도 볼 줄 알고 등을 졌을 때 공을 지키는 능력은 월드컵에서도 어느 정도 통했을 만큼 꽤 좋다. 윙어임에도 불구하고 몸싸움 능력이 좋아 어떤 선수를 만나도 볼은 잘 안 뺏긴다. 볼간수능력은 사실상 K리그 최상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24]- ↑ 수원의 사나이 염기훈은 수원 위해 왼발을 쓸거야~ 염기훈은 왼발의 지배자~
- ↑ 주장대행. 그 전에는 이 인간.
- ↑ 구단 최초로 3년 연속 주장 선임. 역대 최장기간 주장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 ↑ 2015년 10월 10일 기준 71도움
- ↑ 단 이 기록은 말 그대로 K리그 챌린지와 리그컵 경기를 모두 포함한 기록이며 순수하게 K리그 클래식의 최다 도움 기록 보유자는 68도움의 몰리나가 주인공이었으나 2016년부터 귀향함에 따라 클래식 최다 도움 경신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링크
- ↑ 출처는 축구잡지 베스트 일레븐.
- ↑ 이로 인해 시기상 일정이 겹쳤던 FIFA 클럽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 ↑ 데뷔한 시즌 교통사고를 당해 평생 남을 흉터를 얻었지만 금방 털고 복귀해서 신인상을 차지했다.
- ↑ 부모님을 모시고 와 이적동의 해달라고 하기도하는 등 팀 분위기를 망침.
- ↑ 대표팀 차출로 팀에서 나갈 때 자기 짐을 숙소에서 싹 빼서 가져갔을 정도. 그러고도 '본인은 남으려 했으나 팀에서 울산으로 보냈다' 등 언플을 심하게 했다. 때문에 당시 속사정을 모르던 팬들은 구단을 욕했다.
- ↑ 그래서 그가 경기에 뛸때 서포터즈들은 '염기훈 꺼져!!'라고 소리지른다.
- ↑ 수원은 김대의가 노쇠화하면서 강력한 왼발 윙어를 물색하고 있었다.
- ↑ 근데 수원에 입단하면서 장기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사라졌다.
- ↑ 축구경기에서 대개 선수가 교체되어 나가면 이름을 호명하는 콜을 하지, 선수의 응원가를 부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만큼 염기훈이 수원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
- ↑ 216경기 50골 62도움
- ↑ 7골 17도움으로 리그도움선두, 공격포인트선두, 5도움으로 아챔 도움선두
- ↑ 염기훈의 장인 인터뷰.장인분 역시 모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이시다.
- ↑ 김상식은 본 포지션인 수미가 아니라 중앙 수비로 뛰게 되면서 계속 수비가 뻥뻥 뚫려 인상이 안 좋았다가 마지막 경기에서 최강희의 의도대로 수미로 뛰면서 드디어 국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겨우 재평가를 받았다. 반면, 강민수 경우에는 본 포지션이기도 하고 말아먹은 경기도 꽤 되는 데다가 자동문 파트너였던 조용형은 곽태휘, 이정수와 뛰면서 자동문이 고장난 지라 재평가받을 틈이 없다.
- ↑ 한국에서 10km 넘게 뛴 선수들이 5명이었는데, 그 중 한명이 염기훈.
- ↑ 과거에는 단순히 연장자에게 주장 완장 채워줬지만 요즘은 나이차가 많이 나면 어린 선수들이 다가가기가 힘들다는 점을 고려해 30대와 20대 초반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20대 중후반 선수들이 주장을 맡는게 일반적이다.
- ↑ 사실, K리그 골수팬들은 염기훈을 실력으로 까는 경우가 생각보다 없다. 오히려 이적과 관련해서 충성심이 부족하다고 까이는 것이 많기 때문에 유독 더 많이 까이는 경우가 많다.
- ↑ 그나마 기성용도 올려주는데 능했지 직접 프리킥 능력은 염기훈이나 김두현에 비해 떨어진다.
- ↑ 현역에서 물러난지 한참된 고종수와 프리킥 대결을 펼쳐 큰 격차로 패배하기 때문에 고종수보다는 아래로 보인다.
- ↑ 다만 나이도 나이인지라, 제대하고 나서 2013시즌 이후로는 전체적인 기량 저하로 볼간수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련한 플레이로 떨어진 신체기량을 극복, 오히려 회춘하고 있다. 이동국과 비슷한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