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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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드래곤즈 No.2
최효진(崔孝鎭 / Choi Hyo-Jin)
생년월일1983년 8월 18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서울특별시
172cm
포지션우측 풀백, 윙백, 미드필더
소속팀인천 유나이티드 (2005~2006)
포항 스틸러스 (2007~2009)
FC 서울 (2010~2014)
상주 상무 피닉스(군복무) (2011~2012)
전남 드래곤즈 (2015~ )
국가대표18경기, 1골
종교불교
2008년 FA컵 MVP
김치우(전남 드래곤즈)최효진(포항 스틸러스)이운재(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에두
MF
김형범
MF
조원희
MF
기성용
MF
이청용
DF
아디
DF
마토
DF
박동혁
DF
최효진
GK
이운재
2009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데닐손
MF
최태욱
MF
기성용
MF
김정우
MF
에닝요
DF
김상식
DF
김형일
DF
황재원
DF
최효진
GK
신화용
2010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은중
FW
데얀
MF
몰리나
MF
윤빛가람
MF
구자철
MF
에닝요
DF
홍정호
DF
아디
DF
사샤
DF
최효진
GK
김용대

1 개요

한국의 축구선수. 연희초등학교, 중동중학교, 중동고등학교, 아주대학교를 거쳤다. 대학때까지는 공격수로 뛰었고, 프로 데뷔후 오른쪽 미드필더로서 활약하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수비수로 정착했다. 주 포지션은 측면 수비수지만 공미, 오른쪽 미드필더, 공격수도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여, 그해 K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인천에서 2년간 70경기를 소화하고 그를 눈여겨 본 파리아스 감독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2007년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했다. 왼쪽의 박원재와 함께 팀의 측면을 책임진 최효진은 2007시즌 팀의 K리그 우승과 FA컵 준우승, 2008 FA컵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9년 파리아스의 팀이 완성되기 이전까지 포항의 가장 강력한 공격루트는 좌원재-우효진을 앞세운 강력한 측면 공격이었다. 2009년에는 더욱 업그레이드 된 팀에서 우측 풀백으로 자리잡으며 팀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며 K리그에서 가질 수 있는 모든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08년 FA컵 우승 당시 대회 MVP를 수상했고, 한국프로축구연맹 주관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으며 대한축구협회 주관 최우수선수 부문을 수상했다. 2008, 2009년 2년 연속으로 K리그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0시즌 안태은과 유니폼을 바꿔 FC 서울로 이적하였다. 기존의 오른쪽 풀백이었던 이종민의 잦은 부상, 최원권의 입대, 안태은의 (부정적인 의미로)미칠듯한 수비때문에 애를 먹던 서울은 최효진의 합류로 현영민-김진규-아디(or 박용호)-최효진으로 이어지는 리그 최강의 포백 라인을 구축할 수 있었다.

아시아 챔피언까지 해본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이끌었으며 빙가다 감독의 지휘아래 공수에서 균형잡힌 활약으로 제몫을 톡톡히 했다. 2010시즌 성적은 컵대회 포함 34경기 3골 4도움.

팀이 K리그 챔피언에 오른 다음날 입대하여 2011시즌은 상무에서 맞게 되었다. 팀 사정상 측면 공격수로 주로 출장하여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12년 9월 전역했다. 12시즌에는 고요한이 주전 라이트 백이었기에 그의 백업으로 잔여 시즌을 마쳤다. 차두리가 영입된 13시즌부터는 차두리의 백업 수비수로 뛰었다. 차두리보다 수비력은 좋지만 피지컬과 공격력은 많이 떨어져서 좀 처럼 치고올라가지 못했다. 14시즌 서울이 3백을 도입하면서 가장 자신있는 포지션인 오른쪽 윙백으로 뛰는가 싶었으나 차두리가 오른쪽 윙백으로도 최효진을 가볍게 앞지르고 주전으로 뛰었다. 좀 더 전진해서 윙으로 뛰자니 역시 차두리에 밀린 고요한이 있어 어려웠다.

결국 14시즌 종료 후 주전으로 뛸 만한 팀을 찾아나섰고 전남 드래곤즈에 둥지를 틀었다. 계약기간은 2016년까지다.#

2 국가대표

2008년 6월 14일,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오범석과 함께 2000년대 후반 리그 최고의 라이트 백으로 꼽혔기에 국대에서도 중요받을 수 있을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오른쪽도 소화할 수 있는 이영표와 막강한 피지컬을 가진 차두리, 수비력에서 좀 더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오범석에 가려 자주 출장하지 못했다.

전성기를 구가할때 맞이한 남아공 월드컵때도 유럽, 아프리카의 막강한 피지컬에 맞설수 있는 차두리가 한 자리를 차지한 상태에서 오범석과 경합을 벌였으나 밀렸다. 이후 플랫3에 좌우 윙백에게 공수에서 엄청난 활동량을 요구하는 조광래가 대표팀 감독시절을 맡았을때 잠깐 발탁 되었으나 이후로 국대와는 인연이 없다.

3 플레이 스타일

공격수 출신으로 전성기였던 07~10년에는 K리그 측면 수비수 통틀어 독보적인 공격력을 뽑냈다. 빠른 발에 체력이 좋아 중앙과 측면을 바지런히 오가며 시원시원한 돌파력을 보여줬고 좁은 공간에서 다수의 수비수와 벌이는 경합 능력과 동료 선수를 활용하는 연계 플레이도 우수했다. 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 뉴캐슬 제츠전에선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단점이라면 가끔씩 공격본능을 주체 못해 상대팀에게 엄청난 뒷공간을 내주다는 점과 전성기에도 유럽이나 남미의 대표급 공격수들과 겨루기에는 피지컬이 많이 떨어졌다는 점. 공수불균형은 꾸준한 경험축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지만 피지컬은 시간 지난다고 극복할 수 있는게 아니어서 허정무호와 FC 서울에서 차두리에게 밀려나는 원인이 되었다.

수비 불안이나 뒷공간 문제 등을 보면 포항에서 가장 잘나가던 시절 포지션이던 3백 시스템에서의 오른쪽 윙백이 가장 적성에 맞아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