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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henzollern 王朝
1 개요
프로이센 및 독일 제국[1] 의 왕조로 유명하다. 본래 독일 남서부 슈바벤 지방의 귀족가문 출신.[2]
1191년에 촐레른의 백작인 프리드리히 3세가 프랑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는데, 이후 그의 영지는 그의 두 아들에게 분할 상속되었다. 따라서 이후 호엔촐레른 가는 프랑켄계(프로이센 왕가)와 슈바벤계(지크마링겐 공가)로 구별되었다.
따지자면 슈바벤계가 본가고, 프랑켄계는 분가에 해당한다. 분가가 더 잘 나간 케이스.
2 슈바벤계 (호엔촐레른 공가)
호엔촐레른 공국들의 군주 및 루마니아의 국왕을 배출한 가계. 가톨릭이다.
슈바벤계가 통치하는 독일 남서부의 공국들은 그저그런 작은 영방(領邦) 국가들로 존재하였다. 1576년에 호엔촐레른 백작령은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과 호엔촐레른-헤칭겐 백작령으로 분할되었고, 1623년에 이들 백작령은 공국으로 승격된다. 그러다가 1850년에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과 호엔촐레른-헤칭겐 두 공국은 프로이센에 흡수된다. 여기에 약간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자면, 프랑스의 2월 혁명이후 1848년에 유럽 전역에서 시민혁명이 휩쓸면서 민족주의가 고조되었다. 호엔초레른 공화국이 선포되고 자신들의 지위가 매우 위험해지자, 1849년에 호엔촐레른-헤칭겐 공국의 마지막 군주 콘스탄틴[3]과 즉위한지 1년 정도 되었던 카를 안톤은 스스로 군주위를 포기하고 영토를 먼 친척인 프로이센 왕에게 넘긴다. 그리고 1862년까지 프로이센 의회의 수상직을 하다가, 말년에는 그 자리에서도 물러나서 호엔촐레른 가의 카톨릭 군주로써 의무를 수행하였다. 호엔촐레른-헤칭겐 공국의 마지막 군주였던 콘스탄틴이 가계가 절손된 이후 슈바벤계는 전부 이 사람의 후손. 카를 안톤의 큰아들의 레오폴트[4]는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원인이 되는 스페인 왕위계승의 논란인물이었고, 둘째아들 카를은 밑에서 언급되다시피 루마니아 왕을 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공국도 없어지고 프로이센(프랑켄계 호엔촐레른가)에게 합병당했으면서도, 마구 귀천상혼을 한 프랑켄계 호엔촐레른 친척들에 비해 슈바벤가의 가주 일족은 의외로 귀천상혼이 적은 편이다. 그래봤자 현 당주인 카를 프리드리히부터 결혼은 왕족후손이 아니라 귀족 딸[5]하고 한데다가, 그마저도 이혼하고 2010년 사진작가인 평민이랑 재혼했다
2.1 루마니아 왕가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공국의 마지막 군주 카를 안톤의 차남 카를은 1866년에 루마니아 공국 국왕(1881년에 루마니아 왕국)이 되어 루마니아 정교로 개종[6]하고 '카롤 1세'로 즉위한다. 근대 루마니아 왕조는 4대 81년 만인 1947년에 루마니아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전 국왕 미하이 1세는 1921년 생으로 2016년 현재 생존하고 있다.
다만 현재 미하이 1세는 딸만 5명인데, 1948년에 사라진 루마니아 왕 계승법에 따르면 루마니아 왕가는 살리카 법이 적용되므로 딸들은 왕가를 물려받을 수 없다. 이걸 무시한다고 하더라도, 루마니아 왕 계승법은 귀천상혼도 금지하는데 큰 딸인 마가렛 공주는 왕족/귀족이 아닌 라두 두다와 결혼함으로써 정통성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가 이전 가주였던 프리트리히 공이 작위(타이틀)이 아니라 이름으로써 호엔촐레른-베링겐[7] 왕자를 줬는데[8], 현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가의 현 가주인 카를 공이 이에 반발하여 라두 두다는 호엔촐레른 왕자로 지칭할수 없다는 요지의 소송을 걸었고, 이에 미하이 1세는 형식상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모든 호엔촐레른가의 작위들을 포기하고 성을 르므니아로 갈았다. 그리고 루마니아 왕가는 오직 미하이 1세 본인의 직계손만 물려받을 수 있다, 여성이든 상관없이 큰 딸인 마르가레타 공주[9]가 루마니아 왕가를 물려받을 것이라는 요지에 문서를 공식으로 발표하므로서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10]
장녀이자 후계자인 마르가레타와 앞서 언급한 라두 두다 사이에 자식이 없는 형편으로 다음 계승권은 차녀 엘레나와 그녀의 아들 니콜라에에게로 가게 되었으나, 2015년에 미하이 1세가 니콜라에의 계승권을 박탈해버렸다. [11]
3 프랑켄계 (프로이센 왕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 프로이센 공국, 프로이센 왕국의 군주 및 독일 제국의 황제를 배출한 가계. 프로테스탄트이다.
프랑켄계의 콘라트는 프랑켄 지역을 중심으로 뉘른베르크와 바이로이트, 안스바하 등의 지역을 통치하였다. 1415년에는 프리드리히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지기스문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오스만 제국을 격파한 공으로 새로운 영지인 브란덴부르크를 상속받고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되었다.
이러던 중 서기 1525년에 튜튼기사단의 기사단장(Hochmeister)이었던 호엔촐레른-안스바흐 가문의 알베르트 폰 호엔촐레른이 신교로 개종하고 1대 프로이센 공작이 됨으로써 가문의 영지를 넓히게 된다. 안스바흐 변경백 프리드리히 1세(1460~1536)의 3남으로 본디 영지 없는 귀족이었던 알베르트 폰 호엔촐레른은 이로서 하루아침에 부유한 프로이센 공국의 지배자로 벼락출세하게 되었다. 참고로 알베르트 직전의 가사단장은 바로 작센의 베틴 가문이었다. 이렇게 성립된 프로이센계 호엔촐레른 가문은 1618년에 단절되었고, 원래 공작위는 맏사위이자 알브레히트 폰 호엔촐레른의 외증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프로이센 공국을 상속받아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이 성립된다.[12]
이후 1701년 프로이센 왕국이 성립할 때까지 1세기 가까이 소리소문도 없이 영토를 조금씩 확장하여, 1701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겸 프로이센 공작 프리드리히 1세가 정식으로 프로이센 국왕으로 승인받음에 따라 명목상으로는 스페인, 프랑스, 잉글랜드, 폴란드, 스웨덴 같은 주변의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프리드리히라는 이름의 군주가 매우 많으며, 18세기 내내 꾸준히 군국주의 정책에 따라 영토를
루이스 페르디난트의 장남과 차남은 귀천상혼을 해서 당주 계승자격이 없었는데, 결혼 당시에는 자신들의 계승자격이 박탈되는 걸 인정했다가 조카가 당주 자리에 오르고 난 뒤에 귀천상혼이 인간평등에 어긋나는 위헌이라며 독일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 대법원까지 간 끝에 대법원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가 프로이센 왕가의 적법한 당주라는 것을 인정하였으나, 재산은 그의 삼촌들에게도 분배되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는 소피 요한나와 결혼하여, 현재 후계자 카를 프리드리히를 비롯한 2남 1녀를 두고 있다.
한편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현 당주(논란 있음) 마리야 여대공의 외아들 게오르기[13]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와 8촌간으로, 그가 당주가 되면 가문 이름이 호엔촐레른-로마노프 가문으로 바뀔 예정이라고 한다.- ↑ 엄밀히 말하면 호엔촐레른 왕가는 "프로이센 왕실"이었을 뿐, "독일 황실"은 아니었다. 황제, 황후, 황태후, 황태자, 황태자비 개인에게만 "독일의 황~~"이라는 칭호로 불릴 수 있었고, 나머지 왕족들의 칭호는 "프로이센 왕자", "프로이센 공주"였다.
- ↑ 그래서 지금도 호엔촐레른 가문의 수장은 슈바벤 지방에 있는 호엔촐레른 성을 소유하고 있다. 이 성은 정확히는 2/3는 프로이센 왕가 수장, 1/3은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공가 수장의 소유.
- ↑ 첫 부인과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고, 두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남자 후손은 있었으나 귀천상혼인 까닭에 그가 1869년에 죽자 가계는 절손된다. 그러나, 호엔촐레른가 수장 타이틀은 먼친척이자 옆동네(...)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공국의 공작이였던 카를 안톤이 가져간다.
- ↑ 루마니아 왕 타이틀은 동생이 가져갔지만, 자녀가 없어서 동생 사후 루마니아 왕가 타이틀은 이 사람의 둘째아들인 페르디난트 1세가 가져가게 된다.
그리고 페르디난드 1세는 제 1차 세계대전 때 본가(프로이센)에 뒷통수를 친다 - ↑ 백작가문인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의 친척의 딸이다.
- ↑ 없어진 루마니아 헌법에 따르면 오로지 루마니아 정교인만 루마니아 왕을 할 수가 있다.
- ↑ 베링겐 백작위는 호엔촐레른 가주들이 대대로 물려받는 작위들중 하나다
- ↑ 어짜피 독일이나 루마니아나 공화국이므로 왕족/귀족 타이틀은 이름에 불과하다
- ↑ 이미 1997년에 후계자로 정했다.
- ↑ 혈통상으로 보면 마르가레타 공주가 꿀릴게 없다. 아버지는 루마니아 왕이고 어머니는 부르봉-파르마 공주. 전 룩셈부르크 대공과 친척 관계다.
- ↑ 루마니아 왕국(1923년) 헌법상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사람들에게도 계승권이 있는 모양이지만 정작 현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가 당주는 관심없다고 대놓고 말했다
- ↑ 대가 끊기면 무조건 회수되는건 아니다. 애초에 폴란드 종주권은 명목상이었고 폴란드 국내 사정도 어지럽기 때문에 간섭할 능력도 없었다.
- ↑ 빌헬름 2세의 막내아들 요아킴의 증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