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쿠토 아키라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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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W시절 호쿠토 아키라.
왼쪽은 당시 매니저였던 소니 오노.
남편 사사키 켄스케와 함께
이름北斗 晶 (호쿠토 아키라)
본명佐々木 久子 (사사키 히사코)
출생1967년 7월 13일
신장168cm (5'6")
체중70kg (154 lbs)
출신지일본 사이타마
피니쉬 무브노던 라이츠 밤
데인저러스 퀸 밤(것렌치 싯아웃 파워밤)
스트랭글 홀드 γ[1]
노던 라이트 할리 TS[2]
노단 라이트 빅토리[3]
테마곡Oro de Ley
다른 이름우노 히사코(결혼 전 본명, 초창기 링네임), 레이나 후부키(EMLL 시절)

일본의 탤런트이자 前 프로레슬러.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계에선 불 나카노, 토요타 마나미, 아쟈 콩 등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1 프로레슬링 커리어

1985년 6월 12일, 삿포로의 나카지마 체육센터에서 그리즐리 이와모토와 전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에서 데뷔전을 치러 승리. 이로부터 약 2년간 연전연승 기록을 만들었다.[4]

1987년. 경기중에 생긴 목부상으로 장기결장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필 경추 주위 부분의 부상이라 몇달간 침대에 누워있을 수 밖에 없었고, 의사로부터 링에 복귀하게 되면 30세 이후에 후유증이 발생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들었지만 1년만에 복귀한다.[5]

1990년대에 들어서며 2년 후배인 토요타 마나미로부터 "호쿠토 너는 한 번도 날 이긴 적이 없구나"라는 말을 듣고 분노하여 항쟁을 벌였다. 이 시기에 벌인 항쟁은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의 질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고, 남성팬들을 경기장에 모여들게 만들었다.[6]

멕시코를 오가며 활동하던 92년엔 턴힐한 후 2년 후배인 미타 에츠코, 시모다 미마와 라스 카쵸라스 오리엔탈레스[7]라는 팀을 결성하여 리더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시절 호쿠토와 시모다는 원피스가 주류였던 전녀에서 이례적으로 투피스 형식의 경기복을 착용하기 시작했는데, 곧 팀의 상징이 되었다.[8]

1993년부터 1997년까지의 단체 대항전[9] 시대에는 호쿠토의 가장 유명한 라이벌인 칸도리 시노부[10]와 피까지 봐가며 치열하게 대립했다. 이 시기 칸도리와의 혈투탈골된 팔을 그자리에서 끼워맞추고 경기에 임하는 모습, 독한 마이크웍으로 인해 데인져러스 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일본에서의 활동과 동시에 멕시코 등지에서의 활동도 병행했는데, 멕시코에선 레이나 후부키라는 링네임을 사용했다. 이 링네임으로 WCW에도 진출. 허나 한번의 경기 이후론 다시 호쿠토 아키라라는 링네임으로 활동한다.[11] WWF에서 건너온 메두사와 대립을 가졌는데, 초대 WCW 위민스 챔피언에도 오르며 누구에게도 타이틀을 빼앗기지 않고, 심지어 은퇴조항이 걸린 경기에서 승리해 메두사를 은퇴시켜 버렸다. 이렇듯 차원이 다른 막강함을 선보였지만 1997에 고국으로 돌아가며 더이상 WCW에서 활동하지 않았고 타이틀도 일시 폐지.[12] 이후 나가요 치구사가 설립한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인 GAEA Japan에서 활동한다. 2002년엔 비슷한 나이대의 아들을 둔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서 2002년 4월 7일의 은퇴시합을 치룬 후 완전히 은퇴하게 된다.[13]

2 프로레슬링 은퇴 이후

은퇴 직후엔 주부로서의 역할만 수행했다. 그러다 WJ 프로레슬링에서 탈퇴한 후 힘들어하는 남편 사사키 켄스케[14] 를 지원하기 위해 그의 매니저로서 링에 복귀하고, 남편의 프로레슬링 단체 사무실인 켄스케 오피스의 공동 회장도 역임. 일본 방송계에도 진출해 중견 연예인으로써 활발히 활약한다.

탤런트로서의 캐릭터는 무서운 주부, 요리고수, 살림고수의 이미지가 있다. 세븐일레븐에 도시락을 런칭하거나, 요리책 출간, 요리 프로그램 우승, 주방세제 CF 모델활동 등을 보면 실제로도 요리실력이 상당한 듯 하다.

남편인 사사키 켄스케와는 잉꼬부부로 유명한데, 호쿠토 아키라가 일반인을 폭행했다는 혐의로 사사키 켄스케의 눈앞에서 경찰에게 체포되는 설정의 몰래카메라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경찰이 호쿠토에게 강압적으로 대한다는 이유로 경찰(역할의 배우)을 패대기칠뻔 해서 긴급중단된 적이 있을 정도.

2015년 9월 23일에 유방암 때문에 입원중이며 전적출수술을 받을 것임을 밝혔고, 24일 오전에 오른쪽 유방 전적출수술을 받았다.

3 여담

  • 피니셔인 노던 라이츠 밤은 호쿠토 아키라가 의도치 않게 개발해낸 기술이다. 원래 바디슬램을 하려다가 손이 미끄러지는 실수로 이 기술을 쓰게 되었는데, 당시 상대선수가 실신해버렸다고 한다. 여자 프로레슬러의 기술 중 가장 위험하고 강력한 기술. 현재는 남편에게 전수해주었으며, 남편으로부터는 스트랭글 홀드 감마를 전수받았다. 부창부수


호쿠토 아키라의 노던 라이츠 밤(Northern Lights Bomb). 참고로 남편 사사키 켄스케는 바디슬램에서 들어가는 호쿠토 미나미와 달리 브레인버스터 자세에서 들어간다. 본인 말로는 브레인버스터 습관이 들려서 그렇다고.

  • 어느 일본방송에 따르면 호쿠토의 남편인 사사키 켄스케가 원래 좋아했던 사람은 토요타 마나미였다고 한다.
  • 남편인 사사키 켄스케와 처음 만난 곳은 다름아닌 북한이라고 한다. WCW와 신일본의 북한 흥행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 그 이외에도 연습삼아 사사키 켄스케와 양자 나카지마 카츠히코의 태그팀 기술을 맞고 " 날 죽일 셈이냐!"라고 소리쳤는데 그 이후 기술 이름이 귀가鬼嫁 죽이기가 되었다고 한다.
  • 데뷔 전 학생이었을 당시 불 나카노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나카노의 팬클럽을 만들었을 정도.
  • 우리나라의 개그우먼 조혜련이 일본방송에서 기미가요에 박수를 친 것이 논란이 되었는데, 당시 조혜련의 왼편에서 같이 박수를 치던 사람이 바로 호쿠토 아키라이다.
  • 사사키 켄스케와의 첫 만남이 상당히 유명한데, 사사키가 먼저 "혹시... 진짜 이름이 호쿠토이십니까?" 라고 물었다고 (...) 물론 호쿠토 여사의 반응은 이뭐병.[15] 이런 첫만남에도 불구하고 금슬좋은 부부사이가 되었다니 역시 모를 일이다.
  • 타이틀 경기와 같은 중요한 경기를 치를때는 대부분 100% 온전한 컨디션으로 경기를 치른 적이 없다. 늘 부상이 따라다닌 편이다. 그 때문인지 전녀의 상징인 붉은 벨트는 손에 넣은 적이 없다.
  • 연습생 시절 콘도르 사이토, 바이슨 키무라와 함께 선배들의 괴롭힘과 고된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합숙소를 무단이탈한 적이 있다. 이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선배인 덤프 마츠모토가 다른 선배들 몰래 따뜻하게 받아주어 다시 연습을 할 수 있었다.

4 각종 기록

  • 초대 WCW 위민스 챔피언(1회)
  • 전일본 주니어 챔피언(1회)
  • WWWA 올 퍼시픽 챔피언(2회)
  • WWWA 월드 태그 팀 챔피언(4회)
  • CMLL 월드 위민스 챔피언(1회)
  • AAAW 태그 팀 챔피언(1회)
  • 재팬 그랑프리 우승(1993년)
  • AJW 명예의 전당 헌액(1998년)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명예의 전당 헌액(2000년)
  • 도쿄 스포츠 선정-토픽 어워드 수상(2004년)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가 선정한 5성급 경기 보유(총 다섯 경기)
  1. 남편인 사사키 켄스케에게 전수받았다.
  2. 팔과 다리를 모두 봉인한 채 백 드롭으로 꺾어버리는 기술인데, 이 기술로 인해 상대선수가 척추에 부상을 입는 등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봉인되었다.
  3. 캐틀 뮤틸레이션과 거의 동형의 기술인데, 호쿠토는 주로 앉아있는 상대에게 사용했다.
  4. 당시에는 본명인 우노 히사코를 링네임으로 사용했다.
  5. 이때 링네임을 지금의 호쿠토 아키라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6. 이전까지만 해도 여성팬의 비율이 많았다.
  7. Las Cachorras Orientales. 영어로 풀이하면 The Oriental Bitches(...)가 된다.
  8. 참고로 투피스 형식의 의상을 입게 된 이유는 "화장실 가기 편해서;;".
  9.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들의 대표 선수들이 모여 경기를 치렀던 황금기.
  10. 일본 유도 국가대표 출신의 LLPW 간판 스타. 호쿠토와는 프로레슬링에 대한 가치관 차이로 인해 실제 앙숙 관계였다.
  11. WCW에서 레이나 후부키라는 링네임으로 데뷔했을 때는 마스크를 착용했었다. 물론 호쿠토 아키라로 링네임을 바꾼뒤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12. 호쿠토와의 경기에서 패해 은퇴한 메두사는 99년도에 팀 매드니스 멤버로 다시 복귀했다.
  13. 메두사 은퇴 후 호쿠토도 소리소문없이 방출되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호쿠토가 WCW를 탈단한 것은 메두사와의 시합 이전의 일이며, 메두사와의 시합 때는 이미 다른 단체에서 연합전으로 치룬 경기였다. 메두사와의 경기는 1997년이며 호쿠토의 은퇴는 2002년으로 시기적으로도 봐도 일절 관계가 없다.
  14. 남편 사사키 켄스케는 전일본 5강, 투혼삼총사급 슈퍼스타는 아니었지만, 싱글레슬러로써 신일본의 IWGP,전일본의 삼관 챔피언,NOAH의 GHC 헤비웨잇 챔피언을 모두 지낸 일본에 단 2명뿐인 그랜드슬램 레슬러다.(다른 1명은 타카야마 요시히로) 사사키 켄스케는 자신의 단체였던 DIAMOND RING을 운영하다가 2014년 2월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15. 북두를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북두" 가 된다. 정상적인 사람이 북두를 이름으로 쓸리가...
  16. 물론 일대일 싱글매치는 아니고 혼성 태그매치. 노던 라이츠 밤을 작렬했으나, 그린 미스트에 반격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