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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옥 경부 폭탄사건
黃鈺 警部 爆彈事件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 경부[1]였던 황옥(1887~?)이 김시현 및 다른 의열단 단원들과 협력해서, 국내 폭탄 밀반입 시도에 관여한 사건을 말한다.
1923년 2월 11일, 황옥은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 단원 김시현(1883~1966), 단장 김원봉(1898~1958년?)과 중국 천진에서 만났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때 황옥은 의열단에 가입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확실한 사실은 아니다.
황옥은 김시현(金始顯) 등과 함께 의열단의 비밀 계획에 동참했다. 폭동 유발과 요인 암살 공작용 폭탄의 밀반입을 시도하는 것이 그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1923년 3월 3일 중국 천진에서, 의열단 단장 김원봉에게 폭탄을 수령했다. 그리고 수령한 폭탄 36개와 권총 5정을 일본제국령 조선으로 밀반입을 시도한다.
1923년 3월 22일, 새벽 열차로 폭탄과 권총, 전단을 몰래 옮기기 위해 신의주 출발 경성행 기차를 탔으나, 의열단 요원 김재진의 밀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황옥, 김시현 등 9명이 이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밀정이 2016년에 개봉했다.
이 사건의 중심 인물인 황옥은 한국전쟁 당시에 납북되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언제 죽었는지도 불명확하다. 여담으로, 황옥의 친손자가 1983년 11월 8일, 민주화 시위 도중 서울대 도서관에서 추락해 숨진, 황정하(서울대 도시공학과 4학년 재학중 사망,1960~1983)라고 한다.
역사학계에서는 황옥이 친일파였는지 독립투사였는지, 의견이 엇갈린다. 황옥이 '위장 친일파'로 독립운동을 했다는 설과, 의열단에 협력하는 척하면서, 정보를 빼내기 위한 일제의 밀정(스파이) 역할을 했다는 의견이 대립된다.
김시현은 해방 후 정치인으로 활동하여 2대 민의원을 지냈고 이 당시 이승만 암살 미수 사건을 일으켜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가, 1960년 4.19 혁명으로 풀려난 후에, 민의원에 재차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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