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仲丘(홍중구, Hóng Zhòngqiū)
1989년 9월 8일 ~ 2013년 7월 4일 (향년 24세)
중화민국군 소속 병사로 계급은 상병.[1] 2013년 휴대폰을 영내에 무단반입하여 군기교육대에서 교육을 받다가 전역을 단 이틀 앞두고 의문사하였다. [2] 같은 징병제인 한국에서는 동정심만 보였지만 중국과 일본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는 위키백과에 문서가 써질 정도로 크게 알려졌다. 사건에 관해서만 써놓았지만 유명장교도 아니고 전쟁에서 공적을 이룬 것도 아닌 그저 남과 다를 바 없는 사병이 위키백과의 문서로 그것도 빽빽하게 써진 유일한 사례다. 중화민국 육군 제 542 기갑여사단 소속이였으며 의문사했던 곳은 제 269 기계화 보병여단이라고 영어 위키백과에 적혀있다.
훙중추는 타이중에서 태어났으며 두 부모와 한 남매와 살고 있었다. 국립성공대학에서 운송학과 경영과학으로 석사학위를 땄으며 병역의무로 인해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그런데 전역을 앞두고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전대(臺)가 울었다. 훙중추 상병 외에도 훙중추 하사로 되어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 사건의 영향으로 1계급 추서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3]
중화민국군도 옛날에는 심한 부정부패의 영향으로 인해 당시의 한국군보다 심한 병영부조리가 많았었고 당연히 영내 사고도 여러번 일어났으며 이런 사고에도 당시의 한국처럼 "군대가 원래 그렇지"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이후 중화민국 시민들이 추모를 위해 어두운 분위기의 청천백일만지홍기를 거리에서 휘날리며 오프라인에서 훙중추 상병을 추모하였다. 사진
뿐만 아니라 촛불집회를 방불케하는 집회까지 있었다. 사진. 물론 촛불은 안켰지만. 이 사건은 대만에서 심각한 정치적 파장을 일으켰고, 재선 이후 지지율 하락으로 고민이던 마잉주 현 총통과 국민당 정부를 더욱 당혹시켰다. 이로 인해 훙중추의 장례식에 마잉주 총통이 참석하고, 훙중추의 부모님을 직접 만나 면전에서 정중하게 사과했을 정도. # 뿐만 아니라 마잉주 총통이 적극 추진중이던 2014년으로 예정되었던 대만군의 모병제 전면 실시도 유보된 상태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훙중추 상병의 사망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는 한편, 오히려 "대만군은 잔인한 군대다", "중국 국민당이 훙중추를 죽였다"며 대만을 비난하는 사람들로 갈려있다. 링크 (중국어). 하지만 병영부조리 항목을 본다면 얘네들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1년 뒤 한국군에서도 전역을 앞둔 장병과 관련된 사건이 일어났고, 말년이 아닐때 아군에 의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두 사건은 같은 징병제에 말년에 일어난 것과 말년이 아닐때 일어났다.[4]
이러한 사건들은 복무중 적군이 아닌 아군에 의해 사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말해, 사망사건의 원인이 가혹행위 등 병영부조리로 인한 것이다.- ↑ 대만에서 상병은 한국군으로 치면 병장에 해당된다.
- ↑ 이 당시 대만의 의무복무 기간은 12개월로 한국보다 9개월 짧았다.
- ↑ 중화민국군에서 병장 계급이 없기 때문에 상병 다음의 계급이 하사이다.
- ↑ 여담으로 대만에서 윤 일병 사망 사건을 한국판 훙중추(韓版洪仲丘) 사건으로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