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대 국회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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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58년 5월 2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로 투표율은 87.8%를 기록했다.

2 배경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안정적 과반을 확보하여 숫자놀음사사오입 개헌으로 3선에도 성공한 이승만 대통령이었으나 1957년부터 미국의 원조가 감소하기 시작해[1] 원조에 의존하고 있던 경제조차도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이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으로 이어졌다.

경쟁률은 3.2대 1이었으며 지난 총선보다 더 안정되었으며 참가한 정당과 사회단체는 총 14개이다. 또한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의 시행에 따라 38선 이북 휴전선 이남의 전 지역에 대해 치러진 첫 선거이다. 233석이 정원이며 과반 획득을 위한 의석수는 117석이었다.

3 결과

자유당이 과반을 얻었으나 126석으로, 지난 국회보다 비율이 줄었다. 군소 정당이 난립하는 경향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무소속 의원 수는 26명으로 현저히 줄었다. 반면 조병옥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은 총 80석을 차지하여 어느 정도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야당으로 자리매김했다. 원내 정당은 자유당, 민주당, 통일당[2] 3개 뿐이었다. 요약하자면 양당제의 경향이 나타난 첫 선거.

여촌야도 현상은 더욱 뚜렷해져 자유당은 서울특별시에서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했다. 서울의 16개 의석 중 여당 자유당이 획득한 의석은 단 1곳. 민주당이 14석, 무소속이 1석을 차지해 굴욕을 면치 못했으며 이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서울의 민심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음을 의미했다. 다만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영남호남에서 자유당이 앞섰기 때문에 최종 의석 수는 꽤 차이가 났다.[3]

전라남도 보성군에서는 자유당 안용백 후보가 닭죽 사건이라는 부정선거를 일으켰다가 당선무효가 되기도 했다. 근데 재선거 때 또 자유당 후보인 황성수가 당선되었다(...).
  1. 1958년에는 아예 유상 차관 형식으로 전환해버린다.
  2. 김준연이 창당한 민주당 계열의 정당으로 전라남도에서 1석을 얻었다. 5.16 군사정변 직후 해산되었다.
  3. 이 당시는 지금과 달리 남쪽에 인구가 몰빵되어 있어 영호남의 의석만 합쳐도 134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