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の食卓
원제는 《Dの食卓》으로, 북미판 및 유럽판의 이름은 그냥 《D》이다.
살인자 아빠를 설득하기 위해 만나려 하는 로라와 딸을 죽이지 않고 내보내려는 아빠가 등장하는 호러 게임 서스펜스 게임. 당시로서는 유려한 그래픽이 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저장이 불가능하고 2시간 안에 게임을 공략하는 구성이다. 뭐 페르시아의 왕자에서도 나온 구성이긴 하지만...
개발사인 워프와 故 이노 켄지라는 일본의 게임 개발자를 단숨의 인기 개발자로 등극시킨 게임. 우에다 후미토(이코, 완다와 거상의 기획자)도 이 게임 개발팀 멤버였다.
3DO, 세가 새턴, PC 등 많은 기종으로 이식되었다. 다만 PC판은 일본에 출시 되지 않았다.
3DO(디렉터즈 컷판 포함)로 60만장, 세가 새턴으로 45만장, 플스로 20만장, PC로 14만장이 팔린 밀리언 셀러이다.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도 발매되었지만, 이 와중에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은 이노를 소니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리고 세가빠로 만들게 되었다.
故 이노 켄지의 자서전인 '게임'에 따르면, 이노 켄지는 D의 식탁에서 나온 수익을 전부 에너미 제로에 쏟아부으려고 했다. 그런데 소니는 이노 켄지가 주장한 10만장 출하는 커녕 4만장 출하를 고집했고, 실제 발매 상황에서는 2만 8천장만 시장에 풀렸다. 이 당시 이노는 2차안으로 8만장 출하를 부탁하기도 했는데 재고가 남으면 워프에서 전액 손실을 책임지겠다고도 했지만 소니 담당자는 요지부동이었다고 한다. 발매 당일 이노는 아키바를 직접 돌며 상황을 확인했는데 초기 물량이 모두 소진되어 대부분의 구매희망자가 물량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굉장히 분개해했다. 모든 엔터테인먼트 재화는 초동 판매량이 향배를 좌우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니의 결정은 제작자 입장에선 피눈물 나는 행위였던 것.
비슷한 시기, 세가 새턴으로 낸 D의 식탁 초판 출하분 20만장 중 절반이 하루만에 완매된 것을 생각하면 소프트 출하 억제 정책에 의해 플스로는 10분 1밖에 팔지 못했기 때문에 제작자 입장에선 커다란 타격이었다. 심지어는 사업 철수 중이던 3DO 플랫폼에서도 60만장을 팔아치운 D의 식탁이었다. 후속작인 에너미 제로 제작 자금이 빠듯하여 다소 히스테릭했던 이노가 소니 직원에게 "갈겨버리겠다"고 소리를 질러도 소니 쪽의 대답은 "뭐 그러시등가(...)" 뭐, 추후 소니가 이노의 성화에 못 이겨 추가 프레스판을 부랴부랴 생산해주어서 20만장을 파는데 성공하긴 했으나...
단지 출하량 문제만은 아니었다. D의 식탁 출시를 앞두고 세가와 소니를 만났을 때, 이노 프로듀서는 분명 게임 출시를 부탁하는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가의 이지마지리 쇼이치로 부사장은 게임의 얘기를 하기 전에 이노의 건강부터 걱정했다. 이노는 당시 건강문제가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소니는 담당자가 나와 저런 반응이었으니 인간적인 부분마저 다르게 다가왔음은 자명하다. 이후에도 이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에너미 제로를 제작하던 중 리얼 사운드 바람의 리그렛의 기획서[1]를 들고 소니를 찾았지만 거기에서 듣게 된 말은 "이런 것도 게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였던 것. 그러면서 PS 진영에서는 이후 LSD니 세가레이지리니 하는 더한 괴작들이 나온다. 혹시나 하고 같은 기획서를 들고 세가를 찾았을 때 당시 세가의 부사장이었던 이리마지리 쇼이치로의 반응에 감동을 받아 당장 제작 중이던 플스판 에너미 제로를 엎어버리고 결국 에너미 제로와 이후의 작품은 세가의 하드로만 발매하게 되었다. 이노 켄지 본인의 회상에 따르면 분명 자신이 '새턴으로 게임을 낼 수 있게 해 주십사.' 부탁을 하러 간 자리였는데 분위기는 이리마지리가 자신에게 부탁을 하는 분위기였다고... 그 뒤로도 드림캐스트의 이름을 지어주거나, 세가 랠리 2의 음악을 담당하는 등 세가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는 듯.
D의 식탁 발매를 둘러싼 소니와 이노 켄지의 알력 다툼은, 사상 유례없는 대반란으로 불거지게 된다. 1996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엑스포에서 이노는 에너미 제로의 데모 영상을 시연한다. 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했는데, 이노 프로듀서가 프레젠테이션의 다음 장을 넘기자 플레이스테이션 로고가 변형되더니 세가 새턴의 로고로 바뀌었고, 갑자기 세가 새턴의 부사장인 이지마지리 쇼이치로의 인사말이 나오더니, 다음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에너미 제로! 세가 새턴에 어서 오세요!" 플스 잔치에서 새턴 이적을 발표했던 것이다.
물론 이 사건 이후 워프는 소니의 강압은 없었지만 업계의 불문율인 상도리를 어겼으므로 자사의 의지로 다시는 소니 하드로는 작품을 내지 않았다. 25세의 민완 프로듀서가 대기업에 반기를 든 이 초유의 사건은 이후 소니 스스로에 의해 플레이스테이션 유통 시스템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는데 의의가 있었다. 소니는 자신들이 설정한 강압적인 소프트 출하제한 규제를 철폐했으며 제작사에게 출하량을 일임하는 체제로 서드 파티들의 이윤과 권리를 보호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노 켄지는 분명 배신자의 낙인을 스스로 찍었으나 자신이 총대를 매고 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깨뜨림으로서 플스 진영의 많은 중소 게임 제작사 및 세컨드, 서드 파티들의 팔 권리, 지킬 권리라는 큰 선물을 한 것이다.
이후 이노 켄지는 세가 새턴으로 ENEMY ZERO(60만장 판매), 리얼 사운드 바람의 리그렛(32만장)같은 명작을 만들어 내고, 드림캐스트에서는 D의 식탁 2(14.5만장)라는 후속작을 발매하였다. 그런데 후속작격인 D2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결국 워프는 D2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당시 D2의 개발과 발매는 10차례 가깝게 연기되고 뒤집어졌는데 그 배경에는 언제 나올지 모를 세가의 차세대기 개발에 있었다.
본래 D2는 세가 M2(프로젝트명 플루토) 플랫폼으로 발매되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일본과 미국 세가 간의 알력 다툼으로 차세대기 사업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다. 초창기 공개된 D2의 경우 중세 유럽풍의 배경에 성곽 도시에서 이야기가 다뤄질 것처럼 보였다. 허나 드림캐스트가 발표된 뒤에는 진행 중이던 모든 프로젝트가 원인 모를 이유로 모두 뒤집어졌으며 설정도 현대를 다루었고, 완성품도 마치 시간과 자금에 쫓긴 것처럼 비평과 완성도 부분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아버렸다. D2의 대실패로 이노 켄지는 게임 업계를 잠시 은퇴했다가 아이팟 터치용 앱과 Wii를 중심으로 게임 개발로 복귀했으나 2013년 2월 21일 급성신부전증으로 타계했다.
국내에는 삼성전자에서 삼성영상사업단이라는 명의로 1997년에 PC판을 수입했다. 다만, 몇몇 부분(로라가 어머니를 죽이는 장면)이 삭제되었다. 이때 삼성에서는 파이널 판타지 7 PC판이나 리븐(미스트 후속작)을 수입하는 등 대단했다. 이 시절, 삼성 말고도 LG와 쌍용을 비롯하여 여러 기업들[2]에서 게임 시장/유통업에 나섰기 때문에, 에너미 제로는 SKC에서 발매하기도 했다. 다만 이 모든 회사들이 얼마 안 있어 손뗐다.(…)
2016년 6월 4일에 D의 식탁이 스팀으로 발매가 된다는 소식이 나왔다! 언제 나올지는 미정이다. 추후에 발매되면 수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