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ak-9

제2차 세계대전의 소련군 항공기
전투기복엽 전투기I-15, I-153
전투기I-16 이삭, Yak-1, Yak-3, Yak-7, Yak-9, MiG-1, MiG-3, LaGG-3, La-5, La-7, I-185, Pe-3
랜드리스 항공기P-39 에어라코브라, P-63 킹코브라,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호커 허리케인, P-47 썬더볼트, P-40, B-25, PBY, 햄든
폭격기경폭격기IL-2, IL-10, IL-20, Pe-2, Su-2, Yak-4, 투폴레프-SB, Ar-2, Tu-2
中폭격기Yer-2, IL-4, Tu-2
重폭격기DB-3, TB-3, Pe-8, K-7
기타UTI-26, P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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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k-1Yak-7Yak-9Yak-3

1 개요

소련전투기. 제2차 세계대전 시절 야코블레프 설계국이 개발한 소련 공군의 주력 전투기 중 하나. 전후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가 붙인 NATO 코드명은 '프랭크(Frank[1])'. 동유럽을 중심으로 1960년대 초반까지 배치되어 있었다.

Yak-1의 연속적인 업그레이드 판이다. Yak-1은 Yak-3[2], Yak-5, Yak-7을 거쳐 궁극적으로 Yak-9로 진화한다. 캔버스와 나무가 사용되었던 Yak-1과는 달리, 미국에서 무기대여법으로 엄청난 경금속을 지원해줬기 때문에 본체를 듀랄루민(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할 수 있었다. 거기에 무장이 업그레이드되었고, 항속거리도 대폭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기체 자체는 다른 동시대 전투기들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P-51 머스탱 등)에 비해 작다. 그런데도 엔진 출력은 비슷하니 [3] 운동성이 뛰어났다.[4] 그리고 20mm 기관포 1문과 12.7mm 기관총 1문을 기본 무장으로 장착하고 있었다.

2 실전

Yak-9의 경우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 때부터 실전에 참가했으며 연합군의 전략폭격으로 서유럽으로 적지 않은 항공기와 대공포를 차출해야했던 독일에게 중저고도 한정으로성능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는 Yak-9의 등장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소련군 조종사들은 Yak-9를 Bf109G나 Fw190A-4/A-4와 동급으로 평가했으며[5] 이러한 성능을 바탕으로 제공권 싸움에서도 상황에 따라서는 밀리지않고 싸울 수 있었다.

동부 전선이 진행되면서 파생형이 여러 가지 나오게 되는데, 독일군이 수세에 몰리고 소련군의 폭격 임무 빈도가 늘어나자 폭장형인 Yak-9B와 장거리 호위 기체인 Yak-9D도 등장하였으며, 쿠르스크 전투에서는 대전차 공격용 37 mm 캐논을 장착한[6] Yak-9T가 등장하기도 했다. 발사시 발생하는 반동이 잘 제어되지 않아서 발사시마다 오일과 냉각수가 유출되는 문제가 있었고, 지상공격용으로는 제법 성공적이었으나, 기체 성능이 꽤 크게 저하되어 공대공 전투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이후 44년에 들어서 엔진 출력을 강화시키고, 기체 자재를 금속 위주로 개량한 Yak-9U형이 등장했으며[7] , U형의 후기형은 실험적으로 로켓 엔진 분사 장치(La-7에 장착했던 그것)을 장착하기도 했었다. 소련측 자료이기는 하지만 27대의 Fw190과 1대의 Bf109를 격추하는동안 2대의 Yak-9를 손실하기도 했으며[8] 독일의 제트기인 Me262를 격추시키기도 했다. 이런 저런 문제점이 있기는 했지만 독일이 안테나 마스트가 없는 Yak-9와의 교전을 회피한 점을 고려하면 독일측에서도 제법 위협적으로 여겼던것으로 보인다

이 기체의 파생형 중 하나인 Yak-3로 큰 활약을 한 자유 프랑스 파견부대가 바로 노르망디-니에멘 연대이다. 이들은 소련 공군에 편입되어 대단한 활약을 했고, 스탈린은 이들의 전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자신들이 조종하던 야크기를 몰고 프랑스에 직접 갈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부대는 아직도 현역 부대이며 2011년 이전까지 미라지 F1로 편성되어 있었으나 그 이후 라팔로 대체되었다.

한편 6.25 전쟁 초기에는 중기형(Yak-9M 등)이나 후기형(Yak-9P)이 중국 인민해방군조선인민군의 주력이 되어 6.25 전쟁 침략의 선봉이 되기도 했다. 다만 첫 공중전은 피난민을 공중에서 호위해주기 위해 나온 미 공군을 보고 겁도 없이 사격을 가했다가 안드로메다 관광을 당한 것이다. 이리하여 종전 후 잠깐동안 Yak-9는 소련 전투기의 대표로 알려져 있었으며, 6.25 전쟁 때도 이른바 미그기(MiG-15)가 알려지기 전까지는 '야크 전투기'가 동구권 전투기의 대명사였다.


6.25때 노획된 Yak-9P를 테스트 해 본 미항공대의 종합적인 코멘트는 아래와 같다.

During flight

Leaning of mixture has no appreciable effect on fuel consumption.Adjust power settings for maximum speed,maximum range or intermediate position as situation indicates.Check armament operation.Keep oil and coolant tempratures within limits.

In flight

Aircraft has normal handling charateristics in flight.Coordinate flight is tiresome due to lack of trim devices on ailerons and rudder.At high speeds aileron fores lighten.
  1. Ki-84 하야테연합국 코드명과 동일
  2. 1944년에 실전 배치된 그 물건이 아니다. 여기서는 Yak-7 초기형을 의미. Yak-9은 43년에 최초 배치되었다.
  3. 1500마력의 출력으로 스핏파이어 Mk.V이나 P-51D형과 비교해도 출력이 밀리지 않는데 더 가벼워서 추중비가 더 뛰어나다. 다만 엔진의 신뢰성은 썩 좋은편은 아니었다고.
  4. 이건 어디까지나 처음 정도의 선회력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해야한다. Yak-9가 익면 하중도 별로 낮지 않은데다가 지속 선회도 그리 뛰어난 기체가 아니었다. 물론 머스탱의 경우 운동성이 좋은 애가 아니었으니 머스탱보단 당연히 운동성이 좋았다.
  5. 직접 적 전투기를 상대해야하는 조종사 입장에서 동급으로 평할 정도면 적어도 성능상으로 해볼만한 수준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6. P-39의 기총과 헛갈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러시아 자체 개발품인 NS-37 포이다.
  7. 다만 이 U형의 엔진인 VK-107(Yak-3에도 달린다)의 수명은 겨우 25시간정도였고, 최대출력으로 사용하면 언제 망가질지 모르는 엔진으로, 최대출력으로 비행을 해서는 안될 정도로 신뢰성이 개판이었다. 그리고 고공성능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엔진들에 비해 좋은 수준이었다. 그래도 Yak-3에 장착했을 때보단(Yak-3가 워낙 작았기때문에) 발열 문제를 손보기 편해 Yak-3 VK-107 장착형에 비해 성능은 떨어질지언정, 신뢰성이 더 좋았다.
  8. 단, 이는 교차검증이 되지않은 소련측 자료로 소련측 자료는 과장된 전과를 기록하기가 심한 편이라그대로 믿을 수 있는건 아니다. 물론 이는 소련만의 문제가 아니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소련측 자료에 이런 경향이 심하다. 소련의 기록을 믿으면 자기네들 혼자서 모든 독일 항공기를 파괴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만, Yak-9가 나오면서 독일 파일럿들이 걱정을 했다는 것을 보면, 확실한 것은 그동안의 소련 전투기들처럼 만만하게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