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9 에어라코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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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미군 항공기
전투기육군 전투기P-26 피슈터, P-36 호크, P-39 에어라코브라, P-63 킹코브라, P-40 워호크, P-43 랜서, P-47 썬더볼트, P-51 머스탱, XP-75 이글
함재기F2A 버팔로, F4F 와일드캣, F4U 콜세어, F6F 헬캣, F7F 타이거캣, F8F 베어캣
쌍발 전투기P-38 라이트닝, P-61 블랙위도우, XF5U 플라잉 팬케이크
제트기P-80 슈팅스타, FH 팬텀A, XP-81
뇌격기TBD 데버스테이터, TBF(M) 어벤저, XTB2D 스카이파이렛
폭격기공격기/급강하 폭격기SB2C 헬다이버, SBD 돈틀리스, BTD 디스트로이어, A-20, A-26, A-29, A2D 스카이샤크, A-31 벤전스, SB2A 버커니어(A-34)
中폭격기B-18, B-25 미첼, B-26
重폭격기B-17 플라잉 포트리스, B-24 리버레이터, B-29 슈퍼 포트리스, B-32 도미네이터, YB-35, B-36A, YB-49
수상기OS2U 킹피셔, SOC 씨걸, SO3C 씨뮤, SC 씨호크
비행정PBY 카탈리나. PB2Y 코로나도, PBM 마리너, Hughes H-4 허큘리스
기타 항공기C-46, C-47, T-6 텍산, L-5 센티넬
취소선: 계획되었다 취소된 기종, A: 전후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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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영국군 항공기
전투기복엽기글로스터 글래디에이터
단엽기볼튼 폴 디파이언트,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호커 허리케인, 호커 타이푼, 호커 템페스트
함재기씨 글래디에이터, 페어리 풀머, 페어리 파이어플라이, 호커 시허리케인, 슈퍼마린 시파이어, 호커 시퓨리A, 드 해빌랜드 시호넷A
쌍발기브리스톨 보파이터, 웨스트랜드 훨윈드, 드 해빌랜드 모스키토, 드 해빌랜드 호넷A
제트기글로스터 미티어, 드 해빌랜드 뱀파이어A, 슈퍼마린 어태커A
뇌격기페어리 소드피시, 페어리 알바코어, 페어리 바라쿠다, 블랙번 파이어브랜드, 브리스톨 뷰포트, 웨스트랜드 와이번A
폭격기경폭격기드 하빌랜드 모스키토, 암스트롱-위트워스 휘틀리, 페어리 배틀, 브리스톨 블렌헤임
中폭격기빅커스 웰링턴, 핸들리 페이지 햄든, 잉글리시 일렉트릭 캔버라A
重폭격기아브로 랭커스터, 숄트 스털링, 핸들리 페이지 핼리팩스
급강하폭격기, 공격기블랙번 스쿠아, 페어리 바라쿠다, 브리스톨 브리건드A
렌드리스 항공기전투기벨 에어라코브라, 커티스 키티호크, 리퍼블릭 썬더볼트, 노스 아메리칸 머스탱, 브루스터 버팔로(B-339E), 그루먼 마틀렛, 그루먼 가넷(헬캣), 보우트 콜세어, 록히드 라이트닝
뇌격기, 공격기제너럴 모터스 어벤저, 브루스터 버뮤다, 더글라스 하복, 벌티 벤전스
폭격기록히드 허드슨, 록히드 벤추라, 컨설리데이티드 리버레이터 B, 보잉 포트리스, 노스 아메리칸 미첼, 마틴 머로더
수상기컨솔리데이티드 카탈리나, 컨솔리데이티드 코로나도, 숄트 선더랜드
시제기글로스터 E.28/39
무기대여법으로 공여받은 기체는 영국식 표기로 기재하였다. A: 전후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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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Bell P-39 Airacobra
에어코브라가 아니고 에어라코브라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전투기. 다만 최대 운용국은 고향이 아닌 소련으로, 현재의 헬리콥터 명가인 (Bell) 항공사에서 개발했다. NATO 코드명은 프레드(Fred). NATO 결성 이후에도 소련에서 한동안 현역으로 잘 굴려먹었기 때문에 미국 전투기로는 유일하게 나토 코드명이 붙는 기묘한 대우를 받았다. 지못미

2 제원

  • 전장 : 9.2m
  • 전폭 : 10.4m
  • 전고 : 3.8m
  • 중량 : 2,420kg
  • 엔진 : 앨리슨 V-1710
  • 출력 : 1,200hp
  • 최대속력 : 605km/h
  • 항속거리 : 1,770km
  • 상승고도 : 10,700m
  • 무장 : 37mm T9 기관포 1문, 12.7mm 기관총 4정 또는 7.62mm 기관총 4정, 폭탄 225kg
  • 승무원 : 1명
  • 생산량 : 9,584대

3 역사

3.1 개발

미 공군의 전신인 미 육군항공대는 미군의 고전적인 떡밥 중 하나인 '어디선가 날아올지 모를 적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한 전투기'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사실 여기에는 조금 더 복잡한 뒷배경이 있는데, 1930년대 미 육군항공대는 '폭격기무적론'이 지배적인 시대라 전투기 특히 고성능 전투기의 개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아가 당시 미 육군항공대에선 '전투기 - 당시는 추격기(Pursuit)라고 칭했다 - 에 필요한 화기와 탄약의 중량은 총 500lb(225kg)면 충분하다고 판단, 그에 맞춰 전투기 개발하라는 자의적 독트린을 세워놓고 있었다. 이렇게 맞추려면 최대한 해봐야 12.7mm 기관총 2정 + 7.62mm 기관총 2정 정도가 한계일 듯.

미 육군항공대 내에서 이에 반발하며 전투기에 대한 투자를 주장한 인물 중의 하나가 육군항공대 전술학교의 전투기 전술교관이던 고든 새빌 Gordon P. Saville이었다. 그는 이후 플라잉 타이거즈를 이끌며 유명해진 클레어 첸노트의 후임자이자, 또한 첸노트와 함께 미 육군항공대의 '전투기 파'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강력하게 무장한 장거리 폭격기를 막을 방법은 없다'는 주장을 믿지 않았으며, 따라서 항공우세를 위해선 고성능의 전투기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또한 그는 향후 공중전에서 우세를 확보하려면 이후의 전투기는 육군항공대가 충분하다고 주장한 500lb가 아니라, 그 두 배 (450kg)의 무장과 탄약을 탑재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2차 대전시기 미군 전투기의 표준이 된 12.7mm 기관총 6정에 탄약 3-400발을 탑재하면 450kg은 가볍게 넘긴다.

하지만 당시 미 육군항공대의 분위기에선 그런 주장을 실제화할 방법이 별로 없었다. 때문에 새빌은 '폭격기 만능론'을 뒤집어 바로 '어디선가 날아올지 모를 적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해 강력하게 무장된 고성능 전투기'라는 떡밥을 만들어 낸 것. 그리고 이를 일반적인 전투기 즉 '추격기 Pursuit'와 구분해서 '요격기 Interceptor'라고 칭했다. 즉 잘 무장된 고성능 전투기 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별도의 기종 분류를 만들어낸 셈. 아무튼 그 주장이 받아들여져 새빌은 항공공학자이지 테스트파일럿이던 벤자민 켈시 Benjamin S. Kelsey와 함께 자신이 주장하던 '요격기'의 개발을 추진, P-39와 P-38 라이트닝의 개발을 추진하게 된다.

이러한 미 육군항공대의 신예기 요구에 벨사가 응했다. 당시 신생 항공기 개발업체이던 벨사는 타사와의 차별화를 위해 신규기술을 대량으로 도입한다.

먼저 엔진을 조종석 뒷쪽에 두어 무게 중심이 기체 중앙에 오게 만들어 높은 선회성을 얻었고 그 결과로 지랄맞은 스톨 특성을 지니게 되었으며 공기 흡입구를 기체 뒤편으로 옮겨 유선형 디자인이 가능해져 공력을 향상시켰다. 이로 인해 비게 되는 전면 공간에는 전투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대형 폭격기도 한 두발로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던 대구경 기관포(M4 37mm)가 탑재 가능해져 무시무시한 펀치력도 얻었다. 사실 엔진을 뒤쪽에 둔 이유가 이 37mm 기관포를 장착하기 위해 기수 부분에 공간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자동차 등에서는 이미 쓰이고 있던 동력 전달 방식[1]을 채용한 최초의 실용기로, 비행기에는 새로운 방식이라며 망설이는 기술진에게 설계자가"아니 왜 안 된다고만 하는 겁니까? 배나 자동차를 보세요! 이미 샤프트를 통해서 동력을 얻는데 왜 비행기는 그게 안 된다는 겁니까?"라고 질책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발상의 전환인 셈이랄까... 다만 피탄이나 폭발시 고속으로 회전하는 샤프트가 부러지면 조종사를 덮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으므로 조종석 하부에 방탄철판을 삽입하여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실제 그런 식으로 발생한 사고도 없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전방 랜딩 기어와 측면에 자동차와 비슷한 여닫이식 탑승구같이 동세대 전투기들과는 다른 특이한 면모가 많은 기체였다.

아무튼 카탈로그 데이터만큼은 킹왕짱인 P-39의 등장에 미군은 물론이고 영국 공군까지 우왕ㅋ굳ㅋ을 외치며 대량 발주에 나섰고 벨사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된다. 그리고 1941년부터 미육군 항공대에 배치가 시작된다.

3.2 마개조와 좌절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예상 성능보다 시제기의 속력이 계획되었던 시속 400마일에서 10마일 정도 좀 더 느리게 나오자 육군항공대 사령관이던 헨리 아놀드 대장의 요구에 따라, 제작사에서는 NASA의 전신인 NACA에 풍동실험을 의뢰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 비행기의 운명을 뒤틀어 놓았다. 풍동 실험을 비롯한 여러 실험 결과 NACA에서 처음 내놓은 제안은 내부의 터보차저(과급기) 관련 덕트와 냉각 시스템, 배기구 시스템등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P-39는 이미 시제기 까지 만든 상태여서 재설계도 어려웠을 뿐더러, 내부 공간을 대구경 기관포와 엔진이 잡아먹고 있다보니 공간상 여유도 없었다. 또 다른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튀어나온 터보 차저(과급기) 장치의 공기흡기구를 아예 떼어버리는 것. 1939년 미육군항공대와 NACA, 그리고 벨은 이에 대해 논의하였고 결국 벨은 터보차저를 떼어내고 엔진에 1단-1속 수퍼차저(과급기)만 다는 것을 제안하였다.[2]

게다가 시제기엔 없던 방탄판이 곳곳에 증설되어 양산기는 프로토타입의 두배에 달하는 중량으로 뚱보가 되어 버렸다! 당장 프로토타입에서 1.8t이었던 기체가 양산형인 D형에서는 3.7t에 달했다. 당연히 이 늘어난 중량은 비행성능에 크게 악영향을 미쳤다. [3]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된 과정에는 원래 개발계획을 담당하던 벤자민 켈시가 바로 이 시점에 영국 복무 명령을 받고 자리를 비운 사이 벌어진 일이라는 것도 영향을 끼쳤다. 원래 개발을 주관했던 벤자민 켈시와 고든 새빌은 위에서도 지적했듯 보다 강력한 무장과 고성능을 갖춘 전투기 개발을 위해 '고공으로 침공해오는 적 폭격기를 요격할 전투기'라는 명분을 세웠고, 때문에 P-39의 P-38 개발과정에서 바로 '터보수퍼차저 사용'을 명시적인 요구사항으로 내걸었고 기체 전체의 설계방향도 터보수퍼차저 사용을 전제로 진행되었다. 이를 알고 있는 켈시는 이후 터보수퍼차저의 공기흡입구 형상 문제의 개선을 이끌고 싶어했지만, 영국 복무 명령을 받고 손을 떼어야 했고 이후 개발과정은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리고는 떡하니 터보수퍼차저 삭제라는 황당한 해법이 나온 것.[4]

이 과정에서 최고로 웃기는 것은 애초 개선요구의 출발점이 된 속도 미달이, 바로 '6000m 고고도에서 최고속도가 계획치에 (10마일 정도) 부족하다'에서 시작했다는 것. ('우리 구축전차가 좀 약한 것 같아'라고 문제제기 했더니 '그러니까 구축전차는 관두고 견인식 대전차포를 쓰자'고 응답한 것에 맞먹는다...)

이렇게 되니 고공성능이 매우 실망스런 수준이 된 것은 당연했다. 터보 차저 없는 엔진은 고도 4,000m만 올라가도 숨이 끊어질 듯 헐떡거렸고 37mm 기관포는 한번 쐈다하면 조종석 안으로 초연과 일산화탄소를 사정없이 불어넣어 가뜩이나 산소 마스크도 없는 조종사 또한 숨이 끊어질 듯 헐떡거리게 만들었다.

또한 속도는 최초 설계보다 50km/h나 떨어져서 600km/h 근방을 왔다갔다 했으며, 그나마 이 속도를 유지했으면 대전 초반의 전투기로서는 매우 준수했지만, 문제는 조금만 고공으로 올라가면 미친듯이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상승력[5]과 가속능력, 항속거리 또한 당시 미군 전투기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미 육군의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실전에서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기체결함이 무려 19가지나 발견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런 문제 때문에 고공까지 올라갈 일이 없어져 버려 고공용으로 만든 산소공급장치 등의 고공전용 장비들이 제거되어 영·미 공군에서는 저공 전투기 겸 공격기로나 좀 사용되었다.

물론 저공에서의 비행성능은 기대만큼 뛰어났으나 정작 상대해야 할 제로센이나 Bf109는 고도 5,000m 이상에서 득시글댔으니 적을 잡으러 가기는 커녕 표적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한마디로 야라레메카가 되고만것이다.

미제 원형을 카리브(Caribou)I으로, 주문 생산형을 에어라코브라I(미군명 P-39D-1)으로 이름붙여 도입 했던 영국마저 실망스런 성능에 더 이상 도입하지 않기로 하였고, 이미 받았던 기체들은 전부 소련으로 렌드리스를 통해 보내버린다. 반면 주문이 취소되어 재고로 쌓여 있던 물건들은 진주만 공습 이후 급히 물자가 필요한 미군에 의해 P-400으로 재명명하여 도입했다. 이 물건들은 이미 영국의 요구에 맞추어 생산되었으므로 37mm 대신 20mm 히스파노를 장착했다. 400이라 붙인 이유는, 그 당시 400 mph를 최고 속도로 낼 수 있다는 카탈로그 스펙 덕분이었으나[6], 영국에서 실제로 테스트해본 바에 의하면 350 mph도 간신히 낼 수 있던 수준이었다.

미국은 이렇게 퇴짜맞은 물건을 태평양 전쟁에 투입했다가 영 시원치 않은 성과를 내고 있었으며, 새로운 전투기들을 찾게 되는 바람에 사용률이 바닥을 쳐서 덕분에 재고가 넘쳐나게 된다. 마침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이 헬프신공을 보내자 남아돌던 기체들을 선심쓰듯 아낌없이 무기대여법으로 공여해주었다. 정작 미군과 영국군은 1942년 중반까지 완전히 전선에서 강판시켜 버린다.

미국내에선 상당량의 기체들이 일선에서 사용되지 못하고 물러나 조종사들의 훈련기로 사용되었는데 훈련병들조차 자신들이 P-39를 타고 훈련을 받는데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이런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

Don't give me a P-39, the engine is mounted behind.
She'll tumble and roll, and she'll bore a deep hole.
Don't give me a P-39.

저에게 P-39를 주지 마세요. 엔진이 뒤에 달려있어요.
그녀는 구르고 구르다 깊은 구멍을 내버릴 거세요.
저에게 P-39를 주지 마세요.

역도입 버전의 기체 명칭이 P-400인 걸 이용한 이런 농담도 있었다

P-400이 무슨 뜻인 줄 알아?
응. 꽁무니제로(0)가 붙은 P-40

아무리 기체가 끔찍해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일류 파일럿

그래서 이 전투기는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중반을 넘기지도 못하고 태평양 전선 및 서부 전선에서는 실패작으로 분류되었다. 영국군에서도 덩커크 근처 독일 선박 공격하는 데 한 번 투입하고 전부 뒷전으로 돌렸으며, 해당 비행대는 스핏파이어로 기종 전환하게 된다. 안습의 안습...

그러나...

3.3 미운 오리새끼, 백조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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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소련 공군에 공여되는 P-63 킹코브라. 에어라코브라도 저렇게 벌떼처럼 굴렸다.

그러나 독소전쟁에서는 이 천덕꾸러기들이 슈퍼 아이돌로 변신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곳의 공중전 양상은 지상군을 지원하는 공격기와 이 공격기들을 노리고 달려드는 전투기, 그리고 이런 적 전투기들을 가로막는 호위기끼리의 도그파이트였고, 대부분의 공중전이 고도 2,000m 이하의 저공에서 벌어지는 독소전쟁의 하늘이 바로 P-39가 제 실력을 발휘할 전장이었던 것이다.

호위기로는 물론이고 폭장하여 공격기로도 활용가능한 범용성에 미제다운 튼튼한 맷집, 높은 생존성, 통상탄으로도 전투기고 공격기고 폭격기고 한방에 두 동강내는 강력한 브라우닝(Browning) M4 37mm 기관포의 파괴력에 소련 공군은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그래서 전쟁 후에도 서방 세계에서는 신통치 않은 전투기로 평가되었던 이 기체가 소련에서 지상공격이나 했을 걸로 생각했지만, 냉전이 끝난 후 소련측 기밀 문서가 풀리면서 경악할 만한 사실이 드러난다. 소련군은 이 기체를 적 항공기와 싸우는 게 전문인 방공군에서 굴렸던 것이다!!

기수에 장착된 M4 37mm 기관포는 분당 150발의 발사속도에 장탄수도 30발 밖에 안 됐지만, 독일군의 30mm MK 103 기관포와 마찬가지로 항공기에 한발만 맞추면 두 동강을 내버리는 가공할 위력을 자랑했다. 미국은 37mm 철갑탄을 소련에 공급하지 않았지만, 고폭탄만으로도 공중전은 물론 지상지원용으로도 위력이 대단했던 것이다. 독일군에서 이 37mm 기관포를 능가하는 기관포는 50mm 기관포 뿐이었는데, 이건 전투기를 상대할 게 아니라 폭격기에 쓸 녀석이고, 50mm를 장착할 수 있었던 건 쌍발 야간 전투기인 Me410 같은 대형기나 제트기인 Me262 뿐이었다.[7]

특히 소련은 공여받은 P-39의 성능 향상을 위해 현지 개조도 했다. 소련 공군은 이전부터 전투기들에게도 20mm 기관포를 표준장비화 할 정도로 전투기의 화력에 집착한 화력덕후였으므로 과감하게 주포인 37mm 기관포와 기수의 12.7mm 기관총 2정만을 남기고 주익의 기관총[8]은 철거해버렸다. 이로서 500kg 이상 몸무게를 줄여 약점 중의 하나인 느린 발과 짧은 항속거리를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었고, 선회력도 향상되었다. 또한 복잡한 화기관제장치가 하나로 단순화되어 정비가 쉬워지고 포 발사 가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미국의 선심으로 조종석 전면에 방탄유리를 도입하여 더욱 생존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고 몸무게도 좀 더 줄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독일군의 입장에서는 동체 중앙에 안정적으로 장착되어 탄도와 정밀성까지 좋은 37mm 기관포탄은 그야말로 한방만 맞으면 사망급의 재앙이었다. 브라우닝 퀄리티! 덕분에 소련의 에이스들 중 P-39로 10기가 훌쩍넘는 격추기록을 세운 이들이 득시글대는 최고의 에이스 메이커로 군림하게 되었다. 당장 소련측에서 50대 이상을 격추한 에이스 중 두 명이 P-39로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이 수치는 역사상 모든 미제 전투기로 올린 격추 기록 중 최고치다. 반면에 전후 독일 에이스들은 모든 면에서 뒤떨어지는, 가장 만만한 기체였다라는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다만 이 부분은 조종사 개인의 주관이 어느정도 반영되어있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는 있다. 가령 P-38 라이트닝의 경우 갈란트같은 경우에는 가장 만만한 기체라고 평가했지만 슈타인호프같은 경우에는 제법 위협적인 상대로 평가했다.[9]

4 평가와 후일담

이러니 저러니 해도 9,500여대나 생산되어 미국의 생산력을 체감할 수 있는 전투기. 다만 좀 더 고성능으로 고쳐달라고 NACA에 의뢰했더니 고공에서는 쓸모없는 바보로 만들어 버려서 사장 이하로 열 좀 받았을 듯. 지금도 NASA는 펀딩이 부족하다고 안달이지... 게다가 서부전선의 공중전은 고고도에서 벌어진 탓에 이 기체의 잠재력이 나타날 수가 없었던 전장이었다.

애초에 만약 2단 과급기를 떼어버리고 이녀석을 뚱보로 만드는 개악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에어라코브라의 저고도 기동성은 어느정도 괜찮다고 평가되며 속도도 대전 초반 등장 시기 기준에선 쓸만했다. 그런 녀석의 체중을 대폭 감소시키면? 중량이 감소하니 추중비가 상승하고 추중비가 상승하니 상승력과 속력도 좋아졌을 것이다. 또한 중량 감소로 익면 하중이 작아져 기동성이 더욱 좋아졌을 것이다. 미제 2단 과급기는 타 기체들이 보여주듯 뛰어난 성능을 가졌고, 에어라코브라의 고고도 성능을 대폭 향상시켰을 것이다. 장갑이 감소한만큼 지상공격중 손실률이 커졌겠지만, 킹코브라를 보면 그래도 잘 써먹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이런 점을 해소한 것이 킹코브라다. 물론 동체 길이나 주익의 길이 등이 차이점이 있지만 대전 초기에 저런 물건이 등장했다면 미군기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을지도 모른다.

생산량 중 절반 이상을 쓸어간 소련 이외에도 자유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이탈리아의 바돌리오 정부 등 전선 뒤쪽에서 어영대는 잉여스런 연합국 공군에 뿌려져서 전투기에 목마른 자들의 갈증을 달래주었다.

1943년 후반부터 고고도 성능을 향상시킨 사실상의 최종개량형인 P-63 킹코브라도 등장했지만 역시 짧은 항속거리와 P-51 머스탱보다 느린 속도로 인해 이 물건도 3,303대라는 전체 생산량의 70%를 소련이 쓸어담아가서 쏠쏠하게 잘 써먹었다. 참고로 킹코브라란 이름은 후에 벨이 코브라를 대규모 업그레이드한 버전에도 쓰였으나 아무도 사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미 공군의 LWF 사업 때도 노스롭은 YF-17 코브라를 들이밀었으나 또 YF-16에게 패퇴. 아무래도 '코브라'라는 이름은 전투기에 쓰기에는 마가 낀 모양.

또한 제트기 시대에도 소련 공군이 37mm 기관포에 집착했던 이유도 이 기체가 보여준 강력한 성능이 원인이라고 한다. 사실 MiG-15, MiG-17에 탑재된 N-37은 M4 37mm 기관포의 카피로 슈톨모빅, Yak-9T에도 탑재되었던 NS-37을 제트기에 맞게 개량한 것이다. 덤으로 M4의 설계자는 다름아닌 존 브라우닝 선생.[10] 이 양반은 외계인임이 분명하다

여담으로 2차대전이 끝나고 소련에 남아있던 P-39 중 소수가 한국전쟁 때 북한에 넘겨져 조선인민군 공군 마크를 달고 미군을 공격했다는 일부 미군 조종사들의 증언이 있다. 다만 이를 증명할 구체적인 자료가 존재하지 않아 확증은 어려운 상황이다.
  1. 연장 샤프트가 조종석 아래를 지나 내치차로 연결된 프로펠러를 돌리는 방식.
  2. 단, NACA는 어디까지나 육군항공대의 헨리 아놀드가 의뢰한 속도향상에 대한 조언을 하였을 뿐이고 실제 설계변경을 결정한 것은 이를 제안한 벨과 그 제안을 받아들인 미육군 항공대였다.
  3. 그런데 시제기에서 실제 양산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방탄판을 비롯한 방탄, 내탄 설비가 추가되는 것은 2차 대전시기의 전투기라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이 2차대전 직전에서 전쟁초기까지 개발되던 많은 기종들이 실제 전쟁의 경험의 결과로 참고로 개발 중간에 무장과 방어력의 강화를 요구받은 경우는 많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P-39에 방탄장갑으로 추가된 무게는 111kg 정도라고 한다. 물론 자동방루 연료탱크나 방탄유리 등이 더 붙어야 했으므로 무게는 조금 더 늘었을 것이다. 참고로 F4F 와일드캣의 조종석 방탄장갑 무게는 68Kg, F6F 헬캣의 경우 96Kg 정도다. 물론 이 외에 연료탱크와 오일쿨러 주변의 방탄장갑이나 방탄유리, 연료탱크의 자동방루설비 등은 제외한 무게다. 그 작은 Bf109도 기본적인 방탄장갑 방탄유리를 달고 날아다녔고, 스핏파이어도 방탄장갑 방탄유리에 연료탱크와 콕핏 사이엔 강철제 방화벽도 설치하고 날아다녔다. 만일 실험기 성격의 시제기에 애초부터 방탄설비가 장착되어있지 않았다면 이는 특별히 많이 늘어난 것도 아니라는 것. 굳이 따진다면 P-39의 경우 엔진이 조종석 뒤쪽에 위치하는 탓에 조종석 전면의 방탄장갑 면적이 더 넓게 필요해 다른 기체보다는 조금 더 많은 방탄장갑이 사용될 수는 있지만 그 차이는 많이 잡아도 50kg 미만일 듯. 하지만 그걸 못 버틸 정도로 원래 설계가 여유가 없었다면 결말은 F2A 버팔로나 A6M2 짝이 날 수밖에 없다. P-39가 애초 그런 정도로 휘청일 기체도 아니었고. 애초 개발 컨셉부터가 '총 중량 1000lb 즉 450kg 이상의 무장과 탄약을 탑재하고도 빠르게 상승해 고공에서 고속으로 비행하며 적 폭격기를 요격할 수 있는 전투기'였다.
  4. 애초 시속 10마일 정도의 속도차이를 이유로 NACA 풍동시험을 지시한 헨리 아놀드 사령관도 굳이 따지면 당시 미 육군항공대의 폭격기무적론의 적극적 주창자는 아니어도 동조자 정도는 되었는데, 그것이 P-39의 이런 당황스런 개악과정과 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5. '스펙상'으로는 그냥 그런 정도다. 초기형인 P-39D도 우수하지는 않지만 대충 해군의 와일드캣 정도는 된다. 그리고 후기형인 P-39M이나 P-39Q의 경우 17m/s, 19m/s 이므로 꽤 좋다. 어쨋든 원래 요격기를 목표로 개발한 물건이라 스펙상 숫자 자체로 완전한 x망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실제로 올라갈 곳이 없으니 그저 종이 위의 숫자일 뿐.
  6. 렌드리스 물자로 광고를 때린 거다...
  7. 물론 Me262도 간단하게 달 물건은 아니라서 무장을 다 철거한 후 50mm 기관포 1문만 기수에 장착해야 했다.
  8. 버전에 따라 7.62mm 기관총 4정 혹은 12.7mm 기관총 2정
  9. 재미있는점은 정작 갈란트는 라이트닝에게 격추당할뻔 한적이 있고 슈타인호프는 라이트닝을 여러대 잡아먹었다고 한다.
  10. 부 무장인 7.62mm 기관총(M1919)과 12.7mm 기관총(M2) 역시 브라우닝이 설계한 기관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