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GG-3

제2차 세계대전의 소련군 항공기
전투기복엽 전투기I-15, I-153
전투기I-16 이삭, Yak-1, Yak-3, Yak-7, Yak-9, MiG-1, MiG-3, LaGG-3, La-5, La-7, I-185, Pe-3
랜드리스 항공기P-39 에어라코브라, P-63 킹코브라,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호커 허리케인, P-47 썬더볼트, P-40, B-25, PBY, 햄든
폭격기경폭격기IL-2, IL-10, IL-20, Pe-2, Su-2, Yak-4, 투폴레프-SB, Ar-2, Tu-2
中폭격기Yer-2, IL-4, Tu-2
重폭격기DB-3, TB-3, Pe-8, K-7
기타UTI-26, Po-2
겨울전쟁을 포함한 제2차 세계대전기의 핀란드군 항공기
전투기복엽기브리스톨 불독, 글로스터 게임콕, 글로스터 건틀렛, 글로스터 글래디에이터, F.K.52, I-15, I-153, 스벤스카 아에로 야크트팔켄 II
단엽기연합군 측F2A 버팔로, C.714, P-36 호크, P-40 워호크, M.S.406, 포커 D.XXI, 호커 허리케인
추축군 측G.50 프레치아, Bf109
소련 측I-16, LaGG-3, MiG-3
핀란드
자체 개발
VL Myrsky
폭격기경폭격기블랙번 리폰, 포커 C.V, 포커 C.X, 호커 하트, Po-2,SB-2
中폭격기아브로 안슨, 브리스톨 블렌헤임, Do 17, Il-4, Ju 88, Pe-2, ANT-40, DB-3, 투폴레프 SB
정찰기A.32, 웨스트랜드 월레스, VL Kotka, Fi 156 슈토르히, He 113
프로토타입VL Humu, VL Pyörremyrsky
제2차 세계대전의 일본군 항공병기
육군 전투기Ki-27 97식 전투기, Ki-43 하야부사, Ki-44 쇼키, Ki-61 히엔, Ki-84 하야테, Ki-100 5식 전투기
육군 쌍발 전투기Ki-45 토류, Ki-102 5식 습격기
육군 폭격기BR-20 시코그나, Ki-21 97식 중폭격기, Ki-30 97식 경폭격기, Ki-32 98식 경폭격기, Ki-49 돈류, Ki-51 99식 습격기, Ki-67 히류
함재기함상전투기A5M 96식 함상전투기, A6M 0식 함상전투기, A7M 렛푸
함상공격기B5M 97식 2호 함상공격기, B5N 97식 함상공격기, B6N 텐잔, B7A 류세이
함상폭격기D3A 99식 함상폭격기, D4Y 스이세이
함상정찰기C6N 사이운
노획 항공기LaGG-3, F2A 버팔로, B-17, P-51 머스탱, P-40 워호크
해군 소속 육상공격기/폭격기G3M 96식 육상공격기, G4M 1식 육상공격기, P1Y 깅가, H6K 97식 비행정, H8K 2식 비행정, G5N 신잔, G8N 렌잔
해군 소속 국지전투기N1K-J 시덴, J1N 겟코, J2M 라이덴
해군 소속 수송기L2D, H6K 97식 비행정, H8K 2식 비행정, G5N 신잔
해군 소속 수상기F1M 영식수상관측기, E13A 영식수상정찰기, N1K 쿄후, M6A 세이란, E16A 즈이운
특공기MXY-7 오카, Ki-115 츠루기
프로토타입J4M 센덴, J7W 신덴, J9Y 깃카, 나카지마 Ki-87, Ki-88^, 다치카와 Ki-94, Ki-201, Ki-200 슈스이, R2Y 케이운, J6K 진푸^
페이퍼 플랜A8M 리후쿠, G10N 후가쿠*, 와쿠세이 함상폭격기, Ki-162
대잠 초계기Q1W 토카이
*엔진만 몇기 만들어졌다. ^목업으로만 존재함.
항공병기 둘러보기
1차 세계대전
연합군
독일 제국
전간기
프랑스
2차 세계대전
미국
영국
나치 독일
일본 제국
이탈리아 왕국
소련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스위스
태국
프랑스
제트전투기
미국
러시아
프랑스
유럽
아시아

LaGG-3_Moscow.jpg

lagg3.jpg

Lavochkin-Gorbunov-Gudkov LaGG-3
Лавочкин-Горбунов-Гудков ЛаГГ-3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에서 운영한 제공 전투기. 총 6,582기가 생산되었으며 독소전쟁 초창기에 한 단계 구식인 I-16, 그리고 동시대의 Yak-1, MiG-3과 더불어 운영, 활약했다.

1 제원

800px-LaGG-3.svg.png

  • 전장 : 8.81m
  • 전폭 : 9.80m
  • 전고 : 2.54m
  • 익면적 : 17.4㎡
  • 엔진 : 쿨리모프 M-105PF V자형 12기통 액랭식 엔진, 출력 1,260마력
  • 자체중량 : 2,205kg
  • 전비중량 : 2,620kg
  • 최대탑재중량 : 3,190kg
  • 최대속도 : 575km/h
  • 항속거리 : 1,000km
  • 최대상승고도 : 9,700 m (31,825 ft)
  • 상승속도 : 14.9 m/s (2,926 ft/min)
  • 익면하중 : 191.1 kg/m² (31 lb/ft²)
  • 무장
    • 카울링 상면에 Berezin UB 12.7mm 기관총 1정(200발) 혹은 ShKAS 7.62mm 기관총 2정(325발)
    • 프로펠러축에 ShVAK 20mm 기관포 1문(120발)
    • RS-82/RS-132 무유도 로켓 6발 혹은 200kg 이하의 폭장 가능

2 개발

유럽의 최신예기 개발소식에 다급해진 이오시프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개발된 저익단엽기로 세묜 라보츠킨(Семён Алексеевич Лавочкин), 블라디미르 고부노프(Владимир Петрович Горбунов), 미하일 구드코프(Михаил Иванович Гудков)가 의기투합하여 개발한 전투기이다. 그 때문에 세 사람의 성에서 글자를 따와서 LaGG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당시 소련의 항공산업의 상태는 상당히 안습한 상황이었다. 1930년대 들어서 급속하게 발전한 금속제 항공기는 항공산업의 주류가 되었으나 금속제 항공기 제작에 없어서는 안될 경합금 듀랄루민의 원재료인 알루미늄 생산에는 대량의 전기를 필요로 했는데 소련의 전기 생산량은 이미 기존의 산업 시설을 돌리는 데에도 포화상태라 일부 대도시는 전쟁 이전부터 이미 제한 송전을 하고있는 절망적 수준이었다. 그 때문에 대체제를 찾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이에 주목한 것이 바로 러시아에 넘쳐나는 목재였다. 목재는 필연적으로 듀랄루민과 같은 금속에 비하면 강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었지만, 페놀과 타르 등을 이용한 화학처리 공법을 적용하여 비행기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강도를 얻을 수 있었고 조종계통과 주익 가동부 이외의 부품을 모조리 목재화하는데 성공한다. 이는 단지 LaGG만의 사정이 아니라 당시 소련의 공군기에 죄다 적용되는 일이었다. IL-2마저도 생산사정이 시원찮을 때는 후부 동체에 목재를 대량 사용했다. 심지어 미국조차 전쟁의 장기화에 대비해 목재 사용 비행기를 고려하기도 했다.

1940년 3월 최초 원형기가 비행에 성공하였지만 전투기인데도 "조종간이 너무 무거워서 수송기를 모는 것 같다"는 불평을 들었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성능이 좋지 못했다. 게다가 원래 가구를 만들던 인부들을 데리고 비행기를 제작(…)했던 까닭에 원형기마다 성능과 안정성이 엄청난 차이를 보일 정도로 안습한 성능을 보여주었다.

gwp-lagg-1.jpg

LaGG-1의 프로토타입인 I-22.

결국 LaGG-1로 명명된 최초 원형기는 제작을 중지하고 시험비행 결과 알려진 문제점들을 하나씩 해결하여 개선해나가기 시작했고 기체의 결점이 하나 하나 고쳐지기 시작했는데, 우선 전체적인 중량을 줄이는 쪽에 주안점이 주어졌다. 이 과정에서 기축의 23mm 기관포가 보다 경량의 20mm 기관포로 교체되었으며 2정의 12.7mm 기관총도 7.62mm ShKAS 기관총으로 대체되었으며 임무나 용도에 따라 100kg짜리 항공기용 폭탄 2발을 장착하거나 RS-82 로켓 6발을 장착하여 지상공격 용도로도 쓸 수 있었다.

이외에 조종성과 안정성을 향상시키기 하여 러더를 재설계 하는등의 개선 작업들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는데, 소련공군 사령부는 신예 전투기를 개발중인 각 설계국에 신형 전투기들의 최대 항속거리가 1000km를 넘어야 한다는 공문을 하달했다. 이렇게 항속거리를 늘리려면 외부 연료탱크를 장착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으므로 라포츠킨은 LaGG-1의 주익을 재설계하여 2개의 낙하식 외부연료탱크가 장비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무렵 1,260마력의 출력을 자랑하는 신형 M-105PF 엔진이 개발되었고 이 신형기의 엔진으로 장착된다.

이렇게 개량을 받은 신형기는 I-301이라고 새롭게 명명되었는데, 이것은 그들이 기체의 제작에 이용한 공장이 GAZ-301이라는 호출기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40년 6월 원형기의 첫 비행이 이루어졌으며 이후 소련공군이 실시한 테스트를 비교적 무난히 통과하여[1] 1940년 10월부터는 양산을 허가받아 본격적인 기체의 생산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소련공군에서는 이 전투기를 LaGG-3로 명명해 실전부대에 배치하게 된다.

3 문제점

Lavochkin-LaGG-3-Crash.jpg

총체적 난국, 2차 세계대전기 손꼽히는 최악의 전투기
이 전투기를 타는건 미친짓이야. 난 이 전투기에서 내려야겠어.

여기까지 써놓으면 부족한 기술력과 열악한 환경하에서 어찌어찌 나름 준수한 성능을 뽑아낸 기체처럼 보이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정체는 2차 세계대전기에 가장 성능 안좋은 전투기를 꼽으라면 반드시 나오는 최악의 전투기였다.

LaGG-3가 일선에 배치되고 그 유려한 디자인을 본 소련 전투기 조종사들은 처음에는 "우리도 이제 간지흐르는 전투기를 몰게 됐다!"면서 그랜드 피아노란 별명을 붙여주면서 너도나도 몰아보겠다고 아우성을 쳤는데 몇 번 몰아보고 나서는 조종사들이 태도를 바꾸고 비행기를 까기 시작했다.(...) LaGG-1 시절부터 조종사들에게 불평을 들었던 비행기의 둔중함과 시원찮은 비행안정성이 문제였던 것이다.

원인은 우선 클리모프 M-105PF 수냉식 엔진이었는데, 가뜩이나 저출력인 주제에 강력한 토크를 가진 것이다. 엔진 자체의 무게가 무거운 것도 아닌데 뭘 잘못 건드린 것인지 무게중심이 전방으로 쏠려 있었고 비교적 무거운 기체의 특성까지 더해져 종안전성이 개판이었으며 특히 이/착륙 비행특성이 형편없었다.

이 와중에 클리모프 엔진의 수명은 보장 수명 25시간으로서 너무나 짧은 수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엔진 한가운데에 있는 ShVAK 기관포의 사격 반동으로 인해 수명은 더 줄어들었고 제때에 엔진 교체를 해주지 않는다면 언제 멈출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엔진이었던 것이다.

다른 원인으로 비행기 자체의 무게에 있다. 동일한 엔진을 쓴 Yak-1은 기동성이 더 좋고 속도도 더 빨랐으나, LaGG-3는 상대적으로 더 무거웠다. 사실 익형설계 자체는 Yak-1의 삼각익보다 더 양력효율이 괜찮은 설계라고 하는데 원체 무거운 덕분에 익면하중도 G-2급이고, 출력이 낮다보니 비행속도도 느린편이고 기체의 자중이 무겁다보니 상승률도 망테크.

목재라 방호력도 망테크인데다가 주익에 연료탱크까지 박아놨고 심지어 방루처리조차도 안 되어있었다. 동체의 목재 부품에 페놀수지처리를 하면 내화성이 꽤 좋아지는 편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무 기준이고 불 붙으면 아주 X되는 전투기. 이쯤되면 이미 스핀, 실속이나 이/착륙시 기체가 전복해버리는 문제는 약과 수준. 가스작동식 플랩도 문제가 있었는데, 유압과 다르게 가스압은 힘이 딸려서 300kph쯤 넘으면 플랩이 펴지질 않았으며 레이저백 형식의 캐노피는 후방 시야가 매우 형편없었다.

이런 와중에 전황이 급해지면서 기체 한대라도 전선에 내보내야 했던 시기의 상황과 열악한 공업사정이 맞물려 공정 중 불람품도 다수 사용되어서 옼스놀러지(...)를 이용해 만든 기체들도 많아 기동 중 날개가 떨어져 나간다던가 하는 사고도 다발했으며 기체의 개개 성능이 제멋대로였다.

더욱이 자체적으로 비행가능한 연료 생산이 제대로 안됐던 만큼 기름이 없어 날지 못했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당시 소련 공군은 옥탄가 70 정도의 저옥탄가유만 뽑아내고 있던 실정이었는데, 1940년 기준으로 약 3000만톤의 유류 중 약 88만톤의 유류가 이 저옥탄가의 항공유였던 실정.

4 실전

이런 단점 때문에 생산중단 조치가 내려질 뻔 했으나, 독소전이 개전되고 전투기 소모가 늘어나자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었던 소련군은 LaGG-3 양산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기동성의 Yak-1 전투기나 고공성능이 뛰어난 MiG-3과 비교하면 뭔가 내세울게 없는 안습한 스펙이었던 까닭에 배치되는 족족 독일군 전투기에게 격추되었다. 게다가 개떡같은 비행안정성은 물론이고 기체마다 성능이 들쑥날쑥하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아 조종사들을 괴롭혔다.

결국 이런저런 문제점에 시달리다 지친 조종사들은 제식기호 LaGG를 비꼬아서 보증서 붙은 나무관짝("ла"кированный "г"арантированный "г"роб)이라 부르면서 깠다. LaGG-3를 운용하는 일선 전투기 부대 지휘관들이 "우리 부대는 관을 조종하고 있다"라고 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그럼에도 계속 생산이 된 것은 전투기 한 기가 아쉬운 상황에서 생산성이 제일 좋았기 때문이다.[2] 실제로 레닌그라드 전선에서는 1941년 9월 2일 총 45기의 LaGG-3를 공급받은 제 44 항공연대는 독일공군과의 전투에서 한달만에 전력의 2/3이 넘는 39기 피격이라는 엄청난 전투손실을 입고 불과 16기만이 살아남았을 정도.

5 말로

결국 전황이 안정되고 어느정도 여유가 생기자 스탈린이 "늬들 거지같은 LaGG-3 때려치고 Yak-1 뽑아"라고 지시를 하면서 LaGG-3는 생산이 중지되었다. 사실 스탈린 입장에서는 강제노동수용소에 처넣지 않은 것만 해도 자비를 베푼 격이나 마찬가지라 이후 절치부심한 라보츠킨은 이 전투기에 공냉식 엔진을 얹어 저공에서 소련 전투기중 최상의 성능을 내던 La-5, La-7을 설계하게 된다.

파일:IJA LaGG-3.jpg
일본군에게도 노획된 적이 있는데, 전쟁중이 아니라 전쟁 전에 소련군 파일럿이 불시착한것을 노획한 것이다.

시험비행 중 착륙 실패[3]로 프로펠러와 날개가 찌그러진 상태로 방치되었다가 폐기되었다.
  1. 소련 공군 상층부의 요구는 Bf109를 능가할 것. 단 한가지였다. 그 목표, 이루어 졌습니까?
  2. 그 때문 만은 아니겠지만 독소전에서 루프트바페의 조종사들은 탈출한 소련군 조종사의 낙하산에 까지 총질을 해대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3. 파일럿의 실수인지 기체 문제인지는 밝혀진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