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순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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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경순왕릉/漣川 敬順王陵

사적 제244호

1 개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 있는 신라 제56대 국왕 경순왕 김부의 능이다.

2 역사

경순왕은 신라 마지막 왕으로, 고려왕건에게 항복한 후 경주를 떠나서 개경 근처에서 살아야 했고 죽어서도 신라왕릉 중 유일하게 경주시 바깥에 묻혔다.

경순왕릉이 식읍지인 경주에 위치하지 않고 연천 지역에 있는 것에는 고려 정부의 속셈이 있다는 설이 있다. 정황상으론 경순왕의 고향인 경주에서 장례를 치뤄서 그 곳에 릉을 세우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신라의 옛 수도인 경주에서 신라의 마지막 국왕의 장례를 치룰 경우 경주 일대의 민심이 어떻게 변할지 도저히 장담할 수 없었다. 망국의 군주의 장례가 얼마나 민심을 격앙시키는지는, 예를 들면 조선이 망한 뒤 일제강점기 때도 고종(대한제국)순종(대한제국)의 장례식에 맞춰서 각각 3.1 운동6.10 만세 운동이 일어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복벽운동이 일어나기 딱 좋은 기회다.

따라서 '왕릉은 수도 개경에서 100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빌미로 경주까지 가지 못하게 하고 당시 수운 교통이 편리한 임진강 고랑포 근처인 현 위치에 릉을 세우게 했다는 것.[1]

신라왕릉 하면 후대보다 크고 아름다운 봉분을 떠올리기 쉽지만 경순왕은 망국의 군주라 능역은 그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봉분의 높이가 3m로, 일반인의 무덤에 비할 바는 아니다.

고려 조정은 옛 신라 왕실을 나름대로 우대해, 능 주위로 곡장(曲墻)을 둘러 왕릉의 격식을 갖췄다. 현재 세워진 묘비는 1747년에 세웠다.

형태가 신라왕릉보다는 고려왕릉에 가깝다. 참고로 경순왕은 신라가 멸망한 뒤에도 오래오래 장수해서 고려 제5대 경종 때 붕어했다.

현재 대한민국경주 김씨 절대다수는 경순왕의 후손이므로, 그냥 문화재 정도 대우만 받는 다른 경주 왕릉들에 비해 경순왕릉도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일년에 두 번 3월 1일10월 1일에 제사를 지낸다.

3 교통

372번 지방도를 통해 갈 수 있다. 이 곳은 휴전선과 가까운 곳이다 보니[2] 가는 길이나 주변에서 지뢰주의라는 표시를 잔뜩 볼 수 있다. 경순왕릉을 찾는다면 혹시라도 거기로 넘어가는 일 없이 얌전히 문화재 관람만 하고 오자.
  1. 사실 왕릉이 수도 인근 100리 이내에 있어야한다는 것은 명문화된 의례가 아닌 관습적인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 당시에는 이런 말이 없었는데 후대에 덧붙여진 것일수도 있다. 당장 이런 내용이 명시되어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 성종 때 완성된 《경국대전》이다.
  2. 가까운 수준이 아니라, 왕릉 바로 뒤에 있는 언덕을 남방한계선이 지나고 있다. 철원 태봉왕궁처럼 사이에 껴버리지 않은 게 천만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