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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라왕릉에 대한 문서이다
신라가 삼국시대 최후의 승자인 덕분에 다른 고대 국가의 왕릉들에 비해 잘 보존되어 있지만, 많은 왕릉의 주인은 아직 100% 확실하지 않다.
2 상세
많은 왕릉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었다. 신라의 왕릉들은 경순왕릉을 제외하면 모두 신라의 수도 서라벌이 있었던 경주시에 있다.
신라의 왕릉들은 고구려, 백제와 달리 입구를 따로 만들지 않았고 구조가 견고하여 도굴이 어려운 특징이 있으며,[1] 삼국통일에 성공해 왕조가 오래 지속되었다는 점, 미리 고려에 항복을 했기에 후대 고려왕조 시대에도 박해를 덜 받으면서 신라왕릉들도 좀 더 관리를 받아올 수 있었다. 덕분에 같은 삼국시대의 고구려 · 백제ᆞ가야의 왕릉이 무령왕릉 같은 극소수 예외 말고는 거의 확인되지 않거나 현존하지 않는 것에 비해 56명의 왕 중 37명의 능묘가 확인되었거나 추정되며 19왕의 능묘만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 경주에 남아있는 왕릉들도 적어도 시가지 주변에 분포한 대형 돌무지덧널무덤 양식 무덤의 경우 대부분 도굴된 적이 없었고 부장품도 그대로 남아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규모가 작은 고분이나 경주 외곽 산지에 위치한 고분은 일부 도굴 사례가 있으나, 대체로 다른 왕조의 고분에 비하면 매우 상태가 양호한 편이며,[2] 고고학계에서는 희망과 동시에 큰 과제로 남아있다.
원래 신라 왕릉은 봉분 외에 따로 시설을 설치하지 않았지만 무열왕릉부터 비석을 세우고 봉토 밑에 자연석으로 호석을 설치, 신문왕릉부터는 문인상, 무인상, 십이지신상 등 수호석으로 장식했다. 이런 능묘 제도는 이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졌다.
3 신라왕릉 목록
- 1대 혁거세왕릉 : 오릉
- 2대 남해왕릉 : 오릉
- 3대 유리왕릉 : 오릉
- 4대 탈해왕릉 : 석탈해의 능
- 5대 파사왕릉 : 오릉
- 6대 지마왕릉
- 7대 일성왕릉
- 8대 아달라왕릉 : 배동 삼릉
- 9대 벌휴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10대 내해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11대 조분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12대 첨해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13대 미추왕릉 : 대릉원 소재
- 14대 유례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15대 기림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16대 흘해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17대 내물왕릉
- 18대 실성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19대 눌지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20대 자비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21대 소지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22대 지증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23대 법흥왕릉
- 24대 진흥왕릉
- 25대 진지왕릉
- 26대 진평왕릉
- 27대 선덕여왕릉
- 28대 진덕여왕릉
- 29대 무열왕릉
- 30대 문무대왕릉 : 대왕암[3]
- 31대 신문왕릉
- 32대 효소왕릉
- 33대 성덕왕릉
- 34대 효성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35대 경덕왕릉
- 36대 혜공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37대 선덕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38대 원성왕릉 : 괘릉으로 추정
- 39대 소성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40대 애장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41대 헌덕왕릉
- 42대 흥덕왕릉
- 43대 희강왕릉
- 44대 민애왕릉
- 45대 신무왕릉
- 46대 문성왕릉
- 47대 헌안왕릉
- 48대 경문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
- 49대 헌강왕릉
- 50대 정강왕릉
- 51대 진성여왕릉 현재 소재 파악 불가[4]
- 52대 효공왕릉
- 53대 신덕왕릉 : 배동 삼릉
- 54대 경명왕릉 : 배동 삼릉
- 55대 경애왕릉
- 56대 경순왕릉 : 신라의 마지막 왕이기에 신라왕릉 중 유일하게 경주시가 아닌 경기도 연천군에 있다.[5]
3.1 추존된 왕의 능
사후 추존된 왕의 능으로 흥무대왕릉(김유신장군묘)이 있다.[6]
이 외에 천마총, 황남대총, 금관총, 서봉총, 대릉원, 서악동 고분군 등의 대형 고분들도 왕릉으로 추정되고 있다.- ↑ 엄청난 양의 돌이 쌓여있기 때문에 현대 이전에는 주민과 관청에 들키지 않고 도굴을 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이었으며, 현대에는 폭탄이나 중장비를 동원한다고 가정하면 무덤을 억지로 열 수 있겠지만 도굴은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도록 밤중에 은밀하게 하는 것이므로, 결국 불가능하다.
- ↑ 예를 들면 백제는 멀쩡히 현대까지 남았던 왕릉은 무령왕릉 딱 하나뿐이었다. 말 그대로 기적적.
- ↑ 대왕암 자체가 문무왕의 무덤(수중릉)이란 해석과, 화장한 유골을 뿌린 장소인 산골처라는 해석이 대립하고 있다.
- ↑ 경상남도 양산시에 진성여왕릉으로 추정되는 능이 있는데 문화재청이 인정한 곳은 아니다. 그게 맞다면 경순왕릉과 함께 경주시 밖에 있는 왕릉이다.
- ↑ 고려에 항복했기 때문에 사망 시 임금이 아니었으나 신라의 마지막 임금이었고, 고려가 신라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능의 형태로 조성되었다.
- ↑ 다만 이 고분은 사실 신무왕의 능이고, 진짜 김유신장군묘는 태종무열왕릉 옆의 전(傳) 김인문묘(속칭 각간묘角干墓)라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