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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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高榕禛
1964년 8월 6일~

대한민국의 정치인. 현 20대 노원갑 국회의원. 서울시를 지역구로 하는 현역의원 중에선 강남 을의 전현희 의원과 더불어 유이한 비노 손학규계 의원으로 분류된다. 종교는 가톨릭(세례명 아우구스티노)이다.

2 활동 연혁

1964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대광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닌 정치권 인사 중에서는 다소 이례적일 수 있을 정도로 열렬한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석사 학위를 받은 후에 장교로 복무한 후, 정치권에 투신하게 되었는데,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자신이 몰래 과외를 하던[1] 학생의 아버지였던 국회부의장 조윤형이 언론계로 들어가려던 자신에게 강력하게 권유를 하여 정치권으로 들어와 일을 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1990년부터 1992년까지 국회부의장 비서관으로 처음 정계에 들어갔고, 이어 민주당 전문위원 공채에 합격하면서 완전히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다시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시의원으로 출마할 것을 제안받아 노원 지역에 출마하면서 본격적인 선거 출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2년까지 관운은 대단히 좋은 편으로 1995년 당시 만 31세로 시의원에 당선된 것에 이어 1998년에도 재선에 성공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기세를 몰아 2002년에 노원구청장 후보로 올라갔지만, 이 때는 패배하면서 정치적인 부침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청와대 정무수석실 비서관으로 재직했다가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해 사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공천 과정에서 노원 을 지역구에서 우원식 후보에게 밀리면서 공천을 받지 못했고, 그 뒤로는 공기업인 환경자원재생공사의 이사로 일하다가, 2007년 대선에서는 자신의 민주당 전문위원 공채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이해찬의 캠프에 합류하여 활동하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는 노원구청장 경선에 출마하였나, 김성환 후보에게 경선에서 패하면서 결국 김성환 후보가 구청장이 되는 모습을 바라 봐야 했다. 그리고 2012년 총선에서는 노원 갑 지역에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이 당시 정봉주와의 관계를 고려한 민주통합당 지도부에서 김용민을 전략공천해버리면서 출마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2012년 대선 정국에서는 2007년과 달리 손학규의 캠프에 합류하면서 활동했다. 그리고 총선 패배 후 붕 떠버린 노원 갑 지역의 지역위원장에 선출되면서 정치적인 활동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노원갑 경선에서 청년 비례대표로 인지도가 높던 장하나의원 상대로 지역 관리의 힘을 보여주면서 경선에서 승리하며 정말 오랜만에 공천장을 확보했고, 이어 총선 본선에서도 국민의당 후보에게 꽤 많은 표를 내주기는 했지만, 상대인 서울 동북권역 유일 새누리당 현역의원이던 이노근 후보를 상대로 2천여 표 차로 신승,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3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 여부비고
1995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서울시의회 노원구 1선거구)민주당22,123 (59.7%)당선 (1위)
1998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서울시의회 노원구 1선거구)새정치국민회의22,889 (50.4%)당선 (1위)
2002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서울시 노원구청장)새천년민주당89,457 (42.8%)낙선 (2위)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서울시 노원구 갑)더불어민주당36,205 (41.8%)당선 (1위)
  1. 당시에는 과외금지법으로 과외가 불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