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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尹衡
1932년 11월 26일 ~ 1996년 2월 2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유석 조병옥의 장남이며 조순형 전 국회의원의 형이다.
1932년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희대학교(현 연세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에 재학하던 도중 미국 유학을 가서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외교관학교를 수료하였다.
부친 조병옥이 별세하고 몇 달 뒤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 재보궐선거(전임 강영훈 국회의원의 별세)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으로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제6대, 제7대, 제8대 국회에서 연속으로 국회의원(민정당, 민중당, 신민당)을 지냈다. 그러나 제8대 국회에서 유신 쿠데타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유신 선포 후 육군보안사령부에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옥고를 치렀다. 그뿐만 아니라 피선거권도 제한되었다.
이러한 탄압은 전두환이 집권하고 나서도 계속되었다가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이듬해인 1985년 민주한국당 후보로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신한민주당 이철 후보와 민주정의당 김정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유치송이 총선 참패로 총재직을 잠시 물러나자 며칠 동안 대신 총재가 되었다가 다시 물러났다. 그리고 그 해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부친 조병옥이 민주당에서 구파였으나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일민주당의 김영삼이 아닌 평화민주당의 김대중을 따라갔다. 이듬해인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당선되었고 제13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공동대표인 김대중이 정치발전협의회 출신들에 대해 공천을 탈락시키자 민주당을 탈당하여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에 입당하였고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 해 말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통일국민당을 탈당하여 민주당에 입당하였고 그럼에도 당시의 법 기준으로는 국회의원직이 유지되었다. 그리하여 동생인 조순형과 같은 당에 속한 형제 국회의원이 되었다. 1995년 김대중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합류하였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60 | 1960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5대 국회 민의원, 경기 11선거구)[1][2] | 민주당 | 15,963 (30.6%) | 당선 (1위) | 1961. 5. 16 자격정지 (5.16 군사정변) |
1963 |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7선거구)[3] | 민정당 | 29,881 (54.1%) | 당선 (1위) | 1965년 민주당에 흡수 |
1967 | 제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7선거구) | 신민당 | 44,827 (66.5%) | 당선 (1위) | |
1971 | 제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8선거구)[4] | 신민당 | 58,713 (66.5%) | 당선 (1위) | 1972.10.17 자격박탈 (10월 유신) |
1985 |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북) | 민주한국당 | 79,991 (26.8%) | 낙선 (3위) |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북 을) | 평화민주당 | 50,310 (38.6%) | 당선 (1위)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4번) | 통일국민당 | - | 당선 | 1992. 12월 탈당, 민주당 입당[5] 1996. 2. 2 작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