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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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羲東
1886년 3월 11일 ~ 1965년 10월 22일
대한민국의 전 동양화가, 서양화가이다. 호는 춘곡(春谷)이다. 국민의당 이상돈 국회의원의 외조부이다.
1886년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관립 한성법어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하였다. 1904년 궁내부 주사, 예식관 등의 관직을 역임하며 대한제국의 궁내 프랑스어 통역, 문서 번역을 담당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일어나자 진로를 전환하여 동양화가가 되었다. 1908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함으로써 한국인 최초의 서양화가가 되었다. 1915년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였고, 경성부(현 서울특별시) 중앙고등보통학교, 휘문고등보통학교, 보성학교, 중동학교의 교원으로서 재직했다. 1918년 서화협회의 조직에 참여하였고, 1939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해산될 때까지 총무,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8.15 광복 후인 1947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를 조직하여 4년간 회장으로 있었다. 그리고 국전 제1회에서 제7회까지 계속 심사위원장이 되었다. 1953년에 대한미술협회 회장, 1954년에는 대한민국 예술원 종신회원 및 회장이 되었다. 1956년 제2회 예술원상(미술 공로상)을 수상하였고
한편 정치에도 참여하였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반발하여 국가보안법 개악반대투쟁위원회 발기인, 민권수호국민총연맹 상임위원장을 지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