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반적인 의미
- 恭敬 : 공손히 받들어 모심.
노인 공경이 아니고 공격을 해버리면 곤란하다. - 公卿 ; 3공과 9경을 이르는 말.
2 메이지 유신 이전 시기까지 존재했던 일본의 귀족 계층
公卿
명칭의 유래는 중국의 진한시대의 관위인 3공 9경.[1]
이에 해당되는 관직은 태정대신, 좌대신, 우대신, 다이나곤, 추나곤, 참의를 들 수 있다. 헤이안 시대부터 중앙집권적인 율령국가를 구성하기 위해 통용된 명칭으로 그 이전부터 귀족 세력은 존재하긴 했지만 이 시기부터 공가 안에서도 귀족의 격식 및 지위의 고하가 고착돼서 똑같은 공가라 할지라도 하위에 위치한 공가는 상류층으로 편입되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찌보면 신라의 골품제와도 비슷한 부분.
공가에 속해있던 가문은 다음과 같다.
- 후지와라 씨와 그 분파인 이치조一条, 니조二条, 쿠조九条, 타카츠카사鷹司, 코노에近衛 등의 섭관가
- 세이와 덴노를 시조로 하는 코가久我, 산조三条, 사이온지西園寺, 토쿠다이지徳大寺, 카잔인花山院, 오오이노미카도大炊御門, 키쿠테이菊亭(今出川), 다이고醍醐, 히로하타広幡
등등 정말 수도 없이 많다.[2]
이후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 에도 막부를 거치면서 천황처럼 세력을 잃고 정치적 실권 없이 오직 가문의 명예와 신분만으로 먹고사는 잉여집단으로 전락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능한 집단은 아닌게, 이들은 적어도 정치적 식견을 상당부분 갖춘 계층으로 막부 시대에도 막부에 반대하는 무사와 손을 잡고 막부 타도를 구상하기도 하는 나름의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막부가 반란을 진압한 후에는 얄짤없이 썰렸지만...귀족이라는 신분의 정통성과 권위 덕분에 센고쿠 시대의 다이묘 중에서도 공경의 딸과 혼인하는 경우가 많았고 거기다 양자 제도라는 편법을 써서 신분의 제약을 벗어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미천한 신분임에도 코노에 가문의 지위를 빌어 관백의 위치에 오르는데까지 성공했다.
에도 막부 시기에도 별다른 활약은 없이 그저 평상시처럼 잘 지내오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화족 세력으로 편입되는데 이렇듯 정치적 실권은 전무하나 어느정도 일본 역사에 적지않게 개입을 해 왔던 집단이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
창작물, 특히 막부 시기를 다룬 작품에서 공경들은 대부분 겉으로 보기에는 놀고 먹기만 하는 니트이지만 속으로는 막부를 타도하고 땅에 떨어진 조정의 권위, 정확히는 자신들의 권위를 되찾기위해 온갖 음모를 꾸미는 흑막이자 하라구로 속성을 띄고 있다.
일본 창작물에서 묘사된 공경의 스테레오 타입은 다음과 같다.
- 1인칭은 마로(麻呂, 麿)
- 높으신 분들을 상징하는 화려한 옷과 언제 어디를 가든 항상 쓰고있는 관.
- 눈썹을 미간에 가까운 쪽만 남기고 모두 밀었다.[3]
- 언제나 놀고 먹으면서 여자만 밝히기 때문에 세속 정치에는 관심없어 보인다.
- 하리센을 들고다니는데 하라구로 속성을 드러낼 때마다 하리센을 입에다 갖다대고 굉장히 음흉하게 웃는다.
- 이빨을 검게 물들임.
- 대부분 싸움을 굉장히 못하고 두뇌싸움에 능하지만 의외로 호신을 위해 스스로 검술을 연마해서 주인공과 대등한 무력을 소유한 경우도 있다. 이것도 어느정도 자리잡은 클리셰
- 자신의 신분을 굉장히 강조하며 제 아무리 강대한 힘을 지닌 실력자가 앞에 있다 할지라도 이를 거리낌없이 과시한다. 이 때문에 실력자에게 발리고 굴복하는 경우가 다반사
3 삼국지연의의 가공인물
龔景
청주태수로 청주가 황건적에게 포위되자 유주목 유언에게 청주성이 황건적의 공격으로 성이 함락되려고 하니 구원을 바란다는 공문을 보냈다. 이 때 유비가 이 소식을 듣고 유언에게 자신이 구원하러 가길 자청하자 유언이 추정과 함께 군사 5만명으로 유비를 지원하게 했다. 유비와 추정 등이 청주를 구원할 때 황건적과 싸우다가 도망지는 척 해서 매복을 통해 격파하자 공경은 민병을 거느리고 성에서 뛰쳐나와 싸움을 도왔으며 황건적이 포위를 풀고 물러나자 군사를 위로했다. 유비는 스승 노식을 뵈러 자신의 의병만 이끌고 떠났으며 추정은 원래 거느리던 유주 병사들을 이끌고 유주로 돌아간다. 이 후 공경은 등장하지 않는다.
3.1 미디어 믹스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는 공경이 구원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자 유언이 유비를 부르면서 어찌 하냐면 좋겠냐면서 자신들도 군사가 넉넉지 못해 군사를 보내는 것이 난감하다고 한다. 유비가 먼저 청주로 떠난 후에 추정을 보내 구원하게 되어 공경을 구원하러 가는 과정이 약간 다르게 나왔다.
삼국지를 품다에서는 청주성에서 황건적의 공격을 받자 유언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이 때 공경은 장만성에게 포위되었으며, 황건적을 물리친 후에는 주민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기 위해 짐수레를 끌고 가달라는 부탁을 한다.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는 청주성이 포위될 때 성 안에 있다가 부하가 달려오자 황건적이 총공격이라도 한 것이냐고 물었다가 유주에서 원군이 당도해 황건적과 사투를 벌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유비에게 패하는 황건적을 공격했다. 승리 후에 추정과 유비를 대접해서 마음껏 쉬도록 하라고 했지만 황건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계속 싸워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되었으며, 좀 더 머물러 주었으면 한다고 아쉬워했고 유비가 물러나자 훌륭한 젊은이라면서 자신의 밑에 있어줬으면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5에서 등장한다. 184년 황건적의 난 시나리오에서 북해의 군주로 나와 공융, 무안국을 부하로 두고 있다. 무력 34, 지력 72, 정치 66, 매력 69로 그저 그런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