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도

1 개요

교동도(喬桐島)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의 본 섬이다. 주민은 대량 3천여 명.

북위 38도 근처에 있으며 강화도의 서쪽, 인천 본토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민간인 출입통제선 위에 있으므로 출입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2 역사

2.1 삼국시대~남북국시대

고구려가 강화도를 차지하고 있었을때는 고목근현이였다가, 신라가 강화도를 차지하고 나서 교동현으로 개칭했다. 그리고 이 지명은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2.2 고려시대

수도 개경과 가까워, 국제교역의 중간 기척지 역할을 하였다.

2.3 조선시대

전략적 요충지로 이용되었으며, 인조 시대에 삼도수군통어염이 설치되기도 했다.

2.4 현대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대치하고 있는 중립수역이 되었다.

3 간척

본래 교동도는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삼국,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주변의 강화도나 석모도처럼 간척을 통해 여러 섬과 합치고 본섬의 4~5배 정도로 커졌다.

강화도 문서를 보면 간척되기 전 지형과 간척된 현 지형을 비교하는 지도가 있다.

4 관광

섬이라는 지리적 특징과 민간인 통제구역이라는 점 때문에 외부와 오랜 시간 단절되었다. 덕분에 1960~7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대룡시장이나 교동방앗간 같은 곳을 가면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교동대교가 개통된 뒤 주말이면 최대 1만 명이 오는 등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5 강화나들길

강화나들길 9번(교동나들새길. 월선포 ~ 화개산)과 10번(교동머르매길. 대룡시장 ~ 머르매)이 있다

6 교통

이전에는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었지만, 2014년 7월 1일에 교동대교가 개통되면서 강화도와 육지까지 자동차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대중교통으로는 강화도와 교동도를 오가는 70번(구 18번)을 타면 된다.

7 군사

북에서 수영해서 교동도로 탈북해 올 정도로 북한과 매우 가깝고, 그만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때문에 연륙교를 건너기 전에 해병대 장병들의 간단한 검문 절차를 거쳐야 하며, 해안가에 목함지뢰 경고문이 붙어있는 등 살벌한 분위기가 있다.

아시아나 항공기 오인 사격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던 곳도 이 동네다.

8 방송

2003년 경에 MBC 코미디 하우스의 촬영지로도 유명했다.

또한 2010년 3월 7일, 3월 14일에 1박 2일에도 나왔다.

9 트리비아

물길이 험해서 탈출은 어려운데, 한양과 가까워서 감시는 쉬운지라 왕족들의 유배지로도 각광받았던 곳이다.

연산군이 여기 유배되어 사망했고, 광해군제주도로 이배되기 전 여기서 잠시 지냈고, 그 외에도 임해군, 능창대군, 숭선군, 익평군, 이준용(고종의 조카), 화완옹주 등이 여기에 유배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수군 수영인 경기수영의 본영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10 주요 관광지

  • 대룡시장
1950년 6.25 전쟁 때 황해도에서 교동도로 월남하였던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이 휴전 이후 북으로 갈 수 없게 되자, 황해도를 추억하는 마음으로 황해도 연백군에 있다는 연백시장을 본따서 만든 재래시장이다. 현재는 인구감소와 실향민 1세들의 대부분 작고로 실향민 자손들이 시장을 지켜가고 있으며 1박 2일, 드라마 전설의 마녀, 장미빛 연인들의 촬영지기도 하다, 특히 시장 내 거북당 빵집은 전설의 마녀 장면에도 나왔다. 그리고 대룡시장 이곳저곳에 제비집이 있는데, 과도한 근접촬영은 금하자.
  • 연산군 유배지
중종반정으로 왕좌에서 쫓겨난 연산군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였던 곳이다. 연산군의 묘도 있었으나 이후 경기도 양주군 해등면 원당리(현재의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이장되었다.
  • 교동향교
  • 교동성당
강화도에서 4번째로 오래된 성당으로, 1933년에 지어졌다. 현재도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 교동읍성
1629년(인조 7년)에 경기수영을 설치하면서 같이 만든 것으로, 둘레는 870m였다고 한다. 과거에는 동/남/북쪽에 성문을 세웠으나, 현재는 남문(홍예문)만 남고 나머지 문과 성곽 모두가 사라졌다.
  • 화개산
교동면 고구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259m다. 이색은 이 곳을 전국 8대 명산 중 하나로 꼽았으며, 현재는 화개산 주변에 교동도의 주요 관광지들이 밀집되어 있다. 산 정상에서는 황해도의 연백평야와 예성강 하구, 송악산도 볼 수 있다.
  • 화개사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이색이 공부하던 곳이라고 한다.
  • 화개산성
조선시대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 내/외성 구조이며, 포곡식 산성이다. 둘레는 무려 2,096m.
  • 조선시대 한증막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증막. 1970년대까지 교동도 주민들이 실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는 사용하지 않으며, 2008년에 외부를 복원했다.
  • 봉수대
화개산 정상에서 5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현재도 석단이 잘 보존되어 있다.
  • 황룡우물
조선 태종때 황룡이 나왔다고 전해지는 우물로, 조선왕조실록에서는 1448년(태종 18년)에 이 우물 안에 황색대룡이 보였다고 한다.
  • 월선포
교동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교동과 강화도를 오가는 연락선이 정박하던 곳이다. 강화나들길 9번(다음새길)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여기서 보는 강화도는 정말 장관이다.
  • 송암 박두성 생가터
송암 박두성(1888~1963)이 유년에 지냈던 생가다. 참고로 박두성은 1926년에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한글점자 훈민정음을 만든 사람이다.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
  • 망향대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이 이 곳에 비를 세우고 주기적으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 고구저수지
1976년에 만들어진 저수지로, 88.5ha의 넓은 저수지다. 사계절 내내 낚시가 가능하다.
  • 남산포
고려시대에는 벽란도로 가는 중국 사신들이 드나들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인조가 수군영통영을 설치하면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