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제2번(쇼스타코비치)

정식 명칭: 교향곡 제2번 B장조 작품 14 '10월 혁명에 바침'
(Sinfonie Nr.2 H-dur op.14 "An den Oktober"/Symphony no.2 in B major, op.14 'To October')

1 개요

쇼스타코비치의 두 번째 교향곡. 전작인 1번으로 음악원을 졸업하자마자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는 했지만, 공산주의 혁명 직후의 혼란기 속에서 문화예술계도 전위파와 보수파로 나뉘어 대립하는 상황이라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 소련에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문화 계몽을 선도하던 '프롤레타리아 러시아 음악가 협회(약칭 RAMP)' 와 서구의 전위적인 현대음악에 영향을 받아 소련에 도입하려던 '현대음악협회(약칭 ASM)' 두 단체가 서로 혁명 전통의 계승을 주장하며 대립하고 있었는데, 쇼스타코비치는 어느 단체에 직접 가입하기 보다는 전통과 혁신 양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형세라 양측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었다.

다만 이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서방의 동시대 작곡가들이 보여준 여러 혁신적인 기법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것을 새로 성립된 공산주의 정권의 혁명 이념과 결합시키려는 시도를 통해 새로운 길을 열려고 하고 있었다. 이 곡에서도 그런 하이브리드 개념이 적용되었는데, 현대 기법과 혁명 선동문의 조합을 통해 양자를 만족시키려는 포석이었다.

창작 동기는 1927년 봄에 소련 국립 출판소 소속 음악국 선전부에서 10월 혁명 10주년 기념작을 위촉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는데, 이 때 시인인 알렉산드르 베즈미엔스키가 쓴 가사를 동반한 합창 작품을 원한다는 구체적인 주문을 받았다. 쇼스타코비치는 합창에 쓸 가사가 너무 선동적이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했지만, 큰 수정 없이 그대로 곡에 도입해 10월에 완성했다.

2 곡의 형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전곡 중 가장 길이가 짧은데, 전체 연주 시간이 겨우 16~20분 정도인 단악장 형식의 작품이다. 하지만 넓게 보면 느린 인트로와 ABC 3부 형식의 중간부, 그리고 합창이 등장하는 대단원까지 해서 세 개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작인 1번이 고전적인 형식과 기법에 어느 정도 의지했다면 여기서는 그것을 상당 부분 뒤집어놓은 파격적인 형태이기도 하다.

인트로는 베이스드럼의 아주 여린 트레몰로 연주로 시작하는데, 약음기 끼운 콘트라베이스와 첼로가 마찬가지로 두루뭉실하게 등장하면서 뭔가 흐릿하면서도 움직임이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위에서 트럼펫이 약음기를 끼우고 역시 여리고 약간은 멜랑콜리한 가락을 연주하고 나면 속도가 빨라지면서 3부 형식 대목으로 곧장 이어진다.

초반부를 장식했던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이번에는 약음기를 떼고 행진곡 풍으로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내는데, 일단 관현악 전체가 터뜨려주는 작은 클라이맥스를 만든 다음 바이올린 독주가 다소 신랄한 가락을 연주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 클라리넷과 바순 등 다른 악기들의 솔로가 더해지면서 굉장히 무질서해 보이는 진행이 시작된다.

무려 열세 개 성부가 저마다 다른 가락을 연주하며 따로 노는 대목인데, 굉장한 혼란 속에 음량이 점차 커지면서 은연중에 힘을 축적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스네어드럼 등의 타악기가 등장하면서 리듬이 점차 정돈되고, 금관악기가 가세할 즈음에는 성부 분리가 확실해지면서 호른을 선두로 한 금관악기가 매우 세게 팡파르풍 악구를 불어제낀다. 여기가 제대로 된 첫 번째 클라이맥스인 셈.

일단 이 절정 뒤에는 다시 음량이 약해지면서 비올라와 클라리넷 위주로 약간 우울한 듯한 새로운 가락들이 나오는데, 특히 클라리넷이 부는 가락에는 나중에 합창이 등장하면서 시작되는 대단원 부분들의 소재가 포함되어 있다. 클라리넷 멜로디를 바이올린 독주가 받아 더욱 여리게 연주하며 3부 형식 섹션을 마무리짓는다.

바이올린 독주가 끝날 즈음에 갑자기 팀파니가 세게 치면서 공장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데, 이 부분 부터가 대단원에 해당된다. 합창단의 베이스 파트가 '우리들은 걷는다. 일자리와 빵을 원하며...(Мы шли, мы просили работы и хлеба...)' 라고 노래하면서 시작되는데,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파격적인 기법에 비하면 전형적인 혁명가의 선동 문구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이 대목부터 모든 성부에 조표가 확실히 붙어서 조성감을 확립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갑자기 이 곡의 기본 조성인 B장조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소 잦은 조바꿈으로 통해 맨 마지막에서야 제대로 된 B장조 진행이 이루어진다. 관현악 쪽에서는 심벌즈를 비롯한 타악기와 금관악기가 선두에 서서 화려한 팡파르를 연주하며 거드는데, 호른이 연주하는 부점 리듬 가락은 클라리넷이 이 대목 직전에 분 가락에서 이미 예시된 대목이고, 훗날 혁명을 소재로 한 다른 교향곡인 12번 후반부에도 등장한다.

합창부의 노래는 선동적인 가사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선율미 보다는 가사의 흐름에 치중하며, 합창부 마지막 대목의 가사인 '이것은 구호이며, 살아있는 세대의 이름이다: 10월, 코뮌, 레닌!(Вот знамя, вот имя живых поколений: Октябрь, Коммуна и Ленин!)' 에서는 아예 노래가 아니라 해당 문구를 크게 읊조리는 슈프레히게장[1]까지 쓸 정도.

전체적으로 서구의 새로운 기법들을 적극 응용하면서 혁명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확실히 묘사하고자 한 의도는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다만 제대로 정리가 안되고 마구 흩뿌려 놓은 듯한 난삽함이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쇼스타코비치도 이 약점을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는지, 후속작인 3번에서는 규모를 좀 더 확장하고 통속성을 가미해 중화하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관현악 편성은 피콜로/플루트 2/오보에 2/클라리넷 2/바순 2/호른 4/트럼펫 3/트롬본 3/튜바/팀파니/베이스드럼/스네어드럼/심벌즈/트라이앵글/글로켄슈필/사이렌/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합창 편성은 전통적인 혼성 4부 합창인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 파트 구성이다. 심벌즈는 한 쌍으로 치는 것 외에 한 짝만 걸고 치는 서스펜디드 심벌을 겸한다.

가장 특이한 '악기' 인 사이렌은 곡을 위촉한 선전부의 아이디어로 삽입되었는데, 대단원 시작 부분과 그 이후까지 합쳐 딱 세 번만 울리며 음높이도 낮은 올림바(F#)로 고정되어 있다. 실제 공연이나 녹음 때는 미리 녹음한 음원을 틀거나 신디사이저 등의 전자악기로 대체하기도 하고, 작곡자의 지시에 따라 호른과 트롬본, 튜바의 동음 연주(유니즌)로도 대신 연주할 수 있다.

3 초연과 출판

곡이 완성된 해인 1927년 11월 5일에 1번을 초연했던 지휘자 니콜라이 말코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처음 공연되었고, 합창은 레닌그라드 국립 아카데미 카펠라 합창단이 맡았다. 동시에 혁명 10주년 기념 음악작품 공모전에도 출품되어 1위로 입상했다. 출판도 같은 해에 소련 국립음악출판소에서 간행된 것을 시작으로 앵글로소비에트 음악출판사 등에 의해 해외 출판도 이루어졌다.

전체적인 반응은 1번 때와 마찬가지로 호의적이었고, 혁신적인 음악 기법과 선동성을 적절히 접목한 새로운 시도로 호평을 받았다. 다만 보수적인 RAMP 쪽에서는 그리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고, 훗날 스탈린이 전위 예술에 대대적인 관광을 벌일 때 '형식주의적 작품' 이라고 미친듯이 까이면서 연주 금지크리를 먹기도 했다.

그리고 혁명의 주체였던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는 현실과 거의 맞지 않는 구닥다리 곡이 되어버린 탓에, 3번과 함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중 연주가 가장 뜸한 곡이 되는 안습 상황이 되었다. 지못미. 그저 교향곡 전곡 녹음이나 연주 시리즈에 의무적으로 포함되는 정도. 그리고 워낙 좌빨 혐오증이 강한 한국에서는 지금껏 연주도 되지 않고 있다. 아니, 그 전에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의 공연 자체가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역시 클래식 음악인들도 코렁탕이 두려운 듯

  1. Sprechgesang. 말하듯 노래한다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는 독일어식 표현. 음성으로 나타내는 표현의 경우 슈프레히슈티메(Sprechstimme)라고도 한다. 쇤베르크 등 신 빈 악파 작곡가들이 많이 써 유명한 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