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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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1981년 9월 25일생으로 본명은 김원종. 래퍼이자 프로듀서 겸 한국 콘서바토리 뮤직 프로덕션과 학과장. 무브먼트에 속해있다.

통칭 Deegie, 데뷔 초기에는 Insane Deegie나 Tequila Addicted[1]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음지에서 활동했을 때는 DG.esq라는 이름을 쓰고 이외에도 있는 등 이름을 디지게 많이 썼으나 본인 꼴리는 대로 바꿔댄 것이라 큰 의미는 없다. 2008년 정식 컴백 이후에는 대강 김디지란 이름을 사용 중.

실용음악과의 영향인지 재즈풍의 음악을 추구하며 정규 2집에서는 오케스트라풍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스스로의 랩을 저질 랩으로 규정하며 실제로 랩을 못하는 대신 가사전달성과 작곡, 프로듀서, 엔지니어에 집중하고 있으나 몇몇한테 랩 구리다고 닥치고 까이는 안쓰러운 모습이 종종 보인다.

확실히 문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보면 가사를 잘 쓴다고 하기엔 좀 그렇다. 사회 비판한다고 쓰는 가사도 뭔가 욕설로 도배해 놓긴 했는데 뜯어보면 그냥 당연하고 막연한 가사로 점철돼 있는, '없어보이는 컨셔스랩'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다. 2015년에 내놓은 'Insane.D Deegie 3 (The Orchestra)'의 수록곡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가사를 보면 그냥 총체적 난국.

어릴 때부터 싹수가 없었는지 여기저기 유학을 많이 다녔다. 한국에 있을 때는 어디서 건반 하나 얻어서 원래부터 하고 싶던 음악에 대한 피가 끓었으나 그거 하나로 뭐 할 것도 크게 없었고, 가장 하고 싶던 랩도 당시에는 듀스 등 TV에서 나오는 랩 외에는 알 길도 없어서 뭐가 어떻게 하는지 모르다가 대강 힙합은 비트구나...하고 생각하고 건반을 활용해 조악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10대 캐나다 유학 생활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캐나다에 널린 스튜디오에서 무급 인턴으로 음악을 배우고 그 외 생계 유흥비 등은 다른 알바로 때웠다고 한다.

귀국한 후 1998년 중반, 친분이 있던 커빈, 제약회사한남잭슨, Make-1, 신건과 함께 CB Mass라는 5인조 그룹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Pen2y, DJ Soulscape, Fantastik Dos로 활동하고 있는 명덕크랩 등과 함께 PDPB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당시 힙합씬 내에서도 간지와 저항성 등을 추구하며 진지한 얘기를 많이 했으나 디지가 주도하는 팀은 온갖 욕설과 외설적 퍼포먼스로 점철된 또라이 공연 그룹이었다. PDPB조차도 또라이 그룹이 있다는 얘기에 취재가 와서 서로들 이름... 우리 이름... 우물우물하다가 나오는 대로 뱉고 난 이후 핏덩어리가 돼버린 피바다, 피차 드러운건 피하고 보자 등의 뜻을 갖다 붙였다. 아무튼 이 그룹은 원래 개싸가지인데 당시 녹음실까지 소유한 권력자인 김디지의 오만방자한 폭언 욕설과 눈 아래 사람이 없는 방자한 행태에 팀원들이 혀를 내두르자 스스로 독립하여 원맨 프로젝트 Tequila Addicted로 활동한다.

2000년 클럽 MP의 컴필레이션 앨범인 MP 힙합 超에서 적나라한 내용의 No Sex, No Love라는 곡을 선보이며 비로소 본격적인 작업물을 대중 앞에 선보이기 시작했고 다음해인 2001년 첫 앨범인 Insane Deegie를 내놓는데, 역시 재지한 음악에 저질 가사가 어우러진 적나라한 음반이었다.

2001년 겨울 EP 성격이 강한 앨범 The Last Winter Story를 마지막으로 외국계 무역회사 과장으로 일하고 달의 땅을 분양하는 등 별 요상한 비즈니스에 손을 대며 음악에서 당분간 손을 떼는 듯 했으나 중간 중간 두 장(정확히는 세 장)의 부틀렉 음반을 내놓기도 하였다.[2] 두번째 부틀렉 앨범에서는 단순한 재즈 샘플이 아닌 라이브 재즈 세션곡에 랩을 얹는 등 어느 정도 변화한 음악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성향이 2집을 걸쳐 프로젝트 앨범 The Musium에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에 대해선 디지 스스로도 '재즈 샘플따서 곡만드는 건 이미 프리모가 다 보여줬다'고 언급하고 있다.

2009년 발표한 비정규 싱글 개는 말그대로 예의 그 앨범들처럼 부틀렉으로 내놨으며 666장 한정으로 6660원에 판매되고 이후 667장 부터는 18180원에 판매하는 괴이한 유통방식으로 판매되었다. 예상대로 정식발매될 수 없을 법한 강도 높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사가 과격해서 녹음하던 도중 스튜디오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발매가 늦춰졌다고 한다. 초반에 싱글치고 엄청나게 푸짐한 트랙 리스트로 사뭇 기대를 불러모았으나 정작 뚜껑을 열자 제대로 된 곡은 6곡 정도에 나머지 트랙은 스킷 등으로 채워져 있어서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다. 일단 제목만 공개한 뒤 각종 커뮤니티들에서의 반응을 보고 이를 수록한 뒤 일장연설을 펼치는 Fxxxing VJ[3]나, 라디오 토크쇼를 듣는 듯한 10분 토론은 그야말로 리스너 우롱의 극치.

디스의 대상도 상당히 광범위했는데 조PD, 이정현,[4] 문희준, MC 스나이퍼, 조선일보, 전직 대통령, 고위 관직자, 국회의원, 경찰[5] 등을 디스했으며 특히 조선일보와 정치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강했다.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Damn EX-Presidents[6]'를 청와대 앞에서 기습공연하려다가 연행되는 되었으며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가지고 조선일보를 비난하는 곡인 'J.N.P'를 부르기도 했다. 이런 관점은 이후에도 이어져 내려와 디지털 싱글인 "Mad Bull"이나 비정규 싱글 "개"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난적인 메세지를 볼 수 있다.

아래는 디지의 2004년 부틀렉 앨범 '클리토레스'에 수록된 '오냐 씨발 것들아'라는 곡의 일부이다.

Yo 잘들었어? 2008년도까지 기다려 이 개새끼들아,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말라서 못 나오는데 씨발 그 때까지 입 좀 닥치고 있어 개새끼들아

그리고 2008년, 끝내 직장 생활로 모은 돈으로 정규 2집을 발매하고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 하기에 이르렀다.[7] 선거 기간 내내 자기를 안 뽑아도 좋으니까 제발 투표장 가서 투표 좀 하라고 돌아다녔지만 그 외에도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대로 떠들면서 트럭에 스피커 싣고 쿵쾅쿵쾅하면서 돌아댕겼다. 결과는 1,782표 득표로 지지율 1.89%. 7명의 후보자중 4위.


3월 15일 토요일, 국회 앞에서 게릴라 콘서트 겸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끌려갔으나 곧 풀려난 후 홍대 놀이터에서 더 놀다 갔다고 한다. 덧붙여, 어딜봐도 합성 같아 보였지만 진짜였던 포스터도 꽤나 이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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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디라인 아트미디어라는 엔터테인먼트사를 설립, 최고 마케팅 경영자 및 프로듀서로써 여성 랩퍼인 이비아슈퍼스타K 출신의 김국환 등을 서포트 중...이었지만 김국환은 밀어주는건지 뭔지 흐지부지하다가 결국 다른 기획사로 떠나보냈고, 계약 및 해지 과정에서도 잡음이 좀 있었다. 요점만 말하자면 1급 시각 장애 때문에 계약서를 직접 읽을 수 없는 김국환에게 디라인측이 상세한 설명없이 계약을 제안했으며, 계약금도 주지 않고 전속계약으로 붙들어놓으려고만 했다는 것.

이비아는 과도한 노이즈 마케팅으로 힙플 등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논란만 불러 일으키다가 별 성과를 얻지 못했고, 이비아 역시 디라인과의 계약 해지 과정에서 이비아라는 이름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등 잡음을 빚었지만 디지는 2012년 12월부로 디라인 아트미디어를 떠났으므로 그나마 이 쪽은 관계없는 이야기. 여하튼 디라인의 홈페이지마저 닫혀 있는 등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디라인은 결국 말아먹은 듯 하다.

2010년 5월 1일 4년동안 사귀어온 1살 연상의 연인과 결혼했으며 랩으로 자축가를 불렀다고 한다.

2011년 드렁큰 타이거 뮤직비디오 두두왑바바루에 우정출연.

2011년 9월에는 프로듀싱 앨범인 'Bleu Film : 2 Jazzy for Hiphop Vol.2 / Deegie's In Trumental'을 내놓았다. 말그대로 자신은 거의 프로듀싱에만 전념하고 랩과 보컬은 다른 이들이 맡아주는 식으로 제작된 앨범이며, 독특하게 한 앨범을 여러 개의 싱글로 쪼개서 발표하기도 했다. 참고로 본 앨범은 인스까지 합쳐서 3CD 분량.

이 때쯤 자신이 예전에 발표했던 디스곡 음원 불법 공유건로부터 불거져 자신에게 비판을 넘어 패드립급 악플을 남긴 다수의 네티즌들에게 자비없이 고소미를 때려버린 '김디지 힙플 국밥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1억 7800만이라는 피해액 정산 등의 문제와 역시 욕설을 써가며 개싸움을 벌였던 디지의 태도 때문에 이슈가 되긴 했으나 결국 1차적인 잘못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남긴 악플러들에게 있기에 어찌 어찌 넘어간 분위기.


19대 총선에는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예비후보로 출마 준비를 했으나, 2차 면접에서 탈락했다고 한다.

2016년 힙합플레이야와의 인터뷰에서는 MC 스나이퍼페이스북 친구라고 한다. 만나면 술 먹고 전화하고 친하게 지낸다고.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 이미 2012년에 발매된 스나이퍼의 앨범에 피처링한 적이 있어 화해한 지는 꽤 되었다. UMC/UW를 다시 음악을 하도록 꼬드기겠다고 한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남구 갑)무소속1,782 (1.89%)낙선 (4위)

3 논란

2015년 3월 언프리티 랩스타에 나온 타이미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악플심경글을 썼다고 한다.

타이미가 이비아 때 이끌어주었던 장본인이었고 위에 서술한 것처럼 디라인을 설립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타이미가 이 지경까지 된 만악의 근원이라고 알려진 듯 하다. 하지만 이 글을 보면 설립한 건 맞지만 바지사장? 사장이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고 위에서 서술했듯이, 타이미가 소속사와 마찰이 있기 전에 나갔고 "이비아 때는 좋았지"라는 걸로 봐서 타이미와 그렇게 마찰은 없었던 걸로 보았지만... 이전 글들을 보면 태도가 이랬다저랬다 바뀐데다 이 글은 "쟤 왜 저러지"라는 반응이여서 현재 여론이 타이미의 호감이 높아진 지금으로써는 김디지도 욕을 한사발로 먹고 있다.

위의 글와는 또 다른 글이 하나 있는데, 이 글은 완전히 타이미를 저격하는 글이다. 사실상 폭로에 가까운 글인데, 타이미 측은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 사실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는 중.[8] 그리고 순식간에 묻혔다

더불어 이른바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로 힙합을 접한 팬층이 '저 듣보잡은 뭔데 타이미 언니한테 이래라 저래라죠?' 라며 김디지를 공격하고 있다.

4 앨범 목록

발매 시기종류제목
2001년 5월정규 1집Insane Deegie
2001년 12월EPThe Last Winter Story
2003년 4월비정규반417일간의 세계일주
2004년 4월비정규반Bleu Film : 2 jazzy for hiphop
2004년 4월EP클리토레스 (상기 음반과 동봉하여 판매)
2008년 3월정규 2집Insane Deegie 2
2009년 3월비정규 싱글
2011년 9월프로듀싱 앨범Bleu Film : 2 Jazzy for Hiphop Vol.2 / Deegie's In Trumental
  1. 원맨 프로젝트의 개념. 일부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된 트랙에서만 사용했다.
  2. 참고로 부틀렉으로 내놓은 두 장의 앨범은 일부 물량만 풀고 재고를 모두 불태워버려 지금은 구할래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 되었다.
  3. 제목만 보면 버벌진트 디스처럼 보이나(실제 곡 부제가 '디지가 버벌진트에게.... 당신의 거울'이다.) 나중에 밝혀진 제목은 Feeling VJ였다. 4분 33초에서 모티브를 따온 곡.
  4. 이 둘은 디스가 아니라 패러디의 의도라고 훗날 발언했다. 그러나 f word를 당당히 집어넣는 바람에 상대편은 디스로 받아들였다.
  5. 오냐 씨발 것들아라는 노래에서 언급.
  6. 원제는 대통령 X까이지만 앨범에 수록되면서 제목이 변경됐다.
  7. 토야마 코이치 처럼 정치권을 까기 위해 출마했다고 한다. 본인은 노무현 탄핵 정국 당시 딱 1살 모자라서 출마 못하는 바람에 피꺼솟했다고.
  8. 하지만 김디지의 과거도 그렇고 디라인에서의 타이미의 대우가 워낙 시궁창이라서 오히려 김디지만 '구질구질하다.', '뻔뻔하다.' 등의 비난과 욕을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