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력

김무력(金武力)

1 소개

금관국(금관가야) 김수로왕의 11대손이며,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셋째(막내) 아들이다. 김서현의 아버지이며, 김유신의 할아버지이다. 금관가야의 왕자였으나, 금관가야가 신라에 복속된 후 신라의 장수가 되었다. 골품은 아버지를 따라 진골.[1]

2 생애

이름 그대로 무력이 높았는지[2] 진흥왕대 한창 신라가 세력을 넓히던 시기 신라의 장군이 되어 백전노장 이사부의 부관으로서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 유역 공략에 참여해 군공을 세웠으며, 삼국사기단양 신라 적성비에 김무력의 이름이 나온다. 이후 신라가 백제를 공격해 새로 신라가 차지한 한강 유역에 설치한 신주(新州) 지역의 도지사격인 초대 군주가 되었고, 나제동맹 결렬의 보복으로 백제성왕(백제)이 신라에 쳐들어갔을 때는 신주 국경의 병력을 이끌고 남하해[3]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을 전사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4]
  1. 단 아무리 같은 진골이라도 일단 신라 입장에서 굴러들어온 돌이므로, 김춘추를 비롯한 경주 김씨 진골들에 비해서 실질적인 대접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무력 본인을 비롯해 아들인 김서현, 손자인 김유신 등 가야계 신김씨들이 대대로 큰 공을 세우면서 조금씩 나아진다.
  2. 참고로 이름의 한자도 흔히 생각하는 그 무력(힘)과 같다(...)닉값
  3. 성왕은 한강의 신주 병력을 간과했던 듯 하다. 신주의 병력을 남쪽으로 보내면 한강 유역은 텅 비기 때문에 당연히 고구려가 신라를 빈집털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구려는 신라가 고구려로 오지 말고 백제랑 니들끼리 싸우라고 신라와 불가침 밀약을 맺어둔 상태였으므로 한강이 빈 동안 북방 돌궐 전선에 집중했고 이는 성왕의 패착이 된다.
  4. 직접 성왕의 목을 벤 것은 휘하의 비장 도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