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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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允植
1835년 ~ 1922년

자는 순경(洵卿), 호는 운양(雲養).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그는 개화사상가인 박규수, 유홍기의 영향을 받아 개화파가 되었으나 수구 성향을 가졌던 유신환의 영향도 받아 친청적인 성향도 갖고 되어 개화파 중 온건 개화파(동도서기론)에 속하였다.

갑신정변 때 온건개화파임에도 개화당 내각에 들어가기도 했으나[1] 위안스카이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청나라 군대를 데려와 급진개화파인 홍영식, 박영교 등을 죽였고 갑신정변을 실패로 만들었다.

그는 유신환에 영향을 받았기에 한일 합병 이전까지는 그다지 친일 성향을 지니지 않았고 갑오개혁때도 친일 내각에는 들어갔으나 친청 성향에서 서서히 친일 성향을 갖기 시작했던 김홍집, 어윤중과는 달리 친일적인 성향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경술국치 이후 조선귀족 자작 작위를 받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가 되었다. 1919년 독립청원서 제출로 인해 작위가 박탈되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으나 그 이후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에 임명되기도 했고 김윤식 사망 후에 사회장 문제를 둘러싸고 민족운동 진영이 분열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기때문에 친일파가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저서로는 음청사속음청사가 있다.
  1. 사실 온건개화파 중에는 김홍집, 신기선 등도 개화당 내각에 포함되었으며 유길준같은 경우에는 온건개화파임에도 친일 성향이 강했으며 급진개화파와 친하게 지냈다. 심지어 온건개화파인 윤치호, 윤웅렬은 갑신정변의 주동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