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한민국의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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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永敎
1906년 01월 01일 ~ 몰년 미상
1906년 경상북도 비안군 안서면(현 의성군 안계면)에서 태어났다. 상주공립농잠학교(현 경북대학교 상주캠퍼스)를 졸업하고 경성법정학교에 재학하다 중퇴하였다.
이후 안동군 농회기사, 의성군 농회기사, 의성군 안계면장, 안계국민학교 및 안계중학교 학부형회 회장 등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경상북도 의성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인 권병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무소속 권병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자유당 권병노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사퇴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1963년 자유민주당에 입당하였다.
2 조선 말기의 개화파
개화파의 대표적인 인물 박영효의 형인 인물로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의 영향을 받아 개화 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1884년에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키다가 실패한 뒤 홍영식과 함께 청나라 군대에게 살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