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렴

金正廉
1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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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의 군인, 경제관료, 정치인, 외교관으로 대한민국 최장수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유명하다. 호는 우명(又明).


2 일생

1924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으며 1946년 한국은행에 입사하여 은행원으로 근무하였다가 1949년 육군 준위로 임관하였다. 제3공화국이 출범한 이후 1966년 1월 21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취임하였으나, 동년 5월 삼성그룹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고 이에 대한 반발로 9월 22일 김두한국회 오물 투척사건으로 정일권 국무총리 이하 내각이 총사퇴하면서 퇴임하였다. 곧바로 다음해인 1967년 10월 23대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취임해서 1969년 10월까지 재직하였다.

이후 1971년부터 1978년까지 무려 8년동안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일하였다. 현재까지 최장수 재임기간을 달성한 비서실장. 1978년 건강문제를 이유로 비서실장직을 사임하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당시 시기 상으로 같은 해 연말의 제1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한 직후였는데, 청와대의 제1 참모로서 이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주일대사에 임명되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후임 비서실장은 주 대만 대사[1]였던 김계원.

공교롭게도 김정렴이 청와대를 떠난지 1년만에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사망했다. 이때문에 만일 김정렴이 계속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남았다면, 최소한 10.26사건의 현장에 있었다면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2]실제로 10.26 사건 직후 주일대사로 일본에 나가았던 김정렴이 급거 귀국했을 때, 그의 주위 지인들과 청와대 시절 동료들은 "당신이 청와대에 남아 있었다면 각하께서 이렇게 어이없이 돌아가시는 일은 없었을텐데..."라며 애통해 했다고 한다.

화폐개혁, 새마을운동, 산림 녹화사업에도 참여하는 등 주요 정책의 시행 및 사회 공헌에도 힘썼다.

3 트리비아

그의 아들 김준경 씨는 2013년부터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아버지가 경제 부문의 기술 관료였다면, 아들은 경제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셈.

그의 조카사위. 즉, 형의 사위가 김종인 국회의원이다.[3]


4 주요 저서

<한국경제정책 30년사>(중앙일보), 정치 회고록 <아, 박정희>(중앙일보) 등이 있다. 이들 저서는 기본적으로 박정희 시대의 치적을 찬양, 미화하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한계이긴 하지만, 당시의 경제개발 정책 등에 관한 사료로서의 가치가 상당한 것으로 평가되며, 여러 한국현대사 및 경제사 연구에서 자주 인용되는 저서들이다.


5 미디어에서


제3공화국에서는 배우 최상훈이, 제4공화국에서는 배우 신충식이, 코리아게이트에서는 배우 이묵원[4]이 그를 연기하였다.
  1. 중앙정보부 부장 자리에서 물러나고서 대만 대사로 부임했다.
  2. 김계원은 당시 중정부장 시절에 박 대통령의 신임을 잃고 비교적 한직인 주 대만 대사로 보직이동 되었다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추천으로 복귀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보니, 김계원은 김재규의 영향력 밑에 있었던 사람이다. 실제로 호형호제 할 정도로 김재규와 김계원의 친분은 컸기도 했고.
  3. 김종인은 이후 신군부에 협력해서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11, 12대 국회의원, 민주자유당에서 14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기용되나 싶었지만, 기용되지 않았다. 이후 민주당계 정당으로 갈아타서 17대 국회의원(새천년민주당, 비례)를 지냈었다. 2012년에는 보수진영으로 돌아와서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일하다가 박근혜 대통령과의 불화로 다시 민주당계로 들어와서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을 지냈으며, 20대 비례 국회의원이 되었다. 특이하게도 김종인은 비례대표로만 5선을 지냈다.
  4. 배우 강부자의 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