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남(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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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유나이티드 No.11
김호남 (金浩男 / Kim Ho Nam)
생년월일1989년 6월 14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전라북도 부안군
포지션윙어[1]
신체조건178cm / 72kg
출신학교부안남초 - 해성중 - 전주공고 - 광주대
프로입단2010년 사간 도스
소속팀사간 도스(2010)
광주 FC(2011~2015)
제주 유나이티드(2016~ )
트위터
2014 K리그 챌린지 베스트 일레븐
FW
아드리아노
FW
알렉스
MF
최진수
MF
이용래
MF
최진호
MF
김호남
DF
임창우
DF
윤원일
DF
허재원
DF
이재권
GK
박주원

별명은 호남의 아들, . 호남턴

매북을 상대로 정의구현을 하는 골을 만들어낸 선수

부안에서 태어나 중 고등학생 시절을 전주에서 지냈으며 대학교도 광주대를 다녔던 호남인. 단, 이름은 전라도 지역을 일컫는 그 湖南이 아닌 浩男[2]이다. 형 이름은 영남이라고. 영호남의 화합은 이루어졌다.

광주대 축구부 창단 멤버로 입단했으나 중퇴하고 2010년 당시 J2 리그 소속이자 윤정환 감독이 이끌고 있었던 일본 사간 도스와 대략 6개월짜리 계약을 맺으며 광주대 출신 최초로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간암으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던 아버지에게 프로 데뷔하는 모습을 하루 빨리 보여드리고 싶어 내렸던 결정. 그러나 6개월 동안 4경기 교체 출장에 그쳤고 이 시기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스스로의 회상으로는 그 때 철이 덜 들었었다고.

국내로 돌아온 김호남은 2011년 드래프트를 신청, 신생팀인 광주 FC에 1순위로 지명된다. 이 당시 광주 FC의 창단 멤버가 꽤 화려한데, 제일 유명한 인물들이라면 김동섭에 김수범, 김은선, 이승기. 그리고 강등전도사 주앙파울로. 그러나 저 멤버들은 알다시피 열악한 재정 상황과 강등 등의 상황이 겹쳐 다른 팀으로 다 팔려나갔고, 2015년 시점에서 김호남은 임선영과 더불어 팀의 유이한 원년 멤버가 되었다.

2011년에는 러시앤캐시컵 2경기 출전에 지나지 않았고, 2012 시즌도 1경기 밖에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버린 카드가 되나 싶었던 김호남의 축구 인생은 광주의 강등과 함께 제 2막을 맞이하게 된다.

광주 강등 첫 시즌이자 K리그 챌린지 원년인 2013년 김호남은 28경기에 출전해 7경기 6도움을 기록했다. 13득점 10도움으로 팀내 최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루시오에 이어 확연히 팀의 주축으로 자리잡은 듯한 모양이었으나, 이 시즌 광주는 3위를 기록하며 승강 PO 진출에 실패한다.

2014년에는 37경기 8득점 5도움으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승격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강원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경남과의 승강 플옵 2차전에서 막판 동점골을 넣으며 팀의 승격을 확정지었다.

1부 리그를 주전 멤버로써 제대로 맞이하게 되는 첫 시즌인 2015년에도 초반 대전과 부산과의 경기에서 2득점 1도움을 터뜨리며 흐름을 이어가는 중. 2015시즌 최종 성적은 29경기 8골 1도움. 팀내 최다골을 기록하고 팀이 K리그 클래식 잔류에 공을 세운다.

시즌이 끝나고 12월말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 김호남을 마지막으로 광주 FC에 2011시즌 창단 멤버는 없어졌다.

플레이 스타일은 빠른 발을 이용한 돌파 이후의 피니시가 장기. 그러나 승격 후에는 '나는 돌파를 좋아하지만 클래식에서도 통한다는 확신이 없다. 이제 동료도 이용할줄 아는 선수로 발전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고, 2015년 3월 21일 부산 아이파크 원정에서 파비오와 2:1 패스 끝에 결승골을 넣으면서 이를 완벽히 실천에 옮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여담으로 이범영 잔디훼손 사건때 그때 PK를 차서 실축했고 그게 팀의 패배로 이어졌으며 광주팬을 비롯한 타팀팬들이 이범영과 부산 아이파크선수들을 극딜했지만 정작 김호남은 "핑계는 대지않겠다. 모두 내가 부족해서 벌어진일. 앞으로는 더욱 노력하고 발전하겠다"는 트윗을 남겨 대인배 인증을 한다.
  1. 거의 왼쪽 윙 붙박이.
  2. 클 호에 사내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