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FC

?width=120 2017 시즌 참가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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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광주대구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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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수원울산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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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전북제주포항
K리그 챌린지 구단 사라진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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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블럼마스코트
보니&화니
광주 FC
Gwangju FC
정식명칭 광주 시민 프로축구단
법인명 ㈜광주시민프로축구단
구단형태 시민구단
소속리그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
창단 2010년
연고지 광주광역시
구단명 변천 광주 FC (2010~)
연고지 변천 광주광역시 (2010~)
홈구장 광주월드컵경기장
(40,245명 수용)
목포축구센터 [1]
구단주 윤장현 (광주광역시장)
대표이사 정원주
단장 기영옥[2]
감독 남기일
용품 스폰서 조마
셔츠 프린팅 더불어 사는 광주, 더불어 행복한 시민
상징색 노랑색 , 빨강색
마스코트 보니
홈페이지 [1]
트위터
페이스북
All in 광주 FC
유소년 시스템
U-18 팀 금호고등학교
U-15 팀 광주 광덕중학교
U-12 팀 광주 FC (U-12)

1 개요

K리그 클래식 소속의 프로축구단. 연고지는 광주광역시.

K리그 제 16구단이자 시민구단. 그리고 최초의 강등팀(...)이자 최초의 승격이후 잔류에 성공한 팀 광주광역시를 연고로 한 최초의 축구팀으로 탄생하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팀이다.

2 창단 과정

2002 한ㆍ일 월드컵 이후 월드컵 경기장의 활용 및 K리그의 양적 확대 차원에서 대도시에 축구팀 창단을 추진한다. 당시 광역시 중에 팀이 없던 곳이 대구, 인천, 광주였다. 이 중 대구는 2003년 시민구단 창단, 인천은 할렐루야 유치와 시민구단 창단을 고민하다가 시민구단 창단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문제는 광주였다. 광주광역시에는 큰 규모의 연고 기업도 없고[3] 게다가 광주의 인구도 광역시 중에서는 적은 축에 속했고 전남으로 외연을 넓히기에는 이미 전남 드래곤즈가 있었다. 그렇다고 당장 시민구단을 만들기에는 예산이 부족했다.[4] 아예 안 만들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기에는 월드컵 경기장의 활용 문제 및 시장의 업적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차선책으로 군 소속팀인 상무를 K리그에 참가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연고지는 광주로 정해 광주에 축구붐을 일으킨 후, 5년 후에 시민구단이나 기업구단 창단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광주 상무 불사조가 K리그에 참여한다. 당시 광주 축구팬들은 상무가 군인팀이라는 이유로 반대했으나,[5] 광주시에서 차후 프로축구단을 출범할 것을 약속하면서, 결국 수용한다. 그리고 광주광역시는 미리 가입금과 축구발전기금 40억을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지급한다. 그렇게 2003년부터 광주에는 상무가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약속기간인 2008년이 다 되도록 돈을 내놓고서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광주 연고 최대 기업인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접촉도 해 봤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스포츠에 큰 관심을 나타내지 않으면서 실패.[6] 한 때, 내셔널리그 미포조선을 광주로 이동시키고, 이 팀을 시에서 시민구단으로 전환하고, 미포조선과 같은 계열사로 조선소가 영암 대불공단에 있는 현대삼호조선에서 메인 스폰서로 지원하는 방법도 검토되었지만, 당시 시장인 박광태가 삼호조선이 직접 경영하는 기업구단을 주장하면서 무산되었다. 미포조선의 직접 경영은 불가능한 말인데, 이미 계열사인 현대중공업이 울산 현대 호랑이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마나한 소리.

결국 다 실패하면서, 약속기간이 끝날 때쯤인 2008년말 광주시는 약속기간을 2년 늘려달라며 뻗댔고, 광주 상무를 응원하던 서포터측은 분개하여 응원 포기라는 초강수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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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에 대한 우리들의 사랑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당장 갈 곳이 없던 상무팀 때문에 일단 연맹에서 2년 연기를 받아주기는 했지만, 대신 2년 안에 창단을 안 하면, 미리 납입한 40억도 돌려주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후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다, 2010년 4월 2일 광주광역시는 전격적으로 시민구단 형태로 프로구단을 출범 시킬 것을 결정한다. 롤모델은 강원 FC. 다만, 이 선언 당시, 이 선언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는 두 달 뒤 열릴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박광태 시장이 선언한 것이라, 선거 후에도 지켜질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달 뒤인 5월 3일, 광주 시민 구단 준비위원회를 발족했으며 13일 첫 회의에 들어간다. 5월 19일 이사회를 개최하고, 6월 3일부터 시민주 청약을 시작했다. 목표액은 10억원. 이로서 의구심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7월15일 시민주 목표액의 절반인 5억원 정도를 달성했으며, 준비위에서는 12월 안으로 창단을 끝내는걸 목표로 했다.[7] 광주 출신인 기성용이 창단비 1천만원을 쾌척하기도 했다.[8]

2010년 10월 18일 초대 감독으로 최만희 감독이 선임되었고, 2010년 10월 26일, 광주 레이어스로 팀 공식 명칭이 정해졌는데, 의도치 않게 분란이 되기 시작했다. 본래 의미는 빛, 섬광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Ray'가 빛고을 광주와 관련도 있고, 우승을 향해 빛처럼 뻗어나간다는 뜻을 따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Ray'는 가오리도 포함된 다의어라 홍어과에 속하는 가오리를 팀의 의미로 해석하면 반호남 지역드립의 상징인 홍어가 팀이름에 들어가는 꼴이 되기에 디시인사이드의 극우성향 갤러리 등에서 이를 조롱했다. 이 홍어드립 덕분에 원 공모자가 포기신청을 했고,[9] 신청 자체는 반려되었지만 이번에는 'Rayer'가 사전에도 없는 콩글리시라는 비판이 일었다. 결과적으로 팀명에서 레이어스를 제거했다. 이와 비슷한 전례가 하나 있는데 대구 FC 창단 당시 팀 명칭을 '대구 이글스'로 하려다가 반발에 부딪혀 그냥 '대구 FC'로 정한 사례가 있다.

팀명이야 어찌되었든 2010년 12월 14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광주 FC의 창단식이 열려 광주 시민구단이 공식적으로 탄생하면서 상무는 상주시로 떠났다.

3 연혁

3.1 1부 리그 시대(2011~2012)

박호진을 비롯한 베테랑 선수를 영입하고, 드래프트를 통해 신인 선수들을 영입해 선수단을 구성했다. 비록 팀의 메인 스폰서를 얻지 못해 재정적인 문제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2011년 3월 5일 창단 첫 경기이자, 첫 홈경기에서 대구 FC 상대로 3:2 승리를 기록했다. 전반적으로 2011년은 창단팀의 패기와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 시즌. 초창기에는 8경기 연속 무승으로 신생팀의 한계를 보여줬고, 이 위기를 극복한 FC 서울전의 승리는 황보관 FC 서울 감독의 자진 사임을 불러왔다.

여타 신생팀과는 다르게 제법 승수도 챙겼다. 그리고 막판 6강 PO 경쟁에서 고추가루 부대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초반에는 박기동이 공격을 주도했고, 시즌이 진행될 수록 김동섭, 이승기, 주앙 파울로가 공격을 주도했다. 적어도 공격진은 시민구단 중에서도 수준급을 자랑했다. 키퍼는 박호진이 그럭저럭 자기 역할은 다 했다. 이 중 박기동과 이승기는 국가대표로도 발탁되었고, 김동섭은 올림픽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올릴 수록 팔 때가 가까워지기는 하지만.

흑역사도 있었는데, 관중 뻥튀기를 한 것이 드러나면서, 광주 FC 팬들에게까지도 욕 먹었다. 광주 FC 홈페이지 게시판에 가면, 실명을 공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회원까지 나왔다. 언론에 기사화된 것은 당연지사. 여기에 채용비리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창단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실망감을 주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록 단장은 결국 무혐의처분을 받기는 했지만.

골키퍼 성경모는 승부조작 가담으로 인해 영구 제명되었다. 다른 선수들의 연루 의혹도 나왔지만, 다행이 묻혔고, 성경모 자신은 승부 조작을 하기로 했지만, 실제로 기회를 잡지는 못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흑역사는 흑역사. 다행히 다른 선수들에게까지 마수가 퍼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리그 최종성적은 9승 8무 13패로 리그 11위로 마무리했다. 중하위권이긴 하지만 열악한 재정 및 여러가지 악재 속에서 꽤 선전한 셈, 참고로 리그 10위인 성남 일화도 똑같이 9승 8무 13패였는데 골득실로 밀렸다. 보다 자세한 리그 결과는 위의 링크인 광주 FC/2011년을 참조 바람.

2012 시즌에는 부족한 재정 때문에 수비진의 공백을 전혀 메우지 못했다. 공격진은 나쁘지 않았지만, 수비진의 공백은 시즌 내내 발목을 잡았고, 결국 스플릿 B로 떨어진 후, 스플릿 B에서 부진을 거듭하면서 15위를 기록, 2부리그로 강등당했다.

광주는 일정도 아쉬웠다. 상무가 강제 강등에 대한 보이콧으로 스플릿 B의 전경기를 보이콧함에 따라 상무와의 경기 일정이 커다란 변수로 작용했다. 홈, 원정을 나눠서 각기 7번씩 총 14번을 치르는 일정 속에서, 광주의 첫번째 상주전은 스플릿 시작 후 5번째 경기였다. 다른 팀이 중간중간 체력을 비축했던 것에 비해 체력적으로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6번째나 7번째로 걸리는 팀보다는 나아 보이는 이 일정이 최악인 이유는 그 다음 주가 a매치 관계로 그러지 않아도 휴식기였기 때문이다. 경기감각과 긴장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다른 팀들도 체력을 보존하고 정신무장을 하기 때문에 휴식에 대한 이점도 전혀 없었다. 차라리 a매치 다음 주가 상주전인 것보다도 못한, 최악의 일정이었다. 결국 그 탓에 광주는 하위 스플릿의 호구 성남에게도 패배했고, 불운하게도 성남전 다음 주는 최강자 인천을 맞아 연패를 당하게 되었다.

더더군다나 광주의 2번째 상주전은 8번째 하위 스플릿 경기였고, 이 말은 광주가 나머지 6번째 경기를 연속으로 치룬다는 얘기였다. 성남과 인천에게 연패를 당한 다음에 휴식기를 가지는 건 연패를 당한 것이 문제이지만, 그러나 다른 팀이 휴식에 맞춰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반해 광주만이 최후의 6경기를 연속으로 치러야 한다는 건 너무나 불공평하고 가혹한 운명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2012 시즌 16개 팀 스플릿의 과밀일정 탓에 마지막 5경기는 주중 2경기로 치러졌다. 광주는 최선을 다했지만, 과밀 일정에 따르기 마련인 체력고갈과 부상과 경고 트러블에는 방법이 없었다. 일정 자체가 강등이라는 낭떠러지로 광주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상주의 보이콧이 불의의 사태이긴 하지만,[10] 2012시즌 강등은 최후의 한 끝 차이로 결정이 났는데, 정말이지 일정이 너무나도 불리했다.

결국 초대 감독인 최만희 감독도 강등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면서 2부 리그에서 새로운 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2013년 시작하면서 방만경영에 대한 기사가 떴다. 광고수입, 입장료를 다 포함하면 광주의 1년 예산에 버금가는 규모가 나오는데 대출을 받을 정도로 방만경영을 하고 있었다고.

강등후 파이어세일이 벌어져 이승기, 김동섭, 박기동, 박호진, 이용 등 기존 주전선수들이 대거 떠나버려 2부리그에서도 고난이 예상된다.

3.2 K리그 챌린지 시절

K리그 역사상 첫 2부리그 강등 팀이 되는 굴욕을 맛본 광주 FC는 K리그 챌린지 2013 우승 팀에게만 주어지는 승격 플레이오프 티켓을 목표로 시즌에 임하였으나 두 팀이 너무 강한데다가 시즌 내내 기복이 심하여 1위는커녕 2위조차 한 번 오르지 못하고 결국에는 승격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2014 시즌 개막 이후 4월까지는 기복이 있는 경기력을 내내 보여주면서 중위권을 유지했다. 상위권으로 올라갈 쯤하면 패배가 계속되면서 연승을 하지 못해, 좀처럼 치고 나가지 못했다. 1위 대전과 2위 안산이 상대적으로 치고 나가 혼전 양상이 된 챌린지 중위권에서 꾸준히 버티는데 성공하며, 결국 막판 유니버시아드 준비 관계로 홈 경기를 치루지 못한다는 약점도 이겨내면서, 꾸준히 성적을 내면서 4위에서 극적으로 미끄러진 FC 안양을 제치고 4위를 확정지으며 승강 PO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승강 PO에서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마치 정규시즌은 버린 양, 정규시즌에 오락가락한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인 양 승강 PO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뿜어냈다. 강원과의 준PO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이기더니, 부상자가 많았다는 행운도 따랐지만 경찰 축구단도 3:0으로 완파하고 승강 PO에 진출했다. 그리고 승강 PO 1차전 홈 경기에서 경남을 3:1로 잡으면서 이제 원정에서 두 골차 이상으로 지지만 않으면 승격에 성공하게 된다. 드디어 대망의 승강 PO 2차전에는 경남에게 선취골을 먹혔지만, 곧바로 김호남이 극적으로 동점골을 넣으면서 1:1로 경기가 종료되었고, 광주는 2012년 강등된 이후, 3년만에 다시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했다. 그렇게 3년만의 K리그 클래식 복귀로 선수들과 팬들은 기쁨의 비명을 질렀고 행복한 다음 시즌이 기다리고 있었다.

3.3 K리그 클래식으로의 복귀

2015시즌 전에는 강등 후보로 뽑혔으나 이러한 전망을 한 큐에 날려버리고 시즌 초중반까지는 승승장구. 강등권도 아닌 상위권 팀들을 위협하며 상위스플릿 언저리인 5~6위권을 오가며 2015시즌 K리그 클래식 최대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후반기부터 힘이 떨어졌지만, 광주광역시의 열악한 선수수급과 지원에도 불구하고 결국 K리그 클래식 잔류를 확정지었다! 챌린지에서 승격한 팀 최초의 잔류확정이라는 기록은 덤.

2016년에도 개막하기 전부터 무려 정조국을 영입하는 강수를 두며 스쿼드를 보강했고 이후로도 상위권 팀들을 꾸준히 위협하는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4 여담

  • 마스코트 '보니'로 활약하고 있는 사람이 놀랍게도 여고생이다(!!!). # 창단 준비부터 광주FC의 팬으로 있었다가 구단의 제안으로 2012시즌부터 시작했다고.
  • 위와 관련해서, 광주 FC의 마스코트는 봉황을 상징하는 화니(♀)와 보니(♂)이다. 보니하니와는 관련없다 그러나 팬들은 꼬꼬라고 부른단다 (...) 즉 위에 언급한 희원 양이 맡고 있는 역할은 수컷봉황이라는 것(...?!)
  • 위의 여고생은 기사까지 떴다.#
  • 2014년 10월에는 광주의 조기축구회 선수이자 서포터가 광주 FC의 숙소에 침입해서 2차례에 걸쳐 13켤레의 축구화를 훔친 사건이 있었다.기사
  • 클럽하우스와 전용연습구장 건설이 확정되었다. 2018년 개관이 목표라고 한다. 위치는 염주체육관 인근이다. 기사
  • 2012년에 유니폼 마킹을 특이하게도 선수들의 트위터 주소를 쓴적이 있다. 팬과 선수의 소통을 쉽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예상외로 반응이 안좋아서 1년만 하고 접었다.

5 역대 성적[11]

역대 성적
K리그FA컵
리그연도경기승점득점실점득실차순위결과
K리그2011309813353243-1111/1632강
201244101519455767-1015/16
강등
16강
K리그 챌린지20133516514535554+13/816강
201436131211514035+52/10
승격
16강
K리그 클래식20153181112352833-510/1232강
2016----------

6 역대 주장

광주 FC
기간이름
2011년박기동
2012년김은선
2013년박병주
2014년임선영
2015년 ~이종민

7 코칭스태프 명단

광주 FC 2016 시즌 코칭스태프 명단
직책이름영문 이름국적생년월일
감독남기일Nam, Ki Il30px1974년 8월 17일
수석코치장기봉Jang, Gi Bong30px1977년 7월 8일
GK코치기우성Ki, Woo Seong30px1978년 6월 17일
피지컬코치길레미-30px1982년 8월 26일
주치의이준영Lee, Jun Young30px1970년 7월 15일
분석관정재선Jung, Jae Sun30px1978년 3월 22일
트레이너김범수Kim, Beom Soo30px1987년 12월 27일
트레이너김용호Kim, Yong Ho30px1988년 3월 27일
통역서주항Seo, Ju Hang30px1985년 12월 8일

8 선수단 명단

광주 FC 2016 시즌 선수 명단
번호이름영문 이름포지션국적생년월일
1최봉진Choi Bong JinGK30px1992년 4월 6일
2정호정Jeong, Ho JeongDF30px1988년 9월 1일
3김영빈Kim, Young BinDF30px1991년 9월 20일
4웰링톤WellingtonDF30px1990년 2월 21일
5박동진Park, Dong JinDF30px1994년 12월 10일
6오도현Oh, Do HyeonDF30px1994년 12월 6일
7여름Yeo, ReumMF30px1989년 6월 22일
8이으뜸Lee, Eu DdeumDF30px1989년 9월 2일
9정조국Jung, Jo GookFW30px1984년 4월 23일
10파비오Fábio Neves FlorentinoFW30px1986년 10월 4일
11조성준Jo, Seong JoonMF30px1990년 11월 27일
12이민기Lee, Min GiDF30px1993년 5월 19일
13주현우Joo, Hyeon WooMF30px1990년 9월 12일
14김진환Kim, Jin HwanDF30px1989년 3월 1일
16송승민Song, Seung MinMF30px1992년 1월 11일
17이종민Lee, Jong MinDF30px1983년 9월 1일
18정동윤Jeong, Dong YunDF30px1994년 4월 3일
19박선홍Park, Seon HongMF30px1993년 11월 5일
20김정현Kim, Jeong HyeonMF30px1993년 6월 1일
21윤보상Yoon, Bo SangGK30px1993년 9월 9일
22조용태Cho, Yong TaeMF30px1986년 3월 31일
23김민혁Kim, Min HyeokMF30px1992년 8월 16일
24조주영Jo, Ju YoungFW30px1994년 2월 4일
25홍준호Hong, Joon HoDF30px1993년 10월 11일
26김성현Kim, Seong HyeonFW30px1990년 7월 1일
27김진수Kim, Jin SooFW30px1995년 5월 28일
28김의신Kim, Wui SinMF30px1992년 11월 26일
29김시우Kim, Si WooFW30px1997년 6월 26일
30심광욱Sim, Gwang WookFW30px1994년 1월 3일
31황인재Hwang In JaeGK30px1994년 4월 22일
32김상욱Kim, Sang WookFW30px1994년 1월 4일
33와다Wada, TomokiMF30px1994년 10월 30일
40이찬동Lee, Chan DongMF30px1993년 1월 10일
  1. 가끔 몇경기 개최한다
  2. 기성용 선수의 아버지이며, 광주축구협회의 회장도 겸임하고 있다. 기영옥씨가 단장직으로 일하면서 연봉을 모두 유소년 팀에 투자한다고 한다. 사실상 무보수로 일하는 셈이다.#
  3. 물론 광주를 기반으로 탄생해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으로는 금호아시아나그룹삼양사 등이 있다. 하지만 이 두 회사는 1980년대 초 프로야구 출범 당시 호남 연고 구단 창설과정에서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2010년 금호아시아나는 워크아웃 크리. 아마 안 될거야... 이외에도 광주에 공장을 둔 기아자동차삼성전자도 있지만 둘 다 광주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옅으며 이미 프로 스포츠단을 운영하고 있던 상태였다.
  4. 광주는 광역도시임에도 재정자립도가 16개 시도에서 늘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심지어 과거 옛 마산시보다 시 예산이 적은 적도 있었다. 거기다 인구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고.
  5. 본 소속팀도 아닌데다 2년마다 선수가 바뀌는 팀을 응원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선수들을 말뚝박게 할 수도 없고. 그런데 부산 상무는 선수들을 반강제로 말뚝을 박게 만들어서 논란을 낳기도 했다.
  6.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금사정이 당시 문제도 됐겠지만 일단 여기는 스포츠에 큰 관심이 없다. 있던 팀도 다른 곳에 처분할 정도. 대신 음악에 관심이 많다. 박삼구 현 회장도 그렇지만 그의 큰형인 박성용 명예회장이 꽤 유명한 클래식덕후였기 때문. 그래서 음악보다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원이 상당히 빵빵하다.
  7. 하지만 광주광역시 공무원들에게 시민주를 강제 할당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특히 구입 의무 대상이었던 5급 이상은 급수에 따라서 최소 10만원 상당의 시민주를 구입해야 했으며, 의무가 아니었던 6급 이하의 공무원들도 승진고과에 대한 염려 덕분에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매번 시민구단 창단 때마다 공무원노조에서 항의 성명을 내고, 공무원들이 딱히 K리그 시민구단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나 열성적인 지원 의식을 갖지 않는데는 이런 사정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도 돈이 부족한지, 공무원들에게 또 시민주를 사라고 종용하고 있다. 만만한게 공무원이지 뭐..
  8. 그리고 훗날 그의 아버지인 기영옥 씨가 이 팀의 단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9. 팀명은 공모로 선정되었는데, 1위 1명은 100만원의 상금이 있었다.
  10. 근데 따지고 보면 공평하게 돌릴 수도 있는 리그에서 상주를 강제 강등 시킨 건 광주를 비롯한 지방구단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결과다. 결국 경쟁팀 하나를 떨어뜨려놓고 나머지 하위 스풀릿 팀들끼리 돌린 러시안 룰렛에 광주가 당첨된 셈.
  11. 2011년을 끝으로 폐지된 리그컵은 제외. 참고로 리그컵은 2011년 조별리그 1승 4패 탈락이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