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환

혹시 윤성환을(를) 찾아오셨나요?

?width=120 (클럽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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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겸
(강원 FC)
남기일
(광주 FC)
손현준
(대구 FC)
김태완
(상주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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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홍
(FC 서울)
서정원
(수원 삼성 블루윙즈)
김도훈
(울산 현대)
이기형
(인천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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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래
(전남 드래곤즈)
최강희
(전북 현대 모터스)
조성환
(제주 유나이티드)
최순호
(포항 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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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현대 감독
윤정환 (尹晶煥 / Yoon Jong-Hwan)
생년월일1973년 2월 16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광주광역시
포지션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173cm
유스팀금호고등학교 (1988~1990)
동아대학교 (1991~1994)
소속팀유공 코끼리/부천 SK (1995~1999)
세레소 오사카 (2000~2002)
성남 일화 천마 (2003)
전북 현대 모터스 (2004~2005)
사간 도스 (2006~2007)
지도자사간 도스 유스팀 코치 (2008)
사간 도스 코치 (2009~2011)
사간 도스 감독 (2011~2014)
울산 현대 감독 (2015~)
국가대표 경력38경기 3골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
2002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
울산 현대 역대 감독
조민국
(2014)
윤정환
(2014~)
-

1 소개

광주광역시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 출생으로 북성중학교, 금호고등학교, 동아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지능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현역 은퇴 이후, J리그사간 도스의 감독으로 2014년 8월 8일까지 재임했다.

2 선수 시절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유공 코끼리에 입단하였다. 그리고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의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로 뽑혀 대표팀의 플레이 메이커로 큰 역할을 했다. 이후 조직력을 중시하던 당시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 밑에서 헝가리 출신의 요제프, 그리고 당시 무명이었던 김기동, 이을용, 故 윤정춘 등 미드필더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외에 1997년~1998년에 유공 코끼리/부천 SK에서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의 지도를 받았던 제자들로는 남기일(광주 FC 감독), 조성환(2014, 2015년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등이 있다.

이 시기 유공 코끼리는 니폼니시와 윤정환으로 대표되는 팀이었다. 비인기 팀이었으나, 니폼니시와 윤정환 때문에 팬클럽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포터 탄생의 큰 역할을 한 것이 고종수였듯이, 유공 코끼리(부천 SK)의 서포터 탄생에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윤정환이다. 당시 '유공-부천 경기는 표값이 아깝지 않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였으니 이쯤 되면 윤정환이 팀에서 갖는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여담으로 당시 니폼니시 감독은 윤정환에게 별다른 전술적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알아서 잘 한다고.

이렇게 부천 SK에서 1999 시즌까지 활약한 후 당시 불어닥쳤던 J리그 진출 열풍에 합세해 이적료 150만 달러에 2000년 J리그세레소 오사카로 이적하였다. 세레소 오사카에서도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였으나 당시 세레소의 주축이었던 일본 국가대표 출신의 모리시마[1]노정윤이 중원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포지션이 수비 쪽으로 밀리며 대한민국에서와 같이 인상적인 활약은 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대한민국에서는 윤정환이 보기 드문 유형의 선수이지만 일본에서는 흔한 유형의 선수인 것도 한몫했다.

그러다 2003년 다시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였으나, 감독과의 불화에다가 세레소 시절과 마찬가지로 중앙에는 터줏대감 신태용이 버티고 있던 탓에 활약은 미미하였다. 그 후 2004년에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였고, 2006년에 당시 2부리그 팀이었던 사간 도스로 이적한 뒤 2008년 3월에 은퇴하였다.

2.1 플레이 스타일

플레이 스타일은 전형적인 클래식 10번, 필드의 사령탑, 패싱 마스터, 플레이메이커.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

엄청난 시야와 패스 속도+정확도를 자랑하면서 화려하고 창의적인 스루패스를 쫙쫙 뿌려 주었다. 볼간수도 잘해서 빠른 드리블로 제끼기보다는 정확한 드리블로 지키는 드리블도 수준급이었다. 소위 말하는 테크니션. 또한 셋피스에도 뛰어나서 프리킥으로도 골을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위의 하이라이트에서 볼 수 있듯 중거리 슛에도 능한 킥에 관해서는 만능, 마스터였다

그러나 느린 발에 몸싸움이 안되는 약한 피지컬과 172cm의 단신으로 제공권에 문제가 있으며 특히 적은 활동량과 빈약한 수비력[2]이라는 양날의 검과 같은 선수였다. J리그에서는 잠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긴 했지만 전형적인 공격몰빵 공격형 미드필더이다. 그래서 윤정환을 중심으로 팀을 짤 수 있는 클럽팀에서는 몰라도 당시 강한 피지컬과 빠른 발을 중심으로 하던 한국 국대에서 윤정환이 한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만, 현역시절 "체력이 약하다"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당시 한국축구계가 스테미너와 힘, 몸빵 등을 모두 '체력'이라고 지칭하면서 졸지에 스테미너가 약한 선수 취급을 받았는데 윤정환은 몸싸움이 약하고 활동량이 적은 선수지 스테미너가 약한 선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활동량이 적은 덕분에(...) 체력온존형이라 풀타임을 뛰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뭐야 이거 좋은거야? 옛날 스타일이지 당시 한국축구계는 닥치고 피지컬이었던 시절이라 윤정환 같은 소위 테크니션이라는 선수들이 종종 체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반쪽짜리 선수 취급을 받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윤정환이고 이전에는 최문식, 이후에는 고종수, 심지어 안정환까지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한국축구계는 체력에서 스테미너와 힘을 2002 한일월드컵 준비과정에서야 비로소 구분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장점과 단점이 확실한 선수.

PC통신의 마지막 전성기였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엔 윤정환 기용 문제가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애틀란타 올림픽 대표팀과 유공 코끼리에서 보여준 화려한 패스 플레이에 매료된 수많은 팬들이 윤정환 위주로 대표팀을 운영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비쇼베츠호(올림픽대표)에서 함께 핵심 멤버로 활약했던 영혼의 단짝 최용수와 상반되게 차범근호(국가대표)에서 중용되지 못했고,[3] 이후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에서도 확실한 주력 멤버로는 도약하지 못하였다. 그나마 허정무는 윙백-윙포 4명을 쓰던 한국식 3-5-2에서 윤정환을 사용하기 위해 유상철-박지성의 더블 볼란치(수비형 미드필더)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결국 포기했다. 특히 최용수와 다시 만나 주전급으로 출전해서 금메달을 노렸던 방콕아시안게임에서[4] 4강전에서 태국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해 결승진출이 좌절되고 동메달을 따게 되면서 더욱 "윤정환은 국대와는 안맞는다"라는 인식이 굳어진 면도 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대표선수로 선발되었으나, 소속팀에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던 윤정환의 플레이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팀전술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 실력에도 단 1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지 못했다. 그나마 윤정환의 존재감을 알렸던 건 2002 한일월드컵 직전에 열렸던 스코틀랜드와의 경기에서 안정환과의 콤비플레이로 (일명 투정환 전술) 추가 골을 넣었던 그 때 딱 한 번이었다. 압박전술에 걸맞는 강인한 체력·체격, 많은 활동량과는 거리가 먼 선수였고, 특히 포지션 교체에 능한 올라운더를 원했던 히딩크 감독에겐 지극히 계륵같은 존재였다. 결국 김병지, 최은성, 최성용, 현영민과 함께 2002 한일월드컵에서 단 1분도 뛰지 못한 멤버가 되었다.[5] 결국 이름값이 있음에도 한 번도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다.[6]

정리를 하자면, 한국이 배출한 최고의 패싱 마스터지만 시대를 잘못 탄 불운의 아이콘이기도 한 선수. 10년 정도 일찍 태어나서, 예컨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면, 종종 롤모델로 거론되던 콜롬비아카를로스 발데라마처럼 활용되어 선수 본인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양쪽에 윈윈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3 지도자

3.1 사간 도스

정체된 국내 축구 지도자계의 초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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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 도스 감독 시절.

2008년 사간 도스와 재계약하지 못하고 은퇴했으나, 구단의 요청으로 프런트에 합류하였고, 2009년 1군 코치로 승격하였다. 2011년 사간 도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디비전 2의 1위로 팀을 끌어올렸고, 사간 도스는 팀 역사상 처음으로 디비전 1로 승격하였다.

사간 도스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강력한 몸싸움을 기반으로한 축구를 시도했는데, J리그의 섬세한 축구에 완벽한 해법으로 등극했다.

승격 후에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2014년에도 J리그에서 1위를 달리던 중, 8월 8일 사간 도스의 감독에서 갑작스럽게 퇴임하였다. 이에 대해 일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여러 억측이 나오고 있으나, 자세한 사항은 밝혀지지 않았다.

사간 도스의 전력강화부장인 나가이 타카유키와의 마찰이라는 설도 있다. 나가이 타카유키는 사간 도스의 전신인 도스 퓨쳐스부터 시작하여 구단이 휘청거리던 시절에는 무급으로 일을 맡을 정도로 구단에 대한 애정이 넘치던 인물인데, 문제는 그 애정이 패싱 축구를 추구하는 개인의 취향과 만나면서 삐뚤어진 방향으로 발현했다는 것. 당장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사간 도스였지만 자신이 그리도 좋아하는 패싱 축구를 장기적으로 자리잡게 만들기 위해 윤정환이 체력과 몸빵, 압박을 내세우는 지금의 스타일로 뭔가 성과를 얻기 전에 내친 것이다. 실제로 윤정환의 해임 원인에 대해서는 '전력강화부의 부정적 견해'가 제일 크다는 보도가 있었고, 해임 관련 기자회견에 구단 대표로 나온 것도 저 나가이 타카유키였다. 결국 우승 레이스에 끼어들었던 사간 도스는 5위까지 밀려났고 아챔진출에도 실패했다.[7]

그러나 단장과의 마찰 하나 때문에 1위하는 감독을 시즌 중에 자른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운 관계로 한국인 감독이 J리그와는 다른 압박을 중시하는, 즉 일본 축구보다는 한국 축구에 가까운 스타일로 한국인 감독이 J리그를 우승 할까봐 J리그 연맹에서 사간 도스 구단에게 압박을 넣은게 아니냐는 음모론이 일본에서도 제기되었고 한국에서도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음모론일 뿐이니 걸러듣도록 하자. 해임 사태가 터지기 전 사간 도스는 윤정환 감독과 재계약 협상중이었다. 또한 2013년 심각한 적자가 발생했고, 2014년엔 적자폭이 더 커지리란 비관적인 전망이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간 도스의 처사는 프로 스포츠 클럽으로 전혀 이해받을 수가 없는 행동이다. 무리뉴는 첼시 초기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심각한 감정싸움을 벌였고 파산한 클럽 첼시를 돈질로 유럽 탑 클럽으로 올려놓은 로만에게 자신에게 좀 더 많은 권한을 달라며 땡깡을 부렸으나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무리뉴가 성적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참고 감독으로 계속 기용했다. 그러다가 무리뉴가 잘린 시기도 선수단과도 불화를 겪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졸전하며 성적을 내지 못할때 결국 잘렸다.

축구계의 정점에 위치하는 레알 마드리드 같은 클럽도 성적을 내기 위해 클럽의 철학과 반하는 무리뉴 감독을 데려갔는데, 가진 것 없는 일개 시민구단 사간 도스가 단지 단장과의 마찰을 이유로 리그 1위를 달리는 감독을 시즌중에 잘랐다는 게 포인트다. 쥐뿔도 없는 시민구단이 감독의 힘으로 리그 1위까지 달리고 있는데 시즌 종료 이후도 아니고 시즌중에 자른다는 행동은 프로스포츠 클럽이 할 행동이 아니다. 그렇담 누가 감독 자리를 맡으려고 하겠는가?

그러나, 보통 이런 경우에는 프론트 혹은 선수단과의 마찰의 영향이 크다. 만치니 감독이 맨시티에서 경질될 당시에도 가장 큰 이유가 선수단과의 불화임을 생각해보면. 역으로 페예그리니 감독은 만치니 감독 경질 시즌보다 더 못 한 성적을 내고도 선수단과의 관계가 좋다는 이유로 살아 남았다. 때문에 해당 클럽만 단정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고 윤정환 감독의 사간도스 감독 시절을 폄훼하는 것도 옳지 않다.

3.2 울산 현대

3.2.1 2015시즌

총체적 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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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초 울산팬들이 바랐던 모습.

김신욱과 윤정환이 말하는 철퇴왕 2세

2014년 11월 20일, K리그 클래식울산 현대에서 조예스 조민국 감독의 후임 감독으로 와 달라면서 영입 제의를 받았다. 이에 윤정환 감독은 여러 언론에다 "울산의 영입 제의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고 밝혔으며, J리그의 여러 구단에서도 영입 제의를 받았기 때문에 울산 현대의 제의를 수락할지 고민했다. # 이 무렵 울산 현대에서는 단장을 교체하였다.

이후 보도로는 울산 현대의 구단주 정몽준의 의사가 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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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14년 12월 1일부터 공식적으로 울산 현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15년 3월 8일 공교롭게도 올림픽 대표팀 시절 '영혼의 단짝'이었던 최용수 감독이 이끄는 FC서울과 K리그 클래식 개막전을 치루게 되었다. 그리고 혹시나가 역시나, 실용주의 기질은 어디 가지 않아서 2년전 호거슨의 철퇴축구를 그대로 다시 들고 나와서 2:0으로 서울을 누르며 화려한 신고식을 올렸다. 조예스가 될성부른 패싱축구를 천명하며 불과 1년만에 팀의 근간을 많이 바꿔놓았는데, 다행히 철퇴축구의 핵심 멤버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팀을 맡은지 4개월이란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원상복구할 수 있었다. 또한 김호곤 감독이 매년 영입을 통해 전력을 업그레드했던 것처럼 현역 아시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제파로프 영입을 구단에 강력히 요청, 철퇴에 날개를 달았다.[8]

3월 15일 첫 원정 경기 상대는 하필 포항 스틸러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남 더비를 치뤘다. 시작 전부터 언론을 통해 선배 황선홍 감독과 언중유골 설전을 펼치며 주목을 받았다. 전반전 포항은 강력한 허리싸움을 걸며 제파로프를 기점으로 한 철퇴축구의 시발점을 적시에 차단하며 울산을 몰아붙이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전반 추가시간 단 한번 찬스를 그대로 제파로프가 득점으로 성공시켰고, 후반 시작 2분만에 포항이 무섭게 몰아쳐서 동점골을 얻어내며 경기양상은 한골 싸움에서 차차 난타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윤정환 감독은 김신욱을 투입해 양동현과 장신 타겟 투톱을 세우는 승부수를 던졌고, 이것이 적중해 포항은 제공권을 지키기 위해 수미를 내려 중앙을 두텁게 세웠다가 마스다의 중거리슛을 허용하면서 포항은 팀의 공수 밸런스가 무너졌고 결국 울산은 4:2로 대승을 거뒀다.

3월 21일 전남과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23일 전북도 인천과 득점 없이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울산은 득실차에 앞서서 리그 단독 선두를 차지했다. 이후 4월 5일 초반돌풍의 주역 광주마저 2:0으로 때려잡고 아직 리그 초반이지만 K리그 클래식 팀들 가운데 울산과 전북이 가장 탄탄한 전력을 바탕으로 순항할 듯 보이고 전북의 대항마로 불리던 수원, 포항을 제치고 다크호스로 부상하나 했으나...

4월 11일 리그 최하위 대전을 상대로 1:1 무승부를 캐더니, 이후 수원, 인천을 상대로 차례로 1:1 무승부. 심지어 대전과 같은 하위권인 부산에게는 졸전끝에 1:1 무를 캐고 제주에게는 1:2 역전패, 이후 전북, 성남에게도 덜미를 잡히며 순식간에 리그 7위로 추락했다. 7경기 무승. 6월 3일 부산과의 경기에서도 패해(0-1) 10경기 연속 무승.

경기력에서도 비판을 받는 것이 1골만 넣으면 무조건 수비라인을 내려서 잠궈버린다. 이 때문에 팬들에게는 재미없는 축구라고 욕먹으면서근데 울산 축구는 원래 이랬잖아 그나마 적절한 카운터로 승점은 신나게 따던 김호곤과는 달리 그냥 잠그기만 일삼다가 막판에 골을 먹고 비기거나, 아니면 역전골을 처맞거나 하면서 전임 감독 조예스와 버금갈 정도로 팀이 망가지고 있다. 더욱이 초반의 찬양일색과 달리 과거 사간도스 시절의 비화[9]까지 밝혀지면서 여러 모로 궁지에 몰린 상황.

6얼 17일 전북과의 경기에서도 선제골 넣고 잠그기 시도하다 전북에게 역전패 당했다. 후보 골키퍼 이희성이 부상으로 실려나가[10] 전날 동남아 원정경기 뛰고온 김승규를 출전시키는 혹사를 단행했는데 더 웃긴 건 잠그기도 제대로 안 돼서 김승규가 없었으면 영락없이 대패각이었다. 다만 이날 경기는 김승규 본인이 전북전에서 뛰고 싶다고 얘기했고 윤정환이 선수 명단에는 넣었지만 선발 출전이 아니라 벤치에 넣었는데(관련기사) 선발출전한 이희성 골키퍼가 불의의 부상을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그리고 조예스의 뒤를 이은 윤할이라는 별명을 획득했다 카더라 어허 반할은 챔스권 갔어

그리고 현재 7월 26일 조예스보다 심한 리그 10위를 안착했다. 타팀은 승점자판기로 판단하고 울산팬들은 무슨축구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영혼의 단짝인 최용수 감독도 무슨 축구 하고싶은지 모르겠다는 소리는 대부분이지만 성적은 낸다(아챔 연속 진출)본인말로는 3위까지는 노릴 수 있다고 하는데 3위 전남과는 승점 13점차다 덧붙여 거의 지원안해주는 부산의 윤성효 감독은 성적부진으로 사퇴했고 두팀의 승점차이는 4점이다 혹시나 강등이라도 된다면 2012 아챔우승 2013 2위팀이 2년만에 강등, 더불어서 승강제 도입 이후 시민구단도 아닌 기업구단이 강등당한 최초의 사례 발생이라는 최악의 형태가 된다.그리고 다른 기업구단이 강등

8월12일 후반기 첫 시합 영혼의 메멘토 승점자판기최용수감독의 FC서울과의 매치에서 드디어 패했다. 아직 조영철 등 새로 영입 한 멤버등이 안나왔다해도 쓰라린 패배였고 투자에 비해 당연한 성적에 감독이 짤린 부산과의 대결에서는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리고 22일 수원과의 경기에서도 패했다. 다행히도 울산의 순위는 여전히 리그 10위. 11위인 부산이 최근 주요 경기들에서 승점을 쌓는데 지속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하위 세 팀과 나머지 팀들의 승점이 급격하게 멀어질 수 있는 상황으로, 울산의 순위 반등도 점점 어려운 지경에 처하고 있다.

선술한 수원과의 22일 경기 직후 물어 뜯기 좋아하는 기자들마저 침묵할 정도로 좋지 못 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한다. "오늘따라 질문이 없네요?"라고 처량하게 되묻는 윤정환 감독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진 기자까지 있다는 후문. 긴 한숨을 복도에서 계속 토해냈다는 표현을 통해 봤을 때 지도자 역할을 계속 수행하는 것에 대한 큰 고민을 이어 오고 있음이 분명하다. #

29일 광주와의 시합에서 오랜만에 승리를 기록했다.[11] 이날 부산이 전남과 비기면서 승점차를 7점차로 벌려놓는데 성공했다. 9위 광주와의 승점차이도 2점인지라 울산의 활약도와 광주, 제주, 전남, 인천 등의 승점 변화에 따라서 7~8위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9월 13일 제주와의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고[12] 광주도 부산과 0: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광주를 추월하지 못하고 광주는 9위, 울산은 10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9월 인터뷰에서 윤정환 감독은 한국프로축구를 너무 몰랐다며 반성했다. 자신이 선수 생활때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수준이 향상되어 있었고, 경기장 안에서 벌어지는 스피드와 힘의 다툼은 밖에서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이었다는 것.

그리고 희망을 걸었던 FA컵은 영혼의 반쪽 최용수에게 4강에서 2-1로 패해 날아갔다. 그나마 부산이 심하게 부진해서 강등걱정은 안해도 된다는 게 다행이긴 하다. 구단에서는 후반에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내년에도 맡기겠다고 공언했다.

단, 윤정환을 변호할 요소, 아니 재평가를 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2015년 울산 선수단은 막장에 막장을 달렸다. 부상으로 인해 후반기에야 제 활약을 한 김신욱(?)[13], 경기를 거부해 최종전에 처음으로 교체로 10분 뛰신 고창현, 자기가 이브라히모비치라도 된 것마냥 입만 털면서 실제로는 경기장 구석구석 똥만 싼 하성민, 경기가 뛰기 싫어 퇴장당한 구본상, 그냥 존재가 문제인 정도의 김근환, 베테랑의 나이라 치매걸린 경기력을 보인 송유걸, 군 면제 이후 축구를 면제한 임창우 등등, 예전 우승팀급 명가 대우는 받고 싶은데 실력과 인간성이 쓰레기인 놈들이 한가득이다. 쓰레기 비하 발언 자제요 거기다 예전 김호곤 시절 지른 적자가 터지며 모기업 불황과 겹쳐 재정이 울산을 짓누를 잠재적 불안요소에서 현실적 문제로까지 떠올랐다. 윤정환이 아니라 누가 와도 안 될 팀이었다. 울산의 밝은 미래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를 갈아야 보인다. 이대로라면 감독을 갈아봐야 같은 문제가 터질 뿐이다그러니 공홈 멍청이들아 정신 좀 차려라

전술에 대한 부분도 얘기가 나오는 부분이다. J리그에서 성공한 전술을 거의 그대로 옮겨왔는데, J리그에서 쓰던 전술은 몸싸움을 기반으로 하는 전술이다. J리그의 섬세한 축구에는 강점을 보이지만, K리그는 아시아 축구 리그 중에서도 거의 최고로 거친 리그이다. J리그에서 통하던 피지컬을 이용한 전술이 K리그에 와서는 장점을 보이지 못하고 상쇄된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그나마 막판에 힘을 내서(10경기 연속 무패) 하위 스플릿 중 1위(전체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3.2.2 2016시즌

전, 중반기 : 노잼, 발암축구. 근데 이상하게도 순위는 높다

후반기 : 드디어 살아나나 싶더니...

전체 요약 : 15~16시즌 반 할과 비슷한데 FA컵 우승을 못함

양동현이 포항으로 떠나는 바람에 김신욱 파트너, 운용 문제를 놓고 또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부산에서 이정협을 임대했고, 포항에서 박성호를 데려왔다.

핵심 자원인 골키퍼 김승규가 J리그로 떠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서울에서 밀린 김용대를 영입했다. 다만 김용대는 나이도 있는데다가, 저번 시즌도 유상훈과 함께 번갈아 출장하면서 경기 감각이 많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실제로 김용대는 경력이 믿기지 않는 어마어마한 잔실수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똑같이 잔실수할 거 차라리 장대희를 키워라

3월13일, 2016 K리그 1R 상주상무와의 대결에서 0-2으로 패배했다. 진 것도 진 거지만 신입들이 모두 꽝이었다.

홈 첫 경기인 울산vs전북의 현대가 더비는 무득점 무재배 무승부 경기가 나왔다. 2만 명 이상의 관중이 입장할 시 윤정환 감독이 머리를 파랗게 염색하기로 했지만, 17000여 명으로 염색은 실패했다. 이번 경기 역시 기대하는 축구는 나오지 않았다...

현재까지 6라운드가 진행됐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이며 여러모로 많이 까이고 있다. 제주와의 경기는 홈에서 진행되었지만, 수비 축구를 하면서 경기를 풀어나갔고, 그마저도 선취골을 먹히며 1:0으로 패하며 온갖 욕을 다먹고 있다. 전술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는게 정론.

어린이날 펼쳐진 9R 성남과의 홈경기에서 0:3으로 지며 또다시 욕을 먹고 있다. 동심파괴 특히 김승규를 대체하려 영입한 김용대가 최악의 폼을 보이며 3골 중 2골 실점에 크게 기여했다.

파일:김용대 기름기름열매.gif
성남과의 첫번째, 두번째 실점 장면. 하다못해 김용대가 아닌 김병지를 영입했으면 저런 실점은 없었을거라고 욕하고 있다. 사실 두 번째는 황의조가 잘 찬거다

조덕제의 수원이나 남기일의 광주가 얇은 선수층과 자금력 한계로 팀 전력은 약하지만 감독의 확고한 주관 아래 좋은 축구를 선보인다면 윤정환의 울산은 화려한 선수층에 풍부한 자금력을 등에 업고도 축구를 못한다. 애초에 임대 선수 두명에 나이 지긋한 어르신 두명 데려와놓고 리빌딩이라 자처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팬들의 반응. 냉정히 보면 네명 다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이상 끽해야 1년 쓰고 말게 될 선수들이다. 즉 임대 선수들이 원래 소속팀으로 돌아가고 노장들이 현역 연장 의사를 밝히지 않는 이상 전혀 의미가 없는 리빌딩이 되는 것이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 이 난국을 타개하는데 도움을 줄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지 않는 한 뚜렷한 해결책은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와중에 뜬금없이 진 수원 남패 지못미

5월 21일 11라운드에서 수원을 4:2로 대파한 뒤, 12라운드에서 제주에 2:1 승, 13라운드에서 상주에 1:0 승리를 거두며 3연승을 달렸다. 그러나 언론과 팬들의 반응은 대략 좋지 않다. 이유는 근래 K리그에서 찾아볼 수 없던 졸렬한 노골적인 수비축구 때문. 비록 울산이 김정남 김호곤 두 감독을 거치며 팀 컬러가 수비축구로 굳긴 했지만, 김정남 감독 시절 울산은 아시아의 깡패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으로 통했고, 김호곤 감독 역시 철퇴축구로 명성을 드날렸다. 그런데 윤정환 감독은 스스로 실리축구라 강변하지만, 라이트팬은 물론이고 매니아들조차 이건 축구도 아니다며 울산의 형편없는 경기력을 성토할 지경이다. 백미는 13라운드 상주전. 전반 17분 일찌감치 뽀록선제골을 넣자 나머지 70여분동안 하프 라인을 넘을 생각조차 안했다. 심지어 6월 19일 열린 수원 FC와의 경기에서는 전반 3분에 김태환이 득점하자 장장 87분동안 시간까지 걸어잠궈버릴 기세로 우주 디펜스를 시전했다. 그리고 역시나 선수들이 아까울 지경이라고 대차게 까이는 중이다. 그리고 6월 29일에 있었던 동해안 더비에서는 주전들의 체력 안배를 위한다는 이유로 (!!) 비주전들을 경기에 대거 투입시켰고, 결국 0대4으로 처참히 개발살났다. 거기다 주심이 포항안티로 유명한 김성호였는데도 졌다.울산 입장에서는 최대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포항 스틸러스와의 동해안 더비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생각하면[14]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보.

하지만 그 다음 라운드이자 흑신욱멘디의 데뷔전이였던 수원 홈경기 역전승을 시작으로 노잼 축구가 진짜 실리 축구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경기 스타일 또한 노잼이기만 했던 축구에서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 스타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6~7월달 들어서는 멘디의 불을 뿜는 득점력과 함께 다득점 경기가 자주 나오며 노잼 축구라는 불명예를 씻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이 기간동안 승점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덕에 7월 16일 열린 광주 홈경기 (3:2 승)에서 이김으로써 현재 2위를 달리는 중이며 점점 윤할이라는 이름표 또한 떼어내고 있으며, 부정적이였던 팬들의 반응 또한 긍정적인 쪽으로 변화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광주전의 경우, 코바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개인 플레이가 잦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 경기에서 코바가 근육 부상으로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다득점 승리를 거둔 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평가를 해야 할 점일 듯하다.

하지만 광주전 승리 이후 인천과의 홈경기에서 1-3으로 완패했다. 이어지는 전북 원정에서는 김인성이 선제골을 기록했음에도 하필 김신욱에게 역전골을 내주며 치명적인 1-2 역전패를 당했다. 전남과의 홈경기에서는 0-2 완패를 당했다. 3경기에서 7실점을 기록하며 수비가 완전히 무너졌다.

여기에는 이재성의 부상과 정승현의 올림픽대 표 차출 공백을 메워야 했던 김치곤, 강민수의 끔찍한 수비력이 크게 작용했다. 전남전에는 이정협과 멘디를 투톱으로 세워놓고 의미없는 크로스만 날리는 눈이 썩는 공격력을 선보였다. 김용대의 부상으로 인해 정산과 장대희에게 기회가 돌아갔는데, 둘 모두 괜찮은 선방을 보여주나 싶으면 어이없는 실책을 범하기 일쑤이다. 그야말로 팀이 총체적 난국에 빠진 상황. 3연패를 당하며 순식간에 5위로 내려앉았다. 승점이 같으면 다득점으로 순위가 갈리는데 득점이 매우 적어서 순위 경쟁에 불리하다.

8월 3일 전북과의 원정경기에서 1-1로 비겼다. 여름에 새로 영입한 수비수 셀리오가 이재성과 호흡을 맞추며 견고한 수비력을 보였다. 이정협-멘디 투톱은 여전히 효과가 안 좋다. 아무리 봐도 챌린지에서 뛰기 싫다고 할 입장이 아니다 후반 45분 골키퍼 정산이 전북선수에게 킥을 갖다 바친데 이어 이동국의 발리슛을 어이없이 빠뜨려 선제골을 내줘 4연패를 목전에 뒀지만 몇 분 뒤 멘디가 극적으로 동점골을 넣었다. 장대희는 어리기라도 하지 정산은 왜... 쓸 놈이 없으니깐

한편, J2리그 세레소 오사카에서 윤정환을 영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
  1. 한일 월드컵에서 출전
  2. 수비력도 수비력이지만 애초에 수비가담 자체를 잘 하지 않는다(...)
  3. 이는 당시 전술 자체가 중원은 원톱일땐 김도근-유상철 투톱일땐 유상철 혼자 커버하다시피하고 양사이드에 윙을 4명 세워놓고 타겟 머리에 무한 크로스 올리던 전술이라 유상철 자리에 윤정환을 넣는다는 것은 중원을 버린다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또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더더욱 약팀이었던 국대 상황상 플레이메이커를 위주로 전술을 짜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했다. 아시아권을 상대로라면 모를까 유럽이나 남미같은 강팀을 상대로는 수비가 바탕이 될 수밖에 없었고.
  4. 당시는 아시안게임에 나이제한이 없어서 국대가 출전했다.
  5. 하지만 윤정환 본인은 히딩크에 대해 전혀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하다. 아니, 월드컵때 1경기도 뛰지 못했을 땐 섭섭한 감정이 있었지만, 이후 감독이 되어보니 피지컬을 중시하던 히딩크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선수 지도 등에 관한 부분을 모두 히딩크가 지휘하던 모습을 보고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하면서 지도자로써 현재는 매우 존경한다고 밝힌 바가 있다. 그런데 지도자 롤 모델은 역시나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이라고 한다.
  6. 94, 98 월드컵엔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7. 그런데 이건 2015년 아챔에 출전하는 K리그 4팀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진짜로 다행일 수도 있다. 만약 윤정환이 사간 도스를 2015년 아챔에 진출시키는데 성공하고 2015년에도 계속 사간 도스 감독을 맡았다면 K리그 4팀 중 한 팀은 윤정환이 이끄는 사간 도스와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서 만났을 것이다. 그 팀은 지못미... 예를 들어 광저우 헝다, 전북 현대, 사간 도스, 부리람 유나이티드 FC 이렇게 한 조가 되었다면?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8. 제파로프는 윤정환과 마찬가지로 10번 위치(공격형 미드필더)에서 플레이메이커 롤을 수행하는 선수다. 나이로 인해 피지컬, 체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플레이메이킹 자체는 K리그에서도 최상위권에 들어가며 아시아 내로 따져도 꽤 상위권에 들어가는 선수다. 그렇기에 윤정환이 제파로프를 조련하는 방법을 매우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실제로도 성공적이었다. 단, 위험요소였던 제파로프의 나이로 인한 체력 저하, 부상 문제가 실제로 터지면서 이후로 울산은 9월에 유스가 터지기 전까지는 되지도 않는 트윈 타워를 굴려야 했다.
  9. 네이버 축구 칼럼니스트 서호정 기자가 일본취재에서 밝히길 국내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사간 도스 내부에서도 팀 성적과 별개로 훈련, 전술 스타일에 대해서는 윤정환 감독을 따르는 일부 몇몇 선수를 빼면 대부분의 선수, 프런트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0. 갑작스러운 부상이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돌발상황이었다.
  11. 그러나 이날 경기도 광주에게 선제골을 내줘서 1:0으로 끌려가다가 2:1로 힘겹게 역전승하였기 때문에 울산에게 어느정도 운이 따라준 측면이 있다. 광주 FC/2015년 문서 참조.
  12. 김신욱의 페널티킥 실축과 김승규의 킥미스로 인한 실점 등으로 끌려다니다가 제파로프의 극적인 동점골로 겨우 무승부를 기록했다.
  13. 그래도 김신욱은 원체 바른 멘탈의 소유자라 멘탈 문제는 없었다. 결국 후반기에 주장을 달기 시작했고 18골로 득점왕에 올랐다그런데 베스트 11에도 못 들고... 물론 김신욱같은 경우 경쟁중에 하위스플릿에서 득점왕을 확정지었고 플레이 특성상 득점수에 비해 팀 기여도가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긴 했다.
  14. 간단히 말해 수도권에 슈퍼매치가 있다면 비수도권에는 동해안 더비가 있다. 그만큼 양 팀의 신경전은 상당히 치열하고, 경기가 시작되면 "다른 팀은 몰라도 쟤네만큼은 조진다" 라는 분위기가 형성될 정도로, 대단히 중요한 경기다. 그런 경기에서 저런 스쿼드를 선보였으니 울산 팬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피가 거꾸로 솟을 노릇.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급기야 울산 팬들이 구단 버스를 막아서는 사태가 발생했고, 결국에는 윤정환이 버스에서 내려 해명을 하고 난 뒤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경기였던 수원 삼성과의 경기에서 서정원감독이 똑같은 사태를 겪었다. 게다가 둘이 매우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윤: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