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唐聯合軍.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 맺어졌던 군사 동맹의 결과로 결성된 연합군이다.
1 배경
본래 삼국시대의 정세는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 이래로 전성기의 고구려군을 비교적 열세인 백제와 신라가 나제동맹을 맺고 연합해 서로 도와주면서 방어하는 형국이었으나 진흥왕대 신라는 한 세대만에 영토를 2~3배로 늘리는 급격한 팽창에 성공했고, 이에 북쪽의 고구려와 서쪽의 백제는 욱일승천하는 신라를 견제할 필요성을 느껴 여제동맹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동쪽의 현해탄 넘어에 있으며 신라의 배후에 있는 일본은 백제와 동맹국이었다. 신라 입장에선 적대적인 세 개의 나라에 둘러싸여 있던 샌드위치 형국이었기에 생존을 위해 강력한 외부 세력과의 동맹이 반드시 필요했다. 마침 고구려를 껄끄럽게 여기고 있던 당나라 역시 고구려를 견제할 동맹국이 필요했기에, 신라는 진덕여왕 재위기에 당나라에 동맹을 요청하기 위해 김춘추를 사신으로 보냈고 당나라 역시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그리하여 생긴 것이 나당연합군이다.
2 경과
648년, 후에 태종 무열왕이 되는 김춘추를 당에 파견하여[1] 신라와 당의 이해관계가 일치함을 확인하고, 이어 649년 당고종이 즉위하면서 백제에 신라의 성을 돌려줄 것을 요구함과 동시에 신라를 공격할 경우 당이 개입할 것이라는 것을 천명하였으며, 왜에도 신라 지원을 요구하는 등 본격적으로 나당동맹이 표명되었다.
660년, 당의 소정방과 신라의 김유신이 백제를 협공하여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을 함락시키고, 백제를 멸망시켰다.
668년, 당의 이세적과 신라의 김인문이 고구려를 공격하여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이후 나당연합군은 내분을 겪게 되는데, 발단은 당이 평양 이남을 신라에게 주기로 한 약속을 저버리고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 야욕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당은 평양에는 안동도호부, 공주에는 웅진도독부를 두고 경주에는 계림대도독부를 두어 신라의 문무왕을 계림 도독으로 삼았는데, 물론 당나라는 신라 고유영역까지는 직접 지배하지 못했으므로 계림도독부는 이름만 존재하는 허울뿐인 통치조직이긴 했지만 이는 명백히 고구려와 백제는 물론 신라까지 당의 지배 하에 두겠다는 당나라의 의도를 나타낸 것이다. 한편 신라는 이에 대하여 고구려 부흥 운동을 몰래 후원하여 당을 견제하는 한편 당과 직접적으로 대결하여, 나당 연합군은 와해되고 7년간의 나당전쟁이 일어났고, 이후 나당전쟁에서 당나라가 패배해 한반도 일대에서 세력을 물리게 된다.
세부적인 내용은 추가 바람.- ↑ 앞서 김춘추는 고구려와 일본에 각각 한 번씩 직접 건너가 화의를 요청했으나 결렬되어 아무 소득 없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