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문 : 배우/한국
본명 | 노운영 |
출생 | 1946년 8월 19일(서울특별시) |
소속 | 백제예술대학교(교수), 한세대학교(교수) |
학력 |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 |
데뷔 | 1968년 TBC 5기 공채 탤런트 |
수상 | 2005년 KBS 연예대상 베스트엔터테이너상 |
1 소개
1946년, 서울에서 3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 귀공자 스타일로 자랄것 같지만 사실 한국전쟁 때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홀어머니 아래에서 컸다. 그의 형은 LG전자 부회장인 노용악이며 여동생은 화가인 노숙자네??. 여담으로 어머니는 현재 100세라고 한다(...)...#
1968년 동양방송 공채탤런트로 연기경력을 시작해서 바로 주목을 받았으며[1], 1970년대엔 한진희와 함께 동양방송 멜로드라마의 단골 남자주인공으로 활약했으며[2] 당시 저 두 사람은 지금의 장동건, 정우성 만큼 유명한 꽃미남이었다. #
그리고 40대가 된 이후 80년대 후반(혹은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 이전에는 주로 높으신 분으로 출연하여 점잖은 이미지를 보여 주었다. 대표적으로 김수현이 집필한 사랑과 야망의 장홍조 역 등. 한마디로 높으신 분 전용 배우의 대표격인지라 도저히 코믹 연기하고는 접점이 없어보였지만 2000년 김병욱 PD의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주인공으로 출연해 코믹의 극치를 보여주면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다. 아니, 이미지 변신을 뛰어넘어 당시 노주현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컬처쇼크를 줬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한국판 호머 심슨이라고 불릴 정도로 단순무식한 아버지를 기가 막히게 잘 살려냈다. 그 덕분에 노주현을 잘 몰랐거나, 중후한 이미지로만 알았던 당대의 청소년과 젊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엄청나게 높아졌다.[3]
여자 아이돌 스타들과 함께 농촌 생활을 체험하는 이야기를 다룬 예능 프로그램인 청춘불패에 고정 출연하기도 했다. 예능 프로그램으론 최초. 왕년의 청춘스타가 이젠 딸, 손녀뻘 아가씨들과 시골에서 재미있게 지낸다는 컨셉 때문에 중년층 이상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기도 했다.
셰퍼드를 매우 애지중지하여 셰퍼드들을 대를 이어 키우고 있다. 80년대에 MBC 베스트셀러 극장 드라마에 여름특집 호러물로 방영한 개에 나와 섬마을을 공포로 몰고가는 미친 개를 연기한 게 바로 노주현이 기르던 셰퍼드였다. 독일 유명 셰퍼드 브리더들도 인정했을 정도로 품종적으로 우수한 셰퍼드라고...
영화의 경우 긴급조치 19호에서 보여준 악랄한 이미지와 까불지마에서 보여준 코믹한 이미지가 전혀 상반되어 있다. 까불지마의 경우는 노주현 정도면 나이가 엄청나게 많은 연예인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같이 호흡을 맞춘 두 명의 배우라는 게 하나는 최불암이요 또다른 하나는 오지명인지라 노주현은 완전히 막내로 전락하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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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노주현의 리즈 시절을 상징하는 것은 속옷 전문업체 태창의 '빅맨 CF' 시리즈.[4] 이 CF는 '남성의 상징&로망=노주현,빅맨' 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며 대박 of 대박을 쳤다. 오죽했으면 당시 각종 유행하던 유머 시리즈에도 '빅맨' 이 등장헀을까. 예를 들면 '3代 MAN'에 슈퍼맨, 배트맨, 그리고 빅맨이라든가.
2 주요 출연작
2.1 드라마
- 그래, 그런거야
- 오만과 편견
- 모두 다 김치
- 왕가네 식구들
- 감자별 2013QR3
- 폼나게 살거야
- 주홍글씨
- 수상한 삼형제
- 그 여자가 무서워
- 소문난 칠공주
- 똑바로 살아라
-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 사랑과 야망
2.2 영화
- 긴급조치 19호 : 비서실장
- 까불지마 :
벽돌과 개떡의 빵셔틀임삼복 - 미워도 다시 한번 1971년작, 시리즈의 4편격인 완결편에 출연한다. 당시 스타 아역 배우인 김정훈의 성인 역할. 이복 형제 역할은 홍종현, 성인 역을 김종결이 맡았다.
- ↑ 그가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70년대 초 한진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짧지만, 사실상 드라마 쪽은 노주현 독무대였다.
- ↑ 70년대 후반부터 임채무가 주인공 역할로 나타나며, 80년대에는 사실상 노-한-임 3대 트로이카를 만들었다. 그러나 후에 방송에 출연해서 과거를 얘기하던 노주현은 직속 후배였던 한진희를 인정하지만, 임채무에게는 "에이 임채무는 나한테 안 됐지"라며 자기보다 약간 아래로 보는 듯한 농담을 했다. 물론 농담이었으나 확실히 주연 커리어가 본인들보다 늦은 임채무를 경계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나이가 딱 세 살 차이다. 다만 임채무는 노주현과 다르게, 해병대를 나온 뒤인 20대 중반에 공채 배우로 데뷔했다. 더구나 30대 초반부터 주연으로 자리잡아 이것도 노주현보다 조금 걸렸다.
- ↑ 재미있게도 이는 극중 노주현의 아버지인 노구 역할로 출연한 신구도 마찬가지. 노주현에 비해서는 그 충격이 덜했지만 이쪽도 그 동안의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연기였다.
- ↑ 90년대 초반은 가히 내의업체 자체의 최전성기로. 한창 왕성히 활동하던 남자 연예인들을 간판 모델로 기용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당시 경쟁업체였던 쌍방울 트라이는 이덕화의 문짝 내려치기로 공전의 히트를 쳤고, 또 다른 라이벌 BYC는 유인촌과 김영철을 번갈아 기용하면서 자존심 대결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