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대성당

프랑스어로 노트르담(Notre-Dame)은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단어다. 그렇기에 프랑스에는 성모 마리아를 주보성인으로 하는 성당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규모가 작은 성당만이 아니라 샤르트르 대성당, 아미앵 대성당, 랭스 대성당, 스트라스부르 대성당과 같은 광대한 규모의 성당들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었으며, 참고로 샤르트르 대성당의 정식 명칭은 '샤르트르의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Chartres)'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이라고 하면 파리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을 지칭하기에 이 문서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프랑스어 :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영어 : Notre Dame Cathedral
이탈리아어 : Basilica Cattedrale Metropolitana di Notre-Dame
스페인어 : Catedral de Nuestra Señora de París
독일어 : Kathedrale Notre-Dame de Paris
일본어 : ノートルダム大聖堂

남쪽에서 바라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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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후진

1 소개

"아무리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라 하더라도, 이 성당을 보면 하느님을 믿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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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 파리의 시테 섬 동쪽에 있는 가톨릭 성당으로, 파리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다. 프랑스 고딕 건축 양식의 백미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빅토르 위고동명의 소설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1804년 12월 2일에는 교황 비오 7세가 참석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관식이 열렸다.

가시나무관성 십자가의 일부

이곳에는 가시나무관, 성 십자가의 일부, 엘레나의 성정과 같은 예수의 수난과 관련된 성유물이 봉안되어 있다.

2 역사

지금의 대성당이 있던 곳에는 성 에티엔에게 봉헌된 작은 규모의 성당이 있었지만, 1160년 모리스 드 쉴리(Maurice de Sully) 주교는 더 크고 아름다운 성당을 짓기 위해 파리 교구에 착좌하자마자 옛 성당을 가차없이 부수고 주변의 몇몇 가옥들도 함께 철거했다. 그리고 1163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가 초석을 놓으면서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곳은 후진과 성가대석으로 1182년에 완공되었으나, 전체 공정의 절반도 채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공사가 시작된지 33년 후인 1196년 9월 11일 모리스 드 쉴리 주교가 선종했다. 대성당의 서쪽 정면은 1200년경~1225년에 완성되었고, 서쪽 정면의 탑 2개와 북쪽의 장미창은 1250년에 마무리되었으며, 나머지 부분에 대한 공사는 1250년부터 약 1세기 동안 진행되어 마침내 착공 149년만인 1345년에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백년전쟁의 와중인 1431년 영국의 왕 헨리 6세가 이 곳에서 프랑스 왕으로 즉위식을 거행했으나 당시 파리 시민들이 잔 다르크를 적으로 여겨 싸웠을만큼 영국에 우호적이었음에도 그들의 반발을 불렀다.[1] 1456년에는 이 곳에서 잔 다르크의 명예회복재판이 교황청에 의해 정식으로 열려 1431년에 영국 측과 친영국파 프랑스 성직자들이 벌였던 종교재판으로 화형당한 그녀의 이단 판결과 마녀 혐의가 취소되었다.

3 건축

4 이 성당을 소재로 한 작품

5 그밖에

프랑스에 있는 관광지 중 외국인 방문객이 가장 많은 곳이며 유럽 내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2012년 연간 관광객 수가 1,400만을 넘었다. 2위인 루브르 박물관이 연간 방문객 수가 900만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차이이다. 물론 노트르담 대성당은 입장하는데 티켓을 구입할 필요가 없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덤으로 프랑스의 상징인 에펠탑은 프랑스 내 관광지 연간 방문객 수 4위로, 2012년 1년 동안 620만 정도가 방문했다.

성모 마리아가 프랑스의 주보성인중 한분이기 때문에 프랑스 어디를 가든지 중소 도시 정도 되면 같은 이름을 가진 성당이 있다.

프랑스 해외 영토에서도 이 이름을 가진 성당들이 남아있다. 물론 식민지이던 나라들에선 철저하게 뭉개지기도 했는데, 알제리알제리 전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고 독립하면서 알제에 있던 노트르담 성당을 도서관으로 바꿨다. 그런데 정작 도서관 바깥 동상이라든지 여러가지 성당 시절 잔재들이나 그림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그밖에 베트남은 이 이름을 가진 성당이 그대로 남아서 성당으로 존재한다.

프랑스 북부 지방인 알자스스트라스부르에도 이 이름을 가진 성당이 존재한다. 하지만 건축양식이나 색이나 프랑스보다는 독일 쪽에 가깝다.

  1. 원래 프랑스 왕이 정식으로 즉위를 하려면 랭스에 있는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해야 한다. 당연히 영국 왕실도 헨리 6세를 그 곳에서 프랑스 왕으로 정식으로 즉위시키고자 했으나 이미 잔 다르크가 1429년에 랭스를 탈환하고 그곳에서 대관식을 거행하게 해서 샤를 7세를 프랑스의 정식왕으로 즉위시킨 바람에 헨리 6세는 랭스에서 대관식을 할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여기에서 한 건데 오히려 이게 엉터리 대관식이 되어 어그로를 끌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