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 라우다


뉘르부르크링에서 사고를 당하기 전의 모습



현재 모습 나름 간지 노년의 모습. 화상으로 귀부분이 일그러진것이 보인다.

1975년 포뮬러 원 드라이버 월드 챔피언
1974 - 에메르손 피티팔디니키 라우다1976 - 제임스 헌트
1977년 포뮬러 원 드라이버 월드 챔피언
1976 - 제임스 헌트니키 라우다1978 - 마리오 안드레티
1984년 포뮬러 원 드라이버 월드 챔피언
1983 - 넬슨 피케니키 라우다1985 - 알랭 프로스트
이름Nicholas Andreas "Niki" Lauda
생년월일1949년 2월 22일
국적오스트리아
출신지
포뮬러 1 데뷔1971년 오스트리아 GP
포뮬러 1 은퇴1985년 호주 GP
소속팀마치(1971~1972)
BRM(1973)
페라리(1974~1977)
브라밤(1978~1979)
맥라렌(1982~1985)
주요 경력월드 챔피언 : 3회(1975년,1977년,1984년)
그랑프리 우승 : 25회
포디엄(시상대) : 54회
폴 포지션 : 24회
최고 랩 스피드 : 24회

1 소개

포뮬러 1 드라이버이자 현재 저가 항공사 Niki Air의 CEO.
70년대~8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F1의 레전드 중 한 명으로 불사조란 별명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

2 F1 커리어

1949년 오스트리아에서 명문 금융재벌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그가 레이싱을 하는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고, 라우다는 이에 반발하여 집안을 뛰쳐나와 레이싱을 이어가게 되었다. 무일푼으로 집안을 나온 탓에 은행 융자를 받을 당시 담보잡을 게 없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잡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F3, F2를 착실히 거쳐 나가 71년 마치 팀에서 드디어 F1 데뷔를 가졌고, 이후 BRM으로 이적한다. 루키 시절의 퍼포먼스는 그렇게 좋지 못해서 BRM 드라이버 시트를 확보하기 위해 자기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그 돈을 팀에 건내줘야 했다.[1] 그러나 BRM에서 만난 한 사람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는데 그 사람은 바로 팀메이트 클레이 레가초니. 성적은 부진하지만 그의 무궁무진한 포텐셜을 간파한 레가초니는 이듬해인 74년 친정팀 페라리로 복귀하면서 구단측에 라우다를 영입할 것을 강력히 추천했고 이 덕분에 라우다는 페라리의 차를 몰게 된다.[2][3] 페라리에 입단한 라우다가 Ferrari 312B의 머신 테스트 후 엔초 페라리에게 한 말은 "쓰레기만도 못한 차지만 내가 어떻게든 잘해보죠."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페라리 팬들은 처음엔 커리어가 시원치 못한 그를 미덥잖게 여겼고 페라리에서 첫해의 성적 역시 그저 그랬지만 이듬해인 75년에는 개인 첫 드라이버 챔피언이자 페라리에 10년만의 챔피언을 안겨 준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가 난리났던건 물론이요 무일푼으로 내쫓았던 집안 식구들도 이제는 그를 인정하게 되었음에도 정작 그는 무덤덤했다고. 챔피언 트로피를 동네 카센터 무료세차권과 교환했다고 한다(...)

이듬해에도 그의 페이스는 최고조였고 5승을 챙기며 그의 전성기를 순조롭게 이어나가는 듯 했다. 그런 상황에서 문제의 독일 GP를 맞이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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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높은 뉘르부르크링[4] 노르트슐라이페에서 그의 차량이 타이어와 브레이크에 문제를 일으키며 충돌, 화염에 휩싸이게 된다. 동료 드라이버들[5]의 목숨을 건 구조와 페라리 측의 신속한 지원요청으로 가까스로 구출되었으나 전신의 3도 화상, 골절, 유독가스로 인한 폐손상을 입게 되었다.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가망 없다는 판정을 받았으며, 신부 입회하에 병자성사까지 했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생명을 계속 이어나가더니, 급기야 6주 후인 이탈리아 GP에서 아직 화상이 덜 나은 몸으로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로 레이스에 복귀한다. 그리고 당당히 4위로 레이스를 마침으로써 불사조란 별명을 얻는다. 이 아저씨 뭐야...[7] 라우다는 이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빨간모자를 쓰고 다니며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가렸다. 그렇다고 라우다가 본인의 외모가 망가진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심지어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잘려나간 귀를 가리키며 "전화 받기 편한 귀가 되었어."라고 킬킬거리면서 농담까지 했을정도.

그해 마지막 경기인 일본 GP에서 챔프가 유력한 상황에서 3그리드를 확보하고도 그는 레이스에서 폭우가 내리자 안전문제를 이유로 레이스를 포기하게 된다.[8][9] 그리고 챔피언 자리는 친구이자 라이벌인 맥라렌의 제임스 헌트에게 단 1점차로 넘어간다. 독일 GP에서 천국 문턱까지 밟았다가 돌아온 걸 생각하면 이해할수 있는 결정이었지만, 페라리의 오너인 엔초 페라리는 이 결정에 대해 불같이 화를 냈고, 이로 인해 페라리와의 사이는 점점 벌어진다. 독일 GP에서의 사고에서 후속조치가 미흡했던 데 대한 항의의 표시로 다음 그랑프리인 오스트리아 그랑프리를 아예 페라리 전체가 보이콧했을 정도로 라우다를 아꼈던 엔초 페라리가 이럴 정도였으니 이 레이스 포기 결정이 얼마나 파급효과가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10][11]

이듬해인 77년에도 변함없는 기량을 과시하며 다시 페라리에 드라이버 챔피언십과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을 안겨줬지만, 엔초 페라리와의 사이는 점점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결국 78년 브라밤으로 이적, 두 시즌을 활동한 후 "목숨걸고 빙글빙글 도는게 지겹다."며 첫번째 은퇴를 한다.

비행가 조종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던 라우다는 이후 그동안 모은 자본을 바탕으로 저가 항공사인 Lauda 항공을 설립하고 CEO이면서 조종사로도 활동한다. 몇년 후 항공사는 자금난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그 때 맥라렌에서 드라이버 복귀를 제의 해왔다. 항공사 운영 자금이 필요했던 라우다는 이를 수락하면서 82년 다시 F1에 복귀한다.


아오.... 돈 때문에 이 짓을 또해야 하다니...

이미 죽을 고비도 한번 넘겼고, 나이도 30대 중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지만 그의 기량은 여전했다. 복귀 첫 시즌에 5위를 하며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었고 2년 후인 84년 팀 동료이자 후배인 알랭 프로스트를 간발의 차로 제치고 개인 통산 세번째이자 마지막인 월드 챔피언이 된다. 그리고 85년 1승을 거둔 것을 마지막으로 두번째이자 최종 은퇴를 한다.

3 은퇴 후

은퇴 이후로는 라우다 항공 [12]의 CEO로 계속 활동하다 주주들과의 마찰로 라우다 항공에서 손을 떼고 2001~2003년에는 재규어 F1팀의 보스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2003년 또다른 저가 항공사인 Niki Air를 설립, 현재까지 CEO겸 조종사로 활동 중이다. 또한 2012년부터는 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 F1의 비상임 회장 자리를 맡아 팀을 이끌고 있다.소속 드라이버 두 놈이 으르렁댈 때마다 고생하고 계신다.

4 영화화

니키 라우다와 그의 라이벌 제임스 헌트의 관계를 그린 영화 <러시(Rush)>가 2013년 개봉한다.

감독은 론 하워드, 니키 라우다 역에 다니엘 브륄[13], 제임스 헌트 역에 <토르> <어벤져스>의 스타 크리스 헴스워스가 출연한다. 시간적 배경은 니키가 사고를 당한 독일 GP 전후를 다룬다. 영화 촬영을 위해 당시 사용되었던 빈티지 레이싱카를 제작하거나 대여하였다.
  1. 한 마디로 페이 드라이버였다. 다만 그 때는 지금처럼 기업이 스폰서가 되어주는 시스템이 없었기에 자기가 직접 돈을 구해야 했다.
  2. 레가초니와 라우다는 사적으로도 관계가 좋았다. 타인과 확실하게 선을 긋는 타입인 라우다가 마음을 열었던 몇 안되는 F1 드라이버였다.
  3. 레가초니는 2006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라우다는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우애를 증명했다.
  4. 라우다는 이미 그전부터 뉘르부르크링이 구조적으로 안전에 매우 취약하다며 독일GP를 개최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었다.
  5. 헤스케스-포드 팀의 하랄트 에르틀가이 에드워즈, 서티스-포드 팀의 브렛 렁거, 울프-윌리엄스 팀의 아르투로 메르자리오 이상 4인. 특히 메르자리오는 소화기 한 대도 조달되지 않은 최악의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엄청난 화염 속으로 뛰어들어 라우다를 머신 밖으로 끄집어낸 장본인이다. 드라이버로서 크게 성공한 인물들은 아니지만 동료 드라이버에 대한 희생 정신으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네 명이기에 본 문서에서도 특기한다.
  6. 그리고 이 사건 이후 뉘르부르크링은 한동안 F1 캘린더에서 삭제되었다가 남쪽에 새로이 F1을 위한 GP Strecke를 만들고서야 F1에 복귀할 수 있었다.
  7. 레이스가 끝난 후 자신의 헬멧을 스스로 벗지도 못할 정도로 몸상태가 만신창이였고, 핏크루들이 헬멧을 벗겨 주자 피투성이가 된 붕대가 드러났다고 한다.
  8. 독일GP에서 그랬듯이 라우다는 서킷의 위험성을 들어 동료 F1 드라이버들에게 일본GP를 보이콧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고 이번엔 많은 드라이버들이 이에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시즌 마지막 그랑프리에서 챔피언이 결정되는 무대인데 주최측이 그랑프리를 취소할 수가 있겠는가.간단히 말해 돈 문제 결국 라우다의 주장에 동조하던 드라이버들도 어쩔 수 없이 레이스에 참가한다.
  9. 슬픈 사실은 라우다가 레이스를 포기할 때까지만 해도 쏟아지듯 내렸던 비가 그 후 점점 약해졌다는 것이다.
  10. 사실 라우다는 의식을 되찾은 이후 엔초 페라리의 이 결정에 "자신이 없는 동안 라이벌 제임스 헌트가 포인트를 따는 것을 최대한 견제하는 것이 팀의 임무인데 그걸 왜 포기하냐?"면서 분노했다고 한다. 이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에서 헌트는 3포인트를 땄고 이 3포인트 덕에 1976 시즌 챔피언이 될 수 있었으니 라우다가 엔초 페라리에게 분노한 것도 이해가 간다.
  11. 더군다나 페라리가 라우다의 회복기간 동안 대체 드라이버로 라우다와 사이가 유독 안 좋았던 브라밤의 카를로스 로이테만을 고용한 일이 겹치면서 라우다와 페라리 간의 사이는 그 전부터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12. 라우다항공 004편의 사고가 항공사고 수사대 13시즌에 방송되었다.
  13. <바스터즈: 거친녀석들>에서 독일 육군 저격수 프레데리크 촐러 일등병으로 출연했던 배우. 라우다와의 외모 싱크로율이 상당하다. 촬영을 위해 니키 라우다 특유의 오스트리아 억양의 영어발음까지 익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