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앤 포시

Dian Fossey
(1932.01.16~1985.12.26, 향년 만5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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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물 소개

미국의 인류 학자(정확하게 말하면 영장류학자). 고릴라를 보호하며 체계적 연구를 하던 사람이다. 르완다에서 평생을 살다시피 하며 고릴라 보호와 연구에 기여했으나, 반대로 욕도 퍼먹고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여성이다. 저서로는 '안개 속의 고릴라' 가 있으며 동명의 영화도 만들어졌다.

2 일생

다이앤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아버진 술주정뱅이에 가정적으로 무능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이기주의적인 면이 강했다. 결국 3살 때 이혼하여 새아버지를 맞이했지만 새아버지는 다이앤를 무시해 밥조차도 가정도우미와 같이 먹어야 했고 학비 일부를 겨우 도와주었을 뿐이었다. 친어머니조차도 새로 태어난 이복동생들만 아꼈기 때문에, 다이엔은 학창시절부터 말이 없고 사람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1954년 자비로 대학 수의사과를 졸업하여 한동안 동물병원 보조로 일하다가 다시 의료 대학 물리치료과를 전공하고 아동병원에서 일하였다. 그러다가 스스로 동물에 흥미를 보여 아프리카로 가게 된다.

1963년 벨기에에게 독립한 지 얼마 안 된 르완다에 가서 루이스 리키(1903~1972) 박사를 만난 뒤 운명적인 고릴라 보호의 길을 걷는다. 처음에는 그냥 관광객인 줄 알고 가볍게 대하던 리키 박사에게 여러 소동(한창 연구조사하던 유인원 관련 유적을 실수로 훼손하여 박사가 분노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이는 실수였고 그녀도 이 일로 다리를 다쳐 박사와 가까이 지내게 되는 인연이 된다) 끝에 인정받았다. 리키 박사는 포시와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 오랑우탄 연구자로 유명한 비루테 갈디카스까지 후원하면서 세 사람을 '루이스 리키의 세 딸' 이라 부르기도 한다.[1] 왜 여자만 지원해줬냐 하면 루이스 리키가 개인적으로 여성의 세심한 탐구 능력에 대한 일종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이앤은 리키 박사의 후원과 여러 가지 도움으로 고릴라에 대한 기초적 지식을 공부하다가 1966년부터 본격적인 고릴라 연구를 하게 된다. 당시 현지인 누구도 돕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돈을 주고 고용해야 했다고... 당연히 고릴라들도 다이앤을 피했다. 다이앤은 천천히 주변에서 자극하지 않고 고릴라들을 찍고 연구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서야 고릴라들은 마침내 다이앤이 적이 아니며 자신들에게 흥미가 있음을 알고 스스로 다가와 친구가 되었다. 다이앤은 너무나도 기뻐하여 맨 먼저 손을 내민 수컷 고릴라에겐 피넛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고릴라 무리들이 다이앤을 받아주자 다른 고릴라 무리나 새끼 고릴라들도 다가와서 털갈이를 하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곧이어 여러 고릴라들이 친근감을 표시했고 다이앤도 이들을 친구로 받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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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암컷 고릴라 디지트는 그녀가 애지중지하게 친했던 친구였다.

3 비극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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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얼마 후에 슬픈 일을 겪는다. 1977년 아끼던 암컷 고릴라 친구 디지트가 끔찍하게 죽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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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디지트의 머리와 팔이 잘려나간 시체를 서글프게 바라보는 모습.

디지트는 무리를 지키고자 사람에게 덤볐고 결국 참혹하게 죽었다. 디지트 말고도 여러 고릴라도 같이 희생되었으며 디지트의 새끼들은 잡혀갔다. 그뿐 아니라 포시가 아끼던 개도 희생되었다. 이 개도 오랫동안 고릴라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녀와 마찬가지로 고릴라들에게 친구로 대접받았는데 디지트가 죽던 날 디지트를 필사적으로 도우며 밀렵꾼에게 저항하다가 마체테로 참혹하게 난도질 당했다. 1978년에 만든 고릴라 보호기금을 디지트 펀드라고 이름 지을 정도로 그녀는 디지트를 잊지 못했다(이 펀드는 1987년에 다이앤 포시 펀드로 이름이 바뀐다).

비극은 계속되었다. 결국 첫 친구 피넛도 살해당했고 버트 아저씨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내던 나이 든 고릴라도 토막난 채로 발견된다. 연이어 고릴라들이 희생당하자 다이앤은 분노에 떨었으며 이후로 종전과 달리 고릴라 보호를 과격하게 하기로 마음먹는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면밀히 둘러봐서 고릴라 보호구역에 생긴 마을은 닥치는 대로 불태워버리기도 했다. 아예 괴이한 가면을 쓰고 "나는 마녀다. 너희들에게 저주를 내리기 전에 여길 나가라" 라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원망을 받았고 추방당했지만 기어코 다시 르완다로 돌아왔다. 연애 같은 것은 포기하고 독신으로 지내면서 고릴라 보호를 세계적으로 내세우며 주장했지만... 미국이나 유럽은 그냥 이런 여자가 있더라 하는 태도로 관망할 뿐이었다.

다이앤의 분노 어린 반응은 더해져서 밀렵꾼을 잡아다가 등에 칼질을 하고 저주하는 문귀를 쓰기에 이르고, 밀렵꾼의 4살된 아이를 납치하여 하룻동안 굶겨가두기에 이른다. 일이 이리되자, 르완다 정부에 민원이 터져나왔고 마침내 다이앤을 후원하던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리키 펀드는 이따위로 굴면 오히려 동물보호에 대해 증오하고 동물도 더 많이 학살되며, 나아가 동물보호에 앞장서는 이들을 훼손하게 된다고 경고하고 계속 이러면 지원금을 끊겠다고 압력을 가하기에 이른다. 르완다 정부는 줄곧 미국 정부에 항의하기에 이르고, 미국 언론에서도 고릴라에 미친 여자라고 자극적으로 기사로 보도되면서 마침내 미국 정부도 1981년 미국으로 한동안 오게끔 압력을 가하였다. 다이앤은 이에 굴복하여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에서 3년동안 살면서 1983년 책 '안개 속의 고릴라' 를 쓰며 죽은 디지트와 여러 고릴라를 기렸다.이 책은 제법 팔려서 후원금 없이 스스로 고릴라 보호를 하겠다고 여겼지만 르완다 정부는 입국을 번번히 거부했다. 다이앤은 다시는 밀렵꾼에게 폭행을 가한다든지 폭력을 벌이지 않겠다고 애원한 끝에 1984년에 르완다로 돌아왔다.

3년만에 돌아오니, 고릴라 밀렵은 크게 줄었다. 바로 르완다 정부에서 군대로 막았기 때문. 그러나, 그 대신 고릴라 관광이 운영되었다. 겉으로는 정부에서 밀렵을 강력히 막으니 잘된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다이앤은 고릴라들을 연구한 끝에 이상행동이 발견되며 이것은 관광객이 증가함에 따른 쓰레기, 질병, 이동경로의 방해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결론내린다. 그래서 고릴라 관광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무시당했다. 다이앤은 약속대로 이전처럼 폭력으로 고릴라 보호를 외치지 않았으나, 대신 고릴라 관광의 부작용을 해외에 홍보하며 이를 막으려고 한 탓에 르완다 정부와 충돌하였다.

1985년 가을, 키우던 앵무새가 독살되어 죽었고, 집 문 앞에서 퍼프애더(아프리카 독사) 조각들이 발견된다. 이 의미는 지역에서 사용되는 흑마술로 ‘죽음의 저주를 내린다’는 뜻이었다. 다이앤도 이대로 가다간 자기 역시 디지트를 따라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인들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결국 잠자던 도중 누군가에게 온 몸이 마체테(또는 도끼라는 주장도 있다)로 난도질당하여 삶을 마감한다. 1985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새벽, 얼굴이 여러 토막 나서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사건 현장에 다이앤의 호신용 권총이 있었으나 1발도 쏘진 못했으며 여권과 돈, 어떤 것도 범인은 건드리지 않았기에 누가 봐도 원한으로 인한 살인임을 알 수 있었다.

르완다 정부는 범인으로 르완다인 가이드인 엠마누엘 르위레카나(다이앤에게 해고된 적이 있고, 평소에 다이앤에 대해 증오를 표현했다고 한다.) 와 다이앤의 연구소 직원 미국인 웨인 맥과이어를 체포했다.맥과이어는 증거불충분이라며 미국에서 손을 써서 미국으로 무사히 귀국했지만 르위레카나는 본인이 필사적으로 부정했음에도 유죄판결을 내렸고 복역한 지 9달만에 자살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이앤 포시의 죽임 직후, 실제 범인은 르위레카나가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 주장을 맨 처음 제기한 사람은 환경운동가 팔레이 모와트(Farley Mowat)로, 그는 1987년에 출간한 다이앤 포시의 전기 '안개속의 여인(Woman in the Mists)'에서 그녀의 죽음이 고릴라 관광의 이익에 관련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실제 범인이 다이앤이 활동하던 지역인 루엔게리 주지사가 연루되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지금까지도 밝혀진 건 없다. 이 주지사는 르완다 대통령의 처남이자 고릴라 투어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쓸어모으고 있었기에 다이앤에게 원한이 컸다고 한다.

4 평가

고릴라 보호와 연구에 기여했지만 다이앤 포시에 대하여 침팬지 연구에 기여한 제인 구달과 대조적으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구달과 달리 과격한 방법으로 고릴라 보호를 몸소 실현했으나 오랜 내전과 경제적 문제로 도무지 벌어먹을 게 없는 르완다 사람들에겐 고릴라 보호는 배부른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다이앤은 무작정 사람들의 집을 불태우면서 증오를 만들었고 결국 자기 자신이 끔찍하게 토막살해당했다. 사실 고릴라 박제와 고기와 새끼 고릴라를 애완동물로 사가는 사람들은 유럽과 전세계 다른 대륙의 부유층들이므로, 이런 수요자들을 비난하고 판매라인을 막아야 했지만, 다이앤은 이런 부분에는 손을 쓰지 않고 다만 폭력으로 밀렵을 하는 르완다 사람들과 맞서 싸웠을 뿐이다. 이런 행위 때문에 르완다에선 지금도 다이앤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매도하며 증오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그녀를 두고 에코파시즘에 물든 백인우월주의자라는 적대적인 평도 있을 정도. 무엇보다 르완다 현지에서 지금도 다이앤을 이야기하면 현지인들이 얼굴이 싹 달라지며 죽어 마땅한 마녀라느니 레오폴드 2세의 사생아, 백인 고릴라년이라는 등, 극도의 증오를 가진 이들이 많다고 한다...

심지어 제인 구달조차 인터뷰에서 "나는 다이앤 포시가 제발 그 부족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바랐지만, 다이앤은 그러지 않았다. 다이앤의 죽음이 그 지역 원주민과 적대적인 관계 때문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월스트리트 저널그녀의 삶을 다룬 기사에서 "고릴라 보호에 대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큰 족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알콜중독자였고 또한 그녀의 고릴라들을 그녀 주위에 살고 있었던 아프리카인들보다 더 사랑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다만 다이앤이 순진한 젊은 시절에 르완다에 갔다가 일부 르완다 사람들에 의해 구경거리처럼 커다란 새장 안에 가둬져 강간당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르완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것은 이 기억 탓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이 일화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유는 다이앤 포시가 이 일을 친우였던 비루테 갈디카스와 몇몇 사람에게만 말했기 때문이다. 또 비루테 여사를 통해 이 일이 알려진 후에도 다이앤 포시의 증언에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도 많다. 왜냐하면 디지트 및 버트 아저씨 등 친하게 지내던 고릴라가 죽기 전만 해도 밀렵꾼들과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시가 아끼던 암컷 고릴라 논피가 영양[2]을 잡으려 놓은 올무에 걸려 다리를 절단해야 했을 때도[3] 올무를 설치한 밀렵꾼[4]을 용서하는 등, 20년 가까운 고릴라 연구 기간 중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되려 현지인과 친하게 지내거나 밀렵꾼과 가깝게 지내며 이해하기도 했다. 다만 10년 넘게 친근하게 지냈지만 갈수록 고릴라 사냥이 과격해진다고 느끼고 잊으려던 과거가 생각나서 점점 악랄하게 굴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다이앤 포시의 지인인 헤이즈에 의하면 그녀의 본인 삶에 대한 회고는 수시로 바뀌곤 했다고 한다. 어느때는 콩고의 군인들로부터 아무 해를 입은 적이 없었다고 말하고, 어떤 때는 집단으로 강간당했다고 말하는 등 일관성없이 말하곤 했는데, 이는 마치 자신을 신화로 둘러싸인 존재로 포장하려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다이앤 포시의 수시로 바뀌는 진술은 이것 말고도 여럿 있으니 이를 감안하여 듣는 편이 좋다. 더욱이 다이앤 포시가 강간당했다는 증언을 보면 콩고 군인들에 의해 철장 안에 여러 백인들과 함께 갇혔다가 다른 백인들은 한 명씩 끌려나가 모두 살해당하고, 자신만 윤간당한 뒤 살아남있다는 너무나도 허황된 진술을 하고 있어 그녀의 증언엔 어느 정도 과장이 섞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다보니, 현지인과의 친화 측면에서는 같은 '루이스 리키의 세 딸' 이라 불리운 제인 구달, 비루테 갈디카스에 비해 다이앤 포시가 늘그막에 보여준 것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현지인들에게조차 선생님이라 불리며 존경받는 제인 구달은 말할 것도 없고 비루테 갈디카스는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한 뒤 현지인과 결혼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현지인과 동화되었다. 이런 연구에서 연구자에게 현지인과의 친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두 사람과 달리 그녀가 간 곳이 르완다콩고[5]라는 점도 비극이다. 제인 구달은 운 좋게도 당시 아프리카에서 거의 유일하게 안정적[6]탄자니아에서 연구하면서 내전 걱정을 하지 않았고 니에레레 당시 대통령도 그녀를 이해하며 국가적으로 돕기까지 했다. 게다가 탄자니아 독립 이후 남은 백인에서 유일하게 투표로 국회의원(즉 현지인 흑인들에게 호감을 많이 받았다. 구달의 회고록을 봐도 흑인들과 친하게 지냈던 브라이슨의 도움을 잊지 못한다고 했으니)이던 데보 브라이슨과 재혼하면서 그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구달의 회고록을 보면 탄자니아에서 느긋하게 침팬지를 연구하다가 국경 부근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난민들이 오는 걸 보면 내가 참 운이 좋았구나 생각했을 정도였다. 갈디카스 역시 보르네오에서 안정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르완다는 내전이 한창 중이고 사람들은 동물 보호는 고사하고 전쟁과 폭동 속에서 굶주렸으니 고릴라 보호는 어려웠다.

게다가 그녀 사후에는 고릴라 보호 지원금 및 직접 쓴 책 판매로 벌어들인 돈들을 그녀와 원수지간이던 어머니와 양부가 상당수 빼앗아 가 버렸다. 위에 나온 대로 그녀를 어릴 적부터 외면하던 그녀의 어머니는 포시가 고릴라 보호를 위하여 일하게 되었다고 하자 "미쳤구나. 그런 쓸데없는 일로 나에게 전화하지 마라." 이 한 마디 하고 끊어버렸다. 공교롭게도 어릴 적부터 가정적으로도 불우했던 그녀와 달리 제인 구달이나 비루테 갈디카스는 부모가 동의하고 응원하며 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렇게 외면하고 심지어 장례식조차 오지 않았던 부모였으나 돈만은 예외라서 포시가 죽자마자 얼른 소송을 걸어 재산을 가로챘다. 덕분에 그녀 자신도 언젠가 이렇게 죽을 줄 알고 써둔 유언장을 남겨 자신이 죽거든 그 재산을 고릴라 보호에 써달라고 했으나 소송 끝에 저런 결과로 끝났다. 그나마 남은 돈으로 지인들이 르완다에 고릴라 보호 시설 및 그녀의 기념비를 세워 지금까지도 남아 고릴라 보호에 앞장서고 있긴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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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니 위버 주연 영화 '안개 속의 고릴라(Gorillas In The Mist: The Story Of Dian Fossey)(1988)' 가 바로 그녀의 일생을 다룬 영화이다. 위의 그녀의 저서에서 제목을 따온 듯. 네이버 영화소개 및 국내 비디오 및 DVD 제목은 '정글 속의 고릴라' 로 되어있다(국내 미개봉작이다). 그런데 TV 방영 제목은 '안개 속의 고릴라'. 어? 감독은 마이클 앱티드. 배급은 북미는 유니버설. 해외 배급은 워너브라더스. 2200만 달러로 제작하여 6139만 달러 흥행을 거둬들였다. 영화에서도 실제처럼 마지막에 잠자는 그녀를 누군가가 집으로 들어와 마체테로 내리치면서 끝이 난다..주말의 명화로도 더빙,방영된 바 있다.

현재까지도 르완다에서도 내전과 여러 사정으로 고릴라의 수는 나날이 수가 줄어들고 있다. 2008년 르완다에서 발견된 고릴라 시체들은 온전하고 그냥 총으로만 쏴죽였다. 이 상태로 보아 군벌들이 저지른 짓이라 파악(밀렵꾼이라면 이렇게 멀쩡하게 시체를 놔둘 리 없기 때문이다.)되지만 범인을 알아도 처벌할 수가 없기에 지금도 이런 고릴라 학살은 계속되고 있다. 고릴라 보호단체들은 그냥 쳐다볼 수밖에 없는 현실.

마찬가지로 콩고에서도 내전이 심해지면서 군자금 벌이나 전자제품(바로 스마트폰!)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될 콜탄이라는 자원 채취를 위해 숲을 마구잡이로 파괴하거나 식용으로 사용하려고 밀렵한 탓에 고릴라 개체수가 많이 줄고 있다. 콩고 공화국 안에서는 단 2마리가 서식한다는 듯('안개 속의 고릴라' 책을 봐도 콩고에서 살던 고릴라가 수백마리라고 나오던 걸 생각하면 얼마나 절망적인지 알 수 있다).

2014년 1월 16일에 구글에서 다이앤 포시의 생일에 맞춰 대문을 다이앤 포시 관련 테마로 바꿨다.

  1. 영어로 the Trimates라고 부르며 리키 박사 본인이 지은 호칭이다.
  2. 사실 고릴라 밀렵도 밀렵이지만 르완다에서 가장 많이 밀렵되는 동물은 바로 영양이다.
  3. 그래도 용케 6마리 새끼를 낳고 천수를 누리다가 병으로 1998년에 세상을 떠났다.
  4. 11명이나 되는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5. 여기도 르완다와 다를 거 없이 막장인 곳이라서 역시 고릴라 밀렵은 계속되었다
  6. 그 북아프리카 이슬람권 나라들도 내전 및 이스라엘과 전쟁, 국경 분쟁군부의 쿠데타, 왕가 반대파, 왕당파 내전구 제국의 재침공 및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난동으로 시달리던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