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카를로스(베르디 오페라)

Don Carlos (프랑스어 표기)
Don Carlo (이탈리아어 표기)

파일:/img/img link7/816/815086 1.jpg 파일:/img/img link7/816/815087 1.jpg역대 최고의 필리포 2세(펠리페 2세)로 불리는 니콜라이 갸우로프.[1]

파일:/img/img link7/816/815088 1.jpg오페라 한정으로 페이크 히로인 엘리자베타로 분한 미렐라 프레니

파일:/img/img link7/816/815083 1.jpg필리포 2세로 분한 니콜라이 갸우로프와 엘리자베타로 분한 미렐라 프레니

파일:/img/img link7/816/815090 1.jpg로드리고 포사 후작으로 분한 피에로 카푸칠리.[2]

파일:/img/img link7/816/815090 2.jpg 파일:/img/img link7/816/815090 3.jpg로드리고의 죽음. 돈 카를로역의 호세 카레라스와 로드리고역의 피에로 카푸칠리

파일:/img/img link7/816/815092 1.jpg로드리고로 분장한 셰릴 밀른즈[3]

파일:/img/img link7/816/815084 2.jpg 파일:/img/img link7/816/815085 1.jpg 파일:/img/img link7/820/819068 1.jpg로드리고로 분한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 주인공다운 포스

파일:/img/img link7/816/815093 1.jpg 파일:/img/img link7/816/815093 2.jpg진히로인 에볼리 공녀로 분한 그레이스 범브리[4]

파일:/img/img link7/816/815170 1.jpg 파일:/img/img link7/816/815170 2.jpg최고의 에볼리 공녀라는 찬사를 받은 아그네스 발차[5]

파일:/img/img link7/816/815169 1.jpg페이크 주인공 돈 카를로(돈 카를로스) 왕자로 분장한 호세 카레라스. 역대 최고의 돈 카를로스 왕자라는 호평이 많다.[6]

파일:/img/img link7/894/893397 1.jpg2013년 짤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돈 카를로스역의 요나스 카우프만과 엘리자베타 역의 안야 하르테로스. 비주얼 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호평이 많았고 여태 공연되었던 돈 카를로스 공연중 가장 원작에 의도를 잘 반영하려는 부분도 많았다는 찬사를 받은 공연이다.

파일:/img/img link7/894/893397 2.jpg2013년 짤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의 요나스 카우프만과 로드리고 역의 토마스 햄슨. 비주얼 상으로도 최강의 조합

파일:/img/img link7/894/893397 3.jpg현역 중에서 종교재판장으로 자주 맡는 에릭 할프바르손. 현역으로 활동한 종교재판장 전문 가수들 중에서 최강의 포스를 자랑하는 종교재판장으로 불린다.[7]

주세페 베르디가 프리드리히 실러의 운문 사극을 바탕으로 작곡한 오페라. 베르디가 자신의 커리어 중기 막바지에 들어설 때에 작곡된 것이다. 베르디가 만든 오페라 중에선 특이하게 다양한 판본이 나와있는데[8], 5막짜리 프랑스어판이 오리지날 이며, 이쪽이 맨 먼저 나온 것 이고, 또 하나는 이탈리아어로 가사 전체를 고쳐서 4막으로 줄인 버전이 있으며, 마지막 하나는 5막짜리 프랑스어판을 이탈리아어로 완전히 바꾼 버전 이렇게 세 가지가 존재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세 가지 판본 모두 인지도 있는 편이다. 어떤 연주자는 5막짜리 이탈리아어 버전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고, 어떤이는 프랑스어 오리지날 버전을 고르는 경우가 있으며[9], 다른 연주자는 4막 짜리 이탈리아어 버전을 선택해서 무대위에 올리곤 한다.[10] 물론, 가장 인지도 있는 버전이라면 5막짜리 이탈리아어 버전이라 하겠다.[11]

1 작곡 계기

베르디는 1861년 11월 22일 이탈리아를 떠나 파리베를린을 거쳐 12월초에 상트페르크부르크에 도착한다.새 오페라인 운명의 힘의 연습은 순조러웠지만 프리마돈나가 러시아의 겨울 온도탓에 병에 걸리면서 공연이 틀어지게 되며 공연을 대신할 배우가 없자 공연은 내년 가을로 미뤄지며 베르디는 연습만 하고 러시아를 떠나야만 했다.하지만 본인의 고향인 부세토로 돌아가자마자 1862년에 열리는 런던 만국박람회에 이탈리아 대표로 참석하기 위해 바로 떠난다(...)

박람회를 위해 시사적인 오페라를 써야했던 베르디는 썩 내키진 않았지만 국가를 대표한다는 의미에 3국 찬가에 시인 보이토의 시를 붙여 찬가를 만들었다.하지만 런던에 도착해보니 나폴리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미켈레코스타의 술수로 연주가 불가능하자 박람회장이 아닌 왕립 극장에서 이를 연주해야만 했다.

다시 러시아로 간 베르디는 운명의 힘 연습을 별탈없이 할수있었고 공연도 대성공에 막을 내린다.[12]거기에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공연 연출비 20만 프랑을 지급하는등 엄청난 보상까지 이어졌다.베르디는 러시아를 떠난뒤 파리로 가는데 파리 오페라 하우스는 운명의 힘을 올리자고 제안하나 베르디가 시칠리아의 저녁 기도를 올리자고 하여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지휘자가 연주 속도가 느리다고 지적하자 이에 삐진(...)베르디는 다시 이탈리아로 떠난다 어째 국가를 연달아서 떠나는것 같지만 넘어가자

몇 달후 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새 감독인 페렝이 4만 프랑의 작곡료를 제시하여 베르디에게 새 오페라를 제안하게 된다.베르디는 처음에는 거절 했지만 요청을 받아들여 오페라의 새 대본을 구해달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오페라의 시작이라고 볼수있겠다'

2 열받은 베르디옹

1866년에 베르디는 새 오페라 대본작업에 들어갔고 이시기에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던 베네치아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하게된다.정치적 일에만 관심이 많던 베르디의 이런 성향탓에 작곡은 늦게 끝났고 연습도 늦게 시작되었다.

1867년 3월 11일 마침내 프랑스의 황제인 나폴레옹 3세와 그의 황후,그리고 높은 지위의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공연된다.

관객들은 열광적인 환호대신 존경을 표하는 박수를 쳐주었는데 이는 황후가 하필이면 왕과 종교 재판관의 대립장면에서 굉장히 불쾌한 내색을 보였기때문이다(...)하필 황후탓에 눈치만 보기 급급해서 그랬던것.

베르디는 다시 한번 바그너에 물들어서 음악의 전통을 해쳤다는 비난까지 받게되자 굉장히 분노했고 파리에서 여러 일로 괴로웠던 그는 파리를 다시 떠났다.

그뒤 6월 런던에서 상연되는데 이때는 파리에서와는 달리 엄청난 환호를 받게된다.

3 다양한 버전

위에서 소개글에 써져있듯이 돈 카를로스는 5막으로 이뤄진 파리 초연판, 4막[13]으로 구성된 밀라노판, 5막으로 구성된 모데나 판본이 있다. 허나 이렇게 세 가지 라는게 아니고 파리판에서도 발레부분이 들어가고 로드리고의 죽음 장면 후 구슬프게 흘러가는 라크리모사가 들어간 버젼[14]이 있고, 발레만 들어간 버젼이 있으며 4막짜리 악보에서는 발레랑 라크리모사가 아예 잘린 버젼과 발레가 들어간 버젼이 존재하고[15] 5막 모데나 버젼에서는 발레를 생략하고 라크리모사를 넣은 버젼과 혹은 발레와 라크리모사를 모두 수록한 버젼, 또는 파리 초연때의 멜로디를 그대로 사용한 버젼[16]도 있고, 아예 로드리고의 죽음에서 끝나는 3막버젼도 존재한다.[17] 가장 많이 연주되는 것은 발레도 생략하고 라크리모사도 생략된 4막 밀라노판과 역시 둘 다 생략된 5막 모데나 판본인데 이유는 리코르디사에서 가장 먼저 출판된 악보들인데다 공연시간을 고려해서 라고 한다. 실제 한국 공연때도 보통 4막 밀라노 판본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18]
물론 예외도 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돈 카를로스 초연판 악보를 복원하여[19] 1978년에 밀라노 스칼라좌에 공연한적이 있다. 이 공연은 플라시도 도밍고, 마가렛 프라이스, 예브게니 네트렌스코, 레나토 브루손, 엘레나 오브라초바, 루이지 로니 라는 중량감 넘치는 성악진들이 출연했으며 루카 론코니가 총 무대감독을 맡았다. 지금보면 화질이랑 음질의 열악함은 둘째치고 카메라 워크가 진부하고 산만한다던가 성악가들의 연기가 도밍고를 제외하고는 모두 목석연기를 보여주고 무대 연출에서도 유치하다는 느낌도 없잖아 보이지만[20] 초연판 멜로디를 모두 복원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큰 공연으로 평가받는다.

1977-78년 라 스칼라 시즌으로 공연했던 돈 카를로스 실황.

아바도의 뒤를 이어 안토니노 파파노가 이 초연판 악보를 말끔하게 정리한 버젼을 연주한 적이 있는데 1996년 샤틀레 공연이 이에 해당된다. 비록 발레가 빠진 버젼이지만 오페라 실황으로써는 프랑스어로 연주된 점이라서 의미가 큰 공연이고 당시 신인이면서 막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던 로베르토 알라냐, 카르타 마틸라, 토마스 햄슨, 발트라우트 마이어와 베테랑이자 연로에 해당되었던 호세 반 담[21]이 출연했다. 요즘으로 치면 굉장히 초 호화급 캐스팅을 기용한 셈.
이후 역시 파파노가 지휘한 2013년 짤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모데나판이 아닌 라크리모사가 들어간 판본을 사용했다. 이 실황에서는 요나스 카우프만, 토마스 햄슨, 안냐 하르테로스, 마티 살미넨, 예카테리나 세멘체크가 출연했으니 역시 초 호화진이다. 1996년 샤틀레 실황과 2013년 짤츠 실황 모두 DVD와 블루레이로 출시되었으며 여태 나온 돈 카를로스 실황들 중 보는 몰입과 가수진들의 연기, 음악성 모두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22]

아예 초연 파리버젼을 무삭제 완전판으로 공연한 적도 있다. 현재까지는 초연판 악보 그대로 무삭제 공연한것이 2004년 빈 슈타츠오퍼의 페터 콘비취니 포로덕션 공연이 유일하다. 이 공연의 의의는 무려 137년이나 걸려왔던 초연판 그대로 노컷트 공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통상 자주 삭제되는 3막 1장의 발레음악이나 로드리고 죽음 이후의 라크리모사나 피날레 장면조차 초연판 악보에 있던 것을 그대로 살려있다. 청취적 감상에선 재미없다는 평도 있고, 연출과 무대가 돈 카를로스와는 뭔가 언밸런스하다 라는 평도 많은 공연이지만[23] 137년만에 걸친 오리지날 무삭제 공연이라는 점에서 참고서가 될 만한 실황이다.

파일:/img/img link7/894/893395 1.jpg2004년 빈 슈타츠오퍼 극장 실황에서 돈 카를로스를 맡은 라몬 바르가스와 로드리고역의 보 스코프스

파일:/img/img link7/894/893395 2.jpg바르가스와 엘리자베트 발루아를 맡은 라노 타마르

2004년 빈 슈타츠 실황 공연의 종교재판 장면 바르가스가 던진 유리컵값 아깝겠다.

이렇게 다양한 판본이 나온 이유는 베르디의 어른의 사정이 있다.

4 실러의 원작과 차이점

5 트리비아

  • 마이너에 속하지만, 의외로 오페라 영역중에서 여성 오타쿠들의 모에 요소가 가득한 오페라로 꼽히고 있다. 예전이라면 사람들이 그냥 노래만 듣는 수준에 그쳤으나[24], 요즘에는 오페라계가 비주얼과 연출 중심으로 이뤄지는 추세다보니 BL적인 느낌으로 보일때가 많은게 있는데 돈 카를로스가 거기에 속한다.(...) 예를 들자면 카를로와 로드리고의 이중창 장면이라든가, 필리포와 로드리고의 장면이라든가, 로드리고가 죽을때 울면서 껴안은 카를로 라든가.(...)[25]
  • 베이스-바리톤 에릭 할프바르손은 안토니노 파파노가 지휘한 세 가지 돈 카를로 실황물에 모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전부 종교재판장 역할이다.(...) 덕분에 오페라 팬들은 할프바르손이 아무리 분장을 다르게 하고 나온다해도 모두 알아본다고 한다. 에릭 할프바르손은 보리스 고두노프 타이틀롤과 마술피리의 자라스트로도 맡았었지만 정작 대중들에게 알려진 역할은 종교재판장이다. 지못미. 근데 포스가 그 쪽이 큰걸 어쩔수가 없는 현상이잖아.
  • 베이스 역할이 세 명이라서 그런지 어떤 극장 공연에서는 종교재판장을 맡았던 가수가 펠리페 2세를 맡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또는 펠리페 2세를 맡는 가수가 종교재판장이 되기도 하고, 수도승을 맡는 경우도 있다. 현역으로 펠리페 2세로 유명한 페루초 푸를라네토의 경우 1983년 메트로폴리탄 실황에선 종교재판장으로 나온 경우가 있었고[26] 1986년 카라얀이 지휘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을 계기로 펠리페 2세를 맡기 시작했다. 니콜라이 갸우로프의 경우 스튜디오 음반상에서는 펠리페 목소리를 두 번이나 맡았고[27], 딱 한번 종교재판장의 목소리를 낸 기록이 있다.[28] 1986년 짤츠 실황에서 종교재판장을 맡았던 마티 살미넨은 파파노가 지휘한 2013년 짤츠 실황에서 펠리페 2세로 나왔고, 베이스-바리톤 루제로 라이몬디의 경우 펠리페 2세와 종교재판장, 수도승 역을 모두 맡은 기록이 있다. 베이스 가수 로버트 로이드의 경우 현재는 수도승으로 더 유명하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펠리페 2세로 유명했었다. 호세 반담의 경우 카라얀의 발탁으로 음반과 실연에서 수도승을 자주 맡았었지만 이후엔 펠리페 2세를 자주 맡았었다. 이처럼 베이스 가수들이 번갈아가면서 펠리페와 종교재판장, 수도승을 맡는 것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 실러 원작 팬들은 엘리자베타가 오페라상에서 너무 청순가련한 히로인으로 그려진 것에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원작에서의 엘리자베타는 카를로스를 구하기 위해 봉기를 주도하는 외유내강한 여성이지만 오페라에서는 자신의 신세 한탄만 하는 전형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다. 때문에 옛날에는 단순이 엘리자베타를 청순가련 히로인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잦았으나 요즘 활동하는 소프라노들은 원작과 비슷한 외유내강한 여인으로 연기하려는 경우가 많아졌다.

6 등장인물 소개

  • 필리포 2세(펠리페 2세) : 에스파냐의 국왕. (베이스)
  • 돈 카를로(돈 카를로스) : 펠리페 2세의 아들. 로드리고 포사 후작의 친구. (테너)[29]
  • 엘리자베타 드 발루아(엘리자베트 드 발루아) : 펠리페 2세의 세 번째 왕비.
  • 로드리고(로드리그) : 포사 후작. 카를로 왕자의 친구. (바리톤)
  • 에볼리(에볼리) : 스페인의 공녀. 펠리페 2세의 정부. (메조 소프라노)
  • 테발도(티볼트) : 엘리자베타 왕비의 시종. (소프라노)
  • 종교재판장 : 나이많은 가톨릭 교회의 재판장. 펠리페 2세의 말상대. (베이스)
  • 수도승 : 선왕 카를 5세의 비슷한 용모와 목소리를 가진 정체불명의 수도승. (베이스)
  • 천상의 소리 : 목소리만 나오는 배역. (소프라노)

7 음반과 영상물

  1. 역대 최고의 펠리페 2세로 평가받는 갸우로프이지만 지나치게 권위적인 면만 부각하고 표현에서 정석적이라는 비판도 많다. 반면 성악적인 면에서는 갸우로프가 가장 안정적이고 최고라는 점에서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2. 카푸칠리의 포사는 그의 강점인 안정적이고 모범적인 가창을 들려준다는 점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것이지 연기까지 보면 여느 이탈리아 성악가들처럼 목석연기라는 평가도 만만찮게 보인다. 거기다 그의 테너 느낌이 나는 바리톤 목소리도 테너와의 이중창을 부를때 구분이 안 된다는 평도 꽤 나오고, 듣다보면 식상하다는 평도 꽤 있다. 성악가들한테서는 교과서적인 발성을 들려주는 카푸칠리이지만 연극적인 면을 선호하는 대중들은 되려 밀른스나 햄슨이나 드미트리, 킨리사이드 같은 성악가들을 더 선호한다. 정석적인 발성만을 보여주는 성악가랑 스타성을 가진 오페라 가수의 극과 극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3. 밀른즈는 메트에서 여러번 로드리고 역을 맡았고, EMI에서도 도밍고, 카바예, 라미몬디, 버렛과 함께 돈 카를로 전곡반을 녹음하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명반 항목 참조.
  4. 1984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프로덕션에선 에볼리 공녀를 애꾸눈으로 표현했는데, 이게 고증에 충실한 것이다. 실제로 에볼리 공녀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미인 이었지만, 병에 자주 걸려서 한 쪽 눈을 잃고, 그 결과 안대를 착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에볼리 공녀의 초상화
  5. 최고의 에볼리 라는 평을 받는 발차이지만 카라얀이 푸쉬를 상당히 주었기에 지나치게 과찬을 받았다는 평도 있고, 발차보다 더 훌륭한 메조들도 많다는 얘기도 꽤 나온다.
  6. 그러나 연기에서는 당시에 같이 활동했던 플라시도 도밍고에게 밀리고, 다른 후배가수들에 비해 성격적 표현이 부족하다는 최근 평가도 꽤 찾아볼 수 있다.
  7. 재미있게도 에릭 할프바르손은 파파노가 지휘한 세 가지 돈 카를로스 영상물 1996년 샤틀레 실황, 2008년 런던 실황,2013년 짤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에서 모두 종교재판장으로 출연한 바 있다. 2011년 메트 HD 라이브에서도 종교재판장으로 나왔었다.
  8. 물론, 이전에 나온 일 트로바토레시칠리아의 섬의 만종도 다른 판본이 있지만, 이쪽은 대체적으로 오리지날 버전이 자주 연주되는 편이다.
  9. 안토니오 파파노가 지휘한 1996년 파리 샤틀레 극장 실황이 이러한 쪽에 속한다.
  10.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가장 선호한 것도 4막짜리 이탈리아어 버젼이다.
  11. 국내에서도 5막짜리 이탈리아어 버전을 선호하는 이가 꽤 많다. 프랑스어 버전은 오페라 분위기랑 매치가 잘 안된다나??
  12. 다만 이시기에 독일 음악빠돌이 미친놈들이 방해를 하지만 실패로 돌아가는 일이 있었다.
  13. 왕자와 엘리자베타가 만나는 퐁텐플로 숨 장면이 잘렸다.
  14. 이 라크리모사는 베르디의 레퀴엠에서도 나오는 음악이지만 원래는 파리판 초연때 로드리고 장면 이후 넣으려고 했던 음악이었으나 리허셜때 베르디가 라크리모사를 잘라버렸다고 한다. 허나, 이 라크리모사를 멜로디 작곡한게 아까웠는지 베르디는 레퀴엠에 그 음을 재탕해서 라크리모사로 사용했다.
  15. 카라얀이 지휘한 1958년 짤츠부르크 실황음반에서는 4막짜리 인데도 발레음악이 추가되어 있다.
  16.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1978년 라 스칼라 돈 카를로 공연이 이 판본을 사용했다.
  17. 이 버전은 내용상의 개연성을 고려해서인지 잘 연주되지 않는다.
  18. 2013년 국립 오페라단이 연주한 돈 카를로스 공연도 밀라노 판본이다.
  19. 무려 발레랑 라크리모사 들어가있고, 피날레음이 요즘 연주되는 것이랑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는 버젼이다.
  20. 아바도가 리즈시절에 스칼라좌에서 지휘했던 시몬 보카네그라맥베스도 중량급 넘친 성악진들 데려왔음에도 영상물에선 좋은 평은 받지 못한다. 화질과 음질의 열악함은 둘째치고 카메라 워크가 산만함을 보여주고 성악가들이 대부분 목석연기와 짱짱한 노래만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아바도가 지휘한 것 뿐만 아니라 당시 이탈리아 공연 실황들은 연기 지도는 고사하고 카메라 워크가 굉장히 산만하고 노래의 짱짱함을 중시한것으로 유명했는데 카라얀이 지휘한 1977년 일 트로바토레 실황에서 가수들의 연기를 중요시하고 카메라 워크를 자연스럽고 다양하게 잡는 것과는 완전 대조가 되는 부분이라 볼 수 있다. 어찌보면 시대의 한발 앞서 영상물의 시각적 면을 중요시했던 카라얀옹 되시겠다.
  21. 호세 반 담은 카라얀이 지휘한 EMI 스튜디오 녹음에서 수도승의 목소리를 담당했으며 실제 공연에서도 카라얀의 지시로 수도승이나 종교재판장 역으로 나온 경력이 있다.
  22. 파파노가 지휘한 2008년 런던 실황도 좋은 평은 받지만 이 실황은 비야손의 불안한 노래와 킨리사이드의 노래에서 호불호가 갈리며 벨칸토 전문 가수인 소냐 가나시를 기용한것에 찬반양론이 많다. 그 외엔 대체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평이 대부분이지만 DVD로만 출시되었기 때문에 영상물로썬 음향에서 손실을 많이 입었다는 아쉬운 평도 있다. 고집쟁이 EMI
  23. 비쥬얼상의 평가지만 라몬 바르가스의 돈 카를로스가 1992년 라 스칼라 공연의 파바로티처럼 너무 후덕하다는 평도 꽤 있었다. 지못미 바르가스 대신, 연기에선 동상처럼 굳은 목석연기만을 보여준 파바로티와는 달리 바르가스의 카를로스는 연출자의 의도대로 순수한 돈 카를로스의 모습을 잘 연기했다는 호평도 있다. 목소리 상태에서도 후에 나오는 2013년 토리노 극장 실황보다 더 괜찮은 노래를 들려준다는 평도 많다.
  24. 2000년대 이전에는 오페라계 중심이 단순히 노래였다. 지금은 노래를 잘 부르더라도 비주얼과 연기가 안되면 성공하기 힘든 시대가 되어서 관객들에게 노래만 잘 부르는게 아니라 보는 즐거움도 있어야 하는 추세다. 그래야 몰입이 더 크거든..
  25. 돈 카를로와 로드리고의 듀엣 "함께 살고,함께 죽는다(Dio, che nell'alma infondere)" 부분에 대해 둘이 사귄다는 농담반 진담반의 평가도 있다.(...) 거의 맞는 얘기다. 실러 원작을 자세히 봐라. 두번 봐라.
  26. 이 공연에서 펠리페 2세를 맡은 가수는 니콜라이 갸우로프였다.
  27. 하나는 솔티가 지휘한 1965년 Decca 음반, 하나는 카라얀이 지휘한 1976년 EMI 스튜디오 음반
  28. 이 음반이 스튜디오 음반 역사상 최초로 연주된 프랑스어판 돈 카를로스 전곡반이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
  29. 드라마티코 테너가 맡아야 하는 역할이다. 내용보심 알겠지만, 그 만큼 무겁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