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음악

(류큐 음악에서 넘어옴)

1 개요

오키나와 음악(沖縄音楽)은 일본 오키나와 현에서 불려지는 음악을 말한다. 대개 전통적으로 불려진 궁정음악과 민요, 현대에 발달된 우치나 팝(ウチナーポップ)[1],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을 통해 발달한 오키나와 록까지 아우른다.

시마우타(島唄, 섬 노래)라고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시마우타는 정확히는 아마미 군도의 민요를 말한다. 게다가 일본의 밴드 THE BOOM이 발표한 오키나와풍의 곡 시마우타가 히트를 치는 바람에 이것과도 헷갈리곤 한다.

2 특징

오키나와 출신의 가수가 불렀다고 해서 전부 오키나와 음악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오키나와 음악의 기법을 쓰거나, 오키나와의 언어로 곡을 만들거나, 오키나와의 정서를 담고 있어야 한다. 때문에 아무로 나미에가 오키나와 출신 뮤지션 가운데에는 가장 유명한 인물에 들지만, '오키나와 음악'이라는 장르를 하는 것으로는 분류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류큐에서 쓰이는 음계는 류큐 음계(CEFGB)라고 하는 5음계로서, 일본 본토의 민요와 엔카에서 쓰이는 요나누키 음계(CDEGA)와는 구별된다. 요즘 만들어지는 곡들은 류큐 음계에 약간의 변화를 주어 쓰기도 하는 듯.

오키나와의 전통악기 가운데에는 본토와 구분되는 것들이 여럿 있으며, 특히 그 가운데 산신(악기)은 현대에도 자주 쓰이며 인지도 또한 높다.

오키나와에서 예로부터 불려지던 음악이다 보니 류큐어로 된 가사가 많다. 그 중에서도 류큐어의 '서울말' 취급을 받는 오키나와어가 가장 많이 쓰이며, 미야코어 등 지역의 언어를 쓰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오키나와의 뮤지션들이 일본 본토에 진출하면서 아마토구치(야마토의 말, 즉 본토 일본의 표준 일본어)로 가사를 쓰거나, 원래 류큐어로 되어있던 가사를 야마토구치로 번안하여 부르는 경우도 많다.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하며 발전하던 시절의 오키나와 록에는 영어 가사가 많이 쓰였다.

3 하위 장르

3.1 고전 음악

류큐 왕국의 전통 궁정음악으로는 실내악인 우자가쿠(御座楽)와 행진곡인 루지가쿠(路次楽)가 있다. 18세기에는 슈리의 음악가였던 야카비 초키(屋嘉比 朝寄, 1716~1775)가 쿤쿤시(工工四)라는 악보를 만들어 당시의 곡들을 기록하였다.

류큐 고전음악의 유파로는 탄스이류(湛水流), 아후소류(安冨祖流), 노무라류(野村流)가 있으며, 이들 유파의 전승자들은 현재 인간국보(무형문화재)이다.

3.2 민요

지구상 여느 민족과 마찬가지로, 류큐인들도 자신들만의 민요를 발달시켰다. 현재에도 자주 불리는 곡들이 많다. 오키나와 민요 가수들의 상당수는 우치나 팝 또한 발전시키기도 했다.

일본 본토에서도 인기가 꽤 있으며, 여러 뮤지션들의 관심을 받기도 한다. 사카모토 류이치도 오키나와 민요를 자신의 음악에 자주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2]

3.2.1 주요 곡들

  • 류카(시)(琉歌)는 류큐 왕국의 전통 정형시 및 여기에 곡조를 넣어 부르는 민요들을 말한다. 18세기의 여류가인인 운나 나비(恩納なびー)[3]의 시를 바탕으로 한 운나부시(恩納節)가 유명. 8/8/8/6의 음수율을 지니는데, 다른 민요에서도 지켜지는 경우가 많다.
  • てぃんさぐぬ花(틴사구누하나, 봉선화꽃) : 오키나와에서 가장 널리 불려지는 민요. 한국아리랑과 비슷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 月ぬ美しゃ(츠키누카이샤, 달의 아름다움) : 야에야마의 민요이며 자장가로 많이 불려졌다고 한다.
  • 安里屋ユンタ(아사도야 윤타) : 야에야마의 민요. 섬의 여인이 오키나와 본섬에 온 관리들의 청혼을 거부하며 튕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 国頭サバクイ(쿤쟌 사바쿠이) : 오키나와 북부(쿤쟌) 지역의 민요. 쿤쟌(国頭, 쿠니가미라고도 읽음)은 울창한 숲이 우거진 지역인데, 류큐 왕국은 백성들을 동원하여 이곳의 목재를 슈리로 옮겨와 슈리성을 건축하고 보수하는데 사용하였다. 이 때 사람들이 목재를 운반하며 부르던 민요이다.
  • 谷茶前(탄차메) : 오키나와 섬 서북부 탄차(谷茶) 지역의 민요로, 어촌 마을의 풍경을 흥겹게 노래한다.
  • 移民小唄(이민 코우타), 南洋小唄(난요 코우타) : 일본제국 시절 생계를 위해 오키나와를 떠나야만 했던 류큐인들의 슬픔이 담긴 민요이다.
  • 耳切り坊主(미미치리보지) : 미미치리보지(귀 떼인 중)라는 망령이 우는 아이의 귀를 베어가버리니 울지 말라고 하는 내용의 자장가.
  • ヒヤミカチ節(히야미카치 부시) : 히야미카치는 '기합을 넣어 힘내다'라는 뜻으로, 응원가로 자주 쓰이는 곡이다. 초창기 오키나와 이민자들의 리더였던 타이라 신스케(平良新助)의 시에 곡조를 붙인 것이다.
  • じんじん(진진) : 제목은 반딧불이라는 뜻으로, 아이들이 부르던 동요이다.
  • 赤田首里殿内(아카다순둔치) : 슈리 지역에서 미루쿠운케(弥勒迎け, 미륵맞이)라는 제사를 지낼 때 아이들이 부르던 노래이다.
  • サーサー節(사사 부시) : 좋아하는 여인에게 같이 놀러가자고 하는 내용의 민요이다.
  • デンサ―節(덴사 부시) : 아이들에게 인생의 교훈을 가르쳐주는 내용의 야에야마 민요이다.
  • 唐船どーい(도신도이) : 중국에 간 조공선이 하사품을 넉넉히 가지고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축하하며 부르는 매우 흥겨운 민요.

3.3 우치나 팝

오키나와 민요를 바탕으로 하여 발달한 오키나와의 대중가요이다.

3.3.1 주요 음악가

키나 쇼키치&참프루즈(喜納昌吉&チャンプルーズ)의 꽃-모든 사람의 마음에 꽃을-
  • 키나 쇼키치(喜納昌吉, 1948~) : 밴드 키나 쇼키치&참프루즈(喜納昌吉&チャンプルーズ)를 이끌고 있다. 대표곡으로는 ハイサイおじさん(하이사이 오지상), 花ーすべての人に心に花をー(꽃-모든 사람의 마음에 꽃을-)이 있다. 나하 국제거리에 있는 그의 거점인 차크라[4]에서 공연을 하기도 한다.
  • 치나 사다오(知名定男, 1945) : 오키나와의 원로급 뮤지션으로 어린 시절에는 아역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가수일 뿐만 아니라 네네즈 등을 프로듀스하기도 했다. 대표곡으로는 バイバイ沖縄(바이바이 오키나와)가 있다. 현재 나하 국제거리에 위치한 라이브하우스 시마우타를 경영하고 있다.
네네즈의 평화의 류카
  • 네네즈(ネーネーズ) : 1990년 데뷔한 여성 4인조 그룹이다. 네네(ネーネー)는 우치나 야마토구치로 '언니'라는 뜻. 황금의 꽃, 평화의 류카 등이 대표곡이다. 치나 사다오가 경영하는 라이브하우스 시마우타에서 공연을 볼 수 있다.
코자 미사코의 와라비가미. 나츠카와 리미가 일본어로 부르고 코자 미사코가 오키나와어로 부르는 영상이다.
  • 코자 미사코(古謝美佐子, 1954~) : 95년까지 네네즈의 멤버였으며 이후 솔로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곡으로 자신의 손주의 탄생을 축하하며 지은 자장가인 와라비가미(童神)가 유명하며 여러 뮤지션들이 리메이크하였다. 사카모토 류이치와 함께 작업한 경험도 많다.
나츠카와 리미의 눈물이 주룩주룩
  • 나츠카와 리미(夏川りみ, 1973~) : 본명은 타마키 리미(玉木りみ)이며 1999년 데뷔하였다. 2001년에는 그녀의 곡인 涙そうそう(나다 소소, 눈물이 주룩주룩)이 대히트를 쳤다.

3.4 오키나와 록

오키나와의 록밴드 컨디션 그린(Condition Green)의 1980년대 공연 모습. 인간탑이 압권이다..
어느 혼혈인 록 뮤지션은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간간히 "야, 베트남 전쟁 때는 대단했어. 연주를 겉날리기라도 하면 미군 병사 패거리들이 무대를 향해 맥주병을 던졌지. 살벌한 분위기였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맥주잔을 다 비우면서 "무대에서 연주를 하고 있으면, 내일 베트남으로 가는 군인들은 금방 알 수 있었지. 그들은 한쪽 구석에서 등을 구부리고 조용히 들이붓듯 술을 마시지. 그런 놈들을 보면 우리도 힘껏 연주해 보내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라고 말했다.

ー다카라 구라요시, <류큐 왕국> 서장 中

초창기 오키나와 록 음악은 주일미군 병사들을 위한 A사인 바[5]의 공연에서 시작하였다. 특히 베트남 전쟁 당시, 내일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미군 병사들의 불안을 달래주기 위한 하드록 계열을 많이 공연하면서 오키나와 록은 발전해나가기 시작했다. 이 때 오키나와 록의 중심지는 A사인 바가 몰려있던 코자 시(コザ市, 지금의 오키나와 시)였다. 64년에는 밴드 위스퍼스(ウィスパーズ)가 등장하여 서막을 알렸다. 위스퍼스의 멤버였던 카와미츠 카츠히로(川満勝弘, 일명 캇짱(かっちゃん))는 이후 인간 탑쌓기 같은 기묘한 퍼포먼스로 유명한 컨디션 그린(Condition Green)을 1971년 결성하였으며, 1972년에는 딥 퍼플의 영향을 받은 밴드 무라사키(紫)가 결성되었다. 또 '오키나와 록의 여왕' 캰 마리(喜屋武マリー)가 이끄는 마리 위드 메두사(Marie with Medusa)가 1974년 결성되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면서 이들 밴드는 일본 본토로 진출하였는데, 일본 록 신에 이런저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4 오키나와 음악으로도 분류되는 곡

  • THE BOOM의 시마우타(島唄)가 종종 오키나와 음악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THE BOOM은 일본 본토의 밴드이며, 시마우타는 밴드 멤버가 오키나와에서 히메유리 학도대에 있었던 할머니의 사연을 전해듣고 이를 음악으로 만든 것이다. 초창기 오키나와에서는 "오키나와의 음악을 파쿠리한 짝퉁이다!'라며 고깝께 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키나 쇼키치가 "오키나와의 혼까지 배꼈다면, 그건 짝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등 인정받기도 하고 있다. 시마우타가 굉장한 히트를 치는 바람에(오리콘 차트 주간 4위) THE BOOM이 오키나와 출신 밴드로 오해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런데 시마우타가 인연이 되어서인지 이후로도 다른 오키나와 음악들을 여럿 작업하였다.
  • さとうきび畑(사탕수수밭) : 오키나와 전투의 슬픔을 노래한 곡이다. 일본 본토에서 만들어졌지만 그 내용 때문에 오키나와 뮤지션들이 자주 부르기도 한다.
하츠네 미쿠가 부르는 <오키나와를 돌려다오>헬리콥터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오키나와 현민들이 미군기지 앞에서 부르는 <오키나와를 돌려다오>
  • 沖縄を返せ(오키나와를 돌려다오) : 일본의 민중가요.미군정 시기에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가 막심하자, 오키나와에서는 일본 본토로 복귀하면 미군기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대두되어 본토복귀운동이 시작된다. 일본 본토에서도 베트남전 반대 운동을 중심으로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를 없애기 위해 여기에 동조하였다. <오키나와를 돌려다오>는 이 당시 불리워진 민중가요이다. 그러나 1972년 오키나와의 본토 복귀 이후에도 미군기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본토 일본 정부의 오키나와에 대한 대우가 상당히 실망스러워서 요즘은 沖縄へ返せ(오키나와에 돌려다오), 沖縄に返せ(오키나와에게 돌려다오)로 개사해서 부르는 경우도 많다.
  1. 우치나(ウチナー)는 오키나와어로 오키나와를 이르는 단어이다.
  2. 사카모토 류이치는 오키나와 민요 뿐만 아니라 월드 뮤직 전반에 조예가 깊다.
  3. 일본어로 읽으면 온나 나베(恩納なべ)
  4. 사족으로, 차크라가 있는 건물의 3층은 아니메이트 나하점이다.
  5. A sign bar. 미군으로부터 위생검사 등을 받은 다음 병사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도 좋다는 허가인 A사인을 받은 가게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