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D 에스파뇰

2016-17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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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데포르티보라스팔마스레가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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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레알 소시에다드말라가발렌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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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베티스비야레알세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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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타 비고아틀레티코아틀레틱알라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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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뇰에이바르오사수나히혼
RCD 에스파뇰
Real Club Deportivo Español
정식 명칭Real Club Deportivo Español[1]
창단1900년
소속 리그프리메라 리가(Primera División de España)
연고지바르셀로나(Barcelona)
홈 구장에스타디 코르네야 엘-프라트(Estadi Cornellà-El Prat)
(40,500명 수용)
구단주라스타 그룹(星辉互动娱乐股份有限公司)
회장첸얀솅(陳雁升)
감독키케 플로레스(Quique Flores)
주장하비 로페스(Javi López)
애칭Periquitos(잉꼬), Blanquiblaus(하양-파랑)
공식 홈 페이지[1]

1 약력

2 역사

1900년 카탈루냐의 중심도시 바르셀로나에 카스티야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구단

에스파뇰이란 이름은 '에스파냐의' 를 뜻하는 말로, 스페인에서 최초로 스페인(카스티야) 사람에 의해서만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2] 당연히 에스파뇰은 그 출발부터가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바르셀로나와 크게 달랐다. 바르셀로나 대학 공학부 학생들에 의해 창설된 클럽이었지만, 오직 스페인 국적의 선수에게만 입단을 허용하는 등 '친 카탈루냐적' 성향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로 인해 구단명 역시 스페인인(에스파냐인)들의 클럽이란 뜻이 내포된 '클루브 에스파뇰 데 풋볼(Club Español de Fútbol)'로 정해졌다. 이후 1912년에는 알폰소 13세에 의해 왕가의 작호를 수여받아 '레알 클루브 데포르티보 에스파뇰 데 바르셀로나(RCD 에스파뇰)'라는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다.[3] 물론 현대에는 카탈루냐팀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서 카탈루냐 토박이 팬도 많다.
 
프랑코 독재 시절에는 바르셀로나를 견제하기 위한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에스파뇰은 스페인 중앙정부에서 바르셀로나로 파견된 군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았을 정도였다. 그로 인해 보수적인 카탈루냐인들로부터 한 동안 배척받았으나, 1990년대 이후부터 카탈루냐 클럽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주도한 인물은 전임 회장 다니엘 산체스 이브레였다. 이브레 회장은 바르셀로나를 향한 라이벌 의식을 꾸준하게 표출, '카탈루냐 더비'의 열기를 한 층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된다

라울 타무도, 세르히오, 데 루카스 등을 앞세워 1999-00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2005-06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 및 2006-07 시즌 UEFA컵 준우승으로 전성기를 꽃피웠다. 1990년대부터 유스팀에 적극적인 투자를 감행하여 자체적으로 양질의 유망주들을 키워내 왔을 뿐 아니라,[4] 바르셀로나에서 자리 잡지 못한 카탈루냐인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구단 전통의 애칭은 '페리키토스(Periquitos)'이며, 팬들은 보통 '페리코(Perico)' 혹은 '에스파뇰리스타(Españolista)'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페리키토스(뻬리끼또스)는 우리 말로 앵무새들이란 의미다. 이 별명의 기원은 과거 에스파뇰의 홈구장이었던 사리아 스타디움 근처의 공원에 항상 많은 앵무새들이 날아다녔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동안 육상트랙이 있는 몬주익 올림픽 구장을 사용했으나,[5] 지난 2009년 4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전용구장 '코르네야 엘-프라트'를 개장하며 새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가뜩이나 튼튼하지 못한 재무구조에 새 경기장 건설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주축 선수들을 팔수 밖에 없었다

2009년에는 팀의 주장이었던 다니엘 하르케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비극을 경험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중국의 완구재벌 라스타 그룹에 인수되었다.

3 라이벌 구단

3.1 FC 바르셀로나

지역 더비 라이벌 이자 최대 라이벌, 두 팀의 경기는 '바르셀로나 더비' 혹은 '카탈루냐 더비'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2000년대에 이르러 그 열기가 뜨거워진 더비매치로 손꼽힌다.[6]
본래 에스파뇰 구단 자체가 카탈루냐에서 사는 카스티야(이하 스페인)인들이 축구는 보고 싶지만 카탈루냐의 대표구단 바르셀로나는 응원하기 싫어서 만든 스페인의 구단이다, 사이가 좋을리가 없고 카탈루냐의 상징인 바르셀로나와 친 마드리드의 에스파뇰은 이념적으로부터 라이벌이었다[7]
90년대 들어서 에스파뇰이 카탈루냐 지역 팀으로의 정체성을 찾으며 사이가 좋아지나 싶더니, 이번에는 '콩의 분노(..)'라는 지역 라이벌 더비가 형성되고[8] 기존의 카스티야인 에스파뇰 팬들 까지 합세하며 충공깽, 바르셀로나에서 바르셀로나 FC 유니폼 입고 택시 잡았는데 승차거부 당한사람도 있다, 기사는 에스파뇰 팬이었고 그 역도 성립[9]
참고 기사

물론 상대가 워낙 먼치킨이니 자체적인 승률은 낮지만 바르셀로나도 상대가 중위권 팀임에도 불구하고 더비 라이벌의 의미, 부담감때문에 크게 긴장하고 제풀에 나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더비 라이벌이라는 특성상 에스파뇰도 정말 발이 부러져라 덤비기 때문에 경기 자체는 치열한 편[10]
그리고 흥미롭게도 2013 시즌 에스파뇰은 경기적으로도 반(反) 바르셀로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패스 성공율, 점유율 유지 능력, 천천히 침착하게 골 기회 만들기는 세계 최강이지만 에스파뇰의 패스 성공율은 바르셀로나보다 20%~30%는 낮으며 볼 점유율은 거의 관심 갖지 않는다, 골 기회? 계속 쏘다보면 몇개는 들어가겠지 라는 마인드로 빠르게 슛을 쏜다.
반대로 바르셀로나는 루저셀로나(..)라는 별칭도 있듯이 공중볼 경합에 약하고, 짧은 패스에 익숙하다보니 롱 패스를 선호하지 않으며 세트 피스 기회를 크게 중요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에스파뇰은 현재 프리메라 리가에서 공중볼 경합 능력은 최고 수준이고 롱 패스, 크로스로 볼을 배급하며 세트 피스 기회는 최고의 찬스이다, 즉 에스파뇰은 바르셀로나가 뛰어난 모든 부분에서 약한 모습이나 바르셀로나가 약한 모습에서는 에스파뇰이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바르셀로나와 더비 라이벌, 원수팀인것은 분명하지만 정작 그 팀의 핵심선수인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에게는 굉장한 호감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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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 Jarque siempre con nosotros.
(다니 하르케는 언제나 늘 우리와 함께다.)

이거 하나 때문에[11][12]
이 세레모니 뒤 열린 에스파뇰 홈 경기 더비에서는 에스파뇰 팬들이 이니에스타가 마킹된 바르샤 유니폼을 입고 그가 패스,볼 터치 해줄때마다 응원해주는 진 풍경이 펼쳐졌으며 더비 경기의 치열함을 평화화시킨 안멘
더비 경기에서 항상 있는 홈 팬들의 야유도 그에게만은 거의 안하고 오히려 박수 쳐줄정도로 호감을 보인다물론 골넣으면 헬게이트가 열리겠지만

차비 에르난데스의 가족들은 골수 에스파뇰 팬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아들이 바르셀로나 간다고 했을때 큰 트러블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보기와는 다르게 양 구단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듯,물론 경기만 시작하면 헬게이트가 열리겠지만

사실 에스파뇰은 츤데레이다물론 현지 팬한테 이런말 하면 헬게이트가 열리겠지만

한국 꾸레가 바르셀로나 가서 FC 바르셀로나 유니폼 입고 축구장 보인다고 에스파뇰 구장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면 물론 헬게이트가 열리겠지만

이 동네는 이미 미쳤어

3.2 레알 마드리드 C.F.

과거에는 바르셀로나 적지 한가운데에서 숙적 바르셀로나에게 고춧가루를 뿌리며 레알 마드리드 우승을 보조하고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자기들 구단에서 뛰기에 기량이 떨어진 선수를 에스파뇰로 이적시켜 그 선수들에게 마지막 까지 선수로 뛸 기화를 주던 묘한 관계였다[13]

그러나 에스파뇰이 중위권으로 자립, 카탈루냐 팀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으며 예전만큼 가까운 관계는 아니게 되었다.[14]

15/16 시즌 레알전에서 연속 6:0 패배를 맛봤다. 호날두는 8골.

3.3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콩 클라시코
콩들의 전쟁
마덕리 체육회왕가서반 체육 구낙부가 함께하는 운동회
스페인 최고의 유명 축구 지역 마드리드,바르셀로나의 2인자 그러니까 콩들의 더비, 흥미로운것은 에스파뇰은 상술했듯 카탈루냐에 거주하는 카스티야인들이 주류였고 아틀레티코는 지역 서민층 마드리드(카스티야) 주변에 거주하는 카탈루냐인 및 바스크인 팬들이 주류였다 따라서 과거 두 팀은 우호팀도 아니고 라이벌팀도 그렇다고 아무 관계없는 팀도 아닌 매우 막장 드라마(..) 스러운 관계였다.
그러나 각각 자기 지역에 대한 정체성이 확립된후 엘 클라시코로 대표되는 사이 나쁜 지역끼리의 팀이니 사이가 나빠지고 라이벌이 되었다. 내가 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는 못잡아도 이놈은 잡는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2013 전반기 최고의 상승세였다 바르셀로나전 3무승부, 레알 마드리드 AC밀란 포르투같은 강팀도 확실하게 때려잡았고 리그,챔스 시즌 전 경기 무패, 디에구 코스타,다비드 비야, 아드리안,레오 밥티스탕등을 앞세운 공격진은 헤타페전 7-0 라요전 5-0 베티스전 5-0 발렌시아전 3-0 등 바르셀로나전 무득점을 제외하면 매경기마다 득점을 미친듯이 기록해주고 있었다, 유일한 무득점 경기, 유일한 시즌 패배가 에스파뇰과의 9라운드 리그 경기(1-0) 오오 라이벌 콩의 패기

3.4 발렌시아 C.F.

발렌시아 지역 자체가 마드리드,바르셀로나에게 라이벌 의식을 꾸준하게 보이는 지라 바르셀로나 축구팀인 에스파뇰도 라이벌 팀중 하나이다, 그러나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에스파뇰 구단은 돈도 없는 중위권 구단 주제에 라이벌만 최고 구단이다[15][16]

4 구단 레전드

4.1 라파엘 마라뇬 Rafael Marañ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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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유스출신으로 임대후 이적해와 70년대 에스파뇰을 이끈
전설적인 공격수 11년동안 262리그 경기에 출전했으며
그의 111골은 라울 타무도 전까지 구단 최다 골 기록이었다

4.2 다니엘 솔소나 Daniel Sols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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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뇰 유스 출신 미드필더로 230경기 넘는 출전에
라파엘과 짝짝꿍을 맞춰 에스파뇰의 1970년대를 이끌었다

4.3 토마스 은코노 Thomas N'k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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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룬의 국민영웅이자 에스파뇰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1982년 이적후 10년 가까이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1987-1988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이끌었다.[17]
카메룬 국대 경기또한 112경기 출전,
97년 볼리비아에서 은퇴후 에스파뇰 골키퍼 코치가 되어 현재까지 에스파뇰 골대를 지키고 있다.
저 이탈리아의 레전드 부폰신이 존경하던 골키퍼였다고.

4.4 라울 타무도 Raúl Tamu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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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뇰 유스 출신이자 구단 최고의 공격수, 340경기 리그 출장만으로도 대단한데 129골기록까지 세우고
2 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 2006-2007 시즌에는 UEFA컵 준우승까지 이끌었다.

4.5 루이스 가르시아 Luis Garcí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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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윙어로 220경기에 출장해 라울 타무도를 보조하며 팀의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끌었다

4.6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Mauricino Pochet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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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부터 2000년까지 센터백으로 출전헀으며 파리로 이적후 2004년에 다시 돌아와 3년동안 뛰고 은퇴, 2009년부터 감독이 되어 에스파뇰을 지휘하며 신임 감독이라고 믿기지 않는 리더싑을 보여주며 당시 팀의 주포였던 오스발도를 200% 활용해 상승세를 이끌었다,
특히 유스선수들 발굴을 적극적으로 함으로써 그 유스 선수들이 현재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수비수 출신답게 수비 유망주 발굴, 수비적 전술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2012년 막장 성적으로 경질당했다
이 경질에 대해서 팬들의 불만이 많았는데 후임자인 아기레가 잘 해줘서 백지화.
본인도 사우스햄튼으로 다시 감독직에 올라서 유스 시스템 좋은 클럽에서 감독 생활 즐기고, 토트넘 홋스퍼 FC로 가서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으니 어찌보면 모두가 윈윈인 셈

4.7 다니엘 하르케 Dani Jar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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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 출신+고향팀 출신+1군 2군 합쳐서 리그 255경기 출장+센터백 주장[18]+코파 델 레이 우승+ UEFA컵 준우승+비극적인 사망+구단 유일한 영구결번(21번)+스페인 리그 유일한 영구결번+전반 21분마다 모든 팬들이 그를 기리기 위한 박수를 침+평생 원클럽 맨+어렸을때 부터 온가족이 팬이라 충성심 최고+프랜차이즈 선수+구단의 상징+에스파뇰 유니폼 판매량 압도적인 1위+구장 내에서 하르케라는 이름이 붙은 가게, 공간, 훈련장을 많이 볼수 있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 현재 스쿼드

RCD 에스파뇰 2016-2017 시즌 스쿼드
번호이름영문이름포지션국적생년월일
1로베르토 히메네스 가고Roberto Jiménez GagoGK30px1986년 2월 10일
3루벤 두아르테Rubén DuarteDF30px1995년 10월 18일
4빅토르 산체즈 (부주장)Víctor SánchezMF30px1987년 9월 8일
5빅토르 알바레스Víctor ÁlvarezDF30px1993년 3월 14일
6오스카 두아르테Óscar DuarteDF30px1989년 6월 3일
7헤라르드 모레노Gerard MorenoFW30px1992년 4월 7일
8살바 세비야Salva SevillaFW30px1984년 4월 18일
9호세 안토니오 레예스José Antonio ReyesMF30px1983년 9월 1일
10펠리페 카이세도Felipe CaicedoFW30px1988년 9월 5일
11레오 밥티스탕Léo BaptistãoFW30px1992년 8월 26일
13디에고 로페스 AC 밀란 에서 임대Diego LópezGK30px1981년 11월 3일
14호세 마누엘 후라도José Manuel JuradoMF30px1986년 6월 29일
15다비드 로페스David LópezMF30px1989년 10월 9일
16하비 로페스 (주장)Javi LópezDF30px1986년 1월 21일
17에르난 페레즈Hernán PérezMF30px1989년 2월 25일
18하비 푸에고Javi FuegoMF30px1984년 1월 4일
19파블로 피아티 발렌시아 CF 에서 임대Pablo PiattiMF30px1989년 3월 31일
20파페 디오프Pape DiopMF30px1986년 3월 19일
22알바로 바스케스Álvaro VázquezFW30px1991년 4월 27일
23디에고 레예스 FC 포르투 에서 임대Diego ReyesDF30px1992년 9월 19일
28마르크 로카Marc RocaMF30px1996년 11월 26일

6 아시아와의 관계

2001년 일본선수 니시자와 아키노리를 영입했으나 극도의 부진으로 6경기 출전에 1년도 못채우고 볼튼으로 쫓겨났다

2009년에는 나카무라 슌스케를 2년 계약에 영입. 6000여명의 팬들 앞에서 입단식을 가져 한껏 기대를 자아냈으며, 리버풀 FC와의 경기장 신축 기념 경기에서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기대가 현실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데뷔한 이후 비야레알 C.F.와의 경기에서 평점 3점을 받는 등 부진한 경기를 펼쳤으며, 0점대를 받는 막장스런 경기력도 보이며 서서히 출전 기회가 줄어들자 잉글랜드 챔피언쉽에 있던 미들즈브러에서 영입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나카무라 본인의 거절로 팀에 잔류했으며, 결국 2월 시점까지 12경기 출전(선발 6번)에 1도움만을 파기록하는 저조한 성적을 남겼다. 프리메라 리가 2009-10시즌 최악의 이적 랭킹 1위로 꼽히기도 했다. 한국 해축빠들은 이걸 들먹이며 일본 놈들때문에 아시아인 스페인 진출 못함 이라며 징징거린다.한국인은 뭐 잘했나 그런데 우습게도 일본에선 이천수와 박주영 땜에 아시아 선수가 스페인에서 개죽쑤잖아~똑같이 욕한다. 재일교포 축구인 신무광은 이런 비난에 2명이 가서 말아먹은 한국보다 6명이 가서 말아먹은 일본이 더 욕먹는 거 모르느냐며 깠다. 사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아시아 선수로 성공했다고 볼 사람이 2015년까도지 이란선수인 자바드 네쿠남 하나 뿐이었다.

현대 A-리그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 '이시아스'가 에스파뇰 유스출신이자 에스파뇰에서 이적 해왔다

2012 시즌 전반기 막장스러운 성적을 기록중일때 전남의 윤석영 영입에 관심을 표했다, 다만 부족한 재정, 막장 성적때문에 무산됐지만

2015년 11월 3일 중국의 라스타그룹이 에스파뇰의 최대주주가 됐는데 56% 지분을 인수했다.
  1. 카탈루냐식 명칭은 Reial Club Deportiu Espanyol
  2. 이전에 스페인에서 창단한 모든 축구팀은 영국의 이주자들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3. FC바르셀로나가 바르셀로나 지역의 카탈루냐 인을 대표하는 거의 국가대표팀이라면, 그 지역에 살고있는 스페인인(카스티야)들의 지지를 받는 팀이 에스파뇰이다,.
  4. 꾸준히 몇 명씩은 터지는 편 그러나 몇경기 못뛰고 재정문제로 팔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빅토르 루이스라든가,세르히오 산체스라든가,디다크 라든가
  5. 에스파뇰의 홈구장인 몬주익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우리나라의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메인 스타디움이었다 황영조 선수가 몬주익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6. 카스티야의 대표 클럽 레알 마드리드와의 엘 클라시코가 물론 세계 최고의 더비이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다, 차라리 저건 서로서로 멀리 떨어져 사니 축구하는 날만 아니면 상관없지만 이건 라이벌들끼리 한집에 사는꼴이니. 그리고 이건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7. 대구에 살고 있는 호남 사람들이 축구는 보고 싶고 대구 구단 응원하긴 아니꼬와서 대구에서 호남스라는 구단 만들어 응원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물론 대구 팀과의 지역감정은 상상에 맡긴다, 그리고 스페인의 지역 감정에 비하면 우리나라 지역감정은 애교 수준이라는 것도 알아두고...
  8. 예를 들자면 마드리드 지역 팀-레알 마드리드,풀럼-첼시,과거의 맨시티-맨유
  9. 속칭 '카탈루냐의 피가 흐르는 한국인(..)"이라는 FC 바르셀로나 해축빠들이 바르셀로나 라이벌은 레알 마드리드, AC밀란(..?)밖에 없는줄 알면서 에스파뇰같은 중위권팀이 무슨 라이벌팀이냐고 비웃는 경우가있다, 팬질을 하더라도 구단이나 리그 역사는 알고 팬질해라 비행기 타고 축구장 직접 가봤어야 알지?
  10. 에스파뇰의 선수진중 카탈루냐 선수들은 거의 정통 에스파뇰 유스출신 or 바르셀로나 유스에서 크게 자라지 못해 구단에서 버림받아 에스파뇰로 이적한 선수들이다 그리고 이 버림받은 선수들의 바르셀로나전 동기 부여는 상상을 초월한다 다크펫?
  11. 에스파뇰 유스 출신,주장,레전드였지만 2009년 프리시즌중 심장마비로 사망, 그의 등번호 21번은 영구결번이 되었고 경기 전반 21분에 모든 팬이 그를 기리기 위한 기립박수를 친다
  12. 라 리가에는 1군 등록 선수 수에 제한(1군팀 총 25명이 1~25의 배번만 나눠 가진다. 26번 이후는 B팀이하 리저브팀에 등록된 선수거나 19세이하 등록할 필요없는 유망주들이 단다.)이 있기 때문에 영구 결번이 존재하지 않는다. 클럽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영구결번을 강행하려 했지만 라리가 당국에서 거부. 따라서 에스파뇰은 그냥 21번은 비워놓는다고한다. 1군 자리하나를 손해보는 셈.
  13. 저 유명한 레알의 전설, 바르셀로나 킬러 디 스테파노도 이짓(..)을 했다 에스파뇰에서 2년뛰며 바르셀로나에게 마지막까지 빅엿을 주면서 은퇴
  14. 물론 옛날처럼 우호 관계는 아니지만 에스파뇰은 레알의 유스,2군 선수도 적극적으로 영입하는등 사이가 나쁘지 않다 아직 카스티야 출신 에스파뇰 팬도 많고
  15. 따라서 풋볼매니저 초보들은 이 구단을 선택하면 안된다 가뜩이나 능력치,자본 딸려서 라이벌전 마다 거의 질텐데 질때마다 감독신임은 떨어지고 선수 사기는 걷잡을수 없게된다그냥 말라가 해라
  16. 고수들은 다르다, 라이벌 구단인것을 이용해 선수 사기 조절, 동기부여를 확실하게 해줄수 있기 때문에 평범한 중위권 팀임에도 불구하고 강팀들을 때려 잡을수 있다, 실력만 있다면 중위권으로 프리메라 리가 우승하기 가장 쉬운 구단
  17. 바이엘 레버쿠젠과 결승에서 만나 홈에서의 1차전은 3-0으로 승리했지만 2차전 원정에서는 0-3으로 지고 승부차기로 우승컵을 놓쳐서 분루를 삼켰다. 참고로 이 2차전에서 동률을 이룬 레버쿠젠의 동점골을 넣은 선수가 바로 차범근.
  18. 정확히 말하면 주장은 아니었다, 주장직 받기직전에 떠났으니까 그런데 임시주장으로 출전한 경기도 많고 워낙 구단의 상징적인 존재여서 사실상 주장 취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