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케인


젊은 시절

Sir Michael Caine, CBE
마이클 케인 경.

본명Maurice Joseph Micklewhite -> Michael Caine[1]
생년월일1933년 3월 14일
국적영국
신체188cm[2]

영국배우이자 작가. 영국에서 가장 저명한 배우 중 한 명. 젊은 시절부터 188cm의 큰 키와 화려한 외모, 패션센스로 유명했고, 현재까지 100개가 넘는 영화에 출연했으며 기사 작위도 받았다.

런던 토박이 억양이 특징적이다. 배우 본인이 직접 시연하는 마이클 케인 억양[3] 귀족 역으로 나와도 이건 고치기 어렵다.

어시장 짐꾼과 청소부의 아들로 태어난 노동자 계급(Working Class) 출신이다. 부계 쪽으로는 아일랜드 혈통을 이어받았다. 학교를 졸업한 후 여러 가지 막노동을 하다가[4] 영국 육군에 입대하여 독일한국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한국에 웬 영국군이냐고 하겠지만, 한국전쟁유엔군으로 참전하여 한참 동안 한국에 주둔했던 주한영국군이 실제로 있었다. 주한영국군은 1993년 3월이 되어서야 43년 간의 주둔을 끝내고 철수했다. 철수 시의 인원은 참전 초기의 6만 3천 명에서 37명으로까지 줄어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마이클 케인은 한국전쟁 참전 이력을 가지고 있다. 1952년, 한국전쟁 도중에 영국 육군 로열 퓨질리어 연대 소속으로 참전했다가 중공군에 포위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영국에서 만들어진 유일한 한국전쟁 관련 영화인 <한국의 언덕>에 마이클 케인이 출연한 적이 있다.

군 복무가 끝난 이후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레퍼토리 극단들에서 무대감독 보조로 일하기 시작했다. 원래 쓰려고 했던 예명은 '마이클 스코트'였는데, TV 시리즈에 캐스팅 제안을 받고 영국 배우노동조합에 가입하려고 보니 거기에 이미 마이클 스코트란 배우가 등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케인의 에이전트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30분 안에 이름을 생각해내라고 했다. 당시 그는 런던의 시네마 메카 레스터 광장에 있었는데, 거기서 케인이 아주 좋아하는 배우였던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으로 나온, 태평양 전쟁미 해군 소해정을 배경으로 한 영화 케인 함의 반란(1954)이 상영되고 있었고 그리하여 '마이클 케인'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5]

그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줄루(1964)를 통해서였다.[6] 이후 국제 첩보국[7]에서 인기를 얻었고, 이탈리안 잡, 공군 대전략, 머나먼 다리 등등에 출연해 명성을 쌓아 갔다. 오스틴 파워 시리즈에도 출연했고 크리스토퍼 놀란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에서는 브루스 웨인의 집사 알프레드 페니워스 역을 맡았다.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1987,2000) 2회 수상,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2회,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전미비평가 협회 남우주연상, 전미 배우조합 남우조연상 수상같이 수상 경력도 굵직하여 2000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작위(Knight Bachelor)도 받았다. 다만 웃긴 눈물이 앞을 가리지 왜 웃겨? 에피소드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처음 받을때 졸작 죠스 4에 나오느라고 시상식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찍은 영화가 흥행과 평에서 쫄딱 망한 탓에 사람들은 되려 케인을 안타깝게 여겼고,[8] 2000년에는 당연히 시상식에 나가 상을 받았다.

노동자 계층 출신으로 별다른 정식 연기 공부 없이[9] 바닥에서 시작해 한 국가의 국민성을 대변하는 위치의 배우로 올라섰다는 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하고 닮아있다. 정치성향도 보수라는 점도 비슷.[10] 다만 당연하게도 캐릭터 이미지는 서로 다르다.

저서 <명배우의 연기수업(원제 'Acting in Film: An Actor's Take on Moviemaking')>은 케인옹의 연기 인생과 연기 노하우,그리고 배우로서의 행동지침 등이 세심히 쓰여 있는 책이다. 혹시 영화배우를 꿈꾼다면 <명배우의 연기수업>을 꼭 탐독하도록 하자. 이명세 감독은 "배우를 꿈꾼다면 무조건 읽어라!"라고 할 정도로 강추했던 명서다.

2016년 개봉 예정인 나우 유 씨 미 2 촬영 이후인 2015년 12월 이후 은퇴를 계획중이라고 한다. 연기에 임할 때마다 '오스카 상을 수상하거나' 혹은 '돈을 벌거나' 둘 중 하나였다고 하는데 오스카상도 이미 2개나 수상했고 돈도 충분히 벌었기에 더 이상 연기에 욕심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비밀 프로젝트(현재 영화 정보는 풀려 있지 않으나 개봉 일자까지 잡혔다.)에는 자신도 참여할 것이라 밝힌 것을 보면 꼭 그런 것만 같지도 않다.

왠지 네이버 검색창에 뜨면 사망설(…)이 뜬다. 아마 "마이클 고프"와 혼동되는듯 하다. 마이클 고프 역시 배트맨에서 알프레드 역을 맡았고 이름이 비슷하기 때문.

영국식으로 이름을 잘못 발음하면 "My Cocaine'된다(...)[11]
  1. 2016년 7월에 그의 예명을 진짜 이름으로 아는 공항 보안요원들 때문에 겪던 일들을 견디다 못해 결국 본명을 마이클 케인으로 바꿨다고 한다.
  2. 지금은 키가 조금 줄으셔서 184~185cm
  3. 본인이 직접 그런 억양을 쓴다는게 아니라 코미디 프로에서 자신의 억양을 따라하는 개그맨들을 묘사한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거. 김영철하춘화 모사개그를 하춘화 본인이 패러디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이다.
  4. 이때의 그는 동네를 쏘다니는 껄렁껄렁한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5. 동생이자 같이 배우 생활을 잠깐 같이 했던 스텐리 케인(Stanley Caine)도 형을 따라 성을 바꾸었다. 동생은 2013년에 백혈병으로 사망. 생전에 형과는 사이가 그닥 좋지 않았다고 한다.
  6. 다만 줄루에서는 영국군 장교역을 했는데 거만하게 오른손이나 뒷짐지고 다니는 손도 못쓰는 연기자라는 평을 들었다. 나중에 마이클 케인의 회고에 의하면 찰스 황태자의 거만떠는 모습을 참조했다는 것(!).
  7. 1965년 작. 원작명 The Ipcress File. 007 시리즈가 점점 판타지로 직행하는 것에 실망한 초기 제작진들이 뭉쳐서 만들었다. 사실적이면서도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를 가져서 007을 능가하는 60년대 최고 첩보영화로 꼽히기도 한다. 마이클 케인은 주인공 해리 팔머를 3편까지 맡았다. 두꺼운 안경을 쓴 범생이같으면서도 은근히 불량함이 넘치는 첩보요원 역할이다.
  8. 그러나 정작 케인 본인은 하나도 신경쓰지 않는 태도를 보여줬다. 한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 압권인데, "그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들리는 말로는 끔찍하다더군요. 하지만 그 영화가 (출연료로)지어준 집은 봤는데 아주 멋지더군요."(...)
  9. 제임스 맥어보이 항목에도 적혀있지만 영국 영화/연극계는 로열 블러드 중심으로 흘러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10. 마이클 케인은 보수당 지지자다. 물론 미국 공화당과 영국 보수당은 같은 선상에 두기에는 무리가 있긴 하다. 그리고 이스트우드는 리버테리안에 더 가깝다.
  11. My Cocaine을 제대로 읽으면 마이클 케인 옹의 억양로 "마이클 케인"이라고 읽는 것과 발음이 같다. 바로 위에 마이클 케인 억양 영상에서도 본인이 마이 코케인이라 발음한다. 참고로 미국식 발음은 "클"부분이 "ㄲ"에 가깝고 l발음 부분이 뒤의 케인부분과 구별이 가기 하기 때문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