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흐 바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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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h Wałęsa (레흐 바웽사)

역대 폴란드 대통령
1대2대3대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레흐 바웬사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1981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300px
로널드 레이건
1980
레흐 바웬사
1981
컴퓨터
1982
< 198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
1982 - 알바 뮈르달레흐 바웬사1984 - 데즈먼드 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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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9월 29일 폴란드 브워츠와베크(Włocławek) 출생.

1 개요

폴란드의 전직 대통령이자 솔리다르노시치(자유노조)를 창립한 노동 운동가, 그리고 폴란드의 국부.

2 생애

폴란드 북부 그단스크-레닌 조선소에서 조선공으로 일하던 중, 1980년 폴란드 정부가 공장의 노동자들을 단체로 해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웬사는 이에 저항하면서 실질적 노동자 대표로 그단스크-소포트-그디니아 지역의 노동자 총 파업을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 공산주의 체제가 허용하지 않는 자율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이 노조는 폴란드 연대노조(솔리다르노시치)[1]라고 불리고 바웬사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연대노조가 워낙에 강력했던지라[2] 정부조차 협상 대표로 바웬사를 인정했다. 하지만 주변 동유럽 국가에 줄 혼란을 막기 위해 소련의 압력을 받은 폴란드 군부는 1981년 12월 13일에 계엄령을 선포, 당 지도부를 내쫓고 바웬사 등 노동운동가들을 체포하였다. 그 후 바웬사는 1년간의 가택연금을 당하는데, 이 과정에서 연대노조를 지원하는 폴란드 출신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공산권 간에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소련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교황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히 토로했다.

가택연금 직후 프랑스 파리로 자신의 자서전을 몰래 보내 <희망의 길 Un Chemin d'Espoir>를 발매했으며 이는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련 등의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노동자들의 문제를 제대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폴란드의 사회운동가로 손꼽히던 그는 1989년 동유럽 혁명을 통해 폴란드의 사회주의 정권의 몰락에 기여했고 1990년2대 폴란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참고로 초대 대통령은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로 이 사람은 공산 폴란드 시절 육군 참모총장을 거쳐 서기장을 지냈다. 1980년대 말 협상 끝에 자유노조가 인정되기 이전 자유노조를 강경하게 탄압한 사람이 아루젤스키다. 하지만 이것은 자유노조의 세력이 강해지면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처럼 소련군이 직접 나서겠다는 소련의 협박을 받고, 소련군이 폴란드를 장악하느니 폴란드인 스스로 문제를 정리하자는 의미도 있었다(야루젤스키 자신은 2차세계대전 때 소련군에게 끌려가 시베리아의 가혹한 환경 속에서 강제노동을 했고 이 때문에 시력에 치명타를 입은 전적이 있다). 때문에 퇴임 후에도 심한 처벌은 받지 않았다. 결국 개혁파들의 퇴임 압력에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2대 대통령으로 바웬사가 된 것. 단 바웬사가 2대라고 해서 야루젤스키가 수십년간 독재를 한 건 아니다. 폴란드에서 대통령직이 생긴 게 1989년이고 야루젤스키의 대통령 임기는 1989년 12월 21일~1990년 12월 22일의 366일에 불과했다.

1996년까지 폴란드 대통령으로 재임했으나 당시 정책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는 당시 폴란드의 경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1995년 대통령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구 공산당 후보에게 패배했으며, 퇴임 후에도 폴란드에서 그의 정책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이 아니다.[3] 퇴임하면서 모든 퇴임 대통령의 권리를 포기한 덕에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 토크쇼 MC 등을 본다고 한다. 그래도 그 동안 폴란드 경제에 짐이 된 외채를 탕감시킨 것 자체는 높이 평가받는다.

물론 대통령 재임 시의 정책과는 별개로 그가 폴란드 민주화를 위해서 노력한 것은 많은 폴란드인이 인정하고 있다. 훌륭한 민주투사와 훌륭한 정치가는 전혀 별개의 직책이라는 걸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다른 신생 독립국의 국가 원수들처럼 기껏 독재 정권을 몰아냈더니 또다른 독재자로 타락하지 않은 점은 칭찬할 만하다.

3 여담

  • 콧수염이 트레이드마크인데, 2006년 경에 면도날 제조 회사인 질레트면도를 하면 백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했으나 "난 태어날 때부터 이 콧수염을 달고 태어났다"라며 거절했다. 그런데 또 몇 년 뒤에는 놀랍게도 깔끔하게 면도를 했는데, 이 때 언론에서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니 "그냥 재미로"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1. 한국에서는 보통 '자유노조'라고 하는데 연대노조의 정식명칭은 독립자치노동조합 "연대"(Niezależny Samorządny Związek Zawodowy "Solidarność", NSZZ "Solidarność")다.
  2. 이렇게 된 이유는 1956년에 포즈난 항쟁으로 정권을 한번 갈아엎은 경험이 한번 있었고(정확하게는 포즈난 항쟁 자체는 진압되었지만 이후에 집권당내에서 파벌이 교체되었다), 1970년에 또 한번 뒤엎은 경험이 있었던 데다가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도 상당했기에 자유노조를 때려잡았다가는 정권이 다시 갈아엎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이전의 선례가 이미 존재했으니 때려잡기가 힘들었던 셈인데, 이 때문에 당시 폴란드 정부에서 악명을 떨쳐가면서까지 차마 자유노조를 갈아엎지 못하고 체제내에 편입시키는 선에서 마무리하려고 했던 것이다.
  3. 사실 이런 현상은 폴란드에서 이전에 두번의 선례가 있었다. 고무우카는 1956년 포즈난 항쟁으로 스탈린주의파를 몰아내고 집권한 인물이었지만 집권 후반에 무능한 독재자로 전락하면서 인민들의 지지가 추락한 끝에 1970년 민중붕기로 물러났고, 고무우카를 축출하면서 집권한 기에레크는 초기에 경기호황으로 인기를 누렸지만 오일쇼크와 외채문제가 터지면서 역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