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희

V-리그 여자부 감독
75px이정철
(IBK기업은행)
65px김종민
(한국도로공사)
65px이도희
(현대건설)
75px박미희
(흥국생명)
70px차상현
(GS칼텍스)
60px서남원
(KGC인삼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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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감독
박미희(朴美姬)
생년월일1963년 12월 10일
출신지전라남도 해남군
출신학교광주여상 - 한양대
포지션센터, 세터
신체174cm
소속팀미도파 - 대농 (1983~1991)
지도자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감독 (2014~)
해설위원KBS N 스포츠 해설위원 (2006~2014)

1 소개

대한민국배구인. 現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감독. 1980년대 대한민국 여자배구계를 빛냈던 레전드.

2 선수 시절

1980년대 대한민국 여자 배구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였다. 이미 광주여상 시절에 청소년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 탈고교급의 실력을 자랑하며 고교 졸업 전부터 국가대표팀에 뽑히곤 했다. 이후 고교 졸업 후 1983년에 고교시절부터 관리를 해왔던 미도파로 스카웃됐다. 성인 무대에 데뷔해서도 굉장한 활약을 보여 줬으며, 1984년 대통령배대회(백구의 대제전) 초대 MVP이기도 하다.

1980년대라고 하지만 어쨌든 주 포지션인 센터 치고는 매우 작은 174cm의 키에도 불구하고 중앙 공격은 물론 양 날개에서도 평균 이상의 공격력을 보여 줬으며, 세터로서도 코트를 누빈 올라운드 플레이어이기도 했다.[1] 그래서 현역 시절 별명이 코트의 여우. 배구 팬들 사이에서는 "박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두 번의 아시안 게임(1986 서울, 1990 베이징)과 두 번의 올림픽(1984 LA, 1988 서울)에 출전했었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선수 선발 문제와 무릎 부상 때문에 부침이 있기도 했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서울 올림픽 때 수비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당시 올림픽 여자배구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가 최초로 받은 개인상이었다.[2] 또한 은퇴하기 전 출전했던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이후 1991년 결혼으로 잠시 선수 생활을 접었다가 결국 1991년 겨울 시즌에 은퇴를 하게 된다. 당시 나이 29으로 현재로 치면 좀 더 뛸 수 있는 나이에 은퇴해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미도파-대농이 1980년대 후반 즈음부터 하락세에 접어들어서 박미희로서는 팀을 다시 살려보고자 고군분투하기도 했다.

선수 생활 중 한양대학교에 입학했으며, 은퇴 후 동 대학원에서 체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중국 옌볜과학기술대학교 체육학과 부교수를 역임했다.

3 해설위원 시절

은퇴 뒤에도 배구 현장에 계속 남아 헌신하고 있던 중 2006년 KBS 배구해설위원이었던 이세호 해설위원(당시는 KOVO 경기감독관으로 재직)의 권유로 방송해설에 뛰어들었다. V-리그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KBS N 스포츠에서도 신선한 시도를 해보고 싶었던 차에 해설위원이 됐다.

그동안 여자배구가 남자 해설위원이 경기 상황을 설명해줬다면 해설위원으로서의 박미희는 여자배구인으로서의 눈으로 경기 상황을 풀어서 설명해 줘 큰 호평을 받았다. 해설위원 초창기 시절에는 유수호 아나운서, 허주 아나운서 등 베테랑 아나운서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차차 연차와 경험이 쌓이면서 젊은 아나운서들을 잘 이끌어 주는 모습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여자배구를 대표하는 명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프로화 초창기 인기가 바닥이었던 여자배구의 인기를 예전 수준만큼 올렸다.

4 감독으로서의 활약

그러다 2014년 오프 시즌에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여성 감독으로서는 2010-11 시즌 GS칼텍스 서울 KIXX조혜정 감독 이후 두번째 여성 감독이 됐다. 흥국생명에서 오퍼를 하기 전에도 여러 팀에서 감독직 오퍼를 했었는데, 그 때마다 고사했다고. 그러다 자신의 배구 인생에 다시는 못 올 기회라고 생각하고 감독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감독으로서 첫 대회인 2014 KOVO컵에서 팀을 준결승에 올려놓았으나 GS칼텍스에 패해 4위로 마감하였다. 하지만 직전 시즌인 2013-14 시즌에 꼴지였던 팀을 빠르게 재건해 놓으며 정규 시즌을 기대하게 했다.

2014-15 시즌에는 정규시즌 6라운드 현재 4위에 랭크되어 있다. 비록 플레이오프 진출은 어렵게 되었으나, 지난 시즌에 꼴찌를 기록한 팀 치고는 호성적이라는 평이다. 3~4라운드에 걸친 6연패만 아니었으면(...) 특히 평균 연령이 가장 낮은 팀의 선수들을 다독거리며 팀을 만들어나가는 '엄마 리더십'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다만, 주축 선수들이 어려서 그런지[3] 분위기를 많이 타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크게 뒤지는 경기에서 선수들이 집중력을 잃는 모습을 여러 번 보였다는 점은 선수들을 이끄는 데 당근도 필요하지만 채찍도 쓸 줄 알아야 한다는 보완점을 남겨 뒀다. 그래도 어린 선수들을 이끌고 시즌을 5할 가까운 승률-40점 이상의 승점을 올렸다는 점은 고무할 만하다. 흥국유치원 원장 박미희

특히 멘탈갑으로 팬들에게 찍힌 세터 조송화를 집중 조련 중.

그런데 왠지 경기 전후 인터뷰 때 모습을 보면 이 분과 비슷하다면 기분 탓이다(...)

2015-16시즌 3위에서 2위까지 올라갈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것도 모자라 1위까지 있다 2위로 내려간 팀의 부진과 흥국생명 코치 출신이자 지금 현대건설 감독의 4라운드 이후 GS칼텍스와 도로공사에 승점 6점에 그치는 장난질과 외국인선수의 이탈로 올라가긴 커녕 3위마저 위태롭기도 했지만 2016년 2월 29일 6라운드 경기인 김천에서 열린 도로공사에 3-2로 승리하면서 도로공사가 남은 GS칼텍스와의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봄배구를 하지 못하게 되었고[4], 이후 3월 5일 인천에서 열린 현대건설과의 경기에서도 3-2로 승리하면서 GS칼텍스를 봄배구에서 탈락시키며[5] 흥국생명을 5년 만에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더불어 에게 희망고문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셨다. 이후 2년 재계약에 성공하여 그나마 프로스포츠의 여성지도자로서 성공한 커리어를 쌓았다.

하지만 해설위원 시절엔 혐오하던 몰빵배구를 정작 감독이 되서는 아무렇지 않게 하는데다 이재영을 공격 수비 안 가리고 혹사를 시켜 이재영의 앞날에 대한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결국 리우 올림픽 최종예선 대표팀 소집 전 부터 어깨부상까지 발생했고 그 부상으로 인해 최종예선에서 부진하며 박정아에게 밀렸다.

10-11시즌 흥국생명이 봄배구를 했지만 전력에 비해 플레이오프 진출에 그친 점은 재계약 후에도 발목을 잡을 위험성이 크다.
  1. 당시 미도파-대농의 감독이자 자주 국가대표 감독을 지냈던 이창호 감독의 제안으로 세터 수련을 받았다. 소속팀과 국가대표팀 세터는 '월드 세터'로 칭송받았던 이운임(現 KOVO 경기감독관)이 있었지만, 경기 중 로테이션에 의해 세터가 후위로 빠질 때 전위에 세터를 한 명 더 두어 경기를 운영하는 '더블 세터 시스템'을 시험해 보고자 박미희를 세터로 키웠던 것이다. 물론 박미희는 전문 세터는 아니었기에 아쉬운 점은 있었다.
  2. 그 다음에 개인상을 타게 된 것이 24년 후인 2012 런던 올림픽 득점왕을 차지한 김연경이다.
  3. 김수지, 김혜진 그리고 외국인 선수 레이첼 루크가 팀의 최고참인데, 이들이 다른 팀에 있다면 중고참 정도다. 그 외에는 4년차 이하의 선수들이 다수인 상황.
  4. 정확히는 이 날 경기 당시 흥국생명은 승점 44점, 도로공사는 승점 39점으로 도로공사는 흥국생명과 남은 GS칼텍스와의 경기에서 모두 3-0, 또는 3-1로 이겨 승점 3점씩 6점을 따야 자력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한데 이 날 경기 4세트를 흥국생명에게 세트를 내주며 세트스코어는 2-2가 되었다. 이로써 도로공사가 아무리 이 경기와 GS칼텍스와의 경기를 이겨도 승점 5점을 얻어 최종 승점이 44점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흥국생명이 남은 경기를 모두 져도 승점이 45점이 되므로 흥국생명에 1점 차로 밀리게 된다. 그러면 5세트 이후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도로공사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없게 된다.
  5. 승점 1점만 따도 GS칼텍스가 3점을 얻어도 상대 전적에서 밀리기 때문에 4세트 종료 후 세트스코어 2-2가 되는 순간 GS칼텍스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게 되었다.